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24화 (22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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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새로운 시도(2)

“정말이십니까? 그게 쉽지 않을 텐데요?”

그는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슬쩍 갸우뚱하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쉬우면 진즉에 그렇게 했겠죠.”

미드처럼 여러 명의 작가가 팀으로 움직이며 작업을 하는 것이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수사물이나 법정물처럼 많은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필요한 드라마에서는 팀으로 작업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겠지만 남녀간의 로맨스가 중심이 돼서 전체적인 큰 줄기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내용은 한 명의 작가가 쓰는 게 더 낫다.

결론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드라마가 전부 다 연애물인 까닭에 전문 작가팀의 존재 이유가 없었다.

결국 모든 드라마의 작가는 메인작가 혼자서 대본을 집필하고 필요에 따라 공동작가 한두 명 정도가 추가되는 정도에 그쳤다.

이 방식이 굳어지게 되니 우리나라의 장르물이 미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스토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가능할까요? 무엇보다 제작비가 더 들기 때문에 제작사 쪽에서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서로 양보를 해야겠죠. 제작사는 더 좋은 작품을 위해 제작비를 조금 더 쓰고, 작가팀은 서로를 위해 원고료를 조금씩 양보해야죠. 혼자 쓰는 것에 비해 원고료는 많이 줄겠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을 겁니다. 작품 하나가 잘 되면 계속해서 일이 생길 테니까요.”

“아… 그럼 혹시 제가 하게 될 작품이 이미 정해진 건가요?”

“혹시 법정물 좋아하세요?”

“그럼요, 미드 중에 특히 ‘슈츠’ 좋아합니다.”

“잘 됐네요. 이미 계약된 거라 메인작가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만약 전문작가팀이 꾸려지게 되면 메인작가가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작가팀이 각각의 에피소드와 이야기를 구성하도록 할 생각이에요. 처음이라 원고료는 제작사에서 나가지 않을 겁니다.”

“네? 그럼…?”

“저희 회사 소속이니 저희가 지급할 생각이에요. 시청률이 좋지 않아도 전문작가팀만의 장점이 보인다면 계속해서 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갈 생각이 있어요.”

“아… 혹시 메인작가님은 알고 계시는 건지…”

드라마 작가 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최소한 메인작가와 어느 정도의 교감은 하고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 거다.

“아직 모릅니다. 말해보고 싫다고 하면 다른 작품 하면 되죠.”

“네? 그, 그렇군요. 하하하…”

그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시간 지나면 아시겠지만 이번에 우리 회사 소속 배우인 김별이 출연한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이 ‘28시간’인데 제작사가 있지만 제작 지휘는 저희가 했습니다. 투자 역시 저희가 전부 받아왔구요. 제작사는 일종의 하도급처럼 저희가 주는 일을 받은 거죠.”

“그럼 다른 작품 하신다는 게, 앞으로 드라마 제작도 하실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재밌을 것 같은 작품이 이런저런 반대로 못 만들어지면 제가 만들어볼 수 있다는 거죠.”

“아…”

“일단 알겠습니다. 이재호 작가님 말고도 괜찮은 작가분들 섭외가 되면 같이 계약하도록 하죠. 돌아가 계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집에서 연락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계속해서 허리를 구부리다가 회사를 떠났다.

“민주 씨, 지금 보조작가로 일하는 사람들이랑 드라마 작가 하겠다고 극본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리스트 좀 뽑아올래요?”

“지금요?”

그녀가 무슨 국정원 직원도 아닌데 평소 그런 사람들을 알고 있을 리 없다. 당연히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릴 거다.

“아니요, 한… 일주일 정도 드리면 될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괜찮은 작가진들을 많이 뽑지 못한다고 해도 이재호 작가는 계약할 생각이다. 회사에 저렇게 전문적인 장르물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꼭 필요하다는 게 우현의 생각이었으니까.

다음날 이주희 작가를 회사로 불렀다. 전화로 통화하기에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법정물 해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스토리라인은 잡았어요?”

“어? 왜요? 생각이 바뀌셨어요? 저도 그냥 접을까 했는데 계속 마음에 걸려서… 한번 다시 잡아 볼까요?”

“아직 완전히 잡지는 않았다는 거네요?”

“일단 머릿속에 뱅뱅 돌고 있긴 한데… 본격적으로 진행하면 금방 나올 것 같긴 해요.”

“어떤 식으로 풀어갈 생각이에요? 미드처럼 하나의 큰 사건을 기본으로 깔고 회마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풀어갈 생각이에요? 아니면 몇 개의 큰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을 쓸 생각이에요?”

“대표님은 어떤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나왔던 법정물들이 전부 후자를 택했죠? 그리고 그 몇 개의 사건이란 것도 적게는 두세 개, 많아야 네 개 정도? 거기에 로맨스를 깔아서 나온 시청률이 전부 하나같이 평타 또는 그 이하였죠.”

대한민국에 성공한 의학드라마는 있어도 성공한 법정드라마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괜찮았던 작품이 김성민이 나온 ‘환골탈태’ 정도? 한 때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대기업 이익만을 대변하던 변호사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내용인데 실제 있었던 사건을 각색했기에 시청률도 평타 이상 나왔고 평가도 좋았다.

그 작품이 잘 될 수 있었던 건 일단 작가의 구성도 좋았지만 주연 배우였던 김성민이 정말 실제 변호사처럼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어설픈 로맨스가 들어가지 않았기에 더 잘 될 수 있었다.

