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05화 (20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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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재수가 없으면…(3)

며칠 지나서 사태가 가라앉기를 바란 제작진의 마음과는 달리 관람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갔다.

유정완 감독이 해명 및 사과 기사를 몇 번이나 냈지만 이미 대중들의 마음에 미운털이 박혔기에 관객 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상영관 수도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면 손익분기점 대비 플러스 100만 정도에서 마무리 되는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김 대표, 너무 실망하지 마. 어쨌든 영화 망한 거 아니잖아. 100만 관객이면 나름 선방했지.”

오히려 필름나라의 양수찬 대표가 우현을 위로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더 큰 돈을 벌수도 있는 기회였지만 어쨌든 손익분기점을 넘어 100만 관객이나 더 들어왔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건 아는데… 애초에 영화가 못 나왔으면 기대도 안 했을 겁니다. 그런데 영화는 잘 찍어놓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이렇게 되니까 실망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그래, 내가 그 마음 알지. 나도 엄청 속상하다구. 그런데 우리가 이 만큼 속상하면 당사자인 유 감독은 어떻겠어? 어제도 술만 퍼 마셨더라구. 얼굴도 보이지 않고 집에서 혼자서 마셨다지? 불쌍해…”

“하긴 그렇겠네요.”

“본인도 괴로울 거야. 그러니까 너무 유 감독 미워하지 말고.”

“아닙니다. 미워하지 않아요. 그냥 안타까울 뿐이지.”

“그렇지? 어쨌든 영화는 내려도 요즘 VOD가 또 잘 나가는 거 알잖아.”

IPTV 보급이 늘어나면서 유료 VOD 매출도 해가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이 부분은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뭐, 그래 봐야 우리 지나한테 돌아올 것도 없지 않습니까?”

“평가가 남잖아. 평가가…”

VOD시청으로 지나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더 좋아지겠나? 사실 연기력으로 승부한 영화도 아니었는데. 그냥 의외로 액션 연기가 좋다는 정도?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시나리오 몇 개 괜찮은 거 있으니까 한 번 봐봐. 지나도 얼마 전에 해외여행 다녀왔다며? 그럼 이제 일 해야지.”

“네, 보내주세요.”

“다음에도 한번 잘 해보자고, 응? 그럼 수고해.”

전화를 끊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후우…”

재수가 없어도 이런 식으로 없을 수가 있나? 별이나 은하는 이제껏 별다른 문제없이 순항하고 있는데 하필 지나에게 이런 문제가 터지니 참 미안할 뿐이다.

별이나 은하는 자신이 키워낸 새끼나 다름없으니 이런 문제가 생겨도 그나마 조금 덜(?) 할 수도 있지만 자신만 보고 회사를 옮긴 지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니 참으로 난감하고 미안할 뿐이다.

물론 영화를 찍다보면 흥행을 할 수도 있고 부진할 수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지금까지 자신이 직접 고른 영화 중에 투자 대비 대박 아닌 영화가 없었다.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우현의 안목은 재능과 외모에만 국한될 뿐, 그 사람의 인성을 볼 수는 없기에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 같다.

똑똑…

“대표님?”

민주가 조심스럽게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왜요?”

“그 때 그… 다큐멘터리 찍는다는 장승효 감독님이 오셨는데요?”

“아, 들어오라고 하세요.”

한참 전에 촬영을 끝내고 나서는 편집과정을 거치다 온다는 말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바쁘신 건 아니죠?”

장 감독은 청바지에 셔츠와 남방으로 회사원 같지 않은 차림이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없었을 수 있는데, 미리 말씀을 하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아, 원래는 오늘 방문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방문할 거면 약속을 잡고 왔을 텐데요. 오늘 마침 대표님 사무실에 볼 일이 생겼지 뭐에요? 안 그래도 편집도 끝낸 상황이라 대표님께 말씀드려야 할 게 있었는데 마침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한번 들려본 겁니다. 안 계셨으면 당연히 스케줄을 확인하고 약속을 잡았을 텐데, 이거 참 운이 좋네요.”

“하하, 그렇네요. 운이 참 좋으셨어요. 안 그래도 조금 있다가 나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편집이 벌써 끝났나요?”

“네, 편집 마무리하고 편성까지 확정 받았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레이션 할 친구 구해서 녹음하고 방영까지 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먼저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벌써 편성까지 확정 받으셨어요? 굉장히 빠르네요.”

“그렇죠? 윗선에서도 편집된 영상 보고는 상당히 흥미 있어 하더라구요. 잘 만하면 다큐멘터리 치고 시청률도 상당히 나올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기대한다고 하는 말이…”

이제 다큐멘터리 방영이 목전까지 다가왔다고 하니 괜히 부담스러워졌다.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으니 어쩌랴. 잘 나오길 바라야지.

“하하하! 연예 기획사 사장님이시면서 주목받는 걸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시면 어떡합니까? 이제 더 유명해지실 텐데요.”

“저 보다는 소속 아티스트가 더 유명해져야죠.”

“대표님이 유명해지시면 아티스트들이야 더 유명해지겠죠. 그리고 며칠 뒤에 파이브 걸즈 데뷔 쇼케이스가 있다면서요?”

“네, 맞아요. 강남에서 쇼케이스 행사 준비하고 있어요.”

“그 부분을 조금 더 촬영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뭐,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방영할 시기면 한창 파이브 걸즈가 활동하고 있을 시기니까 저희가 생각할 때는 그 부분도 추가되면 파이브 걸즈 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물론 시청률에도 도움이 되겠구요. 하하하!”

