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11화 (2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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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다음 주자는?(6)

지나가 올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는 걸 보니 왠지 오늘 미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늦어서 죄송해요. 빨리 온다고 왔는데… 그래도 미워하지 않으실 거죠?”

지나는 밝게 웃으며 우현의 옆 자리에 앉았다.

“내가 유지나를 미워할 리가 있겠어? 이렇게 예쁜데 말이야. 원피스는 어디서 샀어? 너무 예쁘다.”

“이거 저희 집 앞 보세점에서 샀어요. 6만 원짜린데 그렇게 안 보이죠?”

“어머, 지나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검소하다.”

“아니에요, 저 검소하지 않은데,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 동대문에서 미씽 돌리면서 디자이너를 꿈꾸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싸면서도 밝은 느낌의 원피스를 골라 입었어요, 괜찮죠?”

“역시 지나 씨가 센스가 있어. 난 센스 없는 사람은 정말 별로거든.”

“정말요?”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평소보다 발랄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게 아니다. 조금 들뜨고 말이 많아 졌다면 그냥 수다스럽다고 느껴져야 할 테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다.

“이 작품 어디가 좋았어?”

“주연부터 조연들까지 전부 캐릭터가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억지로 만든 악역도 없고 답답하지도 않아요. 그저 여주인공인 ‘유정’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웃음이 지어져요.”

“이야… 대단한 칭찬인데? 아직 트리트먼트도 안 거친 건데 그걸 느꼈어?”

트리트먼트는 시놉시스 줄거리에 살을 조금 더 붙여 소설처럼 써 내려간 것이다. 따라서 시놉시스보다 작품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주인공인 유정의 캐릭터가 워낙 확실하니까요. 시놉을 읽으니까 이게 대본으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더라구요. 너무 읽고 싶어요.”

“아하하! 김 대표, 나도 이제 김 대표 따라서 돗자리 깔아야 할까봐?”

“그러게요. 이제 작가님도 도사 다 되셨습니다. 지나야 여기 작가님이 대본 일부분 만들어 오셨어. 방송으로는 30분 정도 되는 분량이니까 초반에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방향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거야.”

대본을 건네주자 지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정말요? 대박! 저 이거 지금 읽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한번 읽어봐.”

이제는 윤 작가도 살짝 당황했는지 의외라는 눈빛으로 지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야 지나가 왜 달라진 분위기를 풍겼는지 알았다.

‘적극적인 반응, 그리고 표현… 제대로 배웠네.’

어설프게 이상한 분장이나 되도 않는 말장난으로 코메디 연기를 하려고 했다면 그건 스스로 급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지나는 그녀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차분한 원피스를 입고 오되 전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반응으로 상황을 유도했다.

코메디 연기는 기본적으로 웃기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보고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코메디 프로라면 웃기는 사람이 중요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그것을 보고 반응해주는 사람의 연기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백프로 합격점을 받기는 어렵다는 것. 적극적인 반응과 표현은 기본이다.

“지나 씨, 그냥 혼자서 읽기만 하면 재미없을 테니까 여기서 대본 리딩 한번 해볼까?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되고.”

역시나 이걸 위해서 대본을 가져온 게 틀림없다.

“으음? 아니에요, 부담스럽지 않아요. 여기 씬 3-1 어때요?”

그런데 지나는 눈치를 보며 제의한 윤 작가가 오히려 놀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래? 좋아.”

잠시 호흡을 고르며 감정을 잡던 지나는 이내 대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 어머! 이 괴물이 돌아가! 이 괴물이 움직이면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고!”

“이 바보야, 이건 미씽이라는 거야. 이렇게 발로 밟으면서 기계를 움직이는 거라고.”

평소 그녀답지 않게 난리법석을 떨며 대사를 치는 지나 옆에서 우현이 대사를 맞춰주었다.

“이 씨… 내가 바느질만 몇 년을 했는 줄 알아? 아이고 아부지 어머니, 소녀는 10년 동안 헛지랄을 했네요. 헛지랄을 했어요.”

놀랐다. 단순히 대사를 맛깔나게 치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껏 지나에게서 봤던 얼굴이 아니었다. 하루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아하하!”

윤 작가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지나는 머쓱한 얼굴로 대본을 내려놓았다.

“이상했나요?”

“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너무 놀랐어. 아니, 지나 씨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었어? 여태 왜 이런 거 안 했대?”

“그냥…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제는 본래 지나로 돌아왔는지 다시금 차분하게 귀 옆으로 머리를 넘긴다. 부끄러웠을 수도 있고 민망했을 수도 있다. 본래 이런 연기를 싫어했을 테니까.

“뭐, 이유야 어찌됐건 나는 지나 씨가 마음에 들었어요. 역시… 우리 김 대표의 선택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내가 이래서 김 대표 옆에 꼭 붙어있는 거라구.”

“하하하! 아이고 작가님, 자꾸 이렇게 비행기 태우시면 어지럽습니다.”

“지나 씨가 이렇게 깜찍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불러 앉혔대? 아, 씨라고 하면 좀 멀게 느껴지겠다. 그치?”

“안 그래도 그냥 말씀 편히 하시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래, 어차피 같은 회사기도 하니까 이제부터는 우리 지나라고 할게.”

“네, 저도 그게 작가님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요.”

“정말? 아휴, 말도 참 예쁘게 해. 그럼 우리 나가서 커피라도 마실까?”

“그래요. 커피는 제가 쏠게요.”

분위기가 훈훈하게 흘러가니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그냥 웃음으로 때우며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미팅을 무사히 끝마치고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 주며 물었다.

“소연 씨가 뭐라고 했어?”

