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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붙이면 젖혀라(1)
둘이 친한 사이도 아닌데 강소연의 은밀한 사생활을 어떻게 은하가 알고 저런 말을 할까 싶다.
“궁금하지?”
“당연하지. 안 그래도 둘이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는데, 네가 그걸 알고 있어?”
“원래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곳은 소문이 빨리 돌잖아. 특히 연예계 회사들이라면 온갖 루머가 떠돌지. 그런 걸로 직원들이 스트레스 푸는 거 아니겠어?”
“뭐야. 제대로 아는 게 아니야?”
“흐음… 글쎄?”
말하는 걸 보니 대충 아는 건 아닌가보다.
“얼른 말해 봐. 뭔데?”
“강소연이… 아니다. 소연 언니가 데뷔하고 스무 살이 넘었을 때 가장 먼저 채간 사람이 백창준인 건 알지?”
“그건 당연히 알지.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올 때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로는 최고 계약금 안겨주고 데려 왔잖아?”
“맞아. 사실 그 때 당시만 해도 톱스타급은 아니었던 소연 언니를 데리고 와서 3년 만에 최고로 만들었대. 나야 그 때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었지만 말이야.”
강소연이 이 바닥 최고가 됐을 때는 은하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쯤 일거다. 자기 살기에도 버거웠을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는 아무 관심거리도 안 됐을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 때 나이가 마흔 정도였던 백창준이 글쎄 소연 언니한테 푹 빠졌었다네?”
이거 완전 도둑놈 아닌가?
“헐… 그거 진짜야?”
“백창준이랑 나이 차이가 많아서 놀라는 거야? 아니면 다른 쪽을 생각하는 거야?”
“둘 다.”
“흐음… 내가 오빠의 이런 건전한 면을 좋아하긴 해. 어쨌든 이 바닥에서 소속 연예인하고 몰래 사귀는 정도의 일탈은 너무 흔한 이야기잖아. 놀라긴…”
“넌 뭐, 이 바닥에서 한 30년 굴렀냐?”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하니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린다.
“어쨌든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소연 언니도 그게 싫지 않았나 봐. 둘이 꽤나 오랫동안 연인 사이였대.”
“이해가 안 되네.”
“뭐가?”
“스폰 관계가 아니라 연인 사이였다고? 둘이?”
“스폰이었으면 회사에 소문이 돌지도 않았겠지. 전에 내 메이크업 해주던 언니가 그러던데, 글쎄 회사 직원이 야간에 업무 보러 갔다가 둘이 손잡고 있는 걸 봤다나? 회사 내에서는 유명했대.”
“백창준이 의외로 능력 있네. 남자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강소연이 은근 남자 얼굴보다는 능력을 보나?”
“뭐, 내가 오빠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여자는 남자 얼굴만 보는 건 아닌 것 같아.”
우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그런 말을 하니 어째 기분이 애매하다. 저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니 빈정이 상하기보다는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
“크흠… 내가 못 생긴 건 아닌데… 평균은 되지 않아?”
은하는 무시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둘이 꽤나 좋아했는지 그런 소문이 정설로 여겨질 만큼 오랫동안 중간에도 종종 그런 모습들을 보였더래. 나는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글쎄… 얼마 전에 백창준이 이혼을 했다는 말이 들리는 거야.”
“헐… 유부남이었다고? 백창준이? 이거 완전 쓰레기네.”
우현도 그가 유부남이었는지는 몰랐다. 얼굴도 몇 번 본적 없는 그가 결혼을 했는지는 자신으로서는 관심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백창준이랑 언니랑 사귄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더라. 오빠랑 나 정도만 해도 나이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스무 살 차이면 너무 하잖아? 그리고 솔직히 스폰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고.”
“방금 전에는 스폰이 아닐 거라며?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너랑 나도 스폰이냐?”
“우리는 다르지. 아무리 얼굴을 안 본다고 해도 백창준은 너무 하잖아? 배불뚝이 아저씨가 뭐가 좋다고…”
그 순간 살이 안 찐 것을 하늘에 감사드렸다.
