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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달래고 또 달랜다(4) >
“미팅 잡았다고? 그게 누군데?”
“조강준이요.”
“진짜? 조강준을 잡으려고 그렇게 오래 끌었던 거야?”
조강준은 단역부터 시작해 톱스타에 오른 연기파 배우다. 조각같이 생긴 다른 톱스타들에 비해 외모적으로는 일반인에 가까운 편이지만 연기력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로 외모를 커버해버리는 진짜 배우다.
아무리 예쁜 여배우와 같이 있어도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외모가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30대 남자 배우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배우가 바로 그다.
“그랬나 봐요. 그런데 조강준은 지금까지 장르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의외네요.”
“안 해본 장르라서 고민이 많았나보네. 그리고 ‘네플릭스’에서 하는 거라 더 그랬을 가능성이 높고... 어쨌든 가서 계약서 도장까지 찍어버리고 와, 놓치지 말고.”
“그럼요. 일단 테이블에 앉았으면 하는 거죠. 원래 테이블에 앉히는 게 힘든 거잖아요?”
“오호... ‘타짜’ 좀 봤나본데?”
“하핫! 티 났어요? 그리고 별이 씨 작품인 ‘28시간’ 500만 돌파 공약 걸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데요? 회사 차원에서 뭐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부산국제영화제 이후로 쭉쭉 치고 나가던 ‘28시간’은 금세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300만 돌파 공약으로 관객들과 함께 영화 관람을 예고했는데, 이 기세를 타고 가면 500만도 문제없다는 말이 돌고 있기에 벌써부터 공약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거다.
“그건 홍보팀이랑 알아서 정해. 나한테까지 의견 구할 필요 없어. 그냥 정하고 나한테 보고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별이 씨가 출연하는 ‘결혼시대’ 대본리딩 잡혔어요. 원래는 이쪽도 당장 이번 주에 대본리딩 잡자고 닦달했다고 하는데 강 피디님이 별이 씨 스케줄이 많아서 어떡해서든 미뤘다고 하더라구요.”
제작사 ‘시리우스’에서 손대는 드라마인 ‘결혼시대’는 원래 임세라 작가가 우희연을 여주로 낙점해 놓고 있다가 우희연이 ‘푸른 별’ 스케줄로 거절하자 김별을 여주로 캐스팅 했다.
시놉도 좋고 워낙 로맨스 물에 특화된 작가라 이번 작품도 평타 이상은 칠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시청률 대박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별이는 이번 작품으로 미니 여주자리를 확고히 하고 다음 작품에서 터뜨린다는 계획이니까.
눈에 띄는 대박 작품이 있었다면 그것을 했을 테지만 당장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이 없으니 이런 전략을 세운 거다.
“그렇네. 나는 깜빡 잊고 있었다. 별이한테 바쁘겠지만 대본리딩 준비 잘 하라고 해. 임세라 작가는 우희연 대신에 별이를 쓴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초반부터 기를 확 죽여야 한다고.”
“이건 또 무슨 곡절이 있었나보네요?”
새로운 뉴스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지 피디를 보니 그녀가 어제 입사했다는 걸 깜빡했다.
“아... 원래 임세라 작가가 여주 캐릭터를 쓸 때, 우희연을 생각하면서 썼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우희연이 ‘푸른 별’이라고... 혹시 알아?”
“알죠. 대작 전쟁영화잖아요? 제작비가 얼마라더라? 엄청 대작이라 지금도 충무로에서는 말들이 많다던데...”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 여러모로 말이 많은 작품이기는 하다.
“그래, 그 작품 한다고 거절했거든. 그래서 별이가 우희연 대타로 꽂힌 거야. 그 때 당시야 당장 우희연이 안 한다고 했으니 받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잖아? 조금만 눈에 차지 않아도 우희연 생각이 날 거 아니겠어?”
“하긴... ‘희연이가 했으면 더 잘했을 텐데...’ 이럴 수 있죠.”
“그래서 그래. 이럴 때는 초장부터 확 기를 죽여 놔야 하잖아? 알지?”
