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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나도 내가 무섭다니까!(4)
“기사요? 무슨 기사요?”
지여울 피디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다들 알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도준혁이 성폭행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데요.”
“예? 뭐라구요?”
믿을 수가 없어 순간적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놀랐는지 얼른 핸드폰을 열어 기사를 검색했다.
“나도 한번 보자.”
어깨를 들이밀어 그녀가 찾은 기사를 보니 포털 대문 가장 첫 화면에서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단독)도준혁, 술집에서 성폭행 혐의로 검찰 고발]
“헐…”
기사를 읽어나가는 은하의 눈이 바쁘다.
“대표님, 저랑 이야기 좀…”
지 피디가 다가와 속삭였다.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니 은하도 따라 일어난다. ‘너는 왜?’ 하는 눈빛을 쏘아 보내자 그녀는 퉁명스레 말했다.
“나 빼놓고 비밀 이야기 하지 마. 나도 들을 거야. 뭐해? 얼른 움직여. 언니 기다리잖아.”
그간 은하는 지여울 제작 피디와 몇 번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원체 같은 여배우들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기에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은하는 지 피디가 자기랑 아주 잘 맞는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 술자리 후 은하는 지 피디를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보기 좋아 보여 회사에서 그렇게 불러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그, 그래.”
지 피디가 회사 내부에 있는 작고 조용한 회의실로 그들을 이끌었다.
“혹시 아셨던 거예요?”
의자에 앉자마자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게 꼭 점쟁이에게 점 보러 온 사람 같다.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진짜요? 너는 알고 있었니?”
“나도 몰랐어. 뭐, 그런데 그 때도 그렇고 항상 재수 없이 굴어서 어디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다닐 것 같긴 했는데, 술집이라고 했으니까 분명 룸싸롱에서 여자 끼고 놀다가 저랬겠지? 맞을 거야. 백퍼다, 백퍼! 또라이 같이 보이긴 했는데 저럴 줄은 몰랐네.”
은하는 지금껏 못했던 말들을 속풀이 하듯 악담을 연달아 쏟아냈다.
“야… 진짜 김 대표님 신들린 거 아니에요? 이게 뭔 일이래? 진짜 막 이런 게 꿈에서 보이고 이랬던 거 아니죠?”
“진짜, 오빠 좀 수상한데? 작품을 잘 보는 걸 떠나서 이것까지 예측한다는 건… 이러다 갑자기 산 속으로 들어가서 작두 타고 있는 거 아니야? 나 완전 불안해.”
이제는 은하 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인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네가 싫다고 해서 깐 거잖아.”
“그렇긴 한데, 회사 대표의 입장에서 김은선 작가를 너무 쉽게 까니까 그 때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긴 했었거든.”
“나도 어처구니없어. 그냥 너 연기하는 거 힘들까봐 깐 거야.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나도 내가 무섭다니까!”
“완전 무당이네, 무당이야.”
은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묘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김은선 작가 쪽은 뭐래요?”
“뭐, 별 수 있겠어요?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을 테고, 아마 거기는 부도난 회사처럼 전화기 선 뽑아놓고 대책회의나 하고 있겠죠. 사실, 이쯤 되면 대책 회의도 별거 없어요. 그냥 도준혁 소속사에 계속 전화해서 상황만 알아보는 거죠. 어떻게든 그 기사가 틀리기를 바라면서…”
“뭐, 그렇긴 하겠네요.”
“와… 근데 진짜 생각할수록 대단하네요. 이거 완전 데스티네이션 아니에요? 꿈에서 보고 딱 사고 날 자리 피하는 거, 우와… 나 이 기사 보고 너무 놀라가지고 막 팔에 소름이… 이거 보여요?”
지 피디는 자신의 팔을 보여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진짜 그녀의 팔에 닭살이 돋은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어머 어머, 언니 팔에 진짜 소름 돋은 거 봐.”
은하는 그걸 또 받아서 서로 수다를 떨어댄다.
원래는 대본 연습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은 모든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기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휴식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다시 기사를 검색하는데, 단독기사 이후 후속 보도들이 경쟁하듯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도준혁, 성폭행 여성 진술 신빙성 여부가 중요]
[도준혁이 갔던 술집은 현재 룸싸롱 영업 중인 걸로 확인]
[도준혁, 룸싸롱 얼마나 자주 갔나?]
[김은선 작가의 ‘사랑과 영혼’ 이대로 주저앉나?]
후속보도의 내용을 보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도준혁은 평소에도 친구들과 룸싸롱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때 만났던 그의 파트너를 은밀한 곳으로 데리고 가 성폭행 했다는 것이다.
그 진술이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어 검찰에서도 도준혁을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라는 게 기사의 내용이었다.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은 더욱 가관이었다. 아직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그는 룸싸롱 죽돌이가 되어 매장될 판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유은하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난 유은하가 ‘사랑과 영혼’을 깔 때부터 이상했음.]
[나도 유은하가 바보 같은 결정 했다고 생각했는데… 헐…]
[과연 유은하가 이걸 알고 거절했을까? 나는 무척이나 궁금하네.]
사실 이런 댓글이 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빠져나오긴 했다.
“이야… 기사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네.”
“난 이 새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어. 뭐? 귀공자? 한국의 레이나르도 디카프리오? 얼어 죽을… 눈이 다 삔 거 아니야?”
“사실 나도 걔 느낌이 안 좋더라.”
“그쵸, 언니. 하여튼 내가 감이 좋긴 한 가봐. 난 걔 딱 처음 볼 때부터 눈빛이 마음에 안 들더라구. 뭐라 해야 되지? 막… 미친놈 같은?”
“아하하하!”
