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28화 (22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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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새로운 시도(6)

느닷없는 우현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말인 줄 알기에 일부러 더 아무것도 아닌 양 뜨거운 숯불 위의 장어를 태연히 뒤집었다.

“그러니까 주인공을 여자로 하자는 말인 거죠?”

그나마 이주희 작가만이 대강의 사정을 예측했는지 소주를 한 잔 걸치며 물어왔다.

“네.”

너무도 태연한 우현의 대답에 조현준 작가가 안경을 고 쳐쓰며 입을 열었다.

“저기… 대표님? 다른 장르라면 몰라도 법정물과 수사물 같은 경우는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분위기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주 시청자층까지 달라질 수 있다. 장르물일 경우 다른 드라마 장르에 비해 남성 시청자들의 비율이 올라가는데,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 남성 시청자들이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알고 있어요.”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우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여성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당장 강소연을 어디다 써야 하긴 하는데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주인공 직업이 변호사이니 나이가 서른이 넘은 강소연이 맡기에 딱이고 주인공의 연기력과 지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에 너무나 적합하다.

게다가 법정에서 연애하는 여타 다른 법정물과 달리 진짜 법정물을 추구하기에 드라마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작품을 하게 되는 것이니 그녀의 인생작이라 불러도 무방할 작품이다.

“알고 계시다면 할 말 없지만… 혹시 ‘굿와이프’같은 치정멜로도 섞이길 원하시는 건가요?”

비꼬는 게 아니라 드라마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다.

“그것 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뭐, 작품에 도움이 된다면 넣어도 무방하지만 그건 이주희 작가와 상의하시면 될 것 같네요. 제가 원하는 건 주인공이 30대 초중반의 여자일 것, 그리고 재미있게 쓸 것. 이것 밖에 없네요.”

그들은 첫 회식부터 어려운 숙제를 받은 것 같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강소연 씨를 주연으로 쓰고 싶은 거예요?”

“강소연!”

이주희 작가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우현에게 슬쩍 물어보는데 이재호 작가가 먹던 장어를 다 씹지도 않고 놀라 입을 떡 벌렸다.

“뭐예요? 우리 회사에 강소연 있는 거 몰랐어요?”

“아, 아니…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이런 기회가 올 줄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말하는 걸 보니 강소연의 팬이었나 보다.

“이 작가님 말처럼 강소연을 주연으로 하려고 해요. 그래서 주인공을 여자로 하려는 거구요.”

“해야죠. 당연히 해야죠. 여자 주인공도 법정물에서 충분히 매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미드인데 혹시 ‘앨리 맥빌’이라는 드라마 아십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앨리의 사랑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방영했었는데 아주 재미있었죠. 아, 그건 로맨스 요소가 다분했지만 이거야 좀 줄이면 되는 거고… 하하하!”

로맨스는 물론이고 막장 요소가 다분했던 드라마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는 했다.

“당연히 알죠. 저도 아주 오래전에 봤던 기억이 있네요. 그럼 전 동의하신 걸로 알고 그렇게 추진하겠습니다.”

“예, 예. 걱정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 만들어보겠습니다.”

이쯤 되니 다들 수긍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주희 작가도 예상했던 일인 것처럼 별 말 안하고 넘어 간데다 이재호 작가는 아예 신나서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리고 있으니 다른 이들도 더는 태클을 걸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점심 전에 강소연이 회사를 찾아왔다. 이미 작가들에게 통보하기 전에 그녀와 약속을 잡았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갑자기 근황이 궁금한 거예요? 뭐, 대표님이 일을 안 주시니 운동하고 소일거리나 하면서 지내죠.”

그 소일거리라는 건 사실 별 거 없다. 키우는 애완견과 산책하고 친한 친구들과 맛집 여행이나 다니는 것인데 여배우들 대다수의 특징이 집 밖으로 잘 안 나오는 것이기에 그것도 소일거리라고 부르는 거다.

“드라마 하나 괜찮은 게 있는데 한번 해보실래요?”

“또 드라마예요? 흐음… 난 영화 하고 싶은데…”

“하하, 이제는 시청률 맛 좀 봤으니 또 편하게 가고 싶다 이거예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영화가 짧고 굵게 가니까요.”

