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25화 (22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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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새로운 시도(3)

“뭐야? 면접이라도 보는 거야?”

“면접은 무슨… 아직 작품도 못 봤는데? 이번에 우리 쪽으로 극본 써서 지원한 게 있거든. 그거 전부 살펴봐야 해.”

“얼마나 되는데?”

“좀 많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가보셔. 나 이제부터 글만 파야해.”

“칫! 바쁜 척 하기는…”

말로는 토라진 척 하지만 그녀는 웃음을 보이며 자리를 떴다. 그녀가 나가고 대표실 밖으로 나가니 산처럼 쌓인 거대한 서류더미가 그를 반겼다.

“총 114명이 지원했구요. 각자 최소 100페이지가 넘는 대본을 보내줬기 때문에 이 정도나 많이…”

민주는 민망한 듯 말했지만 당사자인 우현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며칠 고생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거 출력하느라고 고생하셨네요.”

“고생은요, 나온 거 스테플러 찍는 일밖에 안 했는걸요. 이것 때문에 A4용지 한 박스가 전부 거덜났네요. 조만간에 프린터기 토너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수고하셨어요. 일단 이것 좀 제 방으로 옮길까요?”

그 많은 대본들을 전부 대표실로 옮긴 후 본격적으로 하나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읽는데 저녁시간에는 배달음식으로 때우고 밤12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다음날도 아침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대본을 읽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모든 대본을 전부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이거, 이거, 이거 쓰신 분 연락하세요.”

“임지은 작가님이랑, 조현준 작가님, 그리고… 한세연 작가님이요?”

“네, 세 분 다 보조작가인가요?”

“으음… 임지은 작가님이랑 한세연 작가님은 현재 보조작가 하고 계시네요. 그리고 조현준 작가님은 프리렌서로 되어 있구요.”

“연락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고 하죠.”

“알겠습니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자 곧바로 옷가지를 챙겨 입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제는 제작사와 협의를 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왔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지?”

KBC 드라마국의 양세종 국장이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 듯이 환하게 웃으며 우현을 반겼다.

“좋은 일이라기 보다는 몇 가지 상의할 게 있어서 그래요.”

“상의? 상의할 게 있어? 뭔데? 아, ‘왕비의 비밀정원’ 때문에 그래?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할 만할 것 같지?”

그는 우현을 앉혀놓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따다다 말을 늘어놨다.

“아이고, 누가 쫓아와요? 나이가 드시니 말이 많아지셨어. 예전에는 안 그러셨는데?”

“요즘 걱정이 많아져서 그래. 하여튼 그것 때문이야?”

“그게 아니라 이번에 우리 이 작가님이 구상하고 있는 게 있답니다.”

“웹툰 각색하는 거 말고? 어떤 건데?”

“법정물을 해보려는 것 같아요.”

“오… 이번에는 좀 어렵게 가네? 전처럼 막장드라마 해주면 딱 좋은데…”

사실 방송국 측에서는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 시청률 잘 나오지, 제작비 적게 들지, 작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각종 PPL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해보고 싶었대요. 그리고 막장드라마 두 개 연속으로 하면 작가 커리어에도 도움 안 됩니다. 막장작가 소리 들어요.”

아예 주말극 작가로 마음먹은 게 아닌 다음에는 비슷한 컨셉의 드라마를 두 번 연속으로 한다는 건 부담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막장드라마 잘 쓰는 작가가 어떻다구?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 그래?”

“알죠. 하지만 그렇게 크는 작가는 대성하기 힘듭니다. 특히 요즘은 드라마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해요.”

“씁… 아쉽네, 아쉬워. 어쨌든 법정물은 어려운 거 알지? 시청률도 잘 안 나와. 물론 하겠다면 난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이 작가와 첫 작품이기도 하고 요새 법정물도 잘 쓰면 견적 잘 나오니까. 난 우리 이주희 작가 믿는다.”

