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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때로는 경주마처럼…(1)
“엄청 깨지겠지. 그리고 더 많이 벌 거야.”
“좋아. 그럼 나도 거기에 껴 줄 거지?”
어차피 은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그녀에게 투자를 권하기 위함이었다. 코스닥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대주주가 100% 모든 지분을 가질 수 없다. 또한 소액주주의 수가 500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상장을 안 할 거라면 모르되 할 거라면 무조건 지분을 나눠야 하며 그럴 바에는 그 지분을 은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
“참고로 삼전투신에서 50억 투자에 10% 지분을 주기로 했어. 사실 에이넷프로덕션이 아니었으면 굳이 그쪽 투자를 받을 필요는 없었는데 그게 욕심이 나서 받는 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쪽이랑 거래하는 김에 다 하지 뭐.”
“좋아. 으음… 이제는 오빠가 만드는 작품에 출연해야겠네? 그래서 잘 되면 나도 더 잘되는 거구.”
“작품을 무한정 만들 수 없기도 하고, 너랑 맞지 않으면 굳이 참여할 필요 없다. 너도 잘 되고 작품도 잘 돼야지, 작품만 잘 되면 쓰나.”
“그럼 좋을 대로 해. 오빠가 즐거워 보이니 나도 기분 좋다. 왠지 내일 시사회도 잘 진행될 것 같아.”
“흥행할 영화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럼 들어가, 내일 새벽부터 준비할 텐데 일찍 자야지. 혜숙 씨 밖에 있지?”
“응, 언니가 바래다 줄 거야.”
은하는 아쉬운지 계속 소파에서 미적거리다 10분이나 더 지나서야 사무실을 떠났다.
다음 날, ‘지옥도시’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수많은 기자들과 평론가들이 모여들었고 제작진들은 상영 내내 그들의 얼굴을 훔쳐보며 긴장했다.
그들이 미소를 머금거나 고개를 끄덕일 때는 마치 퀴즈쇼에서 정답을 맞힌 것처럼 좋아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인상을 찌푸릴 때는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다니까. 거 봐, 영화 잘 나왔던데 뭘…”
사실 신인 감독이라 걱정이 많았다. 전작이 없으니 오직 시나리오 하나만 가지고 결정했는데 생각보다 실력이 좋았다.
“촬영장 밖에서는 조금 어벙해 보이는데, 막상 슛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 나도 중반 이후부터는 걱정 없이 찍었어.”
“확실히 후반부로 갈수록 연기가 더 좋아 보이던데? 초반부터 집중 좀 하지 그랬어?”
“나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괜히 이상하게 찍는 거 아닌가? 너무 미친년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었거든. 뭐… 내 실수야, 인정.”
역시 잘못에 대한 인정도 쿨하다.
“그런 자세 좋네, 흐흐. 오늘 수고했고, 일찍 들어가 쉬어. 이제 홍보 들어간다고 정신없을 테니까.”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네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의 리포터와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으로 10여 개가 넘는 인터뷰를 마친 그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사라졌다.
저녁에 사무실로 들어와 인터넷에 접속하니 ‘지옥도시’에 대한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감상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진-한국 스릴러의 새로운 감각 평점:7]
[박평준-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평점:6.5]
[이수진-강하게 몰입시키나 내공이 부족하네요 평점:6.5]
“하여튼 눈만 높아서는…”
평론가들의 점수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천만 흥행 영화도 평점 6점대인 영화들이 수두룩하니까.
점수를 짜게 준 평론가들과는 반대로 기사들은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다. 물론 제작사에서 기사를 뿌린 것도 있지만 영화가 정말 별로면 이렇게까지 칭찬 일색일 리는 없다.
[반갑다 지옥도시. 유은하의 인생작이 또 하나 추가되나?]
[이토록 강렬한 영화라니, 지옥도시 흥행돌풍 예감!]
[지옥도시 개봉관 확보 완료, 이제 흥행몰이만 남았나?]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고생인가요? 제작진들이 고생 많았지, 아하하!”
기사를 보고 있는데 지여울 제작피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도 ‘도마뱀 미디어’에서 처음 제작하는 영화이기에 무척이나 마음 졸였을 것인데 시사회 반응이 좋으니 기분이 들뜬 것 같다.
“생각보다 감독님 솜씨가 좋던데요? 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머릿속에 그려본 것보다 더 잘 표현해준 것 같아요.”
반은 진심이고 반은 거짓이다. 머릿속에 그린 것보다 더 대중성 있게 나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영화 중간 중간에 설명이 부실한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더 빠르게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대표님이 운이 따르나 봐요. 도박을 해도 결과가 좋은 걸 보면요.”
“서른 이전까지는 영 운이 없다가 이제 와서야 운이 따르나 봅니다.”
“주말에 VIP시사회 일정 잡혔어요. 강소연 씨 오시는 거 맞죠?”
“당연하죠. 제가 확실히 못 박아 뒀습니다. 소연 씨뿐만 아니라 별이랑 유니도 갈 거예요.”
“아, 그리고 며칠 전에 나왔던 기사 잘 봤어요. 대표님 대단하시던데요?”
“대단하긴요. 그냥 남들이 하던 거 따라하는 수준인데…”
“지금까지 그거 따라한 사람도 없었어요. 어쨌거나 이번에도 꽤 확률 높은 도박 하시는 건가 봐요. 그런데 진짜로 제작사 만들 생각이세요?”
뭔가 의미심장한 물음이다.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할까 하다가 어차피 나중에 알려지게 될 거 사실대로 말하자고 생각했다.
“네, 어쩌면 아주 빠르게 진행할 지도 몰라요.”
“빠르게 진행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제작사 하나를 인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어머! 정말요?”
