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39화 (23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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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때로는 경주마처럼…(4)

여배우를 단번에 톱스타로 만들어줄 가장 좋은 장르는 무엇일까? 답은 딱 하나, 바로 로맨틱 코메디, 즉 로코다.

대한민국에서 로코 장인으로 손꼽히는 작가 셋은 이미 작품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작품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새 작품에 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지만 상당한 실력을 가진 작가를 포섭하거나 아니면 아예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방법이 있겠다.

물론 첫 번째 방법이 두 번째 방법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시청률 기대치는 물론이고 이후 방송에 대한 편성과 투자, 주연 배우 캐스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을 때 단순히 안정적이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할 정도다.

때문에 가장 먼저 한 일은 평소 괜찮게 생각했던 작가들에게 연락해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하하, 저야 항상 작가님하고 같이 하고 싶죠. 그래서 더 아쉽네요.”

“캐스팅이 벌써 끝났다구요? 편성도 안 나지 않았습니까? 아… 작품을 쓸 때부터 정해놓고 쓰셨어요?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네.”

“지금 런던이시라구요? 1년을 쉬신다구요? 아이고, 안타깝네요. 그럼 편히 쉬고 오세요.”

차기작을 준비하는 작가들은 이미 캐스팅이 마무리 됐고, 아닌 작가들은 당분간 차기작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감하다.

영화로 눈을 돌리자니 시나리오도 마땅치 않고 그나마 몇몇 흥행할 만한 작품은 있어도 그녀를 돋보이게 할 만한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미치겠네… 민주 씨!”

“네? 무슨 일이세요?”

“전에 회사로 투고했던 작가들 명단 연락처 있죠?”

“아, 네.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이 사람 연락해볼래요?”

우현이 포스트잇에 빠르게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녀에게 건넸다.

“송유리? 이 분한테 뭐라고 할까요?”

“투고한 작품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세요.”

“언제 오라고 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아니, 당장 보자고 해요.”

“알겠습니다.”

이미 탈락했다고 연락 했기에 다시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는 게 염치없긴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 바닥에서 언제 한 번 작품을 해볼까 하며 버티는 중일 게 분명하기에 쪽팔림을 무릅쓰고 다시 부르기로 했다.

“지금 바로 온다고 하네요.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답니다.”

“수고했어요.”

송유리 작가가 오는 사이 그녀가 보낸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내용은 LC트윈스와 아스날을 사랑하는 여자주인공이 두선베어스와 첼시의 광팬인 남자주인공의 부하직원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설정이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워낙 독특한 것들이 많은 이 바닥에서 이 정도는 그리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설정보다 중요한 건 플롯과 대사. 송유리 작가의 원고에는 설정보다 상황을 이어나가게 하는 플롯과 대사가 마음에 들었다.

파인 엔터로 보내온 원고 중에 처음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던 작품은 이게 유일했다.

그럼에도 송유리 작가를 탈락시켰던 이유는 아직 드라마 대본을 써본 적 없는 웹소설 작가 출신인 것이 첫 번째이고 이제 27살밖에 안 된 햇병아리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장르 드라마에 맞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거였다.

“안녕하십니까! 송유리입니다.”

뛰어왔는지 발갛게 상기된 얼굴의 그녀는 머리도 감지 않았는지 뒤로 질끈 묶고 있었고 얼굴도 푸석푸석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도 선명하고 코도 오똑한 것이 일반인 치고는 꽤나 미인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앉으세요. 뛰어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괜찮습니다. 원래 운동하는 거 좋아합니다.”

글 쓰는 사람들 치고 운동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게다가 아직까지 숨이 진정되지 않는 걸 보니 평소에 운동과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탈락시켰다가 다시 불러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보내준 게 2회까지인데 혹시 4회까지 쓴 게 있나요?”

“4회요? 아직… 대신 3회까지 쓴 게 있습니다.”

“그럼 모레까지 4회 써 올 수 있겠어요?”

“모레까지 4회나요?”

동그랗게 뜬 눈동자는 이걸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는 빛이 역력해 보였다.

“유리 씨가 입봉도 못한 신인이라 4회 대본은 있어야 투자를 받거든요.”

“헐… 말도 안 돼. 지금 제 걸로 드라마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와… 지금 거짓말 하시는 거 아니시죠?”

“거짓말은 아닌데, 아주 확정된 것도 아니에요. 방송국에서 편성을 받아줘야 하고, 투자도 받아야 제작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 두 개가 안 되면 안 되는 건가요?”

“당연하죠. 방송국에서 편성을 안 잡아주는데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이걸 만들겠어요? 방송국을 하나 살 수도 없고… 무슨 말인지 이해해요?”

“아, 그럼요.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저한테 갑자기 이런 기회가 와서, 너무 기쁜데… 혼란스럽고… 좋긴 한데… 이상하기도 하고…”

불러내서 갑자기 드라마를 한다고 하니 그녀가 횡설수설하는 것도 이해할 법하다.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교육을 한다거나 테스트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웹소설 작가 출신이지만 1, 2회 대본만 보면 드라마 대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 보이고 나이가 어린 것도 그만큼 머리가 쌩쌩 잘 돌아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내가 사기꾼이 아닌 건 우리 배우들이랑 작가들 보면 알겠고, 유리 씨한테 돈 달라고 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일단 모레까지 4회 대본 만들어 오세요.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제작은 어디서…”

“파인프로덕션이라고 드라마 제작 전문 업체에서 만들 겁니다. 일단 제작이 확정되면 그쪽이랑 협의해서 일하시면 되고 그 전까지는 저랑 연락하시면 됩니다. 이해되시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 가서 글 써가지고 오면 되나요?”