법정물은 무엇보다 고급 PPL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남주나 여주의 나이가 어느 정도 있고 커리어가 상당한 배우일수록 보통 드라마에 PPL을 하지 않는 고급 브랜드들도 넣어달라고 요청해오는 일이 있다.

이유는 변호사들이 상류층에다가 상당히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돈만 많은 배역에 협찬한 것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상의 드리려는 건 단순히 법정물이라서가 아니구요…”

“응? 그럼 뭔데?”

“이번에 좀 미드처럼 만들어보려고 해요.”

“미드? 미국드라마? 혹시 시즌제로 길게 가자는 거야?”

“이번에 잘 되면요.”

“김 대표도 잘 알면서 그래?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 이번에 잘 된다고 쳐 보자고, 그 다음엔 분명 출연료 높아져서 감당이 안 되지. 신인배우를 출연시켰다면 모를까… 설사 신인배우였다고 해도 한번 뜨고 나면 별의별 조건을 달아대면서 이것저것 재려고 할 텐데, 난 그 꼴 못 봐.”

“그거 얼마 올라간다고 그러십니까? 솔직히 유은하가 내 배우이긴 하지만 회당 5천 이상 받습니다. 그 돈이면 어설픈 A급 배우들 남주, 여주에 서브여주까지 맞춰줄 수 있는 돈이잖아요? 그런 돈은 턱턱 쓰면서 그깟 출연료 조금 올려달란다고 그걸 싫어합니까?”

“진짜 조금만 올려달라는 게 아니잖아. 알면서 그래? 하여튼 그냥 시즌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을 거고, 어떻게 미드처럼 만들려고 하는 건데?”

“미드 법정물 보시면 1회당 에피소드가 하나씩 나오잖아요?”

양 국장은 우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튕기듯 상체를 우현에게 바짝 들이밀었다.

“그걸 따라하겠다고? 이 작가 머리 터질 텐데? 아니면 한 3년 전부터 미리 다 써놨대?”

“그게 아니라 제가 이번에 전문작가팀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귀신 다리 긁는 소리야?”

“미드가 저렇게 말도 안 되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뭔지 아시죠?”

“알지. 그래서 그걸 만들겠다고? 아니, 말 꺼냈으면 이미 마음먹고 작가까지 구하고 있겠네?”

“맞습니다.”

“그래서 시즌제가 자신 있는 거였구만? 좋아. 사실 그렇게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혼자 쓰면 어떻고 여럿이 쓰면 어때? 문제는 원고료인 거 알지?”

“이번에는 우리 회사가 원고료 지급할 겁니다. 제작비에서는 나가지 않을 거예요.”

양 국장은 진심으로 놀랐는지 한동안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5초 정도의 침묵이 흐른 후 양 국장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작가팀이면 못해도 3, 4명은 될 테고 못해도 회당 천은 줘야 할 건데, 그럼 16회에 1억 6천이야. 그걸 대겠다고?”

“네. 오늘 제가 여기 와서 국장님께 상의하는 건 제작비를 추가로 타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시스템을 허가해 달라는 거죠.”

“이거 제대로 만들어 볼 수 있겠냐?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어. 괜히 이상한 짓 했다가 너나 나나 병신 될 수도 있다고. 너야… 아니, 김 대표야 회사 운영하는 입장이니 상관없겠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쪽팔리면 그냥 모가지야.”

“형님도 엄살 좀 그만 부리세요. 국장 달고부터 엄살만 늘어가지고는… 드라마 한번 실패했다고 무슨 모가지입니까? 제작비 얼마나 줄거라고 모가지는 무슨…”

“크흠… 하여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쪽팔리면 얼굴 못 들고 다니는 건 맞아.”

“어쨌든 제작비 추가 안 되면 좋다고 하셨죠? 아까 분명 좋다고 하셨습니다?”

말을 마치고 일어서려고 하자 양 국장이 우현의 팔을 잡았다.

