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204화 (20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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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재수가 없으면…(2)

회식 장소는 청담동의 고급 이자까야. 사실 우현은 이런 곳보다는 고깃집을 더 선호하지만 여배우를 데리고 술을 마셔야 했기에 조금 더 깔끔한 곳을 찾다보니 이런 곳을 자주 오게 됐다.

회식 자리에는 지나와 그의 매니저인 진명, 그리고 우현 이렇게 셋만 모였다. 다른 이들은 전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나는 얼굴이 전보다 조금 더 하얘져서 이제는 여행을 떠나기 전처럼 뽀얀 피부가 됐다.

“관리 열심히 받았나 봐?”

“후훗! 피부과를 학원 다니는 것처럼 다녔어요. 이제는 관리 받는 것도 지겹다니까요?”

“그래, 고생했다. 그래도 그렇게 고생하니까 보답이 돌아오잖아? 벌써 400만을 목전에 두고 있지?”

지나의 매니저인 진명이 대신 답한다.

“예, 아직 오늘까지 스코어가 나오지는 않았는데 짐작해보면 대략 360만 까지는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 너도 고생 많았다. 일단 술 한 잔씩 받자.”

술을 한잔씩 따라주고 건배를 외친 후 다 같이 마셨다. 영화가 잘 나가서 그런지 지나의 발그레해진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아… 저 진짜 힘들었는데… 잘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만약 이거 잘 안 됐으면 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랬을 거다. 근 1년간 매니저 잘 못 만나 반백수처럼 지내다가 겨우 맡은 원톱 영화인데, 하필 그것도 액션영화라 온 몸이 성한 곳 없이 고생하고선 만약 망했다면? 자신이라도 몇날 며칠은 술을 퍼마시며 힘들어 했을 거다.

“다행히도 잘 됐잖아.”

“그러게요. 좀 욕을 먹고 있긴 한데, 이전까지는 스크린 독점에 관한 기사는 아예 저랑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거든요. 그만큼 블록버스터 영화나 그런 논란이 일지, 애매한 영화는 그러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니까.”

스크린 독점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제작비를 많이 투자한 블록버스터 영화여야만 하고 개봉 전에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극장주들에게 팍팍 실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감독과 배우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이것들이 모두 갖춰져 있을 때에만 스크린 독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고 싶다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스크린 독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기사 나오는 거 많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영화 찍느라 고생 많았으니까 다음에는 아주 예쁘게 나오는 걸로 가자.”

“예쁜 거요? 진짜요?”

“그럼, 당연하지. 한번 액션 찍었다고 다음 작품도 그런 영화 찍으면 네 캐릭터가 고정돼서 안 돼. 반드시 여리여리한 로맨스 여주로 나와야 보는 사람들도 ‘아! 유지나가 저런 역도 할 수 있지’가 되는 거야. 안 그러면 ‘유지나는 액션 아니야?’ 이런 생각으로 고정 된다고.”

이건 액션 뿐만 아니라 다른 역할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드라마에서 코믹 역할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서 빵 떴다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다음 작품은 그 캐릭터와 비슷한 건 피해야 한다.

문제는 이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건데, 저렇게 빵 뜨게 되면 다른 드라마나 영화 제작 캐스팅 디렉터들이 그와 비슷한 역할로 연락이 온다. 이걸 거부하고 다른 역할로 어필하려면 굉장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그 역할이 노출이 심한 여자 캐릭터라면 더욱 힘들다. 그렇기에 한번 19금 영화에서 심한 노출을 한 여배우는 계속해서 그런 작품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게 주연급 배우라면 유지나처럼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지만 조연급 배우라면 뼈를 깎는 노력이나 천부적인 재능, 또는 천운이 따라야만 벽을 넘고 스타로 도약할 수 있다.

“저는 다른 건 모르겠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액션은 하고 싶지 않아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아주 액션이라면 질려버린 것 같다.

“그래, 그래. 이제 하늘하늘하고 여리여리한 작품 한번 찾아보자, 응? 지금까지 고생했고, 아마 이대로 가면 최소 600만은 넘을 거니까 러닝개런티도 상당하게 나올 거야. 지금까지 수입 많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도 한 번에 해결될 거다.”

물론 그녀의 출연료만 해도 3억이다. 그렇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할 수 있다.

“어? 대표님?”

그런데 갑자기 진명이 핸드폰을 보며 놀란다.

“뭔데?”

“이거 기사 좀 보세요. 유정완 감독이 이런 인터뷰를 했다는데요?”

진명이 건네준 핸드폰을 보니 유정완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아니, 기사 제목부터도 눈길을 끌었다.

[유정완 감독, 유지나는 된장녀 같지 않아 좋았다고 발언]

“이게 뭐야?”

어이가 없어 기사내용을 읽어 내려가는데 읽을수록 유 감독이 과연 제정신으로 이런 인터뷰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용은 이렇다. 보통 여배우들은 액션 장면을 찍을 때 몸을 많이 사리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유지나는 많이 달랐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아주 부적절했다.

[유지나 씨 같은 경우는 톱스타임에도 요즘 여자들 같지 않게 허영심도 없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결코 꾀를 부리려고 하지 않았죠. 저는 촬영하면서 이렇게 열정이 가득한 여배우는 처음이었어요.]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실수였을까? 아니면 기자의 악의적인 편집일까?

“저도 볼게요.”

지나가 우현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가져가서 한참을 읽더니 한숨을 내쉬며 내려놨다.

“하아… 정말 이렇게 말했을까요?”

