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16화 (21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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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붙이면 젖혀라(5)

윤해연 작가의 ‘미씽유’는 사전제작이라 제작발표회는 방영 전으로 잡혔다. 원래는 중간에 4회 짜리 짧은 단편 드라마가 편성되어 있었는데 갑작스레 그 드라마의 주연 배우가 펑크를 내면서 스케줄이 타이트하게 잡혔다.

때문에 고사를 비롯한 자질구레한 절차는 건너뛰고 바로 촬영에 돌입했는데 8회까지 대본을 만들어 놨던 윤 작가는 이게 무슨 사전제작이냐며 불평을 쏟아냈다고 한다.

“고생했다. 현장 분위기는 괜찮았고?”

오랜만에 얼굴을 대면한 별이는 전보다 더 여성스러워 진 것 같았다. 표정에서도 여유가 생겼고 사소한 몸짓에서도 예전 갓 여고생을 벗어난 것 같은 발랄함 대신에 톱여배우의 기품이 아주 조금씩 묻어 나왔다.

“네, 상대배우였던 조상우 선배님이 특히 도움 많이 주셨어요. 연기에 대해서도 많이 조언해주셨구요. 평소에는 되게 차분하고 점잖으신 분으로만 알았는데 장난기도 많으시고 현장 분위기를 많이 끌어올려 주시더라구요. 아, 최달수 선배님도 도움 많이 주셨어요. 애드립도 너무 좋으시고, 하하.”

“그래, 수고했다. 내가 많이 못 가서 미안해.”

“아니에요. 배우들 중에 소속사 대표님이 오신 횟수로만 따지만 대표님께서 가장 많이 오셨는걸요. 밥차도 많이 보내주셔서 그런지 스태프들도 저를 많이 배려해줬어요.”

“후반기 작업은 언제까지 한다고 해?”

“최소 석 달은 잡아야 한대요. CG가 들어가야 할 장면이 꽤 되니까요. 그래도 요즘 헐리우드 대작들만큼은 아니니까 석 달 잡은 거라고 하더라구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정도면 CG작업만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린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막대한 제작비를 잡아먹는 작업이다.

“배급사도 결정됐고, 작업만 순조롭게 끝나면 넉 달 뒤쯤에는 제작보고회 일정 잡히겠네. 알았어. 좀 쉬다가 이따 은하랑 같이 회식이나 하자.”

“네, 오랜만에 회식이네요. 많이 먹어야지, 히히.”

“그래라. 당분간 스케줄 없으니 2, 3키로 찌는 정도는 괜찮을 거야.”

여배우들은 아이돌에 비해 약간이나마 체중에 관한 스트레스는 덜 받는다. 아이돌들처럼 헐벗고 카메라에 노출되는 일이 덜하기 때문이다.

별이를 내보내고 나서 곧바로 ‘타이거 스튜디오’의 최윤석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연락을 주셨네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정말 바쁩니다.”

“하하, 좋은 일로 바쁜 거니 부럽습니다. 어쨌든 이번 ‘28시간’ 촬영은 잘 마무리 됐고 후반 작업 들어가게 됐는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생각보다 투자금이 빨리 소모됐습니다. 제작비 상세 내역을 따로 재무팀 쪽으로 메일 보내겠습니다.”

영화를 찍다보면 초기에 설정한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건 흔한 일이다.

이는 대부분 감독의 욕심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데 더 좋은 장면을 위해 한 컷만, 한 컷만을 반복하다가 하루, 이틀 제작 일정이 늘어나게 되는데 촬영이 하루 연장되는 비용으로 최소 천만 단위 돈이 깨진다.

다른 이유로는 소품 제작에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거나 사고, 또는 실수로 소품의 망실, 현장 뒤처리 비용 발생으로 생긴다.

“네, 얼마나 부족한 건가요?”

“후반기 작업하고 나면 딱 떨어질 만큼이라고 하네요. 최소 20억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말이 20억이지 마케팅 비용으로 20억은 상당한 금액이다. 물론 대형 포털사이트 하루 광고료만 1억~1억5천을 호가하기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경우 마케팅으로만 4, 50억을 쏟아 붙는 경우도 있다.

“알겠습니다. 일단 불필요한 광고는 최대한 줄여봅시다. 효과도 별로 없는 버스 광고 같은 건 아예 빼버리는 식으로 하죠.”

버스 광고 같은 경우는 1대당 80~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모된다. 따라서 100~120대 정도에 광고를 싣게 되면 최소 8천만 원에서 1억을 훌쩍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문제는 버스 광고로 과연 영화를 보지 않을 사람들이 영화를 볼 것인가?

“알겠습니다. 불필요한 옥외 광고나 배너 광고를 줄이고 온라인과 TV, 케이블TV 광고에 집중하도록 하죠.”

“그렇게 해요. 그게 요즘 추세에도 맞으니까요. 일단 투자자는 제가 구해보죠.”

은하가 출연하는 ‘지옥도시’ 같은 경우야 제작사인 ‘도마뱀 미디어’에서 전부 처리할 문제이기에 촬영이 끝나면 신경을 끄고 살아도 되지만 별이가 출연한 ‘28시간’은 제작을 파인 엔터에서 하기에 촬영이 끝났다고 해도 일이 끝난 게 아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여유 있게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시간여유가 있다고는 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그 만큼 큰돈을 아무 때나 꺼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삼전투신운용 양재호 팀장에게 혹시 만날 수 있는지 연락했다. 당장 시간을 내라는 것이어서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만나주겠다는 말에 옷가지를 챙겨서 대표실을 나섰다.

