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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공짜를 좋아하면?(5)
[우희연-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파인 엔터 김우현 대표가 장담한 영화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라며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기가 차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예상해보자면 우희연의 생각으로 저 말을 했다기보다는 제작사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를 봐주러 올 관객에게 한 말이라기보다는 투자자에게 한 말처럼 보이니까. 뭐, 이러나저러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는 했다.
“이거 진짜 오빠가 한 말이야?”
요즘 후반기 작업 때문에 스케줄이 널널한 별이와 은하는 회사에 종종 얼굴이 비췄다. 때문에 별이도 이제는 은하와 우현간의 관계를 조금 눈치 챘는지 볼 때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곤 한다.
“장담은 무슨… 너희는 그냥 모른 척해.”
“그리고 얼마 전에는 캐스팅 기사까지 났었잖아? 날 두고 이야기가 있기는 했던 거 아니야?”
“당연히 널 두고 이야기는 있었지. 그런데 네가 할 만한 영화가 아니라서 내가 잘랐어. 전쟁영화인데다가 비중도 애매하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좋은 영화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럼 저 이야기는 뭐야? 없는 말을 할 애가 아닌데?”
같은 회사였기 때문인지 은하도 우희연을 조금 아는 것 같았다.
“저런 뉘앙스의 말을 하기는 했어.”
“왜? 석호가 이 영화에 들어갔기 때문에?”
은하와 별이 영화 촬영을 마무리 지으면서 얼굴도 익힐 겸 석호와 회식을 몇 번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석호는 술 대신 음료수를 마셨고. 은하는 석호를 꽤나 예뻐해주고 있었다.
“아니, 석호야 이 영화가 잘 되면 좋겠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어. 실은…”
강소연에게 했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하자 은하의 얼굴에 불만이 어렸다.
“지금 공식적으로 멍청한 놈이 되겠다는 말이야?”
“멍청한 놈이라기보다는 조금 아쉬운 놈?”
“흥! 그게 뭐야!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아니, 좋아.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다고 쳐.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전국적인 망신을 당할 필요는 없잖아.”
“지금껏 어떤 기획사도 작품을 낼 때마다,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성공시킨 곳은 없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주목받기 시작하면 내가 손 댄 작품은 모두 성공했다는 걸 알게 된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아니면 능력이 엄청나게 좋거나.”
“맞아, 그렇게 넘어갈 수 있지. 그런데 앞으로는? 너도 작품을 할 거고, 유니도 곧 정규앨범을 준비해야 해. 별이도 마찬가지지. 뿐만이야? 1년 뒤는? 5년 뒤는? 그렇게 모든 작품이 성공한다는 게 말이 되겠어?”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실패해도 손해는 없어. 석호야 흥행 보다는 본인의 내공을 쌓는데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역시 흥행에 실패한다고 해도 문제도 아닌 거고. 오히려 같이 작품 하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대단하기 때문에 많은 걸 배울 거야.”
“하아… 그래서, 오빠 하나 바보 되면 모두가 행복한 일이다?”
“남들이 그렇게 볼 뿐이지. 그리고 몇몇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이 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흥! 잘나셨어, 아주… 그리고 소연 언니 들어왔으니 이제 또 새로운 작품 찾겠네?”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거야. 좋은 작품 들어오면 생각해보려고. 드라마 끝난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언니는 생각이 다를 걸? 이번에 드라마 잘 됐으니 힘들더라도 빨리 작품하고 싶을 거야.”
“내가 힘들어서 못 하겠다. 너나, 별이나, 지나나, 하도 어렵게 작품을 하다 보니까 나도 이제는 작품 찾는 게 너무 힘들어.”
농담이 아니라 이번에는 굳이 없는 작품 찾아낸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닐 생각은 없다.
강소연이라서가 아니라 이제는 회사도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섰기에 굳이 발품을 팔거나 전화를 돌리지 않아도 괜찮은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한창 나이인데 벌써 그렇게 체력이 떨어져서 어떡해? 보약이라도 지어 줘?”
“좀 지어주고 그런 말을 하세요. 아, 별이 너는 이사 아직 안 했지? 이사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엇! 선물 해주시는 거예요?”
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더니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든다.
“뭐해?”
“검색하는 중이요. 얼마까지 생각하시는데요?”
“내가 너 이사하는데 고작 전자레인지 정도 생각하겠니? 필요한 게 뭔데?”
“으음… 그럼 저 이거요.”
별이는 핸드폰을 우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뭔가 해서 보니 LC전자의 프리미엄 냉장고. 가격이 무려 5백만 원을 훌쩍 넘고 있었다.
“냉장고?”
“네, 저 이거 가지는 게 소원이에요. 저희 집 냉장고 10년도 넘었거든요.”
“그래, 알았다. 이사 날짜 말해주면 내가 그 날에 맞춰서 보내줄게. 아, 그리고 혹시 요즘도 유니 계속 만나니?”
“그럼요. 요즘 정규앨범 준비한다고 바쁜 척하기는 하는데 어제도 우리 집에서 같이 한잔 했어요.”
배시시 웃는 걸 보니 한잔이 아닌 모양이지만 별다른 사고 안치고 집에서만 마시니 기특하다.
“그래? 혹시 유니 집 많이 어렵니?”
“왜요?”
“많이 힘든 것 같아서. 앨범준비는 그렇다고 치지만 계속 행사를 뛰고 싶다고 하니까 나도 조금 난감하네. 이왕이면 작은 행사는 안 보내려고 하거든.”
“하긴… 유니 정도면 이제 큰 행사만 골라 가는 게 더 좋을 수는 있겠네요.”
“걔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종종 세동이 통해서 말이 올라오네.”
“흐음… 한번 알아볼게요.”
