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14화 (21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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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붙이면 젖혀라(3)

“이야… 윤 피디님 아주 사람이 달라지셨네?”

“달라지긴… 어차피 나도 지금 쉴 수가 없어서 그래. 알잖아? 애 엄마한테 가장 먹히는 게 돈이라는 거.”

“아이들 키우려면 돈 없으면 안 되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러니 별 수 있나, 일자리를 구해봐야지. 어때? 너한테도 좋은 조건 아니냐? 솔직히 제작진들이나 방송사 애들하고 입씨름 하는 거 너도 싫잖아?”

“형님이 다 커버 쳐 주시겠다?”

나쁠 거 없다. 윤평식 피디 정도면 로코 잘 뽑아내기로 유명한데다 얼마 전에 이주희 작가와 작업하면서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상당히 오랜 경력의 감독이기에 어지간한 감독보다는 훨씬 말빨이 잘 먹힐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네가 와서 엎드려 절하면서 데리고 가야 한다, 알지?”

“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제작진들한테 말해놓을게요. 아직 연출자 선정이 완료되지 않았으면 형님으로 밀어보겠습니다. 대신, 약속하신 거 확실하게 해결하셔야 합니다.”

“너, 내가 언제 흰소리 하는 거 본 적 있냐?”

큰소리 떵떵 치지 않아도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가 사무실을 떠나자 우현도 옷을 챙겨 ‘도마뱀 미디어’로 향했다. 전화를 걸어서 요청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발하며 지 피디가 회사에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인지 도착했을 때는 그녀가 회의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었는데 어쩐 일로 회사로 방문하셨어요?”

“전화 주시려고 했다구요? 무슨 일인데요?”

설마 주연 여배우에 관련된 일 때문인가? 괜스레 어깨에 긴장이 바짝 들어갔다.

“아무래도 제작 일정이 조금 늦어질 것 같아서요.”

“왜요?”

“방송국 측에서 조금 강하게 나오거든요. 일단 저희 입장에서야 윤해연 작가님 믿고 배짱을 튕기고 있기는 한데 저쪽에서도 회당 6억 투자를 가지고 우리를 흔들고 있어서…”

“아…”

진짜 지 피디 말처럼 배짱을 튕겨주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이렇게 썰을 풀어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흐음… 혹시 연출자는 구했습니까?”

“지금 선정 중에 있어요. ‘나에게로 오라’의 송영선 피디랑 ‘술이 필요해’의 장재인 피디가 물망에 올라 있긴 하구요. 혹시, 이 중에 마음에 드는 연출자가 있나요?”

송영선 피디와 장재인 피디 둘 다 나쁘지 않은 친구들이다. 둘 다 이 바닥에서 흔치 않은 여성 연출자이면서 나쁘지 않은 스코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둘 모두 윤평식 피디에 비하면 이름값이나 흥행 감각적인 면에서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혹시 새로운 사람 추천 가능한가요?”

“추천이요? 으음… FA인가요?”

제작사에 소속된 이를 추천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FA여야 하나요?”

“일단 SBC 소속 연출자라면 일단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쪽 연출자들은 전부…”

말끝을 흐렸지만 굳이 뒷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다.

“그건 동감입니다.”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고 나서 수많은 드라마 연출자들과 예능 연출자, 작가들이 종편과 케이블로 회사를 옮겼다. 때문에 지금 지상파의 부진은 윗대가리들의 무능과 더불어 재능 있는 사람들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누구를 추천하시려구요?”

“얼마 전에 TVM에서 했던 ‘내 남편의 여자’ 윤평식 피디요.”

“윤평식 피디님을요? 진짜예요? 그 분이 하시겠다고 하던가요?”

“얼마 전까지 작품 했는데 못 할 건 또 뭔가요?”

