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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얼핏 들은 이야기(2)
“뒷얘기요? 내 뒷얘기 할 게 많나?”
화도 안 내고 피식 웃으며 딴소리를 하는 우현을 보고 강상훈 피디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대표님,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저도 사람인데 기분이 좋기야 하겠어요? 그런데 저는 나 감독에 비해서 갑이나 다름없잖아요? 을이 갑 좀 욕한다고 그 때마다 길길이 날뛰면 그게 웃기죠. 그런데 뭐라고 뒷얘기를 한대요? 나는 그게 궁금하네.”
“어떤 작품이든 자기네 배우들 쓰려고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소속 작가 드라마에는 꼭 자기네 배우를 주연으로 쓴다고…. 그리고 여성 영화만 찾아다니면서 영화판의 물을 흐린다고 하네요.”
당연히 강 피디가 말을 순화해서 저렇게 말하는 것일 테지만 실상 꽤나 험하게 표현했을 거다.
“아… 맞는 말이네.”
“그, 그렇긴 하죠.”
“내가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일 없는 배우 놀릴 수도 없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워, 신인배우들이나 일 없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눈꼴사나울 수도 있는데,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 감독이 확실히 보는 눈이 없네. 내가 여성 영화만 찾은 건 내 배우들에게 맞는 영화를 찾다가 그렇게 된 거긴 하지만 사실 난 여성 영화에 대해 조금 부정적인 입장이거든요”
“아, 그런가요? 저는 대표님이 고르신 작품들을 보면서 소속배우들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영화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일부러 여성 영화들을 주로 골라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이 틀렸네요.”
“하하, 그런 것처럼 보였나요? 그냥 은하나 별이한테 가장 어울리면서 흥행할 만한 영화를 찾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 여성 영화에 대해 부정적이신가요?”
“흐음… 정확히 말하면 여성 영화에 대해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여성을 주로 내세우는 영화에 대해 선입관이 쌓여있다, 라고 할까요? 일단 충무로 영화판에 여성 영화라고 내세우는 작품들 대부분이 상당한 작품성을 내재하고 그것을 내세우죠.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사업가이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 영화만을 내세우고 관객들에게 봐달라고 요구하는 것.”
“아… 그러네요. 지금껏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은 현재 영화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부정적이게 생각하면서 거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만드는 영화가 많은데 대부분 이런 영화들이 실패했죠.”
“중요한 건 스토리예요. 주인공이 여자든 남자든 중요하지 않아요.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스토리가 중요한데, 일부 평론가들과 여성단체들, 그리고 여배우들은 여성 영화가 없다며 불만을 터뜨린단 말이죠.
그런 반발심을 가지고 여성 영화를 만들지만 사실 관객들은 진지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보다는 짧은 시간 내에 스트레스를 풀고 재미를 느낄 영화를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요.
당연히 그런 관객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건데 왜 남성영화만을 만드느냐고 불만을 터뜨려요. 그러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서 말이에요. 이러니 내가 좋게 볼 수 없잖아요?”
“하하, 그럼 나 감독은 대표님의 생각도 모르고 혼자 오해하는 거군요.”
“오해하는 건지, 아니면 오해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혼자서 쉐도우 복싱 하게 냅두세요. 그 시나리오 가지고 어디서 투자받으면 조용히 영화 찍겠죠, 뭐.”
당연히 지금쯤 투자도 못 받고 빌빌대겠거니 해서 말한 건데 강 피디는 웃으며 우현의 예상을 깨뜨려줬다.
“안 그래도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나 감독이 대표님께 보여드렸던 시나리오로 제작사와 계약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어디랑요?”
“샤롯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던데요?”
“헐… 못해도 제작비만 100억은 훌쩍 넘어갈 작품인데 그걸 받았다니, 샤롯도 배짱이 두둑하네.”
“하하, 지금 샤롯 엔터테인먼트 놀리시는 거죠?”
“아닙니다, 진짜예요.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잘 안 될 것 같지만, 저라고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막말로 초대박이 날 수도 있는 작품을 내 손으로 깐 걸 수도 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망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솔직하십니다, 하하하!”
