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49화 (24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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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굴곡 없는 인생은 없다 (5)

어리둥절한 은하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잘 됐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할 말이 있었거든. 일단 앉아 봐.”

은하를 소파에 앉힌 다음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디 하나 조화롭지 않은 데가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 정말 이런 여자가 내 여자라니…

“뭔데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은하는 민망한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니, 예뻐서 조금 쳐다봤어.”

“치… 예쁜 거 이제 알았어?”

“매번 보면서도 놀라지.”

“시끄러,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래도 기분은 좋은지 눈이 하트가 되어 있다.

“이번에 ‘네플릭스’에서 사람이 와서 우리랑 같이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했어.”

“네플릭스? 와… 그럼 방송국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컴퓨터로 보는 거네?”

“그렇지. 그리고 제작비는 백프로 그쪽에서 부담하는 거야.”

“하긴… 영화나 드라마는 그쪽에서 전부 제작비를 댄다고 하는 건 들은 적이 있어. 그럼 PPL은?”

“작품에 무리가 없는 선에서 적당히 넣어야지. 그래야 우리도 남는 게 있으니까.”

“오올… 엄청 남겠네. PPL하려고 온갖 곳에서 달려들겠구만.”

“그걸 떠나서 우리 파인 프로덕션에서 만든 드라마가 어느 정도까지 성공하느냐에 따라 우리 위상도 바뀌게 되겠지. 어쨌거나 너 전에 말했지? 파인프로덕션에서 하는 첫 작품은 네가 가장 먼저 하겠다고.”

“와… 작품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 놀면 뭐하겠어? 그럼 나 까메오는 안 해도 되는 거야?”

“그건 그것대로 하고… 하루 고생하면 되는걸…”

“칫… 좋아. 그럼 무슨 작품인지는 결정됐어?”

“최은미 작가 작품이야.”

“와… 최 작가랑 같이 하는 거야? 굉장하네. 그럼 로코는 아니겠고… 장르가 뭐야?”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수사물인데 판타지가 조금 섞였어.”

책상 한켠에 올려놓았던 시놉시스를 그녀에게 건넸다.

“요즘 그런 거 많잖아.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아니면 과거 인물과 대화를 한다거나… 이게 우리나라에만 많은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하여튼 정의감 넘치는 열혈형사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여자가 주인공이야.”

“사이코메트리? 그거 어떤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의 기억을 읽는… 뭐 그런 능력 아니야?”

“맞아. 조금 뻔할 수도 있는데, 시놉을 읽어보니까 진행이 빠르고 몰입감이 대단해. 하여튼 최 작가는 이런 쪽 드라마에는 기가 막혀.”

“그럼 내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여자인 거네?”

“그렇지.”

“최은미 작가님한테 이야기한 거야? 내가 여주인공 한다고?”

“응, 이미 이야기 끝났어. 최 작가도 너 좋대.”

“히히히, 하긴… 내가 싫으면 말이 안 되지.”

그녀는 한껏 미소를 머금은 채 시놉시스를 훑어보았다.

“일단 그건 나중에 보고 나랑 나가자.”

“어딜 나가? 설마 지금 나보고 파업 현장에 있는 그 감독을 설득하러 가자는 말이야? 아니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한 은하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 웃었다.

“맞는데? 이 감독 실력 괜찮아. 후회하지 않을걸?”

“그런데 꼭 내가 같이 가야 하는 거야? 좀 그렇잖아, 기자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분명 무슨 말이 나올 텐데?”

“너는 차 안에만 있어. 그럼 차 안까지 내가 데려올 테니까.”

“그런데 꼭 그 감독이어야만 해? 오빠 원래 연출자는 크게 신경 안 썼잖아.”

“로코는 그런 면이 있지. 그런데 장르물은 로맨틱 코메디랑 다르게 연출자의 감각이 중요해. 물론 작가가 어떻게 쓰느냐가 훨씬 중요하긴 한데, 아무래도 ‘네플릭스’에 올라갈 첫 작품이라서 신경이 많이 쓰이네.”

“아휴… 점심이나 같이 하려고 나왔는데…”

“밥은 언제든지 같이 먹을 수 있잖아. 일단 나가자.”

그녀는 감독과의 첫 대면에 쌩얼로 갈 순 없다며 차 안에서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했다. 잠시 후 상암동의 MBS 방송국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방송사 건물 앞에는 십여 개의 천막 텐트가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은하를 남겨둔 채 길가에 차를 대놓고 빠른 걸음으로 천막 텐트를 누비고 다녔다. 듣기로는 분명 천막 텐트에서 파업 농성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예상은 맞아떨어져 금방 정윤석 감독이 거주(?)하는 텐트를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윤석 감독님 맞으시죠?”

천막 안에는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아 떡진 머리를 한 40대 초반의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고 있었다.

“누구신지…?”

그래도 양치는 하는지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입 냄새는 크게 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파인엔터테인먼트의 김우현이라고 합니다.”

명함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명함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앉아 자세를 바로 했다.

“파인엔터면 연예기획사로 알고 있는데, 저를 왜 찾아 오셨습니까?”

“뜻깊은 일을 하고 계신 와중에 이렇게 찾아오는 게 실례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독님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사설이 너무 거창한데요?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감독님 작품을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불멸자들’도 그렇고, ‘복수’도 아주 인상적이었죠.”

“그런데요?”

“이번에 저희가 최은미 작가와 함께 ‘네플릭스’에서 방영하게 될 드라마를 연출할 감독을 찾고 있습니다. 다른 감독님들도 생각해봤지만 이 작품은 감독님이 연출했을 때 가장 좋은 물건으로 나올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흐음… 내가 지금 MBS소속으로 파업 중인 걸 알면서도 찾아오셨다는 건 퇴사하라고 제안하는 겁니까?”