“모르겠다. 일단 연락 좀 해볼게.”

비록 지금이 저녁 시간이긴 하지만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곧바로 필름나라의 양수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부재중이라 회사로 걸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이 우현 혼자가 아니었는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여자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네, 필름나라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파인 엔터의 김우현입니다. 양수찬 대표님 계십니까?”

“아… 지금 대표님 바쁘신데…”

뭐 때문에 바쁜지는 알 만했다.

“지금 통화가 안 되시는데요, 제 전화로 좀 연락 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무려 30분이나 지나서야 우현의 전화로 연락이 왔다. 물론 그 시간동안에 우현을 비롯한 일행은 초조함에 술만 연신 마셔댔다.

“김 대표?”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휴, 나도 죽겠어.”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구요. 진짜 유정완 감독이 그렇게 말한 게 맞답니까?”

“알아보니까 그 인터뷰를 아침에 했는데 그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었대. 그래서 그 인터뷰 스케줄을 취소하려고 했었는데 차마 그러질 못해서 비몽사몽 상태로 인터뷰를 했다는 거야.”

어떤 사정인지는 대략 알 만하다. 하지만 그 인터뷰를 본 네티즌들은 유 감독이 그 인터뷰를 하기 전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잠을 얼마나 못 잤는지는 관심 없다. 그 말이 진짜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건 알겠구요. 중요한 건 유 감독이 정말 기사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말했냐구요.”

“에휴… 내가 그 기자랑 방금 전에 직접 통화했는데 녹취 땄다더라.”

망했다. 물론 쫄딱 망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대박을 칠 수 있는 영화가 그저그런 흥행성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이 작품에 기대를 한 모든 관계자들에게 있어 망한 거나 다름없다.

“이런 씨…”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김 대표가 화나는 건 알겠는데, 지금 나가는 거에는 큰 영향 없을 거야.”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관객들 중에 여성 관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보통 액션 영화라고 하면 남자들만 볼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유정완 감독의 인터뷰는 그 여성 관객들을 모두 된장녀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이런 인터뷰를 본 남자들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평소 그의 여성관이 적나라하게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이 흥행에 찬물을 끼얹게 된 상황인 것이다.

“조, 조금은 있겠지?”

“조금이 아닐 겁니다. 스크린 독점이다 뭐다 욕 많이 먹었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정말 제대로 망할 뻔 했습니다.”

오히려 처음에 욕을 들어먹더라도 스크린 독점을 했던 게 이제 와서는 그나마 손익분기점까지 다다르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됐다.

“김 대표,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제가 너무 오버하는 거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고, 왜 그런 인터뷰를 해가지고는… 김 대표,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일단 내일 아침에 무조건 사과 기사 내야죠. 그런 뜻이 아니었다. ‘기자가 내 말을 오해한 것이다. 일단 이런 논란을 야기한 것만으로도 너무 죄송하다.’ 이런 식으로 가야 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침묵하고 있으면 진짜 훅 가는 수가 있어요.”

“후우… 그래, 내가 유 감독한테 말 잘 해볼게. 끊자고.”

그의 목소리가 축 쳐진 것이 조금 안 돼 보였지만 지금은 우리 지나 문제가 더 급하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1시간 전까지만 해도 발그레한 얼굴에 꽃 같은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우울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후… 내일 기자들한테 사과문 돌릴 거야. 그거랑 돌아가는 상황을 좀 보고 판단해보자. 벌써부터 그렇게 세상 무너진 것 같은 얼굴 할 필요 없다.”

말로는 그렇게 달랬지만 속으로는 이미 이 영화는 600만은 절대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500만도 힘들 수 있다.

물론 500만도 그렇게 나쁜 성적인 것 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 흥행성적을 거둘 거라면 지나를 그 고생시켜가며 찍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잘 해결 될까요?”

“잘 될 거야. 걱정 마.”

속이 탔다. 지나는 자신의 회사로 와서 아직 대박을 낸 적은 없었다. 그 전에 드라마가 잘 되긴 했지만 대박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태클이 들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회식을 마무리 하고 오피스텔로 들어와 다시 인터넷에 접속하니 파문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유정완 감독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여]

[영화계에서 여배우들의 위치를 그대로 보여준 유 감독의 인터뷰]

[유정완 감독은 정말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일까?]

보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기사들이다. 은하가 무너지는 건물에서 탈출하다시피 기적적으로 아수라판에서 나오며 정말 행운의 여신이 자신을 보호하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에 좋은 일만은 없고 또 나쁜 일만도 없는 법이니까.

아침에 출근하니 이미 유정완 감독의 해명 기사가 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인터넷 카페와 SNS를 중심으로 ‘붉은 여우’의 관람 거부 운동까지 들어간 상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안 좋았다.

오죽했으면 은하한테까지 문자가 왔다, 지나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은하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사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거다.

그렇게 멍하게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데 지금 샵에 있어야 할 진명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대표님, 지금 지나 메이크업 받으면서 울어요. 하아…”

점심 전에 인터뷰가 있어 메이크업을 받아야 하는데 울고 있다는 진명의 말에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해져 왔다.

단순히 영화로 돈을 덜 벌어서 우는게 아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찍으며 고생했던 것들이 떠올라서 울었을 거다.

이렇게 되니 애초에 이 작품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잘 달래줘.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 내가 무조건 다음 작품은 내박 터뜨릴 테니까 울지 말라고. 알았지? 내가 장담한다. 다음에는 무조건 대박 터뜨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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