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23화 (22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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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새로운 시도(1)

“이건 너무 발랄하네요. 이건 흠… 너무 캔디잖아? 요즘 이런 캔디 컨셉이 먹히겠어요?”

강소연이 파인 엔터로 입사한지 벌써 몇 달이 흐른 만큼 그녀의 작품을 선정해주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도마뱀 미디어’측에서 괜찮게 보는 시놉시스 몇 개를 가지고 와 의논을 하는데 하나같이 다 마뜩찮았다.

“대표님이 너무 고르시는 거 아니에요? 완전 시청률 20% 넘을 것처럼 대박 아니면 아예 손도 안 대시는 것 같아요.”

지여울 피디는 자신이 내민 시놉이 전부 퇴짜를 맞자 입을 삐죽였다.

“20%는 고사하고 10%도 넘을까 싶은데요?”

“정말요?”

“이거 쓴 작가는 전작이 ‘힘내라 주윤발’이잖아요? 그거 봤어요?”

“아… 그 때보다는 더 성숙해졌을 거예요.”

“저 그 드라마 4회까지 보고 더 이상 안 봤습니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 없고 뻔한데다가 유치하기까지 해. 대사는 진부해. 온갖 클리쉐를 덕지덕지 발라서 갈수록 시청률 떨어지다가 결국 마지막회 시청률이 5%도 안 됐죠?”

“전작에서 실패하고 난 다음에 다음 작품에 성공하는 작가도 많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무조건 첫 작에 성공하는 작가만 써야 하게요?”

“꼭 첫 작품부터 성공하는 작가만 쓰라는 게 아니라 이 작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색깔이 없어요. 색깔이 없으니까 장점은 안 보이고 단점만 보이죠. 마치 누가 이렇게 쓰면 시청률 잘 나온다고 말하니까 그것대로 다 해보는 보조작가처럼 쓰잖아요? 저는 이렇게 쓰는 작가가 바로 다음편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잘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하아… 대표님은 가끔 너무 냉정하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제 돈으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 남의 돈 가지고 실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냉정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죠.”

“알겠습니다. 아, 혹시 법정물 어떠세요?”

“법정물요? 변호사가 주인공인가요?”

“네, 저희가 준비하고 있기는 한데…”

“별로입니다.”

단박에 거부하는 우현의 손짓에 지 피디는 다시 입을 삐죽였다.

“들어보기나 하시지…”

“법정물에 연애물을 엎어 쓸 거면 말도 꺼내지 마세요. 우리나라 법정물이 제대로 된 법정물입니까? 법정에서 연애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애하겠지. 주인공 직업만 변호사 갖다 쓰는 수준일 게 뻔하잖아요?”

“사실, 이거 이주희 작가가 저희한테 슬쩍 물어본 거란 말이에요.”

이번에는 우현이 놀랐다.

“이주희 작가가요? 이 작가는 전문가물을 써 본적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본인이 직접 그래요? 법정물을 쓰고 싶다고?”

“네, 그래서 저희한테 기본적인 용어라든지 옆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구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던데요?”

“흐음… 진심인가?”

“아직 차기작으로 확정한 건 아닌가 봐요. 그런데 예전부터 그런 쪽으로 써보고 싶었다고 하시던데요?”

“그 쪽 얘기는 어려운데…”

법정물은, 엄밀히 말하면 작가 혼자서 16부작을 끌어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법정물을 제대로 못 만드는 원인은 바로 작가 혼자서 작업하는 시스템에 있다.

미드 같은 경우는 수십 명의 작가진들이 모여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기에 완성도가 있는 시즌을 만들 수 있지만 한국의 드라마 작가는 오로지 혼자, 또는 많아야 두셋 정도가 작가의 곁에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기에 미드처럼 1편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결국 큰 틀이 되는 사건에 연애 이야기를 집어넣어 최대한 늘리고 늘려야 16부작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법정물은 거의 다 개판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말 작품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분석하고 나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보인 몇몇의 작가도 있지만 아주 극소수일 뿐이다.

“그래도 만약에 이주희 작가님께서 요청만 하시면 저희가 도움은 드릴 수 있어요.”

“아니에요. 어차피 이 작가는 KBC랑 계약한 상태라 그쪽에서 계약한 분량 먼저 털어내야 해요. 준비할 게 있으면 저희가 할 겁니다.”

“아… 아쉽네요. 저희랑 하시면 좋을 텐데…”

“그쪽에서는 자기네 스태프들이랑 같이 하길 원할 테니까요. 외주를 줄 상황이 아닐 겁니다. 일단 알아보고 외주 준다고 하면 당연히 도마뱀 측이랑 하자고 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시놉 괜찮은 거 나오면 다시 찾아올게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지여울 제작 피디가 나가자마다 이주희 작가한테 전화를 걸었다.

“정말 법정물 하고 싶어요?”

“저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막상 이거 말고는 다른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요. 하고 싶기도 하고…”

시간 여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때나 여유가 있는 거지 아무 생각도 없으면 몇 달 여유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어떻게 만들고 싶은데요? 솔직히 우리나라 의학물이나 법정물은 제대로 만들어진 게 몇 개 없다는 거 아시죠?”

“알죠. 의학물은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고, 수사물은 경찰서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법정물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걸 알면 만들기 어렵다는 것도 알겠네요?”

“사실 제가 예전부터 변호사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많이 공부했거든요. 일단 옆에서 도와주실 전문가분만 계시면 저 진짜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울 겁니다. 혼자서는 힘들어요.”