“그럼 스폰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의심이 간다 그거야?”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기가 막히게 얼마 전에 회사에 백창준이 이혼했다는 소리를 듣고 스폰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조금 안쓰럽더라고.”
“에휴…”
이게 무슨 개막장 스토리인가?
“내가 원래 평소에는 웃기는 소문 들어도 가만히 있거든? 그런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번 알아봤지.”
“너 무슨 스파이 심어놓고 다니냐?”
“파하하! 웃겨 아주. 좋아, 내 정보원을 알려주자면 내가 마이더스에 들어가면서 파인 엔터의 부사장이었던 강벽두가 고문으로 들어간 건 알지?”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은하는 전혀 신경 쓰는 얼굴이 아니었다.
“알지.”
“내 덕분에 돈 많이 벌었어, 그 인간. 그래서 내 말 잘 듣거든. 하여튼 어떻게 된건지 물어보니까 백창준 그 새끼가 결혼했던 걸 아무도 몰랐더라구. 회사 내에서는 그 인간이 유부남인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야. 하긴, 나도 당연히 총각인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강소연도 속았겠네?”
“그렇지.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어.”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재미있어 죽겠나보다. 그런데 듣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막장드라마를 보는 게 이해가 된다.
“뭔데?”
“알고 보니까 결혼한 지 10년도 넘은 데다가 애까지 있었던 거야. 이혼하면서 재산분할 때문에 속을 끙끙 앓고 있다더라고. 쌤통이지 뭐.”
백창준은 빈손이었던 로드매니저로 시작해 지금의 회사를 일군 케이스라고 알고 있다. 그럼 10년 넘게 함께한 와이프와 이혼할 때는 상당한 재산을 떼어줘야 할 게 분명했다.
“그럼 백창준이 엄청 손해보겠는데? 어? 생각해보니까 강소연이 관계된 걸 알았으면 분명 기사가 나왔어야 하는데…”
기사로 나왔다면 핵폭탄급 여파가 있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긴 하다.
“그게 진짜 웃긴 건데. 원래 와이프네 집이 꽤나 유명한 집안인가 봐. 이혼 이야기가 퍼지는 건 그쪽이 더 싫어한대. 어쨌건 이혼 이야기는 적당히 마무리 됐고 남은 건 루머뿐이지. 둘이 사귀었었다는 이야기.”
모든 일은 마무리됐고 백창준 이혼과 관련돼서 강소연 이야기만 안 나오면 별 일 없다는 건데…
“와… 미치겠네. 완전 시한폭탄을 안은 거나 마찬가지 아냐?”
어째서 강소연이 그렇게 쉽게 마이더스를 나올 수 있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백창준은 지금 강소연한테는 고개도 못 들 정도로 잘못을 한 상태고 오히려 그녀가 회사를 나가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있으면 괜히 부담스러울테니까.
문제는 강소연이 회사를 옮기고 나서 이 막장 스토리로 기사가 나가기라도 한다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너는 왜 강소연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걔는 너가 날 찜했으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이해했다던데?”
“맞아. 그 언니는 남자 얼굴보고 만나는 것 같지 않아서.”
이걸 좋아해야 하나? 싫어해야 하나?
“그럼 그 때는 이미 백창준 이혼이야기가 나온 이후였어?”
“그렇지. 그래서 회사를 옮기겠구나 싶었는데 자꾸 오빠한테 꼬리를 치잖아. 그래서 내꺼라고 확실히 말해뒀지.”
왠지 모르게 뿌듯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
“그냥 아예 받지 말라고 하지 그랬어? 그런 일이 있는 줄 알았다면 무조건 안 받았을 텐데.”
“피해자는 소연 언니잖아. 언니도 모르고 당했는데 내가 쪼르르 오빠한테 일러바쳐서 못 들어오게 하면 내가 너무 나쁜 년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러다가 이 오빠 회사가 넘어가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깟 스캔들 하나로 넘어가는 회사가 어디 있어? 여기가 강소연 원톱 회사는 아니잖아? 여기 원톱이 누구야?”
