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13화 (21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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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붙이면 젖혀라(2)

“제의요? 제가 전에 여배우에 관련돼서는 저희 쪽에 일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당연하죠. 그렇기 때문에 제의라고 말씀 드린 거예요. 대표님이 원하시는 대로 여배우 확정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렇게 말하니 더 무섭다. 도대체 뭘 들이밀려고 저렇게 세게 나올까?

“그래요. 들어봅시다.”

“사실 저희는 김 대표님의 안목을 믿기 때문에 여배우가 누가 될런지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알고 계시죠?”

“네.”

“그런데 방송사는 다른가 봐요. 일단 파인 엔터에 남는 배우가 하나밖에 없으니 당연히 유지나 씨가 여주인공 물망에 올랐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요?”

“아시죠? 이번에 김은선 작가의 ‘사랑과 영혼’이 남자배우가 교체되면서 방영시기가 크게 밀린 거.”

이게 이런 식으로 여파가 밀려올 줄은 몰랐다.

“아무리 뒤로 밀렸다고 해도 겹치는 시기가 아닐 텐데요? 게다가 사전제작이니 아무리 저쪽이 늦는다고 해도 종영하고 나서야 우리 드라마가 방영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그게 문제예요. 방송사에서는 ‘사랑과 영혼’에 이어서 다음 작품까지 기세를 이어가는 걸 차단하고 싶대요. 그래서 ‘사랑과 영혼’의 한여름에 버금가는 여배우를 원하고 있거든요.”

“설마 유은하를 달라는 이야기는 아니죠?”

“그런 제의가 아니에요. 유은하 씨는 지금 영화 촬영 중이잖아요.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죠.”

“그럼…?”

“이수진을 생각하고 있대요.”

30대 초반의 이수진은 20대 초반 때 청순하고 아름다운 외모로 단숨에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여배우다.

강소연과 비슷한 점은, 지금은 주로 영화 쪽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게 전부 드라마 쪽에서 흥행 실패를 맛보다 자연스럽게 멀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 쪽에서는 유은하의 뒤를 이을 만큼 흥행 성적이 좋다는 정도?

“허… 이수진이 하겠다고 합니까?”

“방송사측에서는 설득할 자신이 있대요.”

“이수진 걔 이제 드라마 안 하려고 할 텐데요?”

“강소연 씨도 그랬다가 이번에 이주희 작가 만나서 잘 됐잖아요. 어쩌면 방송사에서는 그걸 보고 자신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또 모르죠, 이미 이수진측하고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을지…”

만약 그렇다면 이미 시놉시스까지 이수진측에 들어갔을 거다.

“그럼 우리 지나는 그대로 물 먹으라는 건가요?”

“대표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을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방송사측에서도 고심이 많았나 봐요. 윤해연 작가를 데리고 있으니 대표님께서 절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걸 아는지, 평소 같으면 무조건 이렇게 하자고 지시했을 걸 어떻게든 일을 만들려고 조심하는 걸 보면요.”

“그래서 뭘 내놓는 답니까?”

“방정훈 감독이 이번에 신작이 들어가요.”

“방정훈 감독이요?”

대한민국 느와르물을 새롭게 열었다는 방정훈 감독의 ‘새로운 세계’는 지금도 회자될 만큼 상당히 잘 만든 수작이다.

“네, 이번에 SBC의 자회사인 iSBC 알죠? 거기서 투자를 생각하고 있나본데 유지나 씨를 거기에 넣어줄 수 있대요.”

“흐음…”

“대한민국에서 연기 잘한다는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데다가 이번에 제작비로 무려 200억이 투입되는 대작이라고 해요. 그해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거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거기에 지나가 가는 게 이득이라고 보십니까?”

“솔직히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쁘지 않아 보여요. 출연료도 상당할 거구, 러닝개런티까지 생각하면 벌어들이는 돈 역시 큰 차이가 없을 거예요. 이번에는 전처럼 큰 액션이 필요한 역할이 아니라서 연기도 쉬울 거구요. 드라마보다는 훨씬 편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이 배역을 노리고 있어요. 정말 유지나 씨를 거기에 꽂아줄 수만 있다면 좋은 기회가 아닐까 하는데…”

영화 흥행을 확신할 수 없기에 끝말을 흐렸지만 결국 그녀 생각에는 유지나가 방정훈 감독과 같이 하는 게 이득일거라는 말이다.