“저도 알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으니까…”

“그럼 이건 어때요? 제가 전문작가팀을 하나 만들어서 이 작가님 밑으로 보내드릴게요. 같이 한번 해보시겠어요?”

“제 밑으로 작가팀을 보내주겠다구요? 어… 그게 되는 거예요?”

“작가님 수입은 변동 없이 처리될 거예요. 단지 조건이 있다면 극본에 이주희 플러스 작가팀 이름이 추가될 뿐이구요. 싫다면 없던 일로 할 테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잠깐만요. 그 작가팀은 어떻게 만들고, 누가 참여하는 건데요?”

“제작사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저희 파인 엔터 소속으로 할 겁니다. 제가 키울 거예요. 그리고 아직 누가 참여할 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써는 보조작가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드라마작가로 입봉하기 위해 이곳저곳 찔러보는 신인작가들 위주로 알아보고 있어요.”

“그럼 저랑 같이 일하지 않아도…”

“네. 작가님하고 같이 하지 않아도 작가팀이 꾸려지면 새로운 작품을 한번 해보려고 해요.”

“와… 대단하네요. 알았어요. 저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미드처럼 많은 사람들과 논의하고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상상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럼 일단 기본 구성을 짜 볼게요.”

그녀는 흥분했는지 손을 부산하게 움직이며 말하고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뭐라고 적었다.

“고마워요. 사실 작가님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거절하긴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만들어지는 작품이 처음일 텐데 제가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된다니 꿈만 같다구요! 게다가 원고료도 그대로 준다면서요? 흐흐, 앗싸! 전 그럼 오피스텔로 갈게요. 팀 정해지면 우리 회식도 한번 하죠.”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가장 신나보였다.

“하하, 그럽시다. 팀원 정해지면 연락드릴게요. 그 때까지 많이 써 놓으시구요.”

이후 파인 엔터에서 신인작가를 모집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이유에 대해 무성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

제 2의 이주희 작가를 키워내기 위함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돌아다녔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작가를 모집하는 게 아니냐며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메인작가들 사이에 능력 있는 보조작가들이 파인 엔터의 레이더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돈 이후에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지금 작가들 사이에서 파인 엔터 이야기가 계속 돈다고 하던데?”

오랜만에 회사에 나타난 은하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에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오늘 ‘지옥도시’를 만든 모든 제작진, 배우들 간의 회식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나왔다가 회사에 들른 것이다.

참고로 제작보고회 일정이 다음 달로 잡혀 이제 개봉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아… 작가들 구하는 거?”

“응. 아예 제작사로 만들어보려고 그래? 일 너무 크게 키우는 거 아니야?”

“당장 회사를 제작사로 키우려는 건 아니야.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섣부르지만, 일단 내가 하려는 건 전문작가팀을 만들어 보려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왜 만드냐고. 그 작가팀 만들어서 돈 되는 거 없잖아? 제작사를 만들면 모를까.”

“내가 꼭 돈 때문에 너를 키웠겠니? 물론 네가 스타가 되기에 가장 걸맞은 작품을 찾았지만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너를 스타로 키우려고 한 건 아니야. 내가 키운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가 된다는 건 나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이기도 했어. 일종의 삶의 보람이자 목표 같은 거야.”

“그러니까 이것도 그런 거다?”

“재밌잖아. 대한민국에 없는 선진 시스템을 가져와서 성공시켜 보는 거. 그리고 만약 이 시스템이 성공한다면 역시 그에 따른 부는 따라올 거야.”

“어떻게?”

“지상파 위주로 흘러갔던 드라마나 예능의 판도가 이제는 케이블로 옮겨왔어. 그건 지상파로 몰렸던 자본이 케이블로 분산됐다는 뜻이기도 해. 만약 진짜 제대로 된 장르물이 케이블에서 크게 성공하게 되면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어주길 방송사도, 광고주도 원할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답은 뭐겠어? 무조건 돈만 많이 주면 드라마가 만들어지나? 최고의 연출자를 골라 쓰면 돼? 아니,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지.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팀은 내가 가지고 있는데?”

“하하, 다른 데서도 똑같이 만들 수 있잖아?”

“너, 내 능력을 뭘로 보고 그래?”

은하는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팔짱을 꼈다.

“아… 그러니까 애초에 싹이 보이는 작가들은 모조리 쓸어오겠다?”

“약간 다르지만 비슷해. 혼자서는 부족하지만 좋은 재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 그런 사람들을 모으는 거지.”

작가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온갖 설정에 복잡한 플롯을 다 짜내고 나서 막상 글은 못 쓰는 사람, 대사는 기가 막히게 쓰는데 구성을 못 잡는 사람, 등등…

그런 사람들을 모아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팀을 만들어 낸다면 정말 대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때 가서 파인 엔터가 자력으로 제작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처럼 작가팀으로 계약해서 작품을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성공만 거둔다면 앞으로 드라마 장르계에 일대 혁신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문제는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내놓은 작품이 좋은 결과를 얻어야 된다는 거네? 잘 할 수 있겠어?”

“내가 누구야? 연예계 미다스의 손 김우현 아니냐?”

“아이구, 우리 오빠 많이 뻔뻔해지셨네?”

그렇게 둘이 마주보며 싱글거리고 있는데 민주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대표님, 준비됐습니다.”

“오케이, 그럼 어떤 분들께서 지원해주셨는지 보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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