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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그릇된 욕심(1) >
“어? 어어?”
김상호 대표는 뭔가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검지로 우현을 가리키며 외마디 고성만 질러댔다.
“지 피디는 가서 계약서 수정해서 뽑아와. 다음 시즌 이 조건 그대로 출연해야 한다는 거, 출연료 회당 7천 잊지 말고.”
“옙! 5분만 기다리세요.”
지여울 피디는 누가 말릴세라 탁자 위에 올려진 계약서를 낚아채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이야... 여기서 가장 여우는 김우현 대표님이시구만. 완전히 당해버렸네.”
김상호 대표가 아닌 다른 이라면 소모적인 말장난으로 밀고 당기기를 지속했겠지만 원체 기분파인 그의 성격을 알기에 이렇게 대놓고 거래 종료를 선언할 수 있었다.
“서로 기분 좋게 마무리 지은 거 아닙니까? 회당 7천이 애 이름도 아니고...”
“그럼 처음부터 7천까지는 생각하고 있었겠네? 아니지, 김 대표야, 솔직하게 말해 봐. 얼마까지 생각하고 있었어? 8천? 9천? 설마 1억은 아니지?”
“거 무슨 상상을 어디까지 펴고 그러세요? 딱 7천까지였어요. 우리도 그 이상은 부담돼. 이거 영화도 아니고 ‘네플릭스’에서 준 돈 가지고 제작하는 거잖아요. 조회수 폭발한다고 해도 우리가 돈 쓸어 담는 게 아닌 이상 우리도 사릴 때는 사려야 해요.”
“진짜? 이상하게 당한 기분이네.”
그는 못내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기분이 상했다면 판을 엎고 나갔을 테니까.
“이번 작품 잘 돼서 정말 다음 시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잘 해보자구요. 조강준 씨, 이번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조강준은 김상호 대표와는 달리 회당 7천을 받게 됐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지 희희낙락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저야 말고 잘 부탁드립니다. 최은미 작가님과 미팅은 언제 진행 될까요?”
“벌써 대본 받아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직 1회 초고 말고는 우리도 딱히 받아본 건 없어요. 들리는 말로는 5회까지 나왔다고는 하는데, 그것도 확실한 건 아니라서... 하하.”
“빨리 쓰셨네요. 하긴, 최은미 작가님 스타일이 어지간하면 쪽대본으로 배우들 피 말리게 하지는 않는다고 하던데, 처음으로 최은미 작가님이랑 하게 돼서 그런지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강준은 주로 로맨틱 코메디를 해왔기에 장르물을 주로 써왔던 최은미 작가와는 한 번도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최은미 작가가 조강준을 내심 눈여겨 본 이유는 아마도 짐작하건데 진지함과 코믹함을 겸비한 마스크와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너무 심각하지 않은 수사물을 만들 생각을 했기 때문으로 예상됐다.
“전에 최은미 작가님과 미팅할 때 안 물어보셨어요?”
“아직 할지 말지 결정도 안 된 작품을 어디까지 쓰셨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1회 초고 나와 있던 걸로 분위기랑 방향은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그걸로 대화를 나눴는데 역시 장르물 최고라고 꼽히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그럼 대본리딩은 언제쯤 진행되는 건지...”
“오늘 계약서 쓰니까 이번 주 내에 대본리딩 진행해야죠. 그리고 지여울 피디에게 들으시겠지만 제작발표회는 모든 촬영이 마무리 되고 스트리밍 날짜 확정되면 거기에 맞춰서 진행될 겁니다.”
“아... 좋네요. 드라마는 제작발표회를 촬영 중간에 하기 때문에 막상 인터뷰랑 마지막부분에서 말이 다르게 나오는 곤란한 경우도 있어서... 하하하!”
그런 경우야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거다. 작가가 처음 쓴 제작목표와 방향이 뒤로 갈수록 모호해지거나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괜히 연기한 배우가 곤혹스러워질 때도 있다.
“계약서 새로 출력해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지여울 피디는 행여 김상호 대표의 마음이 바뀌었을까봐 서둘러 계약서 세팅을 마쳤다.