강상훈 피디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난 또 지금도 시나리오 들고 다니면서 욕하는 줄 알고 안쓰럽게 생각했는데, 계약 진행 중이라면서요? 성공한다고 해도 막 대박까지는 아니었으면 좋겠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계약까지 진행 중인 양반이 왜 내 욕은 하고 다닌대요?”
“그게 지금 샤롯 엔터테인먼트 사정과 맞물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이야기예요?”
“제가 얼핏 들은 이야기 소스가 그쪽에서 나온 건데, 샤롯에서 올해 야심차게 개봉했던 대작들이 줄줄이 물을 먹었습니다. 아시죠?”
“그야….”
생각해보니 올해 샤롯에서 내놓은 영화들이 물먹었던 건 전부 자신과 관련되어 있었다. ‘피아니스트’와 ‘지옥도시’가 대박을 내면서 그 반사작용으로 쭈그러든 영화가 전부 샤롯 엔터에서 만든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샤롯에서는 대표님의 본의야 어찌됐건 싫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흐음… 내가 샤롯 엔터 직원이라도 그렇겠네요. 싫어할 수밖에 없겠네.”
“사롯에서는 어쩌면 대표님 험담을 듣고 싶었을 수도 있죠. 어쨌든 그렇게 둘이 짝짜꿍해서 영화 하나 만들어보려는 상황이고 대표님은 좋은 안주거리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표님께서 깐 감독이 샤롯의 투자를 받고 대박을 터뜨리면 그네들 입장에서 굉장히 통쾌한 일이 되겠죠.”
“잘 해보라고 하세요. 조금 괘씸하긴 한데, 나 때문에 물 먹었다고 하니 만회 좀 하는 게 나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네. 아, 그리고 ‘카운터’ 제작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남주 캐스팅 준비 중인데 최 작가가 오늘 미팅을 잡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서 그냥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은근히 기대 중입니다.”
“도대체 누구길래 말도 안 한대요? 하여튼 괜한 자존심은….”
“서로 조심스러운 면이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TV를 통해 방영되는 게 아니라서 스트리밍에 대한 이해가 없는 친구들은 더 싫어하기도 합니다. 평상시 캐스팅 상황이라면 배우 쪽에서 보도자료 뿌리면서 미리 일을 부풀리기도 하는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우리 쪽에서 그래야 할 분위기라서….”
“하긴, 최철성 감독한테 까인 거 생각하면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잘 모르면 그럴 수 있죠. 사실 지상파 방송에 비해 국내 영향력이 적은 건 분명하니까.”
“맞습니다. 단지 제대로 통하기만 한다면 세계적 배우가 될 수 있는 기회인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네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 방영을 하는 게 처음이라 머리로는 괜찮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팍 와 닿는 건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나 감독 관련된 일은 그냥 신경 끄고 계세요. 나중에 결과가 말해줄 테니 말이에요.”
“그러겠죠.”
강상훈 피디와의 회의 후 그날 밤 11시 50분이 되었음에도 사무실에는 우현과 유니를 비롯한 상당수의 직원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 스케줄이 없었던 별이까지 유니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직원들에게는 퇴근하라고 일렀지만 그들도 괜히 긴장이 되는지 음원 공개 후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한다며 몇몇은 기어코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중에 제가 전부 한 턱 쏠게요. 나 다 기억했어.”
유니는 남아있는 직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늦게까지 남아 있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그렇게 표현하는 거다.
“그럼 내가 안 쏴도 되는 거지?”
“대표님은 따로 쏘셔야죠. 나랑은 다르지.”
“그런 거야? 그럼 결과 보고….”
“헐…, 지금 음원차트 성적을 보고 결정하시겠다는 말씀? 완전 섭섭해요.”
토라진 표정을 지었지만 둘 다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집에 가 있지 그랬어? 결과는 집에서도 알 수 있는데.”
“혼자 있으면 아주 좋은 일도 그냥 좋은 일이 된단 말이에요. 별루 안 신나.”