“영화판에만 주로 계셔서 드라마는 조금 낮게 보시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그런 거… 예전에는 그런 풍조가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 어째 느낌이 그런 것 같은데요?”

“흐음… 그냥 제가 하도 영화만 해서 그런지 연기하기가 편해요, 영화가. 동선이나 대사나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 드라마는 급하잖아요, 모든 게… 그래도 좋은 작품이면 드라마라도 해야겠죠?”

“당연하죠. 이거 한번 보실래요?”

소연에게 이주희 작가에게서 받은 시놉시스를 건넸다. 정말 뼈대만 잡힌 거라서 감이 안 잡힐 수도 있었지만 대강 어떤 작품인지만 알아도 설득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10여 분간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소연은 시놉시스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번에도 이주희 작가네요. 뭐… 이 작가님하고 같이 찍어보니 괜찮더라구요. 그런데 변호사는 처음인데… 그리고 이게 다인가요? 너무 짧고 설거운데?”

“이번 드라마는 여타의 법정물과는 완전히 다를 겁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메인 작가인 이주희 작가 말고 그녀를 서브해주는 작가팀이 들어갈 겁니다.”

“작가팀이요?”

“네. 장르물 전문 작가팀인데 이주희 작가가 드라마의 주된 구성을 담당하고, 각각 소규모의 에피소드와 각 조연들의 캐릭터는 작가팀에서 만들어줄 겁니다.”

“와… 완전히 미드처럼 만드네요? 편성은 확정 받은 거예요?”

“네, KBC에서 이주희 작가와 50회 계약을 맺었고 이번 작품으로 KBC 첫 데뷔하게 된 거죠.”

“그럼 방송사에서 작가팀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럴 리가…”

보수적인 드라마국에서 이런 혁신적인 시도를 할 리가 없다는 그녀의 말은 타당하다.

“당연히 그럴 리 없죠. 작가팀은 파인 엔터 소속입니다. 첫 데뷔나 마찬가지라서 원고료 역시 파인 엔터에서 따로 지급하는 거구요.”

“그럼 회사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하는 게 손해 아닌가요?”

“이번 작품만 하고 말 거라면 손해겠죠.”

“아… 대표님은 하고 싶은 게 많은가 봐요. 제작사까지 노리고 계시구… 하긴, 이 바닥에서 연예 매니지먼트 하는 사람치고 제작사 욕심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어쨌거나 제법 신선하네요. 여기 남자주인공에 줄을 죽죽 긋고 여주로 바꾼 게 저라는 거죠?”

“맞습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그대로 가고, 아무래도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겠죠. 그래도 큰 틀은 그대로 갈 겁니다.”

“그 장르물 작가팀이라는 분들, 실력은 믿을 만하겠죠?”

“제가 직접 골랐습니다.”

간명한 대답이었지만 강소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작가의 수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편성도 확정이고, 지상파에다 여주 원톱 작품인데다가 지금껏 우리나라에서는 보여준 적 없는 에피소드 위주의 법정물이라면 누구나 탐을 내겠군요.”

“아마 지금 진행하는 상황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기를 쓰고 여주인공 역을 맡으려고 할 걸요?”

“정말 그럴까요?”

“최소한 제가 매니저라면 절대 이 역 안 놓칩니다. 진짜예요.”

우현의 큰소리에 그제야 소연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어린다. 아마 은하와 사귀고 있지 않았다면 가슴이 철렁했을 만큼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좋아요, 할게요.”

“현명한 선택 하셨습니다. 출연계약은 방송국에서 연락 갈 겁니다.”

“연출자도 안 정해 졌는데 이렇게 막 정해도 되는 거예요?”

“아, 연출자 정해질 겁니다. 천병준 피디라고 장편으로는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인데 실력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당연히 강소연 씨를 반대하지 않을 거구요.”

“우리 대표님 파워가 대단하시네. 마음에 들어요.”

소연은 명품 까르띠에리 핸드백을 우아하게 들고 일어섰다.

“가시려구요?”

“네, 부탁하나만 할게요.”

“뭐든지.”

“실력 있으면서 시간 여유 있는 여자변호사 좀 알아봐줘요.”