그는 돌려 말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그가 직구를 던진다고 맞받아서 같이 직구를 던질 수는 없다.

“아직 시놉시스도 안 보셨는데 그런 말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일단 시놉시스부터 보고 말씀하시는 게 서로 시간을 절약하는 게 되지 않겠어요?”

“시놉을 보고 자시고를 떠나서 난 퇴사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시놉을 보고 말씀하시는 게 어떠세요? 저는 감독님이 시놉시스도 안 보고 거절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고, 감독님도 시놉을 보지도 않고 거절했다가 나중에 큰 후회를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하, 내가 후회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웃으며 팔짱을 꼈다. 비록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감독님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누구도 백프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다면 그가 바로 신이겠죠.

저는 감독님을 붙잡지 못했던 걸 후회할지도 모르고 감독님 역시 시놉조차 보지 않은 걸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고작 30분도 채 안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고 평생 후회하느니 한번 보고 쿨하게 거절하는 게 서로에게 도움되지 않을까요?”

“흐음… 좋습니다. 까짓 거 한 번 보죠.”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시놉을 달라는 거다.

“그럼 자리를 옮기시죠.”

“안 가지고 왔어요?”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 차에 있거든요.”

“그럼 가지고 오시지…”

“여기는 바람도 불고 춥잖아요? 이왕 보는 거 차 안에서 따뜻한 커피 마시면서 보시죠. 설마 제가 감독님 납치라도 할까봐 걱정되십니까?”

“흠흠… 그럽시다.”

아무리 천막을 쳤다고 해도 이제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라 찬바람이 조금씩 불어왔다. 정윤석 감독의 입장에서도 따끈한 커피가 그리울 테니 굳이 천막에서 버틸 이유가 없었다.

드르륵…

“어?”

정 감독은 우현이 타고 온 차가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밴이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우현이 문을 열어주자 자연스럽게 한 발 올렸는데 그의 정면에 앉은 은하와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일단 타세요.”

아무리 은하가 간단한 메이크업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고는 해도 그녀를 못 알아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놀란 그를 보며 은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타라고 했다.

“크흠… 이거… 무슨 일인지…”

아무리 연예인들을 많이 본 감독이라고 해도 은하 정도의 미녀가 타라고 하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돼 있다. 때문에 정 감독도 마찬가지로 입으로는 구시렁대지만 몸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은하의 맞은편에 앉고 말았다.

“저는 커피 좀 사 올 테니까 두 분이서 잠시 말씀 좀 나누고 계시죠.”

“저기…”

드르륵… 달칵!

정 감독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우현은 문을 닫고 바로 앞 대형커피전문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둘만 남겨졌다고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대로변인데다가 감히 은하를 상대로 미친 짓을 할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을 남겨둔 이유는 은하가 분위기를 잡아보겠다고 스스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미인계 따위로 그를 넘어오게 하려는 수작은 아니다. 은하의 미모는 단지 그를 잠깐이라도 차에 앉혀두기 위한 양념에 불과할 뿐이다.

“저 처음 보시죠?”

당돌한 은하의 물음에 그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음… 은하 씨가 스타가 됐을 때는 내가 이 바닥에서 손을 뗀 이후라 본 적이 있을 수가 없죠.”

“대표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훌륭하신 분인데 작품을 안 하신다구요.”

“각자만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뭐,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그는 시놉을 읽으러 차에 왔지만 왠지 은하에게 말려들 것 같은 느낌에 일부러 더 거리를 두려는 것 같았다.

“으음, 시놉은 읽어보셨어요?”

은하는 자신의 무릎에 놓인 시놉시스를 정 감독에게 건넸고 그는 마지못해 그것을 받아들었다.

“아시겠지만 나는 동료들과 파업 중입니다. 회사를 떠나서 새로운 일을 할 생각이 없어요.”

“아… 그러시구나. 알겠어요. 그냥 편하게 시놉 보시고 난 다음에 이 작품과 어울리는 감독님이 계시면 추천 좀 해주세요.”

생각지 못한 은하의 발언에 정 감독이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정 감독은 이내 천천히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하는 그런 정 감독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흐음…”

정 감독은 은하의 시선이 불편해 헛기침을 흘렸지만 은하는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찬찬히 살펴보다가 그가 시놉을 세 장째 넘길 때 입을 열었다.

“결혼하셨어요?”

“네, 했어요.”

“아내 분은 무슨 일 하세요?”

대답하지 않기도 그렇고 하기도 뭐한 질문이다. ‘네가 무슨 상관이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애들도 아니고 서로 싸우자는 말이니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애들 보면서 가끔 일도 합니다.”

“아… 그러시구나.”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은하를 보며 못내 불편함을 느낀 정 감독이 다시 헛기침을 하며 시놉에 집중하는데 우현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드르륵…

“아, 시놉 보시고 계시는구나. 여기 커피 있으니까 좀 드시면서 천천히 읽으세요.”

따뜻한 카페라떼 세 잔을 사 와 하나씩 손에 쥔 그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 속에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났다.

“무슨 이야기했어?”

사실 우현은 은하가 왜,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보겠다고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뿐.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해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아, 감독님 결혼하셨는지 궁금해서 한 번 물어봤어. 그런데 감독님 되게 부자신가 봐.”

“어?”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차 안의 공기가 싸늘해진다.

“5년 동안 파업하셨다고 했잖아? 그런데 부인 되시는 분이 애들 보신대. 역시 파업하기 전에 돈 엄청 벌어 두셨나 봐.”

시놉시스를 보던 정 감독의 손등에 핏줄이 불끈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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