“아니… 전에 ‘내 남편의 여자’ 연출할 때 저희가 여쭤봤었거든요. 저희랑 같이 일하실 생각 있는지… 그런데 전혀 생각 없다고 하셨는데…”

“그 때랑은 사정이 달라졌을 수 있죠. 어때요? 윤평식 피디.”

“괜찮죠. 윤해연 작가와 윤평식 피디님의 조합이면 완전 땡큐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걸 보니 이 작품을 하면서 자기네 소속 연출가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좋네요. 그럼 그렇게 알고 윤 피디님한테 연락 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윤 피디님 앞으로도 계속 작품 활동할 의향이 있으시다고 하시던가요? 아니면 이번 작품만 하실 요량인지…”

“전에도 안 한다고 했다면서요. 그러다가 마음을 바꿨으니 민망해서라도 앞으로 연출 활동 계속할 겁니다.”

그 인간 성격에 두 번 말을 번복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계속 일을 하려고 할 거다.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 그것 때문에 오신 건가요?”

“네, 윤평식 피디 취직 좀 시켜주려구요. 그리고… 아마 윤 피디가 잘 처리할 겁니다.”

“네?”

“유지나 캐스팅 건이요.”

“아… 이야기가 되신 거군요. 그러면 저희도 편해지겠어요.”

아닌 말로 가운데 끼어서 골치 아팠을 거다. 방송사가 절대 갑이니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윤해연 작가를 데리고 있는 파인 엔터에 반기를 들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 피디님이 고생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도 꼭 관철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서로 도울 부분은 도와가면서 쉽게 쉽게 갑시다.”

“그럼요. 저희가 최대한 도와드려야죠.”

그녀의 말처럼 다음날이 되자마자 윤평식 피디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제 저녁에 드라마 연출에 관한 계약을 완료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점심도 되기 전에 포털에 기사가 떴다.

[시청률의 마법사 윤해연 작가의 차기작 시동]

[윤해연 작가, SBC와 사전제작 합의]

[톱스타 유지나 윤해연 작가 차기작 주연으로 발탁]

아직 계약서도 쓰지 않았는데 단독 기사부터 나갔다. 당연히 회사로 기자들의 문의가 빗발처럼 날아들었다.

도마뱀 측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자에게 소스를 주고 일부러 뿌린 것인데 이건 다른 누구보다 방송사 측에 일부러 보라고 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지나와 매니저인 진명을 대동해 ‘도마뱀 미디어’를 다시 찾았다.

“오서 오세요. 준비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회의실 탁자에는 드마라 출연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SBC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하핫! 아침부터 장난 아니었죠. ‘이럴 수가 있느냐’, ‘편성 다시 검토하겠다’, 난리도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안 오는 거 있죠? 알고 보니 윤평식 피디님이랑 드라마국장이랑 같이 점심을 먹었다네요. 우리한테는 미리 이야기도 안 해놓고선… 나중에 밥값 청구한대요. 20만원이나 나왔다고.”

지 피디는 밥값으로 20만원이나 청구 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당연히 윤 피디가 일처리를 잘 해놨나보다.

“윤 피디가 SBC 드라마국장하고 친해요. 지금 SBC 드라마국장이 윤 피디님 조감독이었을 때 연출 맡고 있었으니까.”

“아, 맞다! 윤 감독님 SBC출신이었지… 윤 피디님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걱정 말라고 큰소리 치셨던 이유가 있었군요.”

큰 소리는 여기서도 쳤었나보다.

“제작사는 물론이고 작가랑 피디랑 둘 다 유지나를 낙점했으니 투자자 쪽에서도 더는 태클 걸기 어려웠겠죠. 그나저나 저들이 아무 말 없다고 해도 신경 쓰이겠어요?”

“당연히 신경 쓰이죠. 어쨌거나 저들 입장에서는 물 먹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원래 이 바닥은 시청률이 깡패인 거 아시잖아요? 시청률만 잘 나오면 이번에 물 먹은 거 싹 잊어버리고 또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윤해연 작가님 신작만 목 빠지게 기다릴 게 뻔한데요, 뭐.”

