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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달래고 또 달랜다(1) >
“송유라가 왜요?”
“밀크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사귄다는 말이 있던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뭐, 뭐라구요?”
공 작가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만큼은 어린 보조작가도 놀라 설거지를 하다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안 들어보신 모양이네요. 흠... 모르셨구나...”
다시 슬쩍 의자에 앉아 편히 허리를 기댔다.
“지금 거짓말 하는 거 아니죠? 밀크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누군지 알고 말씀하시는 거 맞죠?”
예전과는 달리 요즘에는 여배우들의 열애가 큰 흠이 아니다. 단, 그 대상이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겠지만.
그런 면에서 밀크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출신부터가 남다른 친구로 꽤나 유명한 조폭 중간보스였다는 말이 무성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소속 연예인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합의를 잘 해서인지 잘 넘어가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쓰레기라는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인간이다.
그런 인간과의 열애는 송유라 개인에게도 큰 악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녀가 참여하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작가 놀음인데 자신이 집필하는 작품에 배우 하나 잘못 써서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게 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당연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모르고 말하겠습니까?”
잠시 입술을 깨물고 고민하던 공 작가는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보조작가를 향해 말했다.
“윤희야, 잠깐 나가서 음료수 좀 사가지고 올래?”
“네? 네, 알겠습니다.”
공 작가는 보조작가가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쿵 소리가 들린 이후에야 입을 열었다.
“후... 송유라를 넣은 건 DH엔터인데, 사실 난 불만 없었어요. 송유라 정도면 그들의 요청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한 대안이 되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연기력 되고 마스크가 정감이 가죠.”
우현의 대답에 공 작가는 피식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정말로 웃겨서 웃는 게 아니었다.
“송유라 마스크가 정감이 간다는 말은 처음 듣네요. 어쨌든 DH에서 강석호까지 밀어보려다가 물 먹은 상황인데...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지금 대표님네 소속 배우를 밀어주려던 DH엔터 소속 배우의 열애설을 들었다는 건데... 내가 지금 이해한 게 맞나요?”
“맞습니다.”
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어... 이게 지금 무슨 짓인 거죠?”
“무슨 짓이긴요? 저야 그런 이야기가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말한 것뿐인데...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얼핏 들은 이야기라고. 그냥 정보만 말씀드린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시죠?”
“그게 지금...!”
앞뒤가 맞지 않는 우현의 말에 소리를 치려던 공 작가는 순간 멈칫했다. 그제야 알아챈 것이다. 지금 우현이 이곳에 왜 왔는지를 말이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거군요.”
맞다. 애초부터 석호가 박찬혁에 비해 얼마나 매력 있는 배우인지 어필하려는 순진한 마음으로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술을 마시고 친분을 다져오는 내내 수많은 뒷이야기들을 들어왔다. 단지 그걸 써먹으며 일을 해야 할 만큼 급하지도, 막히지도 않았던 것일 뿐.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런 오해를 받으니까 억울하네요. 어쨌거나 저는 작가님께 제 나름대로 은밀하게 도는 정보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실 지는 작가님 마음이시죠.”
이 이야기가 DH엔터 쪽에 흘러들어간다면 서로가 조금 불편해지겠지만 상관없다. 실수는 그들이 먼저 했고 우현이 송유라에 대해 폭로하겠다고 대놓고 협박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알고 있다고만 했을 뿐. 게다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미 DH엔터와의 거래는 없었던 것으로 변했고 우현의 입장에서 DH엔터 관계자들은 능력 없는 사람들로 변했다. 어떻게 보면 냉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런 그들의 눈치를 보며 일할 이유가 없다.
“정말 여러 곳에서 가만히 두지를 않는 군요. 이런다고 해서 강석호 씨가 캐스팅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만 반대하는 게 아닌데요?”
이 말은 곧 공 작가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몰랐다면 몰라도 이미 송유라의 열애 대상을 알아버렸고 그게 우현의 입에서 나온 이상 불안감에서라도 우현의 입을 막아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송유라 대신 다른 여배우를 캐스팅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DH엔터에 무슨 이유로 그녀를 까겠다고 할 것인가? 일만 더 커질 뿐이다.
“이해를 잘못하신 모양입니다. 저는 우리 석호가 꼭 캐스팅이 되게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아무 사심 없이 배우 자체만 놓고 평가해달라는 말이죠. 그리고 다른 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둘 다 그게 아니라는 건 안다. 물론 우현은 석호가 박찬혁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하기에 제대로만 본다면 석호가 캐스팅 돼야 한다는 생각하지만 그녀는 다를 수 있으니까.
“후... 생각보다 대단한 분이시네요. 그러니까 연예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시는 거겠죠?”
칭찬이 아니라 비꼬는 말이지만 우현은 웃으며 받았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쨌든 공 작가님께서 공정하게 봐 주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오... 그런데 이거 무슨 차죠? 맛있네.”
마치 친한 사람과 기분 좋게 회의를 끝낸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난 우현은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곤 문을 열고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상암동으로 향했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았기 때문이다.
이동하는 중에 강 피디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일은 잘 해결되셨습니까?”
“네, 공 작가는 해결됐으니 최규식 드라마국장만 만나서 설득하면 됩니다.”
해결됐다는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결됐다구요? 어? 이상하다... DH엔터 쪽에서는 절대 안 바뀔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마음을 돌리셨습니까?”
“그냥 잘 달랬습니다.”
