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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다음 주자는?(1)
오늘 아침 ‘사랑과 영혼’에 캐스팅 된 한여름이 한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와 인터뷰를 한 것이 기사를 탔다. 원래는 인터뷰 내용이 TV로 나왔어야 할 것인데 종종 파급력이 대단한 톱스타일 경우에는 미리 기사로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 내용이 나가기도 한다.
기사 내용은 별다를 게 없었다. 이번에 상당한 논란을 빚고 있는 ‘사랑과 영혼’에 출연하게 된 경위와 소감 몇 마디가 주요 인터뷰 내용인데 문제는 거기에 은하가 첨가되면서 분위기가 묘해져 버렸다.
[리포터 : 이번에 김은선 작가님과 두 번째로 같이 작품하시는 거죠? 소감이 어떠세요?]
[한여름 : 감사하죠. 김은선 작가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모든 배우들에게 축복 같은 거거든요.]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리포터 : 그 전에 유은하 씨가 캐스팅 됐었다가 다시 한여름 씨로 바뀌게 됐잖아요?]
이런 식의 질문은 보통 공중파 연예 프로그램에서는 하지 않는다. 질문을 받는 사람이 기분이 나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력도 상당한 리포터의 입에서 저런 질문이 나온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여름 : 제가 대타로 드라마에 들어간 게 딱 두 번인데 그게 전부 김은선 작가님 작품이었고, 또 전부 유은하 씨를 대신해서 들어가게 된 거라 이것도 참 인연이 아닌 가 해요.]
[리포터 : 어머! 이번이 두 번째라구요? 저는 처음으로 듣는데 정말 그 전 작품에서도 유은하 씨가 될 뻔했었던 건가요?]
[한여름 : 제가 알기로는 그 때 원래는 유은하 씨로 낙점돼있었다고 들었거든요. 생각해보면 그 때 은하 씨가 맡았으면 저보다 더 잘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리포터 : 그럼 유은하 씨한테 한 마디 한다면요?]
[한여름 : 은하 씨, 우리 서로 선의의 경쟁 해봐요. 파이팅]
이건 누가 봐도 은하를 멕이는(?) 인터뷰다. 관계자가 아니라면 그 때 유은하가 캐스팅 단계에 올라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공중파 연예 프로그램에서 언급한다는 건 고의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봤지. 좀 이상하긴 하더라.”
“그냥 이상하기만 해? 걔 미친 거 아니야? 내가 나보다 나이도 많아서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연기는 쥐뿔도 안 늘어놓고선 뭐? 선의의 경쟁을 해봐요? 웃기고 있네, 이 여우 같은 게…”
“방송국에다가 항의성으로 전화 넣어 줄까?”
원래는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당연히 먼저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항의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저 인터뷰를 보니 단순한 실수 같지가 않다는 느낌에 지금까지 항의 전화를 하지 않았던 거다.
자칫 잘못하면 항의 전화를 한 것까지 이상하게 엮어 보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됐어. 다 똑같은 놈들이던데 뭐…”
“진짜 괜찮아?”
“솔직히 이번 ‘사랑과 영혼’은 시놉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차라리 이게 훨씬 나한테 맞는 것 같아. 잘 해보라지.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말이야.”
솔직한 말로 우현은 이번 영화에 대한 결과를 아직까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우가 저리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니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걱정 마. 이번 영화 무조건 대박일 거야.”
“그걸 떠나서 좀 웃기지 않아? 도준혁 때문에 초상집일 텐데 굳이 나와서 저딴 인터뷰나 해대고 있고… 하여튼 여우같은 년. 난 쟤 좋아하는 남자들 이해가 안 가더라.”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눈빛을 확인하는데 내심 찔리면서도 그녀의 말이 맞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난 걔 예쁜 거 하나도 모르겠더라. 코도 좀 이상하지 않아? 콧구멍이 너무 작아서 숨은 어떻게 쉬나 몰라.”
“그렇지? 딱 110볼트 꽂는 구멍 같다니까?”