“그래, 기분 나쁘지 않게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알아 봐.”
조심스럽게 별이에게 부탁하는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은하가 끼어들었다.
“어떻게 도와주려고? 정산 당겨주게?”
“필요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냥 알아서 하라고 두다가는 사고난다.”
“그렇긴 해. 돈의 압박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하지. 그럼 내가 빌려줘?”
“아이고, 강남 알부자님께서는 자중하시죠. 돈을 빌려줘도 제 직원이니 사장인 제가 빌려주겠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순간 울컥했지만 은하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함을 알기에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하하, 알겠어요. 일단 제가 유니 만나서 물어볼게요.”
그녀들과 점심을 함께 한 후 혼자 사무실로 들어와 업무를 보는데 민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영진 영화사 대표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요, 바꿔드릴까요?”
그 영감과는 이상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석호를 꽂아줬기에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
“그래요. 연결해줘요.”
삐 소리가 울리고 예의 그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김 대표. 이거 나는 완전히 오해했어요.”
“네? 아… 우희연 씨요?”
“나는, 거 뭐시냐… 일부러 캐스팅을 피하는 거 아닌 가 오해했는데, 우희연이 고 가시나 옆구리를 살살 긁어가지고 딱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었으니 내가 참 김 대표 얼굴을 볼 수가 없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얼굴 안 보고 살았으면 싶지만 차마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없어 장단을 맞춰주었다.
“이거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아니었어도 작품이 좋으니까 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분칠한 것들 마음이라는 게 조변석개 같아서 어찌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하니, 못하니 하면서 몸값 올려보려고 수작질 하는 거 보면 내가 정이 딱 떨어져요. 그런데 이렇게 주연 여배우를 살살 몰고 와주시니 내가 참 고마워서 어쩌나…”
“아이고 너무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으응! 그렇지 않지요. 게다가 우리 대신에 이렇게 홍보까지 해주시니 내 언제 식사 한번 대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희연이 기자와 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아마 오늘 전화한 것도 우희연의 캐스팅보다는 투자유치가 원활히 진행되는 것에 기뻐서 전화했을지도 모른다.
“네, 그럼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연락 주시죠.”
“그럼요. 내 꼭~ 날 한번 잡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 ‘꼭’ 소리를 어찌나 길게 하는지 정말 근시일 내에 음식점 잡아놓고 연락이 올까봐 걱정된다.
며칠 후 영진 영화사의 영감이 왜 저렇게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삼전투신의 윤 팀장이 전하길, 우희연의 기사가 나간 이후로 2백억 투자를 순식간에 완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래서 음식점도 방송 한번 타면 사람이 몰리는가 보다. 다큐 한번 나왔다고 진짜 점쟁이 마냥 흥행을 점쳐놓고 달려드는 걸 보면 말이다.
“오셨어요?”
오랜만에 이주희 작가가 회사를 방문했다. 그녀는 예전에 지상파 방송국을 나왔을 때와는 아주 달라졌다. 수입의 수준이 백만 단위에서 천만 단위로 바뀌니 입고 다니는 옷이나 걸치는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표정에서도 여유가 흘렀다.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간다고 좀 차려입었는데, 괜찮나요?”
“작가님은 날씬하시고 피부도 하얘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립니다.”
“아하하! 고마워요. 그럼 출발할까요?”
오늘은 그녀와 같이 KBC 드라마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현 쪽에서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양세종 국장이 꼭 와서 다음 작품 문제로 의논(?)을 해보자고 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 이 작가를 불러낸 것이다.
1시간 정도 운전해 방송국에 도착하니 양 국장이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대표는 아주 신수가 훤해졌네. 작가님은 더 예뻐지셨어요? 하하하!”
“불안하게 왜 그래요? 뭐, 부탁할 거 있습니까?”
“사람이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너무 그러지 말아라. 크흠… 일단 이거 한번 보시겠어요?”
양 국장은 이 작가와 우현에게 시놉 하나를 건넸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의 눈빛을 보내는 이 작가를 대신해 물었다.
“이건 뭡니까?”
“이번에 우리가 판권 사들인 웹툰이야.”
“웹툰이요?”
“요즘 웹툰 기반으로 드라마나 영화 만드는 게 대세잖아. 그래서 얼마 전에 판권 하나를 사놨는데 이걸 제대로 살릴만한 작가를 생각해보니까, 딱! 이주희 작가가 생각나잖아. 어차피 아직 차기작 시놉도 안 나왔죠?”
“네, 아직…”
이 작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날짜가 꽤 남았기에 여유를 가졌을 테니 이렇게 빨리 나왔을 리 없다.
“그럼 이거 한번 작업해 봅시다. 지금 이거 탐내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시놉의 제목은 ‘왕비의 비밀정원’, 이 작가도 이 웹툰을 아는지 보자마자 눈을 빛낸다.
“어? 이거 판타지인데… 이걸 드라마로 살리겠다구요?”
“이게 지금 웹툰 중에 톱이랍니다. 요새 젊은 애들 중에 이거 모르는 사람 없다고 해요.”
“그렇긴 한데… 저랑 맞을지 모르겠네요. 아… 근데 저 이거 진짜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만약 제가 이걸 하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해요.”
말로는 겸손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눈빛을 보니 의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저는 웹툰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이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웹툰 원작이라면 시놉이라고 해봤자 결국 원작의 줄거리 써놓고 등장인물 몇 명에 관해 나열한 정도일 거다. 그래서 일단 읽기 전에 이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일단 스토리가 진짜 짜임새 있어요, 그림체도 예쁘고. 연재가 느린 게 흠이긴 하지만 독자 층이 탄탄해서 이거 드라마화 되면 상당한 이슈가 될 거예요.”
“흐음…”
흥분하는 이 작가와는 달리 우현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