“크흠... 이거 어째 당하고 돌아가는 거 같지만 우리 김 대표 만나서 기분이 좋네. 오늘 술이나 한 잔 하지?”
“하하, 그럼요. 저는 당연히 한 잔 하려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좋은 곳에 자리 잡아 놓겠습니다.”
“캬... 역시 우리 김 대표가 예전부터 센스가 있었어. 내가 참 아쉽다. 그 때 그렇게 나랑 같이 일하자고 해도 쌩까더니 벌써 이렇게 대표가 돼있네. 이제 나보다 훨씬 잘 나가고 말이야. 내 밑에 있었으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재벌 됐을 텐데, 응? 하하하!”
그 때 김상호 당시 상무를 따라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저런 행태 때문이었다. 아래 사람들을 부려먹기 좋아하고 책임은 떠넘기되 공은 자기가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우현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매니저가 술만 마시면 우현에게 하소연을 했겠는가? 진실로 그런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집니다. 그래도 오늘 술은 제가 사죠.”
“당연한 소릴... 오늘 손해 봤는데 술까지 사면 속 아파서 어떻게 마시나? 안 그래? 아하하!”
우현에게 당했다는 느낌을 자신의 호탕함으로 감춘 김상호 대표와 30여 분간의 대화를 끝으로 조강준과의 계약을 정상적으로 체결했다. 그리고 아침부터 좋은 소식을 기다렸을 최은미 작가에게 알렸다.
“회당 7천? 다음 시즌? 아후... 이거 시작부터 부담 너무 느끼는데?”
“부담 가져도 잘 쓰실 거니까 저는 걱정 안 합니다.”
“그래요. 다음 시즌이라는 게 이번에 결과가 좋아야 이야기가 나오는 거니까... 그래도 조강준으로 회당 7천이면 너무 쎈데? 이러면 조연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요?”
“괜찮아요. ‘네플릭스’쪽에 이야기 잘해서 맞춰줄 테니까 작가님은 제작비 신경 쓰지 마시고 작품만 잘 써주시면 됩니다.”
혹여 걱정돼서 글이 망가질까 최은미 작가를 달랬지만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러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것 같은 장면은 빼야 하나?”
“그러지 않으셔두 된다니까...”
“정말요? 자동차 추격씬 빼지 말까요?”
순간 ‘그럼요, 안 빼도 돼요’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이 양반이 진짜 아무리 스케일 크게 만든다지만 영화도 아닌데...
“자동차 추격씬은 좀...”
건물을 폭파시키는 규모가 아닌 이상 자동차 추격씬만큼 돈 잡아먹는 하마는 없다. 거기에 그 자동차가 외제차, 그것도 슈퍼카라면 그 씬 하나로 회당 제작비를 넘어서는 기가 막힌 경우까지 생긴다.
한 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
“그렇죠? 내가 생각해도 좀 무리한다고 생각했어. 그럼 자동차 추격씬은 뺄게요. 그냥 배우가 달리는 걸로 하죠, 뭐... 조강준 씨가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회당 7천인데... 괜찮겠죠?”
조강준이 오만원 권을 뿌리면서 달려도 자동차 추격씬에 들어가는 돈 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설마 달리다 죽겠는가?
“회당 7천이면 토할 때까지 돌려야죠. 피만 안 토하면 돼.”
“아하핫! 좋아요. 아, 맞다. 은하 씨는 회당 얼마나 받아요?”
“그게... 아하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재미있게만 써주세요. 제작비는 제가 벌어오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렇게 최은미 작가와의 통화를 마치고 ‘네플릭스’쪽에 제작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후 정윤석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모여 최은미 작가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제작 준비에 들어갔고 필요한 제작비를 산출해 ‘네플릭스’와 지루한 제작비 공방을 이어갔다.
대본리딩이 끝나고 일주일이 더 지났을 때, ‘네플릭스’쪽에서 회당 제작비를 8억으로 확정짓고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것이다.