“웃을 게 아니라 진짜 그런 느낌이었다니까. 나는 막 소름 끼치고 그랬는데 다른 여배우들은 전혀 안 그랬나봐. 그러니까 내가 미친년 취급받았지. 아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아.”
“그렇긴 하다. 그 때 기사에서 너 얼마나 비꼬았니? 우리야 좋았지만 난 보기 좀 그랬어.”
“언니는 내 마음 알지? 나 그때 진짜 쪽팔리고 속상했잖아.”
이러는 와중에 놀랍게도 김은선 작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웬만하면 전화하지 않을 텐데 오죽 궁금했으면 전화했을까 싶어 일단 받았다.
“여보세요?”
“김 대표님, 지금 기사 뜬 거 봤죠?”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 역시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녀는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다.
“네, 저도 방금 봤습니다. 당황하셨겠네요.”
“하하하! 당황이라… 그래요, 저 지금 무척이나 당황스러운데 너무 궁금해서 말이죠. 제가 지금 손이 막 떨리거든요? 그래서 번호를 누르는데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눌렀어요. 그만큼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그런데… 김 대표님, 혹시 알았어요?”
솔직히 자신이 그녀 입장이라도 의심할 만하다. 아니, 의심이 아니라 확신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지 않은가?
“몰랐습니다.”
“제가 지금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몰랐어요. 제가 그 친구하고 술을 마신 사이도 아니고,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어떻게 도준혁을 보고 경기 일으키듯 나갈 수가 있어요?”
“경기 일으키듯 싫어한 건 제가 아니라 은하였어요. 그러게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은하는 걔랑 처음 연기할 때부터 싫었대요. 그래서 이번에 만나게 되니까 아예 작품을 안 하면 안 했지 걔랑은 절대 마주보고 대사 칠 수 없다고 하길래 작가님께 그렇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때 작가님 뭐라고 하셨어요?”
“…”
할 말이 없겠지. 그 때 자신과 은하를 미친놈 취급했던 걸 그녀도 똑똑히 기억할 테니 말이다.
“그 때 참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저희도 난감했는데 뭐, 작가님은 설득은 고사하고 대뜸 기사부터 내셨죠?”
“김 대표님, 느낌이 안 좋다고 상대 배우를 까달라는데 그걸 그대로 받는 작가가 어디 있어요?”
“맞아요. 그래서 충분히 설득 하려고 했는데 뭐… 서로간의 입장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해합니다. 어쨌거나 지나고 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러니까 정말 몰랐다는 거죠? 후… 난 정말 믿을 수가 없어서.”
“네, 진짜로 몰랐습니다. 내가 무슨 경찰 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정원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그게 그렇게 유명한 일이면 지금껏 광고는 어떻게 찍었겠어요?”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문제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바로 광고시장이다. 만약 해당 연예인이 이 정도까지 문제가 있다는 걸 광고주가 알았다면 결코 그를 모델로 기용하지 않을 것은 불문가지.
지금 ‘사랑과 영혼’ 제작팀에도 폭탄이 떨어진 거지만 도준혁이 모델로 활동하는 브랜드 업체 역시 폭탄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도준혁 소속사는 핵폭탄이 떨어진 것이고.
“하… 알겠어요. 그냥… 김 대표님 운이 하늘까지 닿았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거죠? 하하하! 내 참… 이만 끊어요.”
전화를 끊고 나니 은하와 지 피디의 눈이 자신을 향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려달라는 거다.
“별거 아니야. 김 작가도 궁금했겠지. 내가 정말 알고 그런 건지 말이야.”
“흥! 웃겨 아주… 알면? 알고 했으면 어쩌려고?”
은하는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끼었다.
“알았으면 상도의에 어긋난다 그거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아니야? 설사 오빠가… 아니, 대표가 알았다고 쳐. 그런데 그 때는 경찰에서 수사하기 전일지도 모르잖아. 혼자서 소문으로 듣고 알았으면 그걸 어떻게 김 작가한테 말해? 그것도 단순히 백화점 가서 옷이나 훔치는 도벽도 아니고 룸싸롱 가서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는 파렴치한 놈이라고 말하면? 대표만 미친놈에 또라이 되는 거 아냐?”
그것도 듣고 보니 그렇다. 괜히 김은선 작가에게 아주 잠시나마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맞네, 맞아. 그건 은하 말이 맞네요.”
지 피디도 은하의 말에 동조한다.
“그치, 언니? 하여튼 대표는 좀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해야 할 필요가 있어.”
“야, 너 웃긴다. 내가 강하게 나갔으니까 김 작가 작품을 깠지.”
“…”
은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물을 마신다. 하여튼 자기가 불리하면…
“어쨌든 ‘사랑과 영혼’ 큰일 났네요. 어제 대본 리딩한다고 기사까지 났는데, 그 사진 봤어요?”
“아뇨, 안 봤죠. 너도 안 봤지?”
“나도 열 받아서 안 봤지. 도준혁은 물론이고 한여름도 짜증나잖아. 내가 보기 싫은 애들 쌍으로 나오는 걸 왜 보고 있겠어?”
“하긴… 네 성격에 그 기사를 보고 있을 리는 없지.”
“그런데 지금은 보고 싶네? 히히히.”
은하는 포털에서 어제 대본 리딩 기사를 찾아내고는 통쾌하다는 듯 그들이 나온 사진을 보며 혼자서 히히덕거렸다.
“아이고, 이때는 행복하셨쪄요? 하하핫!”
지 피디도 못 말린다는 듯 웃다가 같이 동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KBC의 양 국장이다.
“아…”
“왜요? 누군데요?”
“KBC 드라마 국장이요. 분명히 나 죽는다고 우는 소리 할 텐데…”
통쾌하긴 한데 영 귀찮은 일들이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