“네. 그렇게 하시고 3회 다 쓰셨다고 하셨죠? 여기 제 명함에 메일주소 있으니까 3회 대본도 보내주시구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대표님 믿고 가겠습니다.”

“네. 모레 봅시다.”

그녀가 믿겠다고 강조한 것은 대본만 쓰게 하고 나중에 계약하지 않다가 알맹이만 쏙 빼먹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오늘 계약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순발력을 보기 위함이었다. 계약을 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그녀는 꼭 이틀 안에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테고 그렇게 써 온 글이 어떨 지가 보고 싶었던 거다.

그녀가 나가고 바로 파인프로덕션의 강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상훈 피디님? 저 김우현입니다.”

“아, 대표님.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편집본이 바로 왔더라구요. 일단 도착한 편집본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고, 지금 드라마를 하나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바로 말씀입니까?”

“어차피 지금 우리 인력들 놀고 있지 않나요?”

“놀고 있는 건 아니구요. 인력이 부족한 곳에 저희가 지원 나가는 형태로 근무 중입니다. 지원 나가는 매출현황도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드라마 하나 찍을 인력이 안 됩니까?”

“조명팀이 다음 주까지 계약이고, 음향팀이 이번 주까지라서…”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편성도 안 떨어졌으니까요. 일단 다른 계약 잡지 말고고 계세요. 그리고 박명진 감독인가요? 우리 감독이?”

“네, 맞습니다.”

“흐음… 일단 박명진 감독과 연결된 스태프가 있습니까? 사적으로요.”

강상훈 피디는 이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알아챘나보다. 목소리가 급 다운 됐다.

“친하다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명진 감독과 사적으로 아주 친한 스태프는 없습니다. 작년 말에 입사했거든요.”

“그럼 박명진 감독이 회사에서 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따라 나갈 스태프가 없다는 말이죠?”

“흐음…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박명진 감독과는 올해까지 계약한 그대로 하고 계약 연장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본인도 아니고 제 삼자에게 연출 실력이 떨어지니 그만두게 한다고 말하기가 그랬다. 어디가 떨어지냐고 하면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

참고로 박명진 감독은 지금껏 로코를 비롯해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꽤 많은 작품을 연출해 왔다. 하지만 공통적인 건 모두 억지스럽고 과장된 연출이 눈을 찌푸리게 했다는 것이다.

사극 액션에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슬로우 모션 연출이나, 울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도 계속해서 여배우를 울게 한다든가, 현실성이 너무 없는 수사 연출도 눈에 차지 않았다.

“네. 그럼 이번에 들어갈 드라마는 누가 연출할 예정인가요?”

“아직 정해지진 않았습니다만 곧 정해질 예정이에요. 뭐, 정해지면 당연히 강 피디님께 연락드릴 거구요.”

“그럼 그 분은 외부 인력으로 들어오는 건가요?”

“글쎄요. 파인프로덕션에 입사하게 될지, 아니면 한시적으로 고용하게 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력 없는 감독을 괜찮은 작품에 손대게 할 수는 없다. 퇴사시키지 않으면 평생 파인프로덕션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될 테니 다른 방도가 없다.

피로가 몰려와 잠시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스르륵 잠에 빠져 있기를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아이고… 편성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우여곡절 끝에 작가를 구했으니 편성과 투자가 남았다. 투자는 삼전투신 쪽에다 비벼볼 생각이니 가장 중요한 건 편성이다. 일단 이럴 때는 가장 만만한 쪽에 먼저 신호를 보내야 한다.

“요즘 어떠세요?”

“아이고, 나야 뭐 항상 그렇지. 그런데 우리 김우현 대표님이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어?”

전화를 건 곳은 KBC의 양 국장이다.

“목소리 좋으시네요. 요즘 주말도 시청률 좀 나오던데, 그것 때문이에요?”

“20%가 뭐 잘 나온 거라고… 하하하! 그냥저냥 살 만해.”

말은 저래도 기분은 좋은 게 틀림없다.

“다다음 달에 들어가는 월화드라마 빵꾸났죠?”

“응? 갑자기 그건 왜? 빵구는 났는데 4회 짜리 단편으로 틀어막기로 했어.”

드라마 2주 분이 붕 떠버린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의 전작이 조기 종영을 해버렸기 때문인데 현재 드라마도 시청률이 바닥에서 조금 뜬 정도에 불과하기에 연장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거 나한테 줄래요?”

“4회 짜리? 안 돼. 단편은 외주 줄 수 없어. 회사 방침이야.”

“그거 말구요. 16부작으로 하나 주세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잠시 뒤 양 국장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네가 제작하는 거 밀어보려는 거야?”

“네, 그러니까 형님이 좀 도와주세요. 그거 뒤 타임이 자체제작이라면서요? 그거 조금 밀고 우리 거 끼워 넣으면 딱 되겠네?”

“그러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내년 봄에 편성 빈 거 있어.”

맞는 말이다. 천천히 준비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이 좋다. 뭘 해도 잘 될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아직 두 달도 더 남았으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치우는 수준은 아니다. 조금 빡빡한 정도?

물론 송 작가의 4회까지의 대본이 별로라면 양 국장의 말대로 내년 봄까지 천천히 기다리면서 작품을 찾아볼 생각이다.

“내년 봄은 무슨… 작가가 이미 4회까지 써 놨어요. 느낌 좋으니까 한 번 밀어주세요. 내가 언제 형님한테 손해 끼친 적 있어요?”

그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양 국장이 입을 열었다.

“야, 그러지 말고 주말 어때? 8시 말고 9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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