“하하하! 맞습니다. 그게 정답이죠.”

지나는 본인 입장에서 조금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이야기일진데도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아는 것이다. 어차피 승자는 자신이고 다른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흘러갈 것임을.

지나가 출연계약서를 찬찬히 읽어보며 서명을 하는 와중에 지 피디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요즘 파이브 걸즈 장난 아니던데요? 우리 조카도 난리 났던데? 하여튼 대단하네요. 하시는 일마다 잘 되시구.”

“운이 좋았습니다.”

“운만으로 되던가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지 피디의 눈길을 슬쩍 피했다. 안 그래도 당장 내일부터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부쩍 신경이 쓰이던 참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운 좋은 놈은 못 이기는 거 아닙니까? 제가 서른 넘어서부터는 뭘 해도 되는 팔자였나봅니다.”

“어머, 지나 씨는 좋겠네요. 이렇게 운 좋은 대표님과 같이 일하시니 이번 작품은 무조건 대박이겠어요.”

“하하, 그럼요. 이번에는 꼭 잘 됐으면 좋겠어요.”

지나의 다짐이 어째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아마 마음속에서는 이번만큼은 대박을 쳐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을 수도 있다.

계약서를 다 작성하고 결과를 방송사에 통보했음에도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그 날, 지여울 피디, 지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전의를 다지고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밤. 드디어 우현이 첫 공중파 데뷔를 하게 됐다.

[미다스의 손, 첫 번째. 엔터테인먼트계의 신성 김우현 대표]

긴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될 때까지만 해도 그 여파가 이토록 강력하게 휘몰아칠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화면에 비친 얼굴이 너무 못 생기게 나와서 불만일 뿐이었는데…

“죄송합니다. 저희가 현재 신인 배우 모집을 하고 있지 않아서요.”

“아이돌 연습생은 뽑지 않습니다. 현재 오디션을 볼 예정도 없구요.”

“영화 제작은 저희가 특별히 이번 한번만 진행하는 겁니다. 네. 현재 ‘28시간’이후로는 다른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 없습니다.”

홍보팀은 물론이고 우현의 전화도 단 한시도 쉴 틈 없이 불이 붙고 있었다.

“하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대표님께 분명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했죠?”

장승효 피디는 전화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며 큰소리를 쳤다.

“난리가 나긴 했는데 이게 좋은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네요.”

“좋을 겁니다. 지금 이 바닥을 전전하면서 어떻게든 TV에 얼굴 한번 비추려고 안달하는 지망생들이 한둘입니까? 게다가 대박 작품을 쫓는 투자자들은 또 어떻구요?”

“그 바닥을 전전하는 지망생들 중에 보석이 얼마나 있겠으며 그 투자자들은 얼마나 욕심 많고 이기적인데요.”

“대표적인 보석이 파이브 걸즈 아닙니까? 지금 우리 회사 예능국도 파이브 걸즈 섭외한다고 난리예요. 물론 데뷔했다고 톱으로 빵 뜬 건 아니지만 확실히 요즘 화제이긴 하니까요. 그리고 투자자들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죠.”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전화를 끊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소파에 몸을 누이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이야… 이게 누구셔? 연예계의 미다스의 손 아니셔?”

은하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눈을 한 채 싱글거리며 들어섰다.

“너는 노크 좀 해라.”

“아, 예. 미다스의 손께서 하라면 해야겠죠.”

다소곳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는 걸 보니 앞으로 한동안 이것으로 놀림 당할 게 분명하다.

“그것 때문에 온 거야? 너 촬영 안 하냐?”

“히히, 그깟 촬영이 문제겠어요? 우리 대표님께서 미다스의 손이 되셨는데?”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하니 촬영을 펑크내고 온 건 아닐 거다.

“시끄럽고, 뭐야? 왜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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