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31화 (23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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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태풍이 되다(3)

“저는 이제 이 작품에서 손을 뗄 생각인데요? 부탁은 이주희 작가나 여기 천병준 피디에게 해보시죠?”

무슨 부탁을 할 지 몰라 일단 옆 사람에게 미뤘다. 이에 이 작가나 천 피디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현을 바라보았지만 일단 모른척했다.

“아… 강소연 씨를 캐스팅했으니 더는 터치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양 국장님께도 그렇게 말했구요.”

“흐음… 그럼 이주희 작가님에게 부탁드려야겠네요.”

윤설아의 시선이 이 작가에게로 향했다.

“네, 말씀하세요.”

“시놉시스가 가벼워서 그런지 주연배우 하나와 어떻게 진행될 건지 감만 조금 오게 돼있어서 말을 꺼내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작가님과 마주보고 있을 때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우리 준현이가 이 작품에 참여하기로 한 건 전적으로 작품 때문이에요. 출연료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기가 어려워요. 아시다시피 우리 준현이가 원톱인 것도 아니고 서브남주니까요.”

“이해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뭐, 그렇다고 준현이 출연료를 올려 달라는 건 아니에요. 여기까지 온 것도 어려웠는데 또 어렵게 갈 수는 없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할지 뻔히 아는데 사설이 길다. 그만큼 윤 대표가 이주희 작가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이주희 작가와 우현 때문일 거다.

“그렇죠. 그럼…?”

“어떤 구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 좀 예쁘게 봐주세요.”

윤 대표는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이주희 작가와 천병준 피디 사이에 올려놓았다. DH엔터의 소속 배우들 프로필 사진첩이었다.

“아… 아직 주연 배우 정도만 윤곽이 잡혀서…”

“어차피 미드처럼 새로운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오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당연히 조연들도 많이 필요할 거구. 여기에 있는 친구들은 A급 배우들이 아니에요. 현재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하는 친구들이니까 부담 없을 거예요.”

과연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대표답다. 웰메이드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하는 친구들은 좋은 연기력만 보여주면 필연적이라고 할 만큼 새롭게 조명되곤 한다.

현재 톱으로 올라선 배우들도 어떤 작품에서 조연으로 나왔다가 출중한 연기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깊은 인상을 준 작품들이 대개 웰메이드로 평가받았다.

“알겠습니다. 여기 천 피디님이랑 캐스팅디렉터와 같이 고려해볼게요.”

“고마워요. 김 대표님, 괜찮으시죠?”

“괜찮습니다. 좋을 대로 하세요.”

어차피 파인엔터에서는 굳이 조연으로 넣어보겠다고 할 만한 친구는 석호밖에 없다. 그러니 윤 대표가 누구를 꽂아 넣든 알 바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하는 것도 소속사 대표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배우들의 연기력과 마스크가 맡을 배역과 어울려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이주희 작가는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고마워요. 난 김 대표랑 내가 앞으로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거 좋죠. 언제 한번 따로 식사라도 할까요? 다음에는 제가 사죠.”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더라니까. 기대할게요.”

어찌나 관리를 잘 했는지 겉으로만 보면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우현을 향해 눈을 찡긋 거렸고 우현은 의식적으로 슬쩍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미팅 자리를 마치고 천병준 피디를 방송국에 내려준 후, 이주희 작가, 이재호 작가와 함께 강남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 얘네 진짜 빠르다. 벌써 떴어요.”

우현의 옆자리 조수석에 앉은 이주희 작가가 핸드폰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뭐가 떴는데요?”

“김준현 캐스팅 기사요. 세상에…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신호에 걸려 차가 잠시 멈췄을 때 이주희 작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김준현, 캐스팅 오보 아닌 출연 확정]

“미팅 전에 미리 보도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네.”

내용을 보니 방송국과 파인 엔터 간의 오해 때문에 일이 복잡하게 꼬인 것이었고 김준현의 출연은 오보가 아닌 팩트라고 못을 박았다.

“이렇게 안 되면 어쩌려고 그랬을까요?”

“그건 생각도 안 했을 겁니다.”

“진짜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그대로 흐지부지 마무리 되면 전국민이 다 알 정도로 개창피를 당하는 판국이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캐스팅이 되게끔 했을 겁니다.”