이런 걸 보고 ‘답정너’라고 한다던가?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
“당연히 유은하지.”
“그럼 됐네. 그리고 언니가 가해자라면 모르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피해자인데 나중에 기사가 나와 봤자 이미지 조금 떨어지는 수준일 거 아냐?”
조금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은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강소연은 얼굴만큼이나 연기력이 받쳐주기에 이미지가 많이 떨어진다고 해도 톱스타의 클래스가 어디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기사가 터져봤자 피해자로 기사 몇 개 내주면 못 넘어갈 것도 아니고 잘 관리하면 회사에 큰 도움 되겠지.”
강소연 정도면 단순히 도움 정도가 아닐 거다.
“이래서 이 바닥에 있으면 여자 조심, 또 조심해야 해. 알지?”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한눈을 팔겠냐?”
“그럼 다행이구.”
“그런데 너 쇼케이스 가서 얼굴 보여도 되겠어?”
“안 될 건 뭐야? 같은 회사끼리 응원 좀 하러 왔다고 하면 되잖아?”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아니다. 안 되겠어. 너 그냥 가. 혜숙이 불러줄 테니까 돌아가.”
“왜? 꿀딴지라도 숨겨 놨어?”
“너 가면 기자들이 전부 너한테 집중할 거 아냐? 안 돼. 오늘은 파이브 걸즈가 주인공이야. 너 결혼식장에서 신부보다 더 예쁜 하객은 민폐인 거 알지?”
“치, 그래. 기다리지 뭐. 내가 걔들보다 예쁘다고 해서 그냥 가는 건 아니야.”
“알았어.”
왠지 그게 정답인 것 같지만 굳이 다시 언급하지는 않았다.
혜숙은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은하의 전용 밴을 타고 나타났고 우현은 그녀를 보내고 나서 다시 쇼케이스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했을 때는 막 행사가 시작되려던 참이었기에 아이들 하나하나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해줄 수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에게 첫 곡을 발표하며 시작을 알린 파이브 걸즈는 당일 실검 1위를 찍는 것과 동시에 각 음원 사이트에서 동시에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사 내용 역시 경수가 기름칠을 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좋은 반응이 나왔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만큼 호의적이었다. 파워풀한 안무와 랩, 그리고 후렴구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이 곡이 단순히 데뷔 반짝 효과로만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상케 했다.
다음날 파이브 걸즈의 첫 예능인 ‘주말아이돌’ 녹화장까지 같이 가서 현장을 지켜보며 응원을 해주었다.
이후 우현만 따로 사무실로 들어와 몇몇 기자들과 같이 점심을 하고 있을 때 지여울 피디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네, 식사하는 중인데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같이 식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이어갔다.
“이번에 SBC에서 윤 작가님과 같이 하고 싶다고 의향을 표시했어요. 당연히 사전제작인 거 오케이했구요.”
“회당 제작비는 얼마나 주겠답니까?”
맞은편의 기자들은 눈을 번쩍 뜨며 재빨리 수첩을 찾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우현의 회사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으니 좋은 기삿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 저 정말 고생했어요. 이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썰을 풀어대는 걸 보니 잘 됐나보다.
“하하, 그럼요. 제가 그래서 항상 지 피디님한테 일순위로 연락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회당 6억 받아냈어요. 그런데 그 쪽에서 20회까지 해줄 수 있겠냐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물론 안 돼도 6억은 받겠지만 그쪽에서는 20회 이상 가줬으면 하네요.”
“그건 제가 작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그리고 원고료는…”
“그건 저희가 맞춰야죠. 7천에 해드릴게요.”
“좋네요. 아, 그리고 주인공은 작가님과 합의 봤습니다.”
당연히 별말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지 피디가 난처한 듯 머뭇거리며 말한다.
“유지나 씨요? 흐음… 대표님, 제가 한 가지만 제의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