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29화 (22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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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태풍이 되다(1)

누가 캐스팅 좀 해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시놉을 뿌린 것으로도 모자라 캐스팅까지 했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한동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데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알아차린 양 국장이 우현의 눈치를 본다.

“응? 왜? 김준현 마음에 안 들어?”

“DH엔터에만 뿌린 거예요? 아니면 다 뿌리셨어요?”

“다… 뿌렸는데?”

“하아…”

말 그대로 살도 없이 뼈대만 앙상한 시놉이다. 이걸 온갖 곳에 뿌렸으니 자연스럽게 작가팀에 대한 말도 했으리라.

“왜? 김 대표도 알겠지만 지금 편성날짜가 코앞이야. 알잖아? 주연 캐스팅이 진행돼야 할 시기라고!”

“그렇긴 한데요, 거기 시놉에 주연 성별이 남자잖아요?”

“그렇지.”

“그거 여자로 바뀌었습니다.”

“뭐? 뭐가 바뀌어? 성별이 왜 바뀌는 건데!”

그제야 일이 잘못되어간다고 느낀 양 국장의 얼굴이 노랗게 뜨기 시작했다.

“그러게 아직 트리트먼트도 안 거친 시놉을 왜 뿌리셨어요? 저희가 주연급 캐스팅까지 잡아놓는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아이구야… 일 났네, 일 났어. 이제 어쩔 거예요?”

등을 의자에 폭 파묻고 어탈하게 웃는 우현에게 양 국장이 정색하며 말했다.

“김 대표야, 우리 그냥 남자 주연으로 가자.”

“안 됩니다.”

“왜? 이거 꼭 여자가 주인공 안 해도 되잖아?”

“강소연한테 이미 이야기 해놨습니다.”

“강소연! 아이고… 내 참…”

“이거 뒤집으면 저 평생 쪽팔려서 강소연한테 얼굴도 못 들고 다녀요. 이게 무슨 개쪽입니까? 회사 옮기자마자 일 잡아줘 놓고 깐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래도… 우리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칼같이 잘라내는 우현의 말에 양 국장의 얼굴이 더 누렇게 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주희 작가를 데리고 있는 우현이 강짜를 부리면 방송사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다.

뼈대만 앙상했던 시놉을 가지고 ‘이게 원래는 남자주인공이었는데’ 해봤자 작가 측에서는 ‘그거 잘 못 쓴 건데요’라고 하면 반대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거 말년에 무슨 개망신이냐. 야, 병준아, 너 무슨 좋은 생각 없냐? 김준현은 네가 데리고 왔잖아!”

양 국장만큼이나 안절부절 못하는 천병준 피디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일단 계약서 찍은 거 아니니 그쪽에다가 스톱시키라고 말해보겠습니다.”

“스톱? 무슨 스톱? 이미 김준현이랑 이야기 다 끝났다며!”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다가 기사라도 나는 날에는 드라마국 전체가 욕먹을 텐데요?”

“그래, 일단 그쪽 진정 좀 시켜봐라. 얼른 가봐.”

천병준 피디가 회의실을 나가자 양 국장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는다.

“좋아, 강소연도 나쁘지 않지. 그럼 강소연 원톱으로 가는 거야?”

“네, 물론 주연급 남자가 필요하긴 한데, 아무래도 비중은 조금 떨어집니다.”

“강소연보다는 조금 낮은 급이지만 연기력은 떨어지지 않는 친구가 필요한 거네?”

“맞습니다. 그리고 김준현은 나이가 아직 서른도 안 됐잖아요? 솔직히 주인공을 남자로 한다고 해도 전 반대입니다.”

“요즘 그런 거 따지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따지는 사람 많습니다. 아무리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역까지 해봤다고 해도 그 나이에 변호사 역은 맞지 않아요. 신참 변호사도 아니고 각종 사건사고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사람들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20대라는 게 웃기잖습니까? 이런 거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류는 10대들 밖에 없어요.”

“흐음… 결국 그 친구는 주인공을 남자로 바꿔도 안 된다? 무조건 안 된다는 거네?”