좀 작아 보이긴 해도 이정도 까지는…
“너 어렸을 때는 110볼트 없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아냐?”
“내가 외국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몰라?”
“아… 하긴…”
그나마 자신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먹혔는지 더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다. 사실 남자인 이상 한여름을 싫어 한다는 건 고자가 아니고서는 말이 안 되는 건데…
“대충 얼굴 보였으면 이제 가.”
“뭘 그렇게 귀찮다는 듯이 이야기 하냐?”
“오빠… 아니, 대표 있으면 괜히 신경 쓰인단 말이야. 진상 피우지 않을 테니까 얼른 가서 회사 일이나 봐. 여기는 내 일터야. 얼른얼른!”
손을 휘휘 저으며 몸을 돌려 걸어간다. 그리고는 자신의 지정 좌석(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의자지만 앞에 발을 얹는 작은 간의 의자도 딸려 있음)에 턱하니 다리를 올리고 눕다시피 앉아 대본에 열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멀리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는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오면서 생각해보니 확실히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남자배우를 캐스팅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벌서 연예 프로그램에 나와서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건 대단한 자신감이 아니면 멍청한 거다.
계속 ‘사랑과 영혼’을 언급하며 도준혁의 안 좋은 기억까지 같이 환기시켜 주면 그들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 기사의 댓글에는 도준혁에 관련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달려 있어 결코 좋은 인터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여름이 속한 회사와 제작진과 협의 하에 진행된 인터뷰는 아닐 거라는 촉이 왔다. 아무래도… 한여름이 유은하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는 걸까?
사무실에 다시 들어오니 경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기다리고 있어? 쇼케이스가 코앞인데 안 바쁘냐?”
“에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르죠. 그런데 이번에 케이블에서 하는 ‘주말아이돌’에서 우리 파이브 걸즈 섭외 요청이 와서요.”
“어? 그래? 벌써 예능 섭외가 들어왔어?”
‘주말아이돌’은 케이블 예능이긴 하지만 중소 기획사에게 있어 자신의 아이돌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능이다. 시청률도 어느 정도는 나와 주고 화제성도 있는데다가 전 세계의 KPOP팬들에게 상당히 유명하다.
무엇보다 MC들이 재미있고 아이돌의 매력도 잘 끌어올려주기 때문에 준비만 어느 정도 한다면 좋은 홍보 기회가 될 거다.
“네, 당연히 허락 하시는 거죠?”
“당연하지. 언제 녹화하고 언제 전파 탈 거래?”
“쇼케이스 바로 다음날 녹화구요. 방송은 우리 첫 공중파 음악프로 전날에 한답니다.”
“그러면 사실상 그 예능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노래 부르는 날이겠네?”
쇼케이스는 팬들과 기자들을 위한 날이라 음원만 공개될 뿐이지 진짜 얼굴을 보인다고 할 수는 없다. 방송에 나와야 진짜 데뷔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방송 전에 예능으로 먼저 데뷔하게 된 셈이다.
“네, 요즘은 예능으로 얼굴을 먼저 알리는 경우도 많아서 좋을 거라고 하던데요? 주말아이돌 작가가.”
“그건 맞는 말이야. 노래보다 얼굴을 먼저 홍보하는 게 아이돌들에게는 좋은 홍보수단이 될 수 있거든. 잘 됐네. 얘들한테 개인기 같은 거 미리 준비할 수 있으면 준비하라고 해. 그리고 너는 평소에 기자들이나 피디들하고 인맥 쌓아놓고 있지?”
“그럼요. 그것 때문에 간이 버텨내질 못하는 것 같아요. 그나마 술값은 법인카드로 내서 다행이지…”
경수는 배를 부여잡으며 죽는 소리를 했지만 그게 연기라는 건 알고 있다.
“너 좋아하는 거 다 알고 있어, 인마. 나는 뭐 기자들이랑 피디들하고 술 안 먹어 봤냐? 룸싸롱을 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술값이 이렇게 많이 나와? 그리고, 점심때는 청담동 스테이크집을 갔더만? 아주 이게 법인카드라고 맛집 투어를 하는구만.”