“시나리오 가지고 있어요?”

방정훈 감독의 신작이라면 시나리오가 떠돌지 않는다. 마치 윤 작가를 데리고 있는 파인 엔터처럼 제작사와 협의 후 바로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 보내드릴까요?”

“네, 보고나서 판단할게요.”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후 메일로 시나리오가 도착했다. 출력해서 읽어보니 과연 대작이라고 부를 만큼 스케일이 크다. 그런데 시나리오만으로는 큰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북한까지 엮인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가는 이야기가 쫄깃하긴 하지만 그것 치고는 긴장감, 화끈한 액션, 통쾌한 대리만족 같은 것들이 부족했다.

이 정도 시나리오에 방 감독이면 좋은 배우가 열연했을 때 적당한 흥행은 거둘 수 있겠지만 대박까지는 기대하기 힘들 게 분명하다.

곧바로 지여울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시나리오 봤는데요.”

“어때요? 괜찮죠?”

그녀 입장에서는 이 시나리오가 진짜로 괜찮았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미안하지만 저는 별로네요.”

“네? 별로라구요?”

“그렇다고 완전히 쪽박 수준으로 별로다, 이건 아닌데요. 그냥 우리 지나가 윤해연 작가님 작품 대신에 들어갈 만한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별로인 것 같아요?”

“일단 지나의 비중이 작아요. 이걸 감독 재량으로 늘려준다고 하면 오히려 이야기가 이상하게 되니 여기서 더 늘려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니까 분량 늘려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혹여 지나의 분량을 더 늘려달라고 떼쓰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기에 덧붙인 말이다.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대표님이 그러실 분도 아니고…”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방정훈 감독 그렇게 높이 보지를 않습니다.”

“네? 그건 조금 이해가 안 가네요. 나홍설 감독 이후로 충무로를 이끌어갈 대작 감독으로 인정받고 계신데…”

“그게 전부 ‘새로운 세계’ 때문이죠. 그런데 그거 홍콩영화에서 모티브 그대로 가져온 거잖아요. 솔직히 표절이라고 하기까진 뭐하지만 거기서 따온 걸로 긴장감을 이끌어간 건데…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작품들은 아쉬운 성적이고…”

“그럼 방정훈 감독이 상당히 과대평가되어있다는 말씀인가요?”

“아직 평가를 보류하고 싶다는 뜻이에요. 어쨌든 우리 지나는 이번 윤해연 작가님 작품 할 거구요. 방송사에다 그렇게 전해주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세요. 괜히 캐스팅 건드려서 작품 망치지 말고 시청률 잘 나오기를 바라면 그냥 편성이나 제대로 해주라구요.”

“네, 알겠어요. 그렇게 전할게요.”

이대로 방송사에서 넘어가주기를 바랐다. 뭐, 윤해연 작가가 파인 엔터 소속이라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끔 하려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 피곤하게는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똑똑똑!

“대표님!”

갑자기 무슨 일인지 문 밖에서 유니가 소리치고 있었다.

“뭔데? 들어와.”

유니는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혀를 내밀어 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게 분명하다.

“대표님~”

“뭔데? 들어와서 이야기 해.”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베베 꼬며 들어와서는 살포시 소파에 앉으며 눈웃음을 친다.

“대표님, 저 정규앨범 내주시면 안 돼요?”

“뭘 내자고? 너 이번에 단콘 들어가잖아. 설마 그 전에 내자는 이야기는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이번에 단콘 끝나면 늦가을 쯤 되잖아요?”

홍대에서 첫 콘서트 이후로 지방 공연을 몇 개 잡았다. 때문에 콘서트 기간은 약 보름 정도 진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늦가을부터 시작하면 너무 쳐지니까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게 어떤가…”

본인이 말해놓고도 민망한지 시선을 돌리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게 급하냐?”

“어제 파이브 걸즈도 데뷔했잖아요. 지금 차트 1위 찍고 있던데, 나만 소외되는 기분이에요.”

