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32화 (23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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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태풍이 되다(4)

“그런데 강소연 씨가 이분의 이모 되시나봅니다?”

이재호 작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소연이 오히려 되묻는다.

“대표님이 이야기 안 하시던가요?”

“네, 전혀…”

소연이 돌아보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게 뭐 중요하다고… 석호가 이모 이름을 팔아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고 보는 건 아니죠?”

“흐음… 당연하죠.”

소연은 석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평소에 거의 본 적 없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 저런 표정은 석호와 같이 있을 때가 아니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단 기사 보셨죠? 직원이 소연 씨 매니저한테도 연락 드렸다고 했는데 어째 아무 연락도 없으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캐스팅에 까인 것도 아니고 정상적으로 캐스팅 된 건데 굳이 전화할 필요 없잖아요? 뭐, 결과가 의외이긴 했어요. 김준현이 서브남주를 허락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나름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하더라구요. 특히 연기 쪽에서는 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떠서 개념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런 모습도 안 보이고… 괜찮은 청년이에요.”

“욕심나세요?”

소연의 장난기 어린 물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 이미 뜰 만큼 뜬 스타한테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으흥! 그래서 날 싫어했구나.”

“싫어했다기보다는 도전의식이 좀 떨어졌다고 봐야 하겠죠? 누가 보면 소연 씨를 싫어해서 영입 안 하려고 했는 줄 알겠습니다.”

이재호 작가는 우현이 강소연을 영입 안 하려고 했다는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이래서 사람이 너무 잘나도 힘든 건데…”

“하하하! 맞습니다. 원래 사람이 조금 부족한 데가 있어야 더 매력 있어 보이죠.”

“하긴, 은하가 성격이 조금 그렇긴 하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인가?”

“크흠…”

정말 한 순간도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여자다. 영문을 모르는 이재호 작가와 석호만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저나 내가 전에 부탁한 건 어찌 됐어요?”

“아, 안 그래도 내일 서초동에 미팅 잡아놨습니다. 여자 변호사신데 예능에도 얼굴을 몇 번 비추기도 했고 현재 상당히 잘 나가는 로펌에서 일하고 계시더라구요. 그 쪽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기는 한데, 정확한 계약조건은 내일 만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이재호 작가가 대충 무슨 내용인지 짐작했는지 끼어들었다.

“혹시 소연 씨께서 캐릭터 분석 때문에 변호사 자문을 받으시려고 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잘 됐네요. 마침 제가 아는 변호사가 있는데…”

“아는 변호사요?”

소연은 이재호 작가의 커대한 몸집을 다시 한 번 훑었다. 그가 아는 변호사가 있다고 하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눈치다.

“하하, 저는 이래도 제 동생이 무척이나 똑똑한 놈입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했거든요. 지금은 작은 변호사 사무실에 있긴 하지만 로펌에서 스카웃 제의도 받았을 만큼 똑똑한 녀석입니다.”

“아… 동생이 변호사세요?”

우현이 놀라 물어보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사실 제가 장르 드라마에 남들보다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게 동생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생이 그런 쪽에 있어서 그런지 정치나 사법 관련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거든요. 오늘은 어떤 판례가 있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기도 하구요, 흐흐. 제가 글쟁이로 먹고 살려고 하니까 많이 도와주는 편이죠.”

“그렇구나. 이번 강소연 씨 관련돼서도 도와주려고 할까요?”

“그럴 겁니다. 워낙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여러 가지 경험 하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거든요.”

“그럼 연락처 남겨 주시면 제가 따로 연락드릴게요.”

이재호 작가가 메모지에 연락처를 적어주는 사이 소연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석호는 뭐 때문에 부르셨던 건가요?”

“아… 제가 실은 이번에 변호사 관련으로 에피소드를 짜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석호군의 목소리가 굉장히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좋은 목소리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마스크도 괜찮은데다가 목소리가 인상 깊다고 해서 생각해놓은 배역에 맞는지 알아보려고 한번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어떤 배역인가요?”