“김 대표야,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너 제작사까지 하려고 하냐?”

“아직 생각 중이에요. 왜요?”

“와… 이거 야심 큰 거 보게?”

“나중에 회사 짤리면 오세요. 내가 자리 하나 드릴게.”

“내가 이 나이 먹고 네 밑에서 일해야겠냐?”

“싫으면 말구…”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나가려고 하니 그가 더 강하게 붙잡았다.

“꼭 싫다는 게 아니라 경우가 그렇다는 거지. 크흠… 어쨌든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테니 한번 잘 만들어 보자고. 뭐, 잘 돼서 시즌 2가면 그것대로 좋겠지. 요즘 케이블 드라마 때문에 하도 욕을 먹어서 이제 우리도 좀 새로운 게 필요하긴 해.”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시놉은 빠르면 다음 주 정도에 나올 것 같으니까 연출자 정해지면 연락 주세요.”

“혹시 누구 원하는 사람 있어?”

“흐음…”

괜히 정해지고 나서 마음에 안 든다고 까면 서로가 힘들어진다. 그럴 바에는 애초에 이쪽에서 지명하면 될 일인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방송사 쪽에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뜸 들이지 말고 말 해. 나중에 나 힘들게 하지 말고.”

“리스트 좀 보내주세요. 당연히 이거 말 새어 나가면 안 되는 거 알죠?”

“오케이! 이번에 제대로 된 거 하나 만들어보자!”

가장 걱정했던 방송사도 어렵지 않게 넘어가고 나니 이제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번에는 방송사 자체제작이라 따로 제작사를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할 일도 더 없을 것 같다.

사무실로 들어와 오랜만에 유니와 함께 정규앨범에 실릴 음악 리스트를 살피고 새로 녹음한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유니와 엔지니어가 퇴근하고 나서도 홀로 음악을 들으며 11시가 넘어서도 퇴근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이이잉 지이이잉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보니 은하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흥, 일이 있어야 전화하나?”

“그런 건 아닌데… 어쩐지 네 목소리를 들어보아 하니 아무 일 없이 그냥 전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오호… 제법이네. 나와.”

“응?”

“아직 사무실에 있잖아? 유니한테 다 들었는데? 앨범 들어갈 노래 듣고 있다고?”

“그렇지. 계속 앉아만 있었더니 눈도 뻑뻑하고 몸도 찌뿌드드하네.”

“히힛, 그러니까 나오라구.”

“어딜 나와?”

“나 회사 앞이야. 이제 퇴근해서 여친이랑 데이트도 좀 하시죠?”

“어… 일이 좀 남았긴 한데… 그래, 이미 퇴근해야 할 시간은 지났으니까. 여친 얼굴이나 볼까?”

“얼른 내려오세용.”

오랜만에 듣는 은하의 콧소리에 기분이 좋아져 우현은 얼른 재킷을 집어 들었다가 불현듯 입안이 텁텁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로 가서 양치하고 세수도 새로 한 다음 은하가 사준 향수를 뿌리고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로 들어오지, 왜 밖에서 기다렸어?”

우현이 차에 타면서 풍겨오는 향기에 은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연애엔 영 소질이 없어 뵈는 이 남자가 일부러 자신이 사준 향수를 뿌리고 나오는 사소한 행동에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이 남자를 많이 좋아하긴 하나봐.

“데이트를 무슨 사무실에서… 우리 영화 보자.”

“어, 좋지. 집에서?”

“아니.”

“그럼 자동차 극장으로 가게?”

“아니. 압구정 CGW 가서 보려구.”

“뭐? 얘가 얘가 또.”

우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히히, 나 극장 가서 보고 싶단 말이야.”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보여주고선 은하는 압구정으로 차를 몰았다.

“진짜 들어가려구?”

“으휴, 소심하기는. 얼른 내려.”

“아유… 내가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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