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33화 (23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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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태풍이 되다(5)

“아, 나 나가봐야겠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은하는 무대 뒤편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타이밍하고는…”

혼잣말로 씁쓸히 되뇌고는 다시 스태프들 사이를 헤매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은하 매니저인 혜숙을 찾기 위함이다.

마침 코디와 함께 은하의 옷을 정리하는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혜숙 씨, 나랑 이야기 좀 할까요?”

“네? 네. 여기서요?”

“아니요, 여긴 사람 많으니까 잠시…”

그녀를 지하주차장에 있는 은하의 밴까지 이끌었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혜숙의 얼굴에는 무슨 이야기인데 밴까지 오나 하는 궁금증이 새겨져 있었다.

“영화 촬영 중에 이우진 기자가 찾아 왔다면서요?”

“아…”

혜숙은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한번은 고성까지 오갔다던데 무슨 일입니까?”

“다 들으셨나보네요. 흐음…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 하나…”

그녀로서도 상당히 난감해 하는 것 같았지만 우현이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더는 말을 끌지 못했다.

“대표님이 계신 파인 엔터로 오기 전에 은하에게 꾸준히 관심을 표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네? 그런데요? 아니, 그게 누군데요?”

“뭐, 대단한 재벌가문의 자제, 이런 쪽은 아니구요. 현직 모델이에요.”

다행이다. 왜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서 외압을 행사해 여자를 뺏으려는 경우를 많이 봐왔지 않은가? 현직 모델이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아… 그런데 왜 이우진 기자가 찾아와서 그런 겁니까?”

“은하는 싫다고 하는데 그 인간이 자꾸 전화로 귀찮게 하기에 만나서 혼구녕을 내준 적이 있었대요. 다시 한번 전화하면 머리털을 다 뽑아버린다고 했다나? 어쨌든 하필 그 이야기가 이우진 기자의 귀에 들어갔나 봐요.”

“아…”

“그런데 어째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잘 못 들은 건지, 아니면 그 인간이 꼬여서 일부러 그렇게 들은 건지 모르겠는데 그걸 둘 사이의 열애로 받아들인 거죠.”

“그래서 찾아와서 고성을 지른 게…?”

“네, 찾아와서 둘이 같이 있던 사진을 들이밀면서 사귀는 거 아니냐고 캐물었던 거예요. 은하는 성격상 차분히 설명하기보다는 꺼지라는 식으로 대했던 거고…”

“그 인간은 더 화가 나서 어떻게든 열애 사실을 캐려고 했겠군요.”

“맞아요.”

대충 그림은 그려지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오지는 않는다. 무조건 찾아가서 조사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라 했다고 기사를 쓸 테고 가만히 있으면 어디까지 귀찮게 할지 모른다.

연예패치 같은 매체가 짜증나는 이유는 일단 작정하고 연예인의 뒤를 따라다니는데 성능 좋은 카메라로 아주 멀리서 찍기 때문에 당사자는 자신이 카메라에 찍히는 줄 전혀 모른다.

또한 그런 매체들 대부분이 해당 소속사의 압박은 코웃음으로 넘겨버릴 정도로 간이 크다. SN엔터 같은 거대한 기획사의 연예인들도 심심찮게 연예면에 올릴 정도로 소속사와의 관계는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말릴 방법이 없다.

그저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 말고는 말이다.

“국가일보에 손을 써봐야 하나?”

“말을 들을까요? 이우진 기자가 얼마 전에 터뜨린 열애설도 YC엔터였잖아요?”

“흐음… 짜증나네.”

“어차피 은하가 그 모델이랑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두면 안 돼요?”

그럴 수가 없다. 지금 은하랑 사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그 기자에게 사진이라도 찍히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인데 혜숙에게는 차마 말을 못하겠다.

“크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꾸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하면 곤란하죠.”

“그렇긴 한데…”

“일단 알았어요. 올라가서 일 보세요.”

혜숙을 먼저 올려 보내놓고 얼마 후에 상영관에 올라가니 인사가 끝나고 질문을 받고 있었다. 특히 여주 원톱 영화라 그런지 은하에게 질문이 집중되는 편이었다.