“우와… 그런데도 아까 소속배우들 프로필 사진을 돌린 거예요?”

“그건 원 플러스 원이죠. 아예 안 된다면 모를까 일단 김준현이 캐스팅이 되면 조연, 단역은 당연히 따라오는 권리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실 그게 틀린 생각도 아니고…”

“하하, 오늘 정말 잘 따라온 것 같습니다. 많은 걸 배우네요.”

미팅하는 내내 잠자코 있던 이재호 작가가 콧잔등을 쓸며 말했다.

“배우긴요, 이재호 작가님 글 보면 이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썼던데요? 이번에 실력 발휘 꼭 좀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대표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번 작품에 다들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입니다. 이게 잘 돼야 다음에 우리 이름으로 제대로 된 작품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도착해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DH엔터에서 아예 기획기사까지 만들어 뿌렸다.

대한민국 드라마 환경에 대해 논하다가 이번에 KBC에서 제작하는 드라마가 얼마나 획기적이며 놀라운 파급력을 지니게 될지 늘어놓았다. 또한, 거기에 김준현이 참여하는데 스스로 출연료도 깎았다며 자랑글 또한 슬쩍 올려놓았다.

“준비 많이 했는데요? 대표님 입장에서 이렇게 되면 좋은 일 아닙니까?”

이주희 작가는 글 쓰러 간다며 오피스텔로 가고 이재호 작가만 남아 우현과 같이 기사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렇죠. 나 대신 가려운 곳을 긁어주네요. 뭐… 김준현 측에서 스스로 출연료를 깎았다는 부분이 거슬리긴 하는데,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주죠. 그나저나 윤 대표가 고생 좀 했겠네.”

지이잉…

발신자가 양 국장이다. 전화 올 때가 됐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늦었다.

“기사 보시고 전화주신 거예요?”

양 국장은 대답 대신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어젯밤에 꿈을 꾸는데 누가 내 차에 똥칠을 해놓은 거야, 글쎄! 아, 근데 꿈속인데도 기분이 안 나쁜 거야. 그냥 좋더라고. 너 같으면 네 차에 똥칠 해놨는데 기분 좋겠냐? 나는 그게 좋은 거야. 그래서 딱 잠에서 깨니까 ‘아,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니까!”

“아휴… 우리 양 국장님, 얼마나 똥꿈을 원했으면 그랬을까. 내가 다 안타깝네, 정말. 그냥 로또를 사세요. 그 꿈이 로또 1등 꿈일 수도 있어요.”

“그러다 김준현 날아가면 어쩌려고? 나는 우리 김 대표의 대승적 판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캬… 거기서 김준현을 서브남주로 쇼부치는 담력! 난 인정한다, 응? 난 우리 김 대표 인정해!”

“인정하면 그 자리 때려 치고 우리 회사 와서 일해요. 내가 임원 시켜줄게.”

“너, 현역 드라마국장을 그렇게 막 꼬시면 안 된다. 내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내 거취를 알려줄게.”

“거취는 무슨… 누가 들으면 정치인인줄 알겠네?”

“흐흐, 오늘 같은 날에는 정치인이 안 부러워요.”

“DH엔터에서 조연이랑 단역 끼워 팔기 하던데 일단 미팅 자리에서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어요.”

“김준현이를 회당 3천에 준다잖냐. 그 정도면 끼워 팔기가 아니라 원 플러스 원이다. 아니지, 원 플러스 투, 원 플러스 쓰리 정도는 되는 거 아니냐?”

“하여튼 공짜 좋아하기는…”

“배 아프면 너도 끼워 넣어. 작가팀 원고료가 김 대표, 네 주머니에서 나가는데 그 정도는 챙겨야지.”

챙겨주는 척하지만 작가팀 원고료가 파인 엔터에서 나간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말이다. 혹시나 말이 바뀌지나 않을까 걱정했을 게 뻔하다.

“알겠어요. 조연으로 남자 하나 넣을게요. 뭐, 배역은 작가들한테 알아서 맡기고.”

“뭐야? 남자도 하나 키우고 있었어?”

“거 알지도 못했으면서 뭘 끼워 넣으라고 합니까? 속 보여요.”

“크흠… 아니 난 여자 신인으로 데리고 있는 줄 알았지. 김 대표네 회사 여탕이잖아, 안 그래?”