지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처음에는 소연 언니가 온다고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꼭 그 자리에 가야만 하는 건지, 가서 소연 언니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 얼굴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지나는 묻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굳이 정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이렇게 꽃다운 나이일 수만은 없으니까, 멜로 연기만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나가기로 마음먹고 대표님께 연락 드렸는데… 조금 걱정했어요. 걱정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지. 워낙에 기가 센 여자니까.”

“맞아요. 저는 같이 촬영해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막상 만나니까 저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나는 언제 연기를 시작했고, 몇 살에는 이런 작품을 했고…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나도 그 때 그 작품을 할 때 언니 같은 생각을 했었으면 더 좋은 연기가 나왔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오… 소연 씨가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나?”

“마지막에 오면서 이번 윤해연 작가님 작품 시놉을 보셨대요. 그리고 하는 말이 그거였어요. ‘코메디라고 싼티 내지 마라. 코메디 연기도 어차피 연기의 일부다. 어차피 연기의 기본은 발음과 발성, 그리고 표정이다. 발음과 발성은 고칠 필요 없지만, 내가 봤을 때 너는 표정이 항상 비슷했다.’고 말하시고는 일어나서 가셨어요.”

“가장 핵심을 말해주고 갔구나.”

“네, 생각해보니까 저는 항상 비슷한 얼굴로 비슷한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작가님이 감을 잡을 수가 없었겠죠. 이 장면에서 유정의 얼굴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안 되셨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해가 되더라구요. 왜 내가 마음에 안 들까 속상했었는데, 내가 작가라도 그랬겠다고 말이에요.”

“하하, 깨달음을 얻으셨구만.”

“깨달음까지는 아니에요. 그냥 언니랑 헤어지고 집에 와서 계속 제 표정만 봤어요. 저 10분도 못 자고 나온 거 알아요?”

액션 연기를 하면서 알았지만 확실히 지나는 독한 면이 있다.

“대단하네.”

“한숨도 못자고 안면근육이 떨릴 때까지 내 얼굴이 어떤 가 봤어요.”

자신이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고, 어떤 얼굴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는 말이다. 이는 연기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깊게 파고드는 연기자는 많지 않다.

“그랬더니 조금 알겠어?”

“아주 조금요. 하아… 지금껏 괜히 작품을 쟀나 봐요, 어리석게…”

“어리석은 건 아니야. 좋은 선택이었을 수 있어. 잘못하다가 괜히 싼티 나는 역할 맡고 급이 떨어졌을 수도 있으니까. 이제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 지금부터 잘하면 돼. 네가 경력은 많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전부터 연기했기 때문에 아직 나이는 어리잖아. 더 올라갈 수 있어.”

“감사해요.”

“뭐가?”

“이렇게 기회 주신 거…”

“내가 줬나? 작가님이 주신 거지. 하여튼 잘 됐으니 이제부터 좋은 생각만 하고 캐릭터 분석하면서 시간 보내. 제작 일정 잡히면 진명이 통해서 연락 줄 테니까.”

“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이제야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 소파에 축 늘어졌는데 급히 민주가 들어왔다.

“지금 출발하시면 쇼케이스 시작 전에 도착하실 수 있으신데요. 늦어도 10분 뒤에는 출발하셔야 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미팅이 아주 빨리 끝났기에 쇼케이스 중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 고마워요.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네. 나 5분만 좀 쉬다가 일어날게요.”

“네.”

이상하게 힘이 빠져 잠시 소파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벌컥 하며 대표실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놀란 우현의 얼굴을 노려보는 이는 바로 은하였다.

“대표님, 지금 바쁘신가요?”

국어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하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화가 났다는 뜻이다. 뭔지는 몰라도 자신이 큰 잘못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 겠다고 판단했다.

“어, 나 지금 나가야 해서… 파이브 걸즈 쇼케이스 가야 해. 민주 씨! 나 지금 가도 늦는 거 맞죠?”

“네? 네, 네. 맞아요. 빨리 가셔야 해요.”

당황한 민주가 눈치껏 대답했는데 은하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아, 그러면 같이 가면 되겠네. 가시죠, 대표님. 나도 쇼케이스라는 거 한번 구경 좀 해봐야겠네?”

“너 촬영 중 아니었어?”

생각해보니 그녀는 지금쯤 한창 ‘지옥도시’를 촬영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오후 촬영할 씬이 2개라 미뤘어. 다음에 몰아서 촬영해도 되는 거라 스케줄에 지장 없거든. 이렇게 날 생각해주니 감동이네요, 대표님.”

“크흠… 민주 씨 저 갈게요. 그럼 다들 수고 하세요.”

정장 상의를 챙겨 후다닥 나오는데 은하가 껌딱지처럼 따라온다. 결국 그녀는 우현의 차를 타고 쇼케이스 현장인 강남으로 같이 출발했다.

“뭔데? 갑자기 왜 그러는데?”

“강소연, 우리 회사로 온다며?”

설마했는데…

“뭐야? 강소연이랑 한 이야기는 농담이었다며? 그렇게 들었는데?”

“농담은 농담이지.”

“그런데?”

“농담이라고 듣는 사람 기분이 항상 하하호호 하겠어?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영입 수락했다며? 손꼽아 그날을 기다렸나봐?”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기다렸다는 듯이 한 건 아니야.”

“흥! 웃기네. 아주 좋아 죽겠지? 회사에 전부 여자들이라?”

솔직히 싫다면 그게 남자인가? 당연히 좋다. 하지만 지금 그런 티를 냈다간 무슨 경을 칠지 모른다.

“난 너 말고는 다 그냥 인간이야, 휴먼. 사람들이지. 전혀 아무 생각이 안 들어. 진짜라니까?”

그녀는 못 믿는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노려보았다. 감히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운전에만 집중하는데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던졌다.

“마이더스 백창준이랑 강소연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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