“하긴… 그럼 오늘 저녁에는 별이네 가서 자는 거야?”
유니는 스무 살이 넘어가자 종종 별이네 집에 가서 잔다고 했다. 둘이 와인을 홀짝거리며 잔다고 하는데 유니는 벌써부터 말술이란다.
별이는 유니의 어깨를 감싸 쥐며 말했다.
“네, 오늘 유니네 아버지께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어요. 아마 좋다고 술 마시자고 할 게 뻔하니 그냥 우리 집에서 먹으려구요.”
“별이 너희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오히려 유니 오면 좋아하세요. 오늘 밤 늦게 간다고 하니까 엄마가 안주 만들어놓을 테니 빈속에 술만 마시지 말라고 하시던 걸요?”
“아주 둘이 자알 하는구나.”
우현의 놀림에 유니가 혀를 쏙 내민다.
“대표님 솔직히 부러워서 그러는 거죠?”
“아냐, 인마! 나도 갈 데 있어.”
대놓고 말은 못하기에 슬쩍 눈길을 피했다. 그렇게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니 이윽고 12시가 지났다. 담당 직원이 음원 사이트와 공식카페를 확인하며 말했다.
“음원 사이트에 정상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지금 공식 카페에도 글이 올라오는 중이고 채팅창에는 포털 실검 화력 집중하자는 말이 나오는 중입니다.”
“아, 맞다. 실검 반응은 어때?”
“이미 30분 전부터 순위권에 올라왔구요. 방금 전에 실검 1위 찍었습니다. 1위가 유니, 2위가 ‘Love Story'입니다.”
실검 2위인 ‘Love Story'가 바로 유니 앨범 타이틀이다.
“화력 대단하네. 그럼 음악 들어볼까?”
음원 사이트에 올라간 앨범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인터넷으로 팬들의 반응들을 살펴보니 다들 칭찬 일색이다.
[유니 완전히 탈 아이돌 급인 듯]
[11곡 중에 버릴만한 노래가 하나도 없음. 대박!]
[지금 듣고 있는데도 좋다]
유니는 팬들에게 음원 공개에 관련한 트윗을 날림과 동시에 인스타에 사무실 사진을 올리며 팬들을 독려(?)했고 그 결과 1시가 됨과 동시에 모든 음원 사이트에 차트 줄 세우기가 시작됐다.
“꺄악! 대박! 1위부터 11위까지 전부 내 노래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이제 다 퇴근하고 오늘 야근한 직원들은 내일 점심 먹고 1시 이후에 출근하도록 해요. 너희들은 오늘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알았지?”
“우리가 무슨 애들인가요?”
“너희, 애들 맞아.”
유니는 무슨 소리냐며 손을 흔들어 젖히더니 별이의 팔짱을 끼고 사라져버렸다. 유니 매니저인 세동이 늦게까지 남아있었기에 집까지 가는 데는 문제없을 거라 안심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오피스텔로 돌아와 푹 자고 아침에 출근했을 때, 유니의 차트 줄 세우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소식만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난합니까, 지금?”
대표실 안에는 30대 후반의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우현은 그런 그를 노려보며 길길이 뛰고 있었고 강상훈 피디는 그런 우현의 화를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방송사에서 갑자기 태클을 걸어와서….”
그 30대 후반의 남자는 바로 석호가 서브남주로 출연하기로 했던 ‘비밀연애’를 제작하는 ‘불꽂미디어’의 제작피디였다.
아침부터 난리가 난 이유는 방송사에서 무명에 가까운 석호를 서브남주에 앉힌다는 게 부담스럽다며 오디션을 제의했기 때문이다.
“방송사에서 태클 걸지 몰랐어요? 그 정도도 해결 못 할 거면서 지금 서브주연에 꽂아주네 마네 했던 겁니까? 나랑 장난해요?”
“저희 생각보다 강하게 반발하는지라… 그래도 석호 군이 연기를 제대로만 보여주면 방송사에서도 중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