“그럼요. 그래야 대본도 잘 써주죠. 그리고 임세라 작가가 원래 은근히 기 싸움 자주 하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대본을 잘 써준다는 이야기는 여배우 힘들지 않게 잘 써준다는 말이다. 작가 입장에서 여배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육체적으로 힘든 씬을 자주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뺨을 맞는 다던가, 흙탕물을 뒤집어쓴다던가 하는 거 말이다.
“왜 그런지 몰라. 그냥 사이좋게 일 잘 하면 될 걸... 배우들끼리 기 싸움하는 것도 가까이서 보면 기 빨리는데, 작가랑도 기 싸움하게 생겼으니...”
“그거 안 하고 작품 하는 게 운 좋은 거죠. 어쨌든 저는 이만 다녀오겠습니다!”
지 피디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상훈 피디가 올라왔다. 강 피디는 지 피디에게 국내 업무를 넘기고 나서 그런지 얼굴빛부터 달라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야... 직원 뽑아줬다고 너무 달라진 거 아닙니까? 혼자 산삼 먹고 온 줄 알겠네.”
“하하하! 직원 채용이 산삼보다 더 좋은데요?”
“부럽네, 부러워. 나도 누가 내 대신 일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대표님 일은 대표님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긴 하네요, 하하.”
도와줄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처럼 말하지만 표정을 보니 도와줄 수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게 빤히 보인다.
“수출 진행 상황은 어때요?”
“지금 국내에서 ‘28시간’이 너무 잘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선판매한 곳은 다들 좋아라 합니다. 구매를 망설이고 있는 곳은 조금씩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절충하기 위해 계속 의견을 주고받는 중이구요.”
“하긴... 국내 개봉 상황을 보고 천천히 구매하려는 쪽에 비해선 선판매한 쪽이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해서 좋아할 수 있겠네요.”
“그것도 있지만 일단 선구매를 한 쪽도 자기네 나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지 확신하기는 어려운데, 국내에서 이렇게 대박이 나 버리면 자국에 홍보하기도 좋고 흥행에 대한 자신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음... 그렇군요. 현재까지 투자대비 회수율은 어떻게 됩니까?”
“현재까지 60%이상 회수됐고, 지금 이대로 일주일만 지나면 투자된 비용은 모두 회수 가능합니다. 이것도 국내 극장 흥행만인 것이고 선판매된 자금이 내주 중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예상 수익은 상당히 커질 겁니다.”
“관객이 700만 정도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아휴... 그 정도만 되면 국내 관객만으로도 예상 순수익이 최소 50억은 넘어갈 겁니다. 아마 천만이 넘어가면 100억은 넘겠죠? 휘유...”
강 피디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엄청난 수익 규모에 질린 것이다.
“에이, 그 정도에 놀라면 안 되죠. 제작사면 그 정도 규모는 당연한 건데...”
“아직 제가 손 댄 영화가 이 정도 대박을 터뜨린 경우가 없어서요. 확실히 천만 영화가 엄청나긴 엄청나네요. 게다가 해외영화 수출까지 더하면 엄청난 수익이 들어오게 될 거예요. 영화 하나로 어지간한 중소기업 수익을 넘어설 겁니다.”
“원래 엔터산업이 잘 되기만 하면 어떤 사업보다 이익률이 크죠. 앞으로 더 잘 될 테니 열심히 해봅시다. 보너스도 두둑이 드릴게요.”
“그럼요, 하하하!”
역시 직장인의 낙은 보너스와 휴가. 보너스라는 말에 강상훈 피디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 참, ‘미씽유’ 리메이크 건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윤해연 작가님은 요새 바쁘신지 아예 연락도 안 하시네?”
“하하, 윤 작가님 아주 바쁘십니다. 가기 전에 영어 공부하신다고 새벽부터 학원 다니고 개인 과외까지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야... 나이도 많으신 양반이 굉장하네...”
“저도 놀랐습니다. 아, 그리고 그 영어 과외를 은하 씨도 같이 받고 있다는데요? 혹시 은하 씨 해외 촬영 스케줄이 있습니까?”
“은하가요? 글쎄요. 한번 물어볼게요.”
강 피디가 가고 은하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지금 운동하는 시간이라 안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전화를 받는다.