“그래서 전문가 분이 옆에서…”

“아뇨, 전문가는 법적으로 조언을 줄 뿐이죠.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혼자서는 무리라구요.”

“기존 판례를 뒤지면 좋은 스토리를 찾아낼 수 있어요.”

“그것도 드라마에 맞게끔 각색해야 하는데 지금 몇 달 남은 상황에서 혼자 불가능합니다. 다른 소재를 찾아보세요.”

생각보다 단호하게 말해서 그런지 그녀는 많이 실망한 모양이다.

“하아…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미안하다. 하지만 어설프게 하다 망치면 그녀의 커리어만 흠집이 난다. 그럴 바에는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유도하는 것이 백번 낫다.

“대표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민주가 휴식을 방해한다.

“누구요?”

“작가님이라고 하시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약속 없으시면 만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는데 꼭 만나고 싶다면서…”

다큐에 출연하고 난 뒤 그냥 무작정 찾아와 자신을 키워달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는 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는데 오랜만에 또 찾아온 것 같다.

“돌려보내세요. 이렇게 사람 뽑지 않는다고 말하시구요. 알잖아요?”

“그렇긴 한데…”

“왜요?”

“이걸 주시면서 이걸 보고도 관심 없으면 돌아가겠다고 하셔서…”

그녀가 건네주는 걸 받으니 약 100페이지에 달하는 트리트먼트와 대본이었다.

“아이 참… 피곤하네. 일단 알겠다고 하고 기다리라고 하세요.”

상대가 이 정도까지 정성을 보이는데 바쁘면 모를까 당장 할 일도 없으니 천천히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도 이렇게 정성들여 쓴 시나리오와 극본을 보내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때는 바쁜데다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아예 읽어보지도 않았었다.

내용은 북한 특수부대와 국정원 사이의 긴박한 첩보전을 그리고 있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굉장히 전문가스럽고 잘 짜여진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지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자면 조금 어려운 느낌이다.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잘 성장하면 장르계에 고정 팬층을 가지게 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냥 보내기엔 아까운 사람이다.

“민주씨! 일단 올라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대표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온 사람은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머리는 곱슬에 키는 170 초반? 체중은 한눈에 봐도 100키로는 넘어 보이는 비만형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드라마작가를 지망하는 이재호라고 합니다.”

한눈에 봐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걸 알면서 90도로 깍듯하게 인사한다.

“아, 예. 반갑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그가 앉으니 넓던 쇼파가 상당히 좁아 보였다. 그는 자신이 뚱뚱하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소파의 끝에 걸터앉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안 되는 건데, 제가 심적으로나 여러모로 여유가 없다보니 이렇게 결례를 끼치게 됐습니다.”

“괜찮아요. 보여주신 게 별로였으면 정말 결례일 텐데 내용이 좋아서 결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 다행입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순간 흐르는 정적. 그는 우현이 자신과 단번에 계약 이야기를 꺼내 주길 원하는 것 같았지만 우현이 입을 열지 않자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당황한 것 같았다.

“저…”

“내용은 좋은데, 드라마가 되면 호불호가 갈리겠어요.”

“그, 그런가요?”

“중간 중간에 시청자들의 피로감을 덜어줄 게 필요한데 그게 없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무거워서… 물론 그렇게 무겁기만을 바라는 시청자들도 있어요. 그게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재호 씨가 만들게 될 드라마에는 이름 모를 투자자들의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최소한 투자 대비 그 이상의 수익은 내줘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드라마를 만들 이유가 없겠죠?”

“물론입니다. 저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주시면 충분히 고쳐볼 생각도 있습니다. 아니, 고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자리가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하는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굳은 결심을 어떻게 해서든 보여주려 했다.

“흐음… 혹시 이런 장르가 주력이신가요?”

“네? 아… 말씀하시는 건 이렇게 첩보전 같은 것만 쓸 수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건가요?”

“맞아요. 이런 쪽 장르만 쓸 수 있는 건지…”

그는 우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군대에 온 것처럼 우렁차게 말했다.

“아닙니다! 다른 쪽도 잘 쓸 수 있습니다. 말씀만 해주시면 정치 쪽이나 사회부조리 같은 문제를 다룬 드라마도 자신 있습니다!”

“혹시 보조작가 경력은 있으세요?”

“네, 고해성 작가님 밑에서 3년간 보조 작가 생활을 했었고, 정윤희 작가님 밑에서는 2년 정도 생활 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안미현 작가님 밑에서 3년 정도 생활 했었구요.”

남자인데 중견 여자 작가 밑에서 2, 3년을 굴렀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말이 보조작가지 메인작가의 음식, 청소까지 도맡아서 하는 게 보조작가인데 아직까지 데뷔도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정도면 데뷔도 할 법한데 왜 아직까지 못 하셨어요?”

“그게… 아시잖습니까? 보조작가에서 메인작가로 데뷔하는 게 인맥과 운이 동시에 따라 줘야 하기 때문에…”

“그럼 혹시 공동작가 다시 한 번 해 볼 생각 없어요?”

우현의 말이 끝나자 그의 안색이 급격히 흐려진다. 말이 공동작가지 실상 보조작가나 다름없는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나보다.

“공동작가라는 게…”

“보조작가 말고 공동작가요. 제가 생각하는 건 팀입니다.”

“팀이요?”

“네, 전문작가 팀을 생각하고 있어요. 미드처럼 말이죠.”

언젠가는 만들어보려고 생각했었는데 이왕 이렇게 됐으니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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