공교롭게도 ‘카운터’의 촬영이 들어갈 즈음 KBC에서 방영할 이주희 작가의 ‘변호사들’이 제작발표회를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카운터’가 빨리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편성과 제작발표회 등의 촬영에 관계없는 불필요한 과정이 없었던 탓에다 파인프로덕션에서 최대한 제작일정을 바짝 앞당긴 탓이다.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은하가 출연한 ‘지옥도시’가 관객수 820만으로 개봉관에서 내려왔고 별이가 출연한 ‘28시간’이 600만 관객을 달성하면서 다시금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우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단 우현이 손을 댄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최소 두 배 이상 넘겨버리자 다른 제작사들은 파인엔터와 파인프로덕션의 손을 거쳐간 작품을 모두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연일 회사로 투자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지 물어오기 시작했다.
한 가지 찝찝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우현이 극찬했다고 소문난 ‘푸른 별’에 투자자가 다시 몰려들어 본래 생각한 제작비의 두 배까지 투자를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불필요한 장면에 힘을 주게 되거나 남는 돈으로 다른 짓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인데... 뭐, 우리 일이 아니니까 신경 껐다.
잘 나가는 집인 파인엔터에 또 한 가지 찝찝한 점은 DH엔터와의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아지며 몇몇 군데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석호가 서브남주로 출연하는 ‘비밀연애’에서 스카이엔터 소속인 이장훈을 은밀히 까내려고 한 게 이미 소문나버렸고 결론적으로 MBS에서는 이미 캐스팅확정이라고 기사까지 난 이장훈을 두고 마이더스 소속인 김지훈을 캐스팅해버렸다.
이후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DH엔터는 대놓고 방송사에 항의하지는 못하고 이런 식의 일처리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는 것으로 부당함을 알렸지만 상황은 소속사의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네티즌들은 방송사의 일처리에 대한 질타보다는 이장훈이라는 배우의 추문을 더 문제 삼았고 오히려 이장훈의 추문을 모르고 있던 네티즌들도 알게 되는 역효과만 냈던 것이다.
결국 방송사의 일처리를 문제 삼던 기사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장훈이 DH엔터로 달려가 당신들이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이래서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성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별이가 출연을 확정지은 ‘결혼시대’ 역시 대본리딩을 무사히 마치고 첫 촬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네티즌들과 기자들은 이번엔 파인엔터 소속 배우들인 강소연과 김별이 출연하는 ‘변호사들’과 ‘결혼시대’가 또 한 번 대박을 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했다. 물론 네티즌들 상당수의 의견은 ‘파인엔터가 손을 댄 작품이면 아예 믿고 본다’ 였다.
“안무 동선 체크 했어요? 음향 체크 다시 하고.”
사실 파인엔터에게 많은 톱배우들이 있다지만 가장 효녀는 누가 뭐라 해도 단연 유니다. 그녀가 홀로 벌어들이는 돈은 모든 배우들의 수입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다.
지금 수십 명의 스태프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무대가 있는 장소는 바로 고척스카이돔. 유니는 무대 한 가운데에서 귀에 인이어를 꽂은 채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서 있는 우현은 그녀를 도와 무대를 점검하고 있었다.
“파이브걸즈는?”
유니의 단독 콘서트 무대에 파이브걸즈가 게스트로 준비하고 있는데 경수가 후다닥 달려와 소리쳤다.
“애들 의상 준비 마쳤습니다. 드레스 리허설 지금 해볼까요?”
“어, 준비하라고 해. 유니는 잠깐 내려가서 쉬자.”
그런데 경수가 쭈뼛거리며 내려가지 않고 우현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대표님 저...”
“응? 왜? 뭔데?”
“방금 이상한 찌라시 하나를 들어가지구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경수의 표정이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게 했기 때문이다.
“누구?”
“유니... 본인 말고 가족에 관해서 떠도는데...”
우현은 무대를 내려가는 유니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오늘 공연 끝날 때까지 유니 절대 핸드폰 보지 못하게 해. 무슨 일인지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265]< 그릇된 욕심(1) > 끝
ⓒ 영완(映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