“뭐해? 운동해?”
“방금 끝났어. 딱 샤워하러 들어가려는데 전화가 오네.”
확실히 평소보다는 숨이 거친 상태다.
“아, 그래? 아까 강상훈 피디한테 들으니까 윤해연 작가님이랑 너랑 같이 영어 과외 받는다고 하길래 너 혹시 외국 나갈 스케줄 따로 잡은 건가 해서.”
“헐... 뭐야? 옛날부터 나 영어 공부하라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어? 내가?”
우현은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아주 오래전, 은하가 막 첫 드라마를 할 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빠가 그랬잖아. 언제 해외 진출할지 모르니 영어는 꼭 배워둬야 한다고. 그래서 여유 될 때부터 계속 공부 해왔어. 그것도 몰랐냐? 바부탱이!”
“그랬어? 그런데 왜 난 몰랐지? 예전에는 내가 네 스케줄 전부 꿰고 있었는데...”
우현은 자고,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모든 활동을 자신이 통제했었기에 그 때 공부를 했다면 자신이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바빠서 공부할 시간도 없었지. 파인엔터 나오고 나서 여유가 생겼잖아. 스케줄도 널널했고... 그 때부터 공부한 거야.”
“아... 잘했어. 그럼 윤 작가님한테 과외 선생님 소개시켜준 거야.”
“응. 그 사람 잘 가르쳐주는 것 같더라. 가끔 외국 나갈 때마다 조금씩 써먹는데 갈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아.”
“오호... 이거 정말 해외 진출 생각해 봐야겠는 걸?”
“흥! 그럼 지금까지는 진짜가 아니었나보지?”
“꼭 그렇다기 보다는 당장 진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정도였지. 어쨌든 이번에 ‘네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카운터’가 제대로 먹히면 가능성 있을 거야. 영미권이 아니더라도 아시아권에서만 제대로 먹혀도 충분해.”
“그럴 거면 영어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나는 영미권에서도 충분히 통하고 싶어. 오빠가 그런 작품 만들어 줄 수 있잖아?”
여기서 ‘그건 좀 힘들지...’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크흠... 그렇지. 그럼, 그럼. 넌 영어공부만 열심히 해. 발음 잘해야 한다. 그거 중요해.”
“걱정 마셔. 그럼 나 들어가야 해. 끊는다.”
어째 궁금증 하나 해결하려고 전화했는데 커다란 혹이 하나 붙어버린 느낌이다. 은하는 간혹 착각하고는 한다. 우현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 사실 자신은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것뿐인데.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2시가 지났을 때, 지여울 피디가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왔다. 얼굴만 봐도 결과를 알 것 같다.
“대표님! 대표님! 성사 시켰어요!”
지여울 피디는 호기롭게 우현의 탁자를 때렸다. 탁자 위에는 조강준 소속사 이사의 명함과 조강준이 쓴 것으로 보이는 싸인이 있었다. 암묵적인 출연계약이라고 할까?
“역시... 나는 우리 지 피디 믿었다니까?”
“헤헤, 당연하죠. 처음에는 막 시집 온 새색시처럼 어찌나 빼던지... 아주 밀당 실력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제가 누굽니까? 확 낚아챘죠, 하핫!”
지 피디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낚아채는 시늉을 한다.
“탁월해, 아주 탁월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후 스케줄이 말이야.”
“원래 조강준 빼고 캐스팅 끝나 있던 상황이었잖아요? 당장 이번 주 주말에 대본리딩 스케줄 잡으려구요.”
“수고했어.”
“아, 그런데 미팅 때 보니 조강준 본인은 작품에 대한 열의가 있어 보였는데요, 아무래도 소속사에서 조건을 까다롭게 걸 것 같아요. TV방영도 아니고 인터넷으로 스트리밍 하는데다가 원톱 주연도 아니라서... 은하 씨가 존재감이 있잖아요?”
조강준 소속사 입장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기에 불안할 수도 있다.
“그렇긴 하지. 그래서? 지 피디 생각에는 무슨 조건을 걸 것 같아?”
[262]< 달래고 또 달랜다(4) > 끝
ⓒ 영완(映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