주연 여배우 열애설로 협박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이렇게 표현했지만 듣는 강 피디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달래요? 달랜다고 달래지는 양반이 아니니까 그렇게 힘들어 했을 텐데... 하여튼 설득하시는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정말 장난 아니시네요.”
어째 듣는 내내 찔렸지만 모른 척했다.
“크흠... 어쨌든 지금 상암동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DH엔터에다가는 아무 말 하지마세요. 석호가 캐스팅됐다는 것도 기사 내보내기 전에는 그냥 모른 척하시구요. 캐스팅 되고 나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죠?”
그 정도 눈치는 강 피디도 가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냥 ‘캐스팅 오디션에서 석호가 좋은 모습을 보인 것 같다’ 정도로 해명하라는 말씀이시죠?”
“하하, 맞습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최규식 드라마국장은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열심히 달래봐야죠.”
딱히 설명하기가 애매하니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상암동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 30분 전인 11시 경이었다. 최규식 국장은 공 작가와는 달리 미리 전화로 약속을 잡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공 작가와의 대화가 일찍 끝난 감이 있어 미리 가 있으려고 했는데 최 국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우현을 반겼다.
“아이고, 김 대표. 잘 왔어요. 나도 점심에 약속이 있는데, 너무 늦게 만나면 시간이 애매해져서... 일찍 잘 왔네.”
다른 지상파 국장들과는 이야기가 잘 통해 평소에 친분을 쌓아왔지만 MBS의 최규식 국장과는 큰 친분이 없다.
“그런가요? 다행입니다.”
최 국장은 지상파 3사 드라마국장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50대 후반이다. 나이에 걸맞게 보수적인 면이 많아 MBS 드라마가 쇠퇴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표가 요새 애들 말로 아주 핫하더구만. 오늘 김 대표 만난다고 하니까 우리 애들이 잘 해줘야 한다고... 허허허...”
최 국장이 말하는 애들은 식구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 소속 피디들을 말함이다. 아무래도 소속 배우들이 톱 배우인데다가 윤해연, 이주희 작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해주긴요, 저희가 잘 해야죠.”
“에잉... 그러면서 그렇게 케이블만 들입다 팔 건가? 케이블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지상파에는 안 돼요, 안 돼.”
손을 흔들며 한 일자로 다물어진 그의 입을 보니 마치 큰 벽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저희가 지상파에 진출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케이블에서 몇 작품 한 건, 그쪽에서 대우를 잘 해주니까 먹고 살려고 한 거지요. 당연히 지상파가 최우선 순위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요.”
“하하핫! 맞아. 돈은 펑펑 써대지만 이제 곧 꼬꾸라지게 돼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금토드라마 들어가지 않습니까? ‘비밀연애’라고...”
“아! 알지, 알지요. 그것 때문에 오신 건가?”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의뭉을 떤다.
“네, 저희 회사 소속 배우 중에 강석호라고 있는데, 서브남주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갑자기 오디션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바뀌었더라구요. 참... 오디션을 보는 건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제가 듣기로 박찬혁을 미리 내정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난감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본 최규식 국장은 황급히 양 손을 흔들었다.
“아니야.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해? 오디션은 아주 공정하게 치러질 거예요.”
“그렇습니까? 그거 다행이네요.”
“하여튼 이 바닥에는 이상한 헛소리들이 많이 돌아다녀. 김 대표도 명심해요. 회사 운영하면서 그런 소문들 전부 믿어서 말이야, 응? 여기까지 쫓아와서 그러면 아주 곤란해. 알겠어요?”
뻔히 공 작가와 말을 맞춘 걸 아는데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가며 훈계까지 하니 슬슬 열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면박을 줄 수도 없는 노릇.
“흐음... 그렇군요. 그럼 오디션이 공정하게 치러질 걸 믿고 저도 가보겠습니다. 아, 전에 KBC에서 ‘엽기적인 그 남자’를 드라마로 만든다면서 몇 천대 일의 오디션으로 여주를 뽑았다가 결국 방송사에서 그 여배우를 까고 멋대로 여주인공을 바꿔버렸지 않습니까?”
“으음... 김 대표,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
“아뇨, 또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해서요. 저희는 분명히 캐스팅이 확정 된 걸로 알고 왔다가 갑자기 오디션이 생겨버리니 어이가 없고 당황스럽기도 하니 별 생각이 다 드는 걸 어쩌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멋대로 배우를 갈아치우려 한다는 거야?”
기분이 무척이나 나쁜지 높이 올라간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배우를 바꾸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흥분하십니까?”
눈을 껌뻑이며 이상하게 바라보는 우현의 모습에 더욱 뻘쭘해진 최 국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뭐 어쩌자는 건가?”
“배우를 바꿔서 시청률만 잘 나올 수 있다면 바꿔야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렇게 배우를 갈아버린 ‘엽기적인 그 남자’ 시청률이 얼마만큼 나왔는지 아시죠? 배우를 바꾼 그 행위를 나무란 게 아닙니다. 그 결과가 나빴다는 거죠.”
“그럼 강석호를 서브남주로 쓰면 시청률이 오를 거다?”
우현은 미심쩍은 눈길을 한 최 국장을 향해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고작 서브남주를 석호에서 박찬혁으로, 또는 박찬혁에서 석호로 바꾼다고 시청률이 크게 바뀌겠어요? 다른 거면 몰라도...”
“다른 거? 다른 거, 뭐?”
[259]< 달래고 또 달랜다(1) > 끝
ⓒ 영완(映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