“어디 가세요?”

별이와 그녀 옆에 앉아 있던 상준이 벌떡 일어났다.

“별아, 나 잠깐 나갈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여기 있다가 나 안 오면 회식 장소로 곧장 가. 상준이 너는 은하 매니저인 혜숙 씨한테 연락해서 약속 장소랑 시간 다시 확인 시켜주고.”

“알겠습니다.”

강남역에 위치한 삼전그룹 빌딩에 도착해 1층 로비에서 신원을 확인해주니 방문증을 주었다. 그것을 가지고 삼전투신운용이 위치한 층으로 올라가니 젊은 여 사원이 회의실로 인도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회의실에는 양재호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연히 회의실에서 얼마동안 기다려야 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반갑습니다. 종종 연락이라도 드렸어야 하는 건데…”

“연락은요. 투자 받아놓고 따로 연락하면 오히려 모양이 이상해지지 않겠습니까? 서로 비즈니스를 하는 건데요. 앉으시죠.”

자리에 앉자 젊은 여사원이 홍차 한잔을 가져다주었다. 감사를 표하고 잠시 양 팀장과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본론으로 접어들었다.

“이번에 방문한 건 ‘28시간’에 들어간 투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요. 추가 투자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 대표님께서 방문할만한 이유가 그거 말고 있겠습니까?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얼마가 더 필요한 겁니까?”

그가 먼저 기다리는 것을 보고 짐작했지만 양 팀장은 이미 어느 정도는 추가 투자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0억이 필요합니다.”

“20억이라… 큰돈이네요.”

“삼전투신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우리 회사라고 다른 회사보다 돈이 남아나는 건 아닙니다. 그나저나 한 달 전쯤에 방영한 다큐 잘 봤습니다. 대단하시던데요?”

“피디가 과장 좀 보탠 겁니다.”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내보낸 건 아닐 거 아닙니까? 게다가 이번에 파이브 걸즈라는 걸그룹도 상당히 잘 나가던데요? 우리 아들도 파이브 걸즈 팬이랍니다.”

“아, 그래요? 원하시면 파이브 걸즈가 나오는 행사에 자리 하나 빼 놓겠습니다. 언제든지 연락만 주세요.”

“아하하! 이거 오랜만에 아빠 노릇 하겠네요.”

20억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별다른 제한사항을 언급하지 않고 딴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확실히 장승효 피디의 말대로 방송의 효과가 있는 거다.

“그거 다행입니다.”

“알겠습니다. 20억 집행에 관한 건 긍정적으로 논의하겠습니다. 일단 세부 사항은 직원들과 타이거 측이 조율하도록 하죠.”

됐다. 생각해보니 힘들 것 같다는 개소리를 시전할 거라면 이 자리까지 오게 하지도 않았을 거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혹시 투자 받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파인 엔터 측에서 말이에요.”

역시나 그들의 목적은 비상장 상태일 때 투자를 원하는 것이었다. 나쁘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투자 수익 측면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아직은 생각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아직 회사를 세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걸 말이에요.”

“당장 상장을 바라보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파인 엔터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그것이 유은하 씨나 유니처럼 톱스타를 보유하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바로 파인 엔터의 대표가 김우현 씨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경영권에는 관심 없습니다. 김우현 대표가 없는 파인 엔터는 우리로서는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다른 대형기획사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 역시나 같은 생각일 거다. 3대 기획사가 지금도 잘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 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에는 그들의 수장을 믿기 때문일 테니까.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평생 상장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제가 지분 100%를 가질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삼전투신 측과 협상하도록 하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딱 그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제가 바라던 답을 주시네요. 꼭 그러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빈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간의 신뢰가 지켜졌을 경우에는 굳이 그 신뢰를 깰 이유가 없죠.”

앞으로도 원활한 투자를 바란다는 의미이고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김 대표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것 참 고맙기는 한데 또 부담되는 말이네요.”

“원래 투자 받으면서 고맙기만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남의 돈으로 편하게 비즈니스하면 안 되잖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쭤볼 게 있었는데 말이죠.”

“네? 어떤…?”

“사실 저희가 이번에 영화 하나를 투자하게 됐습니다. 제목은 ‘푸른 별’인데, 아십니까?”

어감이 묘하다. 이미 투자가 결정됐다는 말인데…

“그거 전쟁영화 아닙니까? 6.25전쟁 때 6사단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는데요.”

“잘 아시는군요. 실제 대단한 업적을 세웠던 6사단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건데, 어떻게 보십니까?”

“어떻게 보냐구요?”

“네, 저는 김 대표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이미 투자가 결정됐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투자는 결정됐죠. 하지만 금액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제가 별로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마 투자금액을 하향 조정하는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치겠죠.”

그럼에도 투자 취소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꼭 투자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하하, 맞습니다. 투자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금액은 조정할 수 있죠.”

무슨 말인지 그제야 알았다. 이건 저들의 윗선에서 투자가 결정된 사안이니 무조건 투자를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얼마만큼이나 흥행이 될지에 따라 투자 금액은 많게도, 적게도 책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흐음… 부담스럽네요. 이 작품의 흥행을 점쳐 달라는 말이지 않습니까?”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참고만 할 예정이니까요.”

표정을 보면 단순 참고만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그냥 모르쇠로 넘어가기엔 애매한 상황이다.

“좋습니다. 일단 복채부터 먼저 받고 시작하죠.”

“네?”

“설마 점을 보려 하면서 복채도 준비하지 않은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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