“네. 만약 그렇게 되면 도마뱀 쪽과의 일이 줄어들게 될 거라 조금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겠네요.”
“아… 아쉬워요. 이제 ‘지옥도시’ 성공하면 회사 사장님이 영화 더 만들자고 난리일 텐데 대표님이 없으면 어쩌나… 완전 큰일 났네요.”
“하하하, 지 피디님이 잘 하실 겁니다. 원래 저 없이도 잘 하셨잖아요? 그리고 인수한다고 해도 모든 작품을 우리 쪽에서 만들 생각은 없어요. 장르 쪽에 특화할 생각이거든요. 뭐, 아직 결정된 건 없으니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어쨌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말은 축하한다고 하지만 무척이나 섭섭한지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날이 되자 아침부터 삼전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은 50억 투자가 결정됐다는 것. 사실 우현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50억 투자보다 에이넷프로덕션의 인수다.
인수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다음 주까지 끝내기로 합의했고 그 때 50억과 지분 분할도 같이 하기로 했다.
“모두 모이세요! 2층 안무실로 모이세요!”
투자가 결정 나고 모든 직원들을 유니와 파이브걸즈가 연습하는 안무실에 모이도록 했다.
유니는 녹음실에서 앨범 준비하다 들어왔고 파이브걸즈는 행사 때문에 자리에 없었다. 참고로 파이브걸즈는 데뷔 싱글 앨범이 대박을 내면서 그 한 곡으로 계속해서 행사를 다니고 있어 회사 운영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왜 모이라고 했는지 궁금하실 텐데, 실은 우리 회사가 에이넷프로덕션이라는 영화, 드라마 제작업체를 인수하게 되었고 투자회사로부터 50억 투자도 받게 되었습니다.”
“와!”
투자를 받고 회사를 인수했다는 이야기에 일단 직원들은 웃으며 환호했다.
“앞으로 회사는 더 커질 것이고 여러분들의 할 일은 더 많아질 겁니다. 당연히 일이 많아지고 회사 수익이 많아지면 여러분들의 월급도 더 올라갈 거구요. 따라서 앞으로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지원뿐만이 아니라 제작사의 일도 같이 하게 될 겁니다. 물론 에이넷프로덕션의 직원들과 같이 일하게 될 것이기에 회사를 옮겨야 할 것 같네요.”
“그럼 더 넓은 데로 가는 건가요?”
유니가 손을 들고 외쳤다.
“당연하지.”
“와우!”
“아하하하!”
유니가 환호성을 지르자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면 움직이게 되는 돈의 단위가 달라지게 될 겁니다. 때문에 약간의 실수라도 하면 회사에 큰 손실이 되겠죠.
에이넷과 합쳐지게 되면 직원들 간에 화합도 중요할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믿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씀드리면, 직원들 간에 파벌을 나눈다거나 화합을 해치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시 가차 없이 퇴사하게 될 거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겠습니다.”
“네!”
“돈 많이 벌어서 2년 뒤에는 코스닥에 상장하게 될 것이고 우리사주를 살 수 있게 해드릴 테니 여러분들도 큰돈을 벌 수 있게 될 겁니다.”
“와아아!”
직원들 역시 상장된 엔터 주식이 얼마나 큰 대박을 불러오는지 알고 있기에 지금까지의 형식적인 환호성이 아닌 영혼이 담긴 환호성을 질렀다.
“다음 주 합병이 잘 마무리가 되면 에이넷프로덕션 직원들과 같이 거하게 회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는 자리이니 만큼 아티스트들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누구하나 빠짐없이 참석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 다들 올라가서 일 보시고 홍보팀은 자료 줄 테니까 기자들에게 홍보자료 뿌리도록 하세요. 파인엔터와 에이넷프로덕션간의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잘 분석해서요. 아, 전에 국가일보 이우진 기자가 이런 거 잘 풀어내던데, 이 기자한테 단독으로 풀라고 넘기세요. 내용은 같이 손 보고.”
“알겠습니다.”
직원들과 웃으며 파이팅한 후 대표실로 돌아오니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쿠,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왜 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후줄근한 옷차림의 남자는 ‘타이거 스튜디오’의 최윤석 대표다.
“작업실 들른 김에 왔습니다. 대표님 없으면 전화로 연락드리려고 했죠.”
“아… 혹시 마무리 된 겁니까?”
“네, 후반 마무리 작업 다 끝났습니다.”
커다란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밝은 얼굴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제 영화가 흥행을 하든, 못하든 그의 손을 떠난다고 생각할 테니 무척이나 후련할 거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떻게… 편집된 건 좀 보셨어요?”
“저도 다는 못 보고 1차 편집본만 봤는데, 정말 잘 나왔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잘 나왔어요.”
“잘 됐네요. 제작보고회랑 시사회 일정 잡도록 하죠. 그리고 편집본은 다음 주에 에이넷프로덕션에 넘기면 됩니다.”
“에이넷프로덕션이요?”
“네. 다음 주에 파인엔터와 합병할 예정이거든요.”
그는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하하, 와… 대단하시네요. 이제 완전히 제작사로 넘어가실 생각인가요?”
“아마 제작과 매니지먼트, 이렇게 두 개 체제로 운영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럼 편집본으로 해외 바이어한테 수출하는 것도…”
“네, 수출은 물론이고 배급 관련 계약까지 앞으로 에이넷에서 진행하게 될 겁니다.”
“하하, 이거 거물이 되시겠습니다?”
“잘 도와주세요.”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죠, 하하… 그럼 일어나보겠습니다.”
여기 올 때는 밝은 얼굴이었지만 나갈 때 그의 얼굴은 많이 굳어져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큰 고객을 잃었다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안쓰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누구 눈치를 볼 때가 아니라 앞만 보며 달려야 할 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