“사기꾼이요.”

“네? 사기꾼이요? 석호가 연기 경력이 얼마 안 돼서 그런 역할을 맡기에는 조금…”

“그런가요? 흐음…”

이재호 작가는 석호의 마스크를 뚫어져라 살폈다. 마치 얼굴의 작은 흠집이라도 찾는 듯했다.

“아, 안녕하세요. 강석호입니다.”

갑자기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석호가 어색함을 못 이겨 인사를 했다.

“목소리가 정말 인상적이네요. 뭔가 마스크랑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또 어울리네. 저음이라서 그런지 더 집중하게 만들고… 좋네요.”

“그쵸? 그런데 사기꾼이면 말을 잘 해야 하는데 석호가 말을 더듬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대사를 빨리 치기가 힘든데…”

“아닙니다. 오히려 말을 잘 하는 친구면 너무 식상해 보일 수 있지 않겠어요? 오히려 말을 적게 하고 눈빛으로 사람을 꼬셔내는 사기꾼이 더 매력 있어 보이는데,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흐음… 저 나이에 말을 적게 하면서 사기를 친다… 그럼…?”

그제야 이재호 작가가 석호에게 무엇을 시키려는 건지 감이 왔다. 이 작가는 우현의 눈치를 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죠, 꽃뱀.”

“허… 지금 우리 석호한테 꽃뱀 역할을 시키려는 거예요? 아니지, 꽃뱀은 여자니까 이건 제비잖아요?”

소연이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지만 둘은 그녀의 그런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연기인데 어떻습니까? 소연 씨도 정신병자 역 해본 적 있잖아요?”

“그거야 제가 신인 때…”

소연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석호를 배우가 아닌 조카로만 생각했다고 자각했기 때문이다.

“아… 바보… 방금 한 이야기는 잊어주세요.”

그녀는 화끈한 성격만큼이나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후후. 원래 이런 거 신인 때 하는 거잖아요. 좋네요. 인상 깊게 남는 역이라 잘하면 인지도 많이 쌓이겠네요. 너는 어때?”

우현의 물음에 잠시 소연의 눈치를 보던 석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좋아요. 그런데… 잘못하면 어떡하죠? 제가 아직 여자친구도 사귀어본 적이 없기도 하고…”

자신 없어 하는 그의 태도에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 태도는 좋지 않아. 해보지도 않고 잘못하면 어떡하냐니? 너, 나중에 의사역 들어오면 그 때 가서 사람 살려본 적 없으니 자신 없다고 할래? 살인자 역은 그럼 사람 죽여 본 사람이 하겠어?”

석호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럼 할 수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물쭈물하던 방금 전과는 달리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으로 이재호 작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에피소드 기대 되네요. 소연 씨도 그렇게 걱정스러운 얼굴 그만하시고 이제 석호 좀 믿어주세요. 내년이면 성인인데 이런 역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마침 이거 방영할 때가 되면 스무 살 넘겠네. 그래도 애매하긴 하니까 술 마시는 장면은 넣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죠? 참고해주세요.”

“그러겠습니다. 석호 씨는 아직 대본이 안 나왔지만 영화 중에 여자 잘 꼬시는 남자들이 어떻게 연기하는지 한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캐스팅 된 건가요?”

“응, 방송국에다가 미리 너 집어넣는다고 이야기해놨어.”

쿨한 우현의 대답에 소연이 퉁명스레 말했다.

“걱정 안 해요.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니까 자기 앞가림 이제는 스스로 해야지. 혹시 언론에 석호가 제 조카라고 말하지는 마세요.”

“안 그래도 그럴 겁니다. 아마 피디도 모를 거예요. 스태프들한테 괜히 이야기 꺼냈다 말이 새어나가면 논란만 생기죠.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만 굳이 방영 전에 시청자들이 알게 하면 이미지만 안 좋아질 거라서 절대 석호가 소연 씨 조카라는 이야기는 새어나가지 않을 겁니다.”

