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52화 (25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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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약속 했으니까 지켜야지(2)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를 하면 별의별 특이한 드레스를 많이 보게 된다. 특히나 얼굴을 알리고 싶은 신인 여배우들은 일부러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어줌으로써 논란의 주인공이 되려 애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별이의 드레스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순백의 머메이드 드레스로 몸매의 선을 강조하는 동시에 청초한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 최고의 여배우는 별이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옆에 선 최 상무가 특유의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축하드린다니요?”

“저 모습 보려고 부산까지 오신 거 아니세요?”

꽤나 날카롭다. 사실 오늘 행사를 포함해서 이후 수출에 관련된 협의까지, 꼭 자신이 와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오늘 별이가 레드카펫에 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었기에 일부러 이곳까지 왔다.

“흐음…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저도 많은 배우를 키워봤기에 대표님 마음을 잘 압니다. 내 배우가 저기에 당당히 서는 모습. 특히 인지도 하나 없는 신인 데려다가 온갖 고생해서 결국 톱스타에 올려놓았을 때의 그 기쁨은 여자와의 잠자리보다 더 황홀하죠.”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이 무슨 올드한 표현인가? 뭐, 그래도 마지막 말만 제외하면 꽤 우현의 심정을 잘 표현했다.

“후훗, 사람들이 느끼는 게 다 비슷한 가 봅니다.”

“유은하 씨를 데리고 있을 때도 그러셨겠죠?”

“물론이죠. 은하는 제 첫 배우라서 그런지 아직도 대종상 레드카펫에 처음으로 섰을 때가 눈에 선합니다. 그 날 가장 예뻤죠.”

“하하, 원래 유은하 씨 아름다움이야 논할 가치가 있겠어요? 어쨌거나 개막작인 ‘28시간’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던데 잘만 나오면 또 한 번 대박 치시겠습니다.”

“운이 좋다면 그렇게 되겠죠.”

“어째 대한민국 연예계 운이 전부 대표님한테만 몰려가는 것 같습니다? 은하 씨가 주연으로 참여한 ‘지옥도시’가 벌써 600만을 돌파했다는데, 이거 부러워서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구요.”

“그 운 조금 나눠드리려고 김준현 씨와 같이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그거 말 되네요. 우리 준현이가 조금 감성적이라 몸값을 낮춰가며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는데, 우리 대표님만 준현이 의견에 동의하셨단 말이죠? 그 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너무 믿으시면 안 됩니다. 원래 발등도 믿는 도끼에 찍히는 거거든요.”

“어째 꼭 믿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 같습니다?”

“잘 안 되면 화살이 저에게 돌아오지 않겠어요?”

“설마 ‘변호사들’ 시청률이 낮게 나올 거라 생각하지는 않으실 테고…”

그는 우현의 생각을 짐작해보겠다는 듯 우현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에 슬쩍 눈길을 피하곤 말했다.

“글쎄요. 그냥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더 부탁할 게 남으셨나요?”

별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나니 그냥 호텔에 들어가 혼자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최 상무와의 쓸데없는 말장난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거 섭섭하네요. 저는 김 대표님이 좋은데…”

“죄송하지만 저는 여자를 좋아해서요.”

“하하하, 이거 못 당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쉬시고 내일 점심 어떠십니까?”

“내일요?”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무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으시는 거 아닙니까? 흠흠… 사실 ‘카운터’ 캐스팅에 관련된 것 말고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네? 그게 뭐죠?”

“민상욱과 관련된 이야긴데…”

민상욱은 사고뭉치로 유명한 민재원의 동생으로, 한 때 우현이 그를 키우려고 했다가 파인엔터를 배신하고 강진벽 사장이 있는 스카이 엔터로 이적했었다. 그 후 민상욱에 대해 소송이 진행 중이라 현재 아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걸로 알고 있었다.

“민상욱요? 상욱이를 왜요?”

“일단 오늘은 쉬시고 내일 뵙고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요?”

“흐음… 그럽시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왠지 그와 이야기를 지속하기가 싫었다.

“그럼 숙박중인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뵙겠습니다.”

그는 쿨한 우현의 태도에 피식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고 강상훈 피디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물었다.

“별 씨는 안 보고 가시려구요?”

“아까 봤잖아요? 오늘 행사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끝나면 어디 술 마시러 따라가지 말고 숙소에서 쉬라고 전해줘요.”

다른 때라면 몰라도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때는 여배우들이 술 마시러 돌아 다녀도 기자들이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들이대지 않는다. 으레 감독들이나 영화 관계자들과 한잔 하는 거겠거니 생각하기에 조금 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인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주의를 준 것이다.

“알겠습니다. 혜숙 씨한테 그렇게 전하죠.”

“전 먼저 숙소에 들어갈 테니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어지간한 일은 먼저 처리하시고 나중에 저한테 보고하시면 됩니다.”

“네.”

대충 그렇게 일을 맡겨버리곤 호텔로 들어와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와인을 마셨다. 일종의 성취감이라고 해야 할까?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성취감에 혼자 술을 마시며 부산의 야경을 즐기다가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오랜만에 호텔 조식을 즐기고 업무보고를 하러 온 강상훈 피디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젯밤, 해외 바이어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러 온 것이다.

“아직 점심 안 하셨죠?”

강 피디를 보내고 이른 점심 쯤에 양식당으로 내려가니 이미 최 상무가 도착해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니 다시 궁금증이 일었다.

“민상욱에 관련돼서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구요?”