“여탕은 무슨… 마스크 괜찮고 일단 목소리가 죽여요.”

“그렇게 목소리가 죽이면 성우 시키지 그러냐?”

“이런 농담을 하니까 아재소리 듣는 겁니다. 하여튼 트리트먼트가 다음 주까지 나온다고 하니까 세부 에피소드 몇 개 나오면 제작발표회 일정 잡아도 될 거예요. DH에서 벌써부터 언론에 사방팔방 흘리고 다니니 제법 여론몰이는 될 겁니다.”

“지네들도 민망하겠지. 원래 방귀 뀐 놈이 더 방방 뛰는 거 아니겠냐? 어쨌든 나는 세트장 짓는 거 도장 찍는다. 아마 늦어도 한 달 뒤부터는 촬영 들어가야 할 거야. 시작 전에는 이리저리 말 많아도 일단 카메라 돌아가면 입 싹 닫아야 하는 거 알지? 이제 난 손 뗄 거야.”

“그러십시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 피디에게 넘기시고 푹 쉬십쇼.”

“흐흐, 수고야 우리 김 대표가 많았지. 시청률 20% 정도는 나올 수 있지? 우리 이거 잘 끝내고 해외여행 한번 가자, 응?”

“팔자 좋은 소리 그만하고 끊어요. 나 바빠요.”

전화를 끊으니 이재호 작가가 피식 웃으며 그 큰 배를 쓰윽 쓸어내렸다. 아까 일식집에서 혼자 엄청나게 먹던 게 이제야 소화가 되나보다.

“방송국이랑 일이 잘 처리됐나 봅니다.”

“그러네요. 이 양반이 헛소리를 좀 많이 해서 그렇지, 일처리를 어수룩하게 하지는 않아요. 말하지는 않았어도 나름 신경 좀 썼을 겁니다. 스태프들도 최고로 골랐다니까 우리는 잘 쓰기만 하면 돼요.”

“아까 들어보니 조연으로 쓸 만한 남자 배우가 하나 있다던데, 누군가요?”

“아, 아직 드라마로 데뷔한 적이 없는 친구예요. 영화 한편 찍긴 했는데 며칠 후에 제작보고회가 잡혀서 아직 얼굴도 알리지 못한 친굽니다.”

석호가 출연했던 ‘살수’는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있었는데 별이가 출연한 ‘28시간’과 정면대결이 예고돼 있어 자못 긴장을 조성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건 캐스팅이 확정됐던 ‘푸른 별’이 엎어졌다가 아직까지도 재촬영을 못하고 있다는 정도?

“그래도 대표님 안목이면 괜찮은 친구겠네요. 특히 목소리가 그렇게 좋다구요?”

“네, 원래 아이돌 하던 친구라 마스크도 나쁘지는 않은데 그것보다 목소리가 상당히 인상적인 친구예요.”

“혹시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지한 얼굴을 보니 그게 아닌가 보다.

“그럴래요?”

석호는 영화 ‘살수’ 촬영을 끝내고 계속 연기학원에 다닌 게 주 일과였다. 때문에 그를 부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역시나 전화하니 연기학원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라고 했다. 식사가 끝나면 약속된 스케줄인 피트니스와 피부과에 가야 할 테지만 일단 사무실로 오라고 불렀다.

30분쯤 지났을 때 깔끔한 마스크의 청년이 대표실로 들어섰다.

“어?”

놀란 이유는 석호 때문이 아니라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강소연 때문이었다.

“왜요? 같이 식사하다가 안 그래도 궁금한 게 있어서 같이 왔어요.”

“석호가 이모랑 많이 친하네요.”

“말하지 않았나요? 똥기저귀까지는 아니더라도 석호가 크는데 제 손이 많이 가긴 했죠.”

“뭐… 일단 여기 이재호 작가라고 이번 작품에 참여하는 작가팀 팀원입니다. 거의 팀장급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재호 작가는 생각지도 못한 강소연의 등장에 얼굴이 빨개져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영광입니다. 개인적으로 완전 팬입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강소연은 평소처럼 냉기 풀풀 흘리며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어진 우현의 말에 눈을 빛냈다.

“오늘 석호를 부른 건 제가 아니라 여기 이재호 작가님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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