“지금이 아니라고 해도 나중에 알게 되면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연예계도 그렇고 모든 일이 그렇지만 원래 능력을 보여주면 그 사람의 배경은 잊혀집니다. 하지만 그 위치에 걸맞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때는 비난 받을 수 있겠죠. 나는 석호가 충분히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소연 씨도 그렇죠?”

“그럼요.”

“그럼 걱정할 거 없네요. 아, 다음주에 VIP시사회 잡힌 거 알죠? 은하가 출연한 ‘지옥도시’ 말이에요.”

제작보고회는 바로 내일모레다. 때문에 은하는 물론이고 제작사인 ‘도마뱀 미디어’는 전쟁을 앞둔 군인들처럼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다.

줄곧 드라마만 제작해오다 처음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이기에 회사의 모든 신경이 이번 제작보고회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고 있어요. 매니저 통해서 초대 온 것도 알고 있구요. 그런데 나 바쁜데?”

말로는 바쁘다고 하지만 저 눈웃음을 보건데 괜히 튕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지 말고 꼭 참석해주세요. 저는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너무 일방적으로 정하신다.”

“에헤이, 일방적이 아니라 합리적인 요청이라고 합시다. 석호는 이모님 모셔다드리면서 우리 회사가 얼마나 너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 번 꼭 설명해드려라.”

“하하, 알겠습니다.”

그 후 ‘변호사들’(가제)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끄고 유니의 정규앨범 작업에 온 신경을 쏟았다.

은하의 ‘지옥도시’ 제작보고회 준비는 제작사가 하는 것이기에 손을 댈 것도 없고 굳이 찾으라면 그 날 입을 옷을 골라 주는 정도가 전부다. 또한 별이의 ‘28시간’ 역시 후반기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중이라 역시 회사 입장에서는 더 손 댈 게 없었다.

앨범에 들어갈 11개의 곡을 선정하고 뮤직비디오 촬영에 대한 컨셉까지 조율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바로 은하의 ‘지옥도시’ 제작보고회가 다가왔다.

“나 어때?”

오프숄더 형태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은하의 모습은 뭐라 형언하기 힘들 만큼 아름다움 그 자체다.

“당연히 예쁘지. 완전 천사야, 천사.”

“흥! 감흥이 없어, 감흥이… 뭔가 새로운 표현 없어?”

“내가 무슨 시인도 아니고… 아침부터 정신없었지? 물이라도 좀 마실래?”

“말을 말아야지. 그리고 무슨 물을 마셔? 배 나올까봐 아침도 굶어서 배고파 죽겠는데 놀리는 거야?”

그녀는 오랜만의 제작보고회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아침을 굶어서 그런지 한층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달래 영화관에 도착하니 제작 피디인 지여울이 우현에게 은밀히 다가와 속삭였다.

“오늘 참여한 기자들 중에 국가일보 이우진 기자라고 있는데 이 사람 조심하세요.”

“응? 이우진 기자? 그 기자가 왜?”

우현과도 안면이 있는 그 기자는 주로 사생활 관련 특집 기사를 써왔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얼굴만 보고도 피한다는 몇 안 되는 기자 중 하나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 영화 촬영 중에 몇 번 찾아왔었다네요. 그러다 은하 씨랑 한번 고성이 오갔다고 하는데 스태프 중에 영문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해요.”

“왜 이야기를 안 했지? 매니저한테도 들은 적 없는데? 오늘 그래서 예민해져 있었나?”

“모르죠.”

우현과의 사이가 들켜서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닐 거다. 은하 성격상 기사 낼 테면 내라고 했을 테니까.

뭔가 이유가 있어서 말을 안 했을 테지만 그래도 일단 알게 되니 궁금해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너 이우진 기자랑 뭐 있냐?”

제작보고회를 5분 앞두고 주변을 살피며 은밀히 물어보니 그녀가 같잖은 웃음을 짓는다.

“아… 그 인간? 어이가 없어서 정말… 걱정 마. 우리랑 관련된 건 아니고…”

“유은하 씨! 스탠바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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