“그렇죠. 천병준 피디가 데리고 왔다구요? 김준현을? 작품은 정직하게 만들면서 캐스팅 감각이 없네.”

“너, 그거 나 욕하는 거지?”

김준현을 데리고 온 천병준 피디를 칭찬했으니 자기를 욕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거다.

“제가 왜 형님을 욕 합니까? 형님이야 원래부터 톱스타만 주구장창 원하는 걸 알고 있는데요, 뭘…”

천 피디가 없는데다 분위기도 많이 풀어졌기에 자연스레 형님이라고 칭했다.

“내가 언제부터 주구장창 톱스타만 원했냐?”

“형님은 원래 그런 게 좀 있었어요. 시나리오랑 상관없이 톱스타만 갖다 붙이는 거. 내가 예전부터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백 번도 더 말했겠네.”

“야, 그 때는 네 배우 갖다 붙이려고 그러는 줄 알았지.”

“하여튼 국장님이야 그렇다 치고 천병준 피디는 어떻게 김준현을 바로 꽂은 거예요? 천 피디 전작에 김준현 안 나왔잖아?”

“둘이 무슨 사이는 아니고, 시놉시스 뿌리면서 대충 어떻게 만들어질지도 기획사 쪽에 잘 이야기했지. 그랬더니 글쎄 김준현 측에서 바로 연락이 온 거야. 어찌나 급했던지 김준현이가 방송국까지 찾아왔었거든. 천 피디가 그 자리에서 바로 오케이 한 거고.”

“하하하! 아주 기획사마다 브리핑까지 하셨던 거예요?”

작년 한 해 동안 김준현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무려 100억이었다. 그 몸값 비싼 김준현이 방송국까지 찾아왔다면 말 다한 거겠지.

천 피디 입장에서는 김준현이 직접 찾아오니 작품의 캐릭터가 어떤 지는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그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만 생각했을 거다.

“브리핑은 무슨… 그냥 간단하게 설명했겠지.”

양 국장은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자신이 없는지 갈수록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아래 직원들이 어떻게 설명했을지 확신이 없었던 거다.

“어쨌든 주연 캐스팅에 연출자까지 선정됐고, 스태프들도 준비됐죠?”

“어, 그래. 내가 지금 남아있는 애들 중에 가장 실력 있는 친구들로 준비했다. 촬영감독이랑 조명감독 둘 다 경력이 20년이 넘은 친구들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조연급 캐스팅 마무리하고 제작발표회 일정 잡아서 연락주세요.”

“조연 캐스팅에 원하는 사람 있어? 괜히 나중에 또 뒤통수치지 말고.”

“주연급 상대역 남자 말씀하시는 거죠? 딱히 없습니다. 다만, 주연급 남자로는 최소 서른다섯은 넘어야 하고, 연기력에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만 잘 지켜지면 누가 됐든 오케이예요.”

“그럼 조연은?”

“조연도 누가 되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돌도 괜찮다는 말이야?”

“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주연부터 조연까지 하나하나 다 신경 써서 선정하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방송국 제작진들과의 사이에 완전히 금이 갈 게 분명하다.

안 그래도 주연이 남자였다가 여자로 바뀌었는데 조연까지 건드리는 건 상도의를 넘어선 짓이다. 딱 주연 하나 찍고 빠지는 게 베스트다.

“흐흐흐,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한다. 제작발표회 일정은…”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순간 천병준 피디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떨리는 눈동자와 손을 봐도 뭔가 급한 게 터졌음을 직감했다.

“뭔데? 무슨 큰일인데?”

“방금 DH엔터에서 김준현 캐스팅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뭐야?!”

골이 지끈거린다. 이제 누구 하나는 개창피 당해야 일이 마무리 될 거다.

“그쪽에다가 연락은 해봤어?”

“일단 사정을 설명하니까 실무진들이 당황하면서 이미 보도자료 뿌렸다고… 그래서 포털 확인해보니까 이미 대문에 떡하니 올라가 있습니다. 여기 보세요.”

천 피디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대형 포털사이트 연예면 헤드라인에 문제의 기사 제목이 올라와있었다.