“아니… 기자들하고 같이 갈 수도 있는 거니까요.”
말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게 본인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아나보다.
“적당히 먹어. 그나마 회사가 잘 돌아가니까 더는 뭐라고 안 하겠지만 이거 회사 돈이야,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진짜 제가 피디들이랑 기자들한테 완전 잘 했거든요. 분명 다를 겁니다.”
나름 항변을 하긴 하는데 과연 그 인맥이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알았어. 그만 나가보고 애들 관리 잘 해.”
파이브 걸즈 쇼케이스를 앞두고 회사차원에서도 상당히 긴장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배우를 관리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유니 이후에 다섯 명의 걸그룹을 데뷔 시키는 데는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뭐야, 왜 이렇게 바빠?”
대표실 문 밖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윤해연 작가가 손에 케잌 하나를 들고 와 있었다.
“작가님이 갑자기 웬일이세요?”
“내가 올 일이 뭐 있겠어? 우리 김 대표 보러 왔지. 그거 아니면 내가 여기 올 일이 있나? 내 팔 아파. 얼른 받어.”
“아이고, 제가 또 티라미수 케잌 좋아하는 건 어찌 아시고?”
“내가 좀 센스가 있지? 오호호! 얼른 들어가. 나 할 말 있어.”
“알았어요. 민주 씨, 여기 주스랑 포크 좀 가져다주세요.”
윤 작가를 대표실 소파에 앉히고 나서 케잌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작은 접시에 담고는 나머지는 사무실 사람들 먹으라고 민주에게 건넸다.
“무슨 일이에요?”
“아, 그보다 나 너무 놀랐잖아, 도준혁. 진짜 김 대표가 알고 있었어?”
“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몰랐죠, 당연히.”
“내가 몇 번이나 전화해보려고 했는데 괜히 나잇값 못한다는 말 들을까봐 전화로는 못했지. 그래도 이렇게 마주보고 이야기 하면 덜 쪽팔리잖아.”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럼 은하는 운이 좋았던 거고, 지나는 운이 나빴던 거네?”
“그렇게 됐죠.”
지나 이야기는 나올 때마다 씁쓸하다.
“안 됐다. 그거 찍느라고 고생했을 텐데… 여배우가 그런 영화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잘 됐으면 좋았을 걸.”
“내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기사 보니까 좀 웃기는 게 떴던데?”
“아… 한여름이요?”
“은하가 뭐라고 안 해?”
“안 하긴요. 뭐라고 구시렁거려서 ‘제작진한테 항의 해줄까?’하고 물으니까 됐다네요. 이제 다 컸는지, 예전 같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이제는 제법 의연하게 넘기더라구요.”
“은하가 이제 여유가 생겼나 봐. 김 대표네 회사에 와서 그런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썹을 씰룩이길래 그녀의 눈길을 슬쩍 피했다.
“그럴 리가요. 이제 경력이 많이 쌓였고 나이도 먹어서 그런 거겠죠.”
“후훗, 나중에 은하 만나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해. 전에 캐스팅 미팅 때도 봤지? 한여름이 그 때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굴었어?”
하긴, 그 때 윤해연 작가에게 했던 행동을 보면 무서운 게 없어 보이긴 했다.
“그렇긴 했죠. 감히 작가님 앞에서…”
“그건 그렇고, 나 작품 하나 또 해보려고.”
의욕에 불타는 그녀의 눈빛을 보니 장난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작가님, 종방연 한지 이제 몇 달 지났다고 그러세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더 쉬세요.”
“아니야,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데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해야지. 놀면 뭐해. 게다가 나 이제 몸값도 많이 올랐다며? 우리 아들 유학도 보내줄려면 더 일해야지.”
어째 본적도 없는 그 유학 간다는 아들이 굉장히 고마워졌다.
“시놉은 썼어요?”
“응, 한번 봐봐.”
그녀가 가방에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