국가일보의 이우진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할 때는 조금 긴장했는데 예상 외로 질문이 평이한 수준이라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됐다.

“오늘 괜찮았지?”

은하는 아침에 봤을 때의 예민함은 어느새 떨쳐버린 듯 얼굴이 환해 보인다.

“너 아침에 이우진 기자 때문에 긴장했었냐?”

“그 인간 때문은 무슨… 뭐야? 혜숙 언니한테 이야기 들은 거야?”

“응.”

“오호라… 그럼 이제 내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감이 좀 오시나?”

“네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는 항상 느끼고 있다. 자랑 좀 그만 하셔.”

“그럼 그 남자 모델이 누군지는 들었어?”

“아니, 안 물어봤는데?”

“오오… 인내심 좀 발휘하시는데?”

순간 울컥 올라왔지만 혜숙이 옆에 있기에 간신히 표정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냥 관심이 없었다네. 그건 그렇고 이우진 기자 어떻게 하지?”

“알아서 하세요. 난 관심 없네요. 아까도 봤지? 자기도 증거가 없으니 혼자서 열 내다가 결국 꺼내는 말이 ‘정신병을 앓는 연기는 어떻게 연습하셨나요?’ 그거였잖아? 난 또 사진이라도 꺼내면서 고함이라도 칠 줄 알았지. ‘유은하! 너 딱 걸렸어!’ 이렇게 말이야.”

그녀는 품에서 마치 폭탄이라도 꺼내는 듯한 모션을 취하며 웃었다. 확실히 아까는 이우진 기자 때문에 긴장했던 게 맞았다.

“설마 뭔가 찍어 놓은 게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했으려고…”

“에이, 그냥 다 불어버려?”

혜숙은 은하의 선전포고에 놀라 눈만 끔벅거렸고 은하는 그런 혜숙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뭘 또 놀라고 그래? 하여튼 언니도 간이 작기는 작다.”

“됐어, 이것아! 나도 어디 가면 배짱 있다는 소리 듣는데 너는 정말 내게 겸손함을 가르쳐주는구나. 내가 시집도 안 갔는데 너 때문에 늙는다, 늙어.”

“히히힛! 이제 곧 시집 가도 될 걸?”

“너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 가슴 철렁철렁 해.”

은하의 선을 넘을까 말까 하는 아슬아슬한 토크에 끼어들기 싫어 괜히 창밖을 내다보며 관심을 돌렸다.

사무실에 홀로 들어와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이우진 기자에게 만나자고 전화했다. 그는 자신이 전화 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왜 이제야 전화 했냐는 식으로 말하더니 곧바로 회사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1시간쯤 지나 대표실 소파에 앉게 된 이 기자는 30대 중반임에도 머리가 반쯤 벗겨져 있었는데 그는 그 머리를 당당하게 내놓고 있었다.

“2년 전인가? 그 때 뵀었죠?”

“네, 기억하시네요.”

“유은하 씨 매니저였는데 당연히 기억하죠. 이렇게 성공하시리라고 생각하진 못했지만 늦게라도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아직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죠.”

“그런가요? 어쨌든 오늘 부르신 게 은하 씨 때문이죠? 생각보다 늦게 연락을 주셨네요.”

“네. 저는 영화 촬영장에서 이 기자님과 우리 은하가 만났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거든요.”

“오늘 아셨다구요?”

“네. 저에게 아무도 말을 안 해줬더라구요. 으음… 오늘도 은하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물어보니 둘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는데… 아닌가요?”

“오해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세상 일이라는 게 언제나 생각지도 않은 변수를 만들어내니까요. 그래서 저도 사람 잘 믿지 않습니다.”

“유은하 씨도 믿지 않습니까?”

“저는 소속사 대표고 은하는 소속 아티스트입니다. 소속 아티스트를 백프로 신뢰하는 대표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이야, 굉장히 냉철하시네. 좋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유은하 씨가 임성준 씨랑 연애중인 거 맞습니까?”