속이 뻔하게 보이지만 그의 말대로 파이브 걸즈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네, 그렇게 하세요. 쇼케이스 행사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허용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쯤에 방영될 테니까 그 전에 미리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장승효 감독이 가고 잠시 인터넷으로 기사를 확인하던 우현은 옷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오늘 은하의 ‘지옥도시’가 첫 촬영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인데 나간 김에 별이의 ‘28시간’ 촬영 현장을 둘러보고 갈 예정이다.

요즘 영화 촬영한다고 목소리 한번 못 들어 봤기 때문에 그녀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안심시켜 주기 위함이다.

별이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지나도 들어오고 은하도 들어오면서 가장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자신에게서 우현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별이의 촬영장은 경기도 외곽의 한 대형병원. 현장에 도착하니 제법 그럴 듯하게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데 여기저기 피가 튄 흔적이 남아 있어 제법 치열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표님이 어쩐 일이세요?”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는 걸 보니 현장에 잘 왔다 생각이 든다.

“그냥 한번 들렸지. 커피 차 시켜놨으니까 잘 먹어. 어깨에 힘 좀 세우고.”

“헤헤, 안 그래도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닌 가 했는데 역시 대표님 짱!”

쌍엄지를 치켜들고 방방 뛰는 게 영화 촬영이 힘들지는 않은 것 같다.

“보니까 체력이 남아도는데? 힘들지 않아?”

“저보다 스태프들이 더 힘들죠. 중간에 막 뛰어다니는 씬이 있는데 그건 있다가 찍어서 아직까지는 체력이 빵빵해요. 아, 그것보다 지나 언니랑 통화했는데…”

별이랑 지나는 이제 꽤 친해져서 둘이서 시간 날 때 종종 놀러 다닌다고 들었다.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없다더니 놀러는 잘 다닌다.

“그래? 뭐라든?”

“목소리는 괜찮았어요. 전에 기사 터지기 전에만 얼굴을 봐서 지금은 모르겠는데 언니가 워낙 빈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열 받으면 열 받았다고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해서… 큰 문제는 없어 보이긴 하는데 조금 실망한 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그건 어쩔 수가 없겠다. 다음에 좋은 작품 찾아줘야지.”

“꼭 그렇게 해주세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이 말하는데 어이가 없어 웃었다.

“야, 그건 내가 너보다 더 간절하게 원한다. 너는 네 연기에 집중해. 지나 신경 쓰지 말고.”

“헤헤, 알았어요. 오늘 은하 언니 첫 촬영 날이죠? 바쁘실 텐데 얼른 가보세요. 커피는 잘 마실게요!”

손을 흔들며 대본을 들고 휑 사라진다. 이미 자기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머쓱한 마음에 괜히 매니저인 상준에게 이것저것 잔소리를 해 놓고 은하 촬영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니 별이가 촬영하던 현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게 어울려요? 이 캐릭터랑?”

“당연하죠. 너무 예쁘잖아요.”

“감독님, 이거 동네 보세점에서 산 흔한 원피스예요. 심지어 이런 촌스러운 무늬까지 들어있다구요. 지금 감독님이 내미시는 옷은 촌스러운 게 아니라 그냥 거지라구요.”

은하는 짙은 분홍색의 촌스런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감독의 손에는 한눈에 봐도 어디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듯한 낡고 하얀 원피스가 들려 있었다.

“내가 이 장면을 상상할 때는 여주인공이 이런 옷을 입고 있었어요.”

“감독님, 무슨 생각이신지는 알겠는데요. 조금 핀트가 어긋난 게, 연수라는 캐릭터는 미친 게 아니라 과대망상 같이 보이는 거잖아요. 이걸 입으면 그냥 미친년이 된다구요. 그걸 원하는 건 아니시잖아요?”

싸우는 건 아닌 것 같고, 서로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중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금 심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의견교환은 굉장히 빈번한 일이다. 특히 은하가 촬영하는 현장에서는 더욱.

“그렇긴 한데…”

“제가 스토리에 관여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연수라는 캐릭터에는 이 옷이 맞아요. 감독님, 제 말 믿고 촬영 들어가요. 자! 촬영 들어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철아, 나 땀나니까 선풍기 좀 대줘. 땀 좀 마르면 슛 들어갈 수 있어요.”

“그, 그래.”

감독이 이제 첫 영화 데뷔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독을 은하는 아주 쉽게 주무르며 촬영장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그녀가 선풍기에 땀을 식히고 있을 때 다가가니 우현이 왔음을 눈치 채곤 슬쩍 눈길을 피한다.

“좀 살살해.”

“내가 뭘?”

“이제 입봉하는 감독인데, 네가 너무 강하게 말하면 좀 그래.”

“이 정도는 원래도 해 왔는데 뭘…”

“조감독하다 이제 처음 마이크 잡았다. 현장에서 네 목소리가 감독 목소리보다 크면 기강이 바로 서겠니? 스태프들이랑 감독이랑 손 안 맞고 누군가가 감독 이기려고 들면 영화 산으로 간다, 알지?”

“칫… 알았어. 내가 바본가?”

구시렁대지만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게 자신이 너무했다는 것을 아나 보다.

“알면 다음부터는 스태프들 다 있는데서 그렇게 싸우지 마.”

“싸운 거 아니야. 작품을 위한 건전하고 긍정적인 토론이지.”

“그럼 그 건전하고 긍정적인 토론은 앞으로 목소리 죽이고 사람들 눈 피해서 하도록 해.”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알지, 너 이런 거 신경 안 쓰는 거. 하지만 그 전에는 아무리 감독하고 치고 박고 싸워도 감독이 짬이 있으니까 신경 안 썼던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니까 네가 알아서 분위기 좀 맞춰.”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아! 그리고 그거 봤어? 한여름 고게 오늘 뭐라고 했는지 말이야.”

아침에 기사가 나온 걸 보고 전화가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게 넘어가나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자신이 이곳에 올 때까지 기다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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