“넌 이미 최고잖아. 혼자서 몇 달을 해먹으려고 해? 욕심이다.”

“치… 어쨌든 소속 가수가 이렇게 열심히 하겠다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거 아니에요?”

“좋지. 너처럼 곡도 네가 다 써서 앨범 만들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 그런데 너무 빨라. 이미지 소모가 심하다고.”

“그럴까요?”

“그럼. 진짜 톱가수는 아무리 잘 나가도 1년에 한번이면 족해. 자꾸 곡 발표하면 어중이떠중이처럼 일 년에 몇 개씩 싱글 발표해서 활동종료와 컴백을 반복하는 거 같잖아? 예능에도 너무 자주 얼굴이 나오고 말이야. 물론 신비주의 컨셉은 요즘 추세랑 맞지 않기 때문에 종종 예능에도 얼굴을 비춰야겠지만, 너는 충분할 만큼 나가고 있어.”

“그럼 저 단콘 끝나고 앨범 작업 들어가는 거예요?”

“사실 그것도 빠르지. 일단 단콘 끝나고 분위기 좀 보자. 중간에 가능하면 큰 행사 위주로만 하고.”

“대학교 행사나 지역 축제 같은 건 피하자는 거예요?”

“응, 축구장 시축같이 몇 만 명 모이는 자리가 아니면 굳이 작은 행사까지 가지는 말자는 거지. 희소성이 생기면 값이 올라가는 건 알지?”

“넵, 알고 있어요.”

“조급해하지 마. 이제 시작인 거니까. 고작 정규앨범 한 개 낸 거야. 정규앨범 두 번째도 성공하면 진짜 콘서트 크게 한번 열어보자. 더 잘 나가면 해외공연도 해보고 말이야. 알겠지?”

“우하하! 진짜예요. 약속 하셨어요.”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나갔지만 집이 어려우니 마음이 급한 게 느껴진다. 전에 정산을 미리 땡겨줬는데도 저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사정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자꾸 이미지를 소비해주면 장기적으로 큰 손해다.

유니를 단순히 국내에서 잘 나가는 아이돌 정도로 키울 생각이 아니기에 지금부터 관리를 해야 한다.

며칠 뒤, 사무실에는 반가운 얼굴이 방문했다. 얼마 전에 강소연과 같이 드라마를 찍었던 윤평식 감독이다.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염려한 것이 우습게도 너무나 훌륭하게 작품을 마무리 해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바빴어요? 밥이나 먹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야, 작품 끝나고 어마어마하게 피곤했다고. 애 엄마 달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형수님하고 좀 진전은 있었어요?”

“몰라, 인마.”

퉁명스레 말하지만 실실 쪼개는 걸로 보아 다시 합칠 가능성이 있는가보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도 꽤 단정해지고 안색도 좋아진 걸 보니 촬영 전보다 훨씬 사람다워졌다.

“그러게 진즉에 일 좀 하면서 지내지.”

“사람은 원래 놀기 위해 태어난 거야. 물론 앞으로 돈도 벌면서 놀 거지만.”

“맞아요. 돈 벌면서 놀면 되죠.”

“너 요새 유명인 됐더라?”

“제가요?”

“어. 어딜 가나 파인 엔터 이야기만 하던데?”

“하하, 좋은 이야기던가요?”

“그건 모르겠고… 너 윤해연 작가랑 손잡고 SBC에서 편성 받아 촬영 들어간다며?”

“아직 촬영까지는 아니에요. 여배우 하나 결정됐는데요, 뭘…”

“방송국에서 이수진 밀고 있다는데?”

“아직까지 그 얘기가 돌아요?”

쉽게 포기할까 염려했는데 역시나 아직까지 이수진을 꽂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중인가 보다.

“너는 유지나를 밀고 있다며?”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걸 보니 그냥 심심해서 방문한 게 아닌듯하다.

“왜 이러실까? 이렇게 소식이 빠른 분이 아니신데? 왜요? 한 다리 담가보실라고?”

“나도 네 꿀 좀 빨아보자. 어때? 나 여기 연출 앉혀주면 내가 유지나 못 박아줄게. 너도 피곤하게 이리저리 치이는 것 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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