[한류스타 김준현, ‘변호사들’(가제)로 지상파 복귀]

애초에 시놉시스에는 제목이 붙어있지 않았는데 심지어 가제까지 자기들이 붙였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이상한데… 이 제목은 어디서 났답니까?”

“어? 그러네? 이거 지들이 붙인 거야?”

양 국장과 천 피디도 모르는 눈치다.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더욱 기가 차다.

[이주희 작가의 차기작인 ‘변호사들’은 지금까지의 법정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파격을 선보일 예정이다. 메인작가 혼자가 아닌 그녀를 서브해주는 작가팀과 같이 작품에 참여할 예정이며 ‘변호사들’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애하는 내용이 아닌 진짜 리얼한 변호사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전해진다. 또한…]

“아주 제대로 브리핑하셨네. 녹취록까지 땄나봐. 너무 자세하게 아는 거 아닙니까?”

“허… 참.”

우현의 날 선 질문에 둘 다 대답을 못한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그쪽에다 이야기해서 기사 내리라고 해야지!”

쪽팔림과 분노가 뒤섞인 양 국장의 말에 천 피디가 놀라 알았다고 할 때 우현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되겠어요? 그만 두세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지금쯤 거기도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방송사 측에서 정정기사 내라고 하면 낼까요? 분명 김준현을 까려고 한다고 생각할 텐데? 기사 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는 기자들한테 보도자료 더 뿌리고 사건을 키울 겁니다.”

“미치겠네. 그럼 어떻게 하냐?”

“에휴… 저희가 처리할 테니까 마무리나 잘 해주세요.”

“마무리? 무슨 마무리?”

“제가 DH랑 싸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싸우는 건 대신 해주셔야죠.”

“어? 어, 그래. 내가 대신 싸워줄 테니까 일단 기사부터 내려 봐라.”

“평생 기억했다가 나중에 톡톡히 챙겨먹을 겁니다.”

“아이고, 걱정 마. 내가 강소연 씨 출연료도 두둑히 챙겨줄게.”

걱정이 가득한 양 국장을 뒤로 하고 방송국을 나온 우현은 곧바로 사무실로 향하면서 홍보팀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바로 기자들한테 보도자료 돌리세요. 김준현이 출연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고, 그게 바로 강소연이라구요. 제목은 그대로 갖다 붙이세요, ‘변호사들’. 아, 이게 좋겠다. 톱스타 강소연 ‘변호사들’의 주연으로 발탁. 한마디로 DH엔터 쪽이 뭔가 착오로 인해서 잘못 알았고, 주인공은 김준현이 아니라 강소연이다, 이렇게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까?”

홍보팀 직원도 대략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 챘는지 30분 이내에 포털에 새 기사가 올라갈 거라고 했다. 이미 강소연이 새 드라마를 할 거라고 회사 내에 이야기가 돌았기에 어떤 상황인지 알았을 거다.

회사에 도착해보니 민주가 우현을 보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들이밀었다. 그녀의 옆에는 홍보팀 직원 몇몇이 서 있었다.

“일단 기사는 올라갔구요. 지금 기자들이 계속해서 전화해오고 있습니다. 어디가 맞는 건지 물어오고 있어요.”

역시나 SN엔터에서 경력직으로 스카웃해오길 잘했다. 그 짧은 시간에 포털 메인에 올려놓았으니 말이다.

“우리가 맞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라고 하시고 KBC 드라마국에 확인해보라고 돌리세요. 우리가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혹시 DH엔터에서 연락 오면 자세한 건 방송사랑 이야기해보라고 하면서 넘기세요. 우리가 맞니 어쩌니 하면서 싸우지 마시고. 알겠습니까?”

“네.”

역시나 DH엔터에서 올린 기사는 1시간도 채 안 돼 슬그머니 내려갔다. DH엔터는 물론이고 그 기사를 올린 기자도 쪽팔리니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인데 문제는 그 여파로 실검에 김준현과 강소연이 오르내렸다.

이대로 묻히기에는 김준현의 이름값이 컸기에 어떻게든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화가 났나보다.

“대표님, DH엔터의 윤설아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는데요. 연결할까요?”

민주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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