사실 상욱은 자신에게 있어 아픈 기억이나 마찬가지다. 스타가 될 재목이라고 생각해 뽑았는데 자신을 배신하고 나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처지이니 말이다.

“네, 현재 소송중이시죠?”

일부러 소송에 관련돼서는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묻지도 않았다. 기사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괜히 마음만 아플 것 같아서였다.

“알고 계시면서…”

“하하, 그렇네요. 쓸데없는 질문이었죠? 현재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신데, 이것 때문에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부탁이요?”

“흐음…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대단한 실례인 줄은 알지만 일단 상욱이가 소속된 스카이엔터가 지금 공중분해된 건 알고 계십니까?”

민상욱도 아니고 상욱이라고 지칭하는 걸 보면 이미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스카이 엔터가 공중분해 됐다고?

“전혀 몰랐네요. 기사 한 줄도 본 적 없고…”

“거기 강진벽 사장이 경영에서 쫓겨나고 얼마 안 돼 회사가 쪼개질 지경에 이르렀죠. 소속 배우들은 각자 다른 회사를 찾겠다고 하는 와중에 저희 대표님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허… 그래요? 거기가 돈이 빵빵한 회사인 걸로 아는데… 그렇게 쉽게 무너질 회사가 아닐 텐데요?”

“톱스타 영입을 무리하게 추진하던 와중에 몇 군데서 걸린 소송은 그렇다 치고라도 몇 개의 투자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합니다.”

“투자요?”

“아, 모르셨군요. 우주창투가 바로 스카이엔터 대주주인데 이번에 우주창투가 ‘베이비 베이비’에서 엄청난 손해를 봤거든요.”

우주창투가 스카이 엔터의 배후에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우주창투가 ‘베이비 베이비’에 투자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베이비 베이비’는 올 여름에 개봉한 코믹 액션 영화로 무려 헐리우드 자본인 ‘21세기 폭스’사가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였다.

제작비가 200억이 넘는 초대작으로 개봉 전에 엄청난 광고를 해댔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관객은 백만도 들지 않았고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봤다. 당연히 ‘21세기 폭스’사 역시 마찬가지여서 당분간 한국 영화판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와… 하필 건드려도 그걸 건드렸네.”

백창준이 엿먹었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쯤 어딘가에서 소주 한 잔 하고 있겠지?

“올해 가장 망작인 영화에 투자했다가 아주 된통 혼이 난 상황인 거죠. 그래서 스카이엔터에 들어간 자금까지 회수하는 상황이라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게 상욱이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말씀인가요?”

“사실 그렇습니다.”

“하하, 안 된다는 거 아실 텐데요?”

이건 회사 대 회사의 문제를 떠나서 개인과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신의 앙금이 남아있으니 쉽게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쉽게 용서해버리면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회사 대표 입장에서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도 대표님께 그냥 용서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이미 이번 일과 관련해 회사에서 상당한 회의를 거치고 부산까지 온 것 같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부산에 올지 아셨어요?”

“아… 사실 회사에 전화해보니 대표님이 부산으로 출장 가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KTX 타고 내려왔습니다. 아무래도 늦게 출발해서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대표님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하셨더라구요.”

이 바닥에서 차를 타고 다니는 인간들은 120키로 이하로 밟으면 누가 쫓아와 벌금 백만원을 때리기라도 하는지 스케줄 압박이 없음에도 다들 150키로는 기본으로 밟고 다닌다. 스케줄 압박이 있다면 180키로도 우습게 밟기도 하고…

그러니 최 상무의 입장에서는 120키로 이하 정속주행을 선호하는 우현이 늦게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뭘 주실 수 있으신데요?”

그냥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거래를 하고자 하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번에 저희가 투자하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금토드라마에다 10시에 방영하는 거라 조금 처지는 시간대긴 하지만 지상파라 시청률도 어느 정도 나올 거구요.”

“하하, 지금 드라마 캐스팅으로 묶어 보려는 건가요? 딜이 안 되는데…”

고재를 절레 저으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 보였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재차 말을 이었다.

“은하 씨나 소연 씨 같이 톱스타 캐스팅을 가지고 말을 꺼낼 정도로 제가 멍청하겠습니까?”

“그럼요?”

“강석호라고 지금 파인엔터에서 키우는 남자 배우 있죠?”

순간 의자에 푹 기대고 있던 상체를 앞으로 바짝 당겼다.

“그래서요?”

“서브 주연 어떻습니까?”

헐이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석호가 지금까지 쌓은 걸 필모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돈데 바로 지상파에 서브 주연으로 데뷔시킨다니…

“DH 엔터가 그 정도 힘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아니, 그 정도로 돈이 많다고 해야 하나요?”

“요즘 추세가 그렇습니다. 파인 엔터만이 아니라 다들 돈을 벌기위해 제작을 하든 투자를 하든 그냥 매니지먼트만 붙잡고 있지는 않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죠. 마침 저희가 투자하는 드라마에 여주까지 끼워 넣었는데 서브 남주가 마땅치 않아요. 새로운 마스크가 필요하기도 하고…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딜이 되나요?”

애매하다. 확실히 땡기는 조건이긴 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시간만 조금 지나면 충분히 따낼 수 있는 캐스팅이다. 그런데 그걸 또 언제 기다리고 있나? 무척이나 애매하다.

자신의 난감함을 눈치 챘는지 최 상무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택하기 어려우신가요? 이거 참… 저는 충분히 받아들이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 대표님 생각이 딱 맞았네요. 그것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한 가지를 더 제안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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