“아… 실력이 있으면서 시간 여유까지 있는 여자 변호사라… 마치 잘 생겼으면서 인기 없는 남자를 찾아달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데요?”

“후훗! 그게 바로 대표님 능력 아니겠어요?”

“뭐, 우리 배우님께서 찾아달라는데, 찾아드려야죠. 그럼 계약 맺을 때 다시 뵙도록 하죠. 일정 잡히면 소연 씨 매니저한테 연락 갈 겁니다.”

“기다릴게요.”

당연히 그녀가 수락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만약’, 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근히 긴장했었다. 그랬기에 방송국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소연이 나가고 얼마 후, 옷을 차려 입고 사무실을 나가는데 유니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프리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 특유의 청초하고 귀여운 느낌은 그대로다.

“요즘 대표님 얼굴 보기 너무 어려운 거 아니에요? 저 섭섭하려고 그래요.”

양 볼을 크게 부풀려 그녀의 불만을 드러내려 했지만 우현이 보기에는 그냥 귀엽기만 하다.

“왜 또? 정규앨범 준비한다고 바빴던 건 너다. 게다가 얼마 전 타이틀 곡 정할 때 밤늦게까지 도와줬잖니? 그런데 결국 내가 선택한 곡은 타이틀곡으로 안 쓴다며? 나도 섭섭하다.”

“그냥 농담이었어요. 대표님이 찍은 그 곡으로 타이틀 쓸 거예요.”

“오, 정말? 잘 생각했어. 네가 미는 그 곡은 타이틀 감이 아니야.”

“저 뮤직비디오도 촬영 할 거죠?”

슬쩍 시선을 피하는 게 할 말이 있나보다.

“그럼, 당연하지. 왜? 원하는 감독이나 회사라도 있어?”

“대표님은요?”

“솔직히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은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네가 원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 하고 해도 돼. 일단 이번 앨범이 전체적으로 뭔가… 네가 조금 어른스러워 졌다는 걸 강조하고 있잖아?”

유니는 자신이 스무 살이 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지 앨범 전체적인 분위기에 성숙함이 물씬 풍겨나도록 만들었다.

“네. 이상해요?”

“아니야, 이상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긴 한데, 그걸 오버해서 표현하지 않는 감독이었으면 좋겠어.”

“으음… 알겠어요.”

의미심장한 얼굴을 보니 이미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나보다. 어쨌든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었다.

“일단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네가 생각해놓은 감독 있으면 그 때 이야기하고.”

“네.”

유니를 뒤로 하고 방송국에 도착하니 양 국장이 30대 초반의 청년과 함께 그를 맞이했다.

“여기, 이 친구가 천병준 피디. 여기는 그 이름도 유명한 파인 엔터의 김우현 대표. 서로 인사들 하지.”

“반갑습니다. 천병준입니다.”

그는 170도 안 되는 작은 키에,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 같은 동안이었고 웃음에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보였다.

“굉장히 어려 보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속지 마. 저래 봬도 얼마나 고집이 세고 약은지 말도 못 해.”

양 국장은 손을 휘저으며 웃음을 보였다. 간단히 그와 인사하고 난 뒤 강소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양 국장이 파일 하나를 거침없이 놓았다.

“김 대표! 우리끼리 회의했는데 다들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 촬영팀이나 조명팀, 미술팀들이 서로 하겠다고 난리야.”

“벌써 시놉 뿌리셨어요?”

“아, 그럼! 당연하지. 여기 이 친구 뽑으니까 아주 다른 피디들이… 난리야, 난리. 왜 자기 안 시켜주냐는 거지. 내가 해명하느라고 아주 진을 다 뺐어.”

“아…”

어째 불안감이 발끝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준비해봤다. 자, 봐봐!”

양 국장이 호기롭게 선보인 파일에는 대한민국 톱스타 중 하나인 김준현의 프로필 사진이 떡하니 펼쳐져있었다.

“설마…”

“그 설마가 바로 사람 잡는 거 아니겠냐? 내가 우리 김 대표 힘들까봐 주인공까지 섭외해왔다는 거 아니냐! 봐라! 최고의 한류스타 김준현이면 이미 답 나온 거 아니겠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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