임성준이면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다. 현재 톱모델로 인정받고 있고 간간히 CF랑 예능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있을 거다.

“아닙니다.”

“방금 전에는 소속 배우를 다 믿진 않는다고 하셨죠? 그럼 대표님께서 하신 대답도 틀릴 수도 있는 거네요?”

“아니요. 백프로 확신합니다. 임성준이라는 모델과는 절대 사귀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은하는 다른 사람이랑 사귀고 있거든요.”

순간 이우진 기자의 동공이 가늘게 떨린다.

“허, 허허. 이거 진짜인가요? 이런 시나리오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완전히 식스센스급 반전인데요?”

“그렇죠? 그러니까 헛다리 그만 짚고 다른 연예인 캐세요. 만약 오픈할 시기가 오면 연락드릴 테니까.”

“하하하, 이거 ‘예, 알겠습니다.’하고 물러나야 한다는 거죠?”

“바짓가랑이 잡고 말린다고 해도 안 들으실 거 아닙니까? 어차피 이 기자님이 따라다니는 거 잘 알고 있는데 흘리고 다닐 만큼 은하가 모자란 애도 아니고 기자님만 고생하시는 거죠. 저는 서로 피곤해지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 기자는 검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우현의 눈을 노려보듯 했다.

“진짜 은하 씨가 다른 사람이랑 연애하는 게 맞습니까?”

“네. 저는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그것도 소속 아티스트 이야기로는요.”

“흐음… 알겠습니다. 허, 참… 근 석 달을 허공에다 x질하고 다녔네.”

“열애설 터뜨리는 게 기자님 장기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그것만 하시면 재미없지 않아요? 이거 어떻습니까?”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그의 앞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이번에 KBC에서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 있죠? 현재 ‘변호사들’이라는 가제가 붙어서 나가는데, 주인공으로 김준현과 강소연이 캐스팅 됐어요.”

“알고 있습니다. 요새 꽤나 화제던데요?”

“화제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캐스팅이 눈길을 모으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새로 도입돼서 운영해보는 작가 시스템 때문이겠죠?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미드에 견줄만한 드라마가 나온다고 말들이 많으니까요.”

“그건 이번에 들어갈 작가팀의 이력이자 장단점을 나열한 겁니다.”

“어? 그걸 대표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저 작가팀이 바로 우리 파인엔터 소속이거든요. 아직 기사에 작가팀에 대한 소스는 안 나온 걸로 아는데, 기자님이 단독으로 뿌리면 모양이 괜찮지 않겠어요?”

“흐음… 이상하네요. 파인엔터가 왜 이런 작가팀을 만듭니까? 제작사도 아니고…”

우현이 준 서류를 훑어보며 말을 하던 이우진 기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는 한동안 우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고, 이거 진짜 기사는 이게 아니었네.”

“그런가요?”

“얼마 전에 이야기를 들었죠. 파인엔터에서 기획하는 영화가 있다는데 백억이 넘는 투자까지 착실히 이끌어내고 지금은 개봉을 앞두고 있죠? 그게 ‘28시간’인가?”

“맞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중소 기획사가 웬 뻘짓을 하나 했는데 이제 보니 김우현 대표님께서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네. 이야… 놀랍네, 놀라워. 흐흐흐. 그거 아시죠? SN엔터도 제작사 해보겠다고 날뛰다가 몇 년 동안 여러 편을 해먹고 고작 얼마 전부터 그나마 봐줄 만한 작품 만들어 낸 거?”

“안타까운 일이었죠.”

“크크큭. 김 대표님, 농담도 할 줄 아시네. 어쨌든 여기 대표님은 그걸 알면서도 제작사까지 넘보시는 거네요? 그것도 이렇게 큰 그림으로다가? 이야… ‘미다스의 손’이라고 유명한 건 알았지만, 이거 몇 년 안에 3대 기획사를 넘어서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이 기자님한테 한 턱 쏴야겠네요.”

“왜 저한테 한 턱을 쏩니까?”

“지금 이 내용으로 기사를 잘 써주실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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