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99화 (19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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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나도 내가 무섭다니까!(1)

하차 기사가 나간 후의 후폭풍은 은하가 캐스팅 됐다는 기사보다 훨씬 강력했다. 단순히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는 게 아닌 김은선 작가의 작품을 거절하고 신인 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는데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거 좋아해야 할지 부담스러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현과 은하는 기사가 나간 후 이번에 들어가게 될 영화의 감독을 만나러 나왔다. 지금 그들의 앞에 앉아서 머리를 긁적이는 이는 이번 영화를 연출하게 될 박우진 조감독이다. 앞으로 감독직을 맡게 될 테니 감독(진)이라고 해야 하나?

나이는 이제 30대 초반에 유은하를 만나러 온다고 말쑥하게 차려입긴 했는데 물 먹는 손도 가늘게 떨리는 게 영 믿음이 안 가긴 한다.

“좋게 생각해요. 벌써 우리 영화가 포털 사이트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잖아요?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아세요? 우리 지금 완전 찬스라구요.”

옆에 앉은 지여울 제작 피디가 그의 부담을 덜어주려 분위기를 띄운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시나리오는 잘 봤습니다. 인상 깊던데요?”

우현의 말에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아, 감사합니다.”

“시나리오를 쓰실 때 무엇에 중점을 두고 쓰셨습니까?”

“대한민국에도 제대로 된 첩보, 스릴러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액션이나 말도 안 되는 억지전개가 아닌 정말 잘 짜여진 각본 같은 느낌. 이를테면 본 시리즈 같은 긴장감과 속도감에 중점을 뒀죠.”

처음 시나리오를 보며 느꼈던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적어도 이 친구는 자신이 뭘 하려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액션영화를 찍고 싶었을 텐데, 주인공을 왜 정신병 걸린 여자로 했습니까?”

“식상하잖아요. 뭔가 비밀을 잔뜩 품은 주인공이 남자인데 조폭과 국정원에 쫓긴다. 너무 많이 나왔던 이야기라… 물론 제 시나리오도 그리 신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피해망상증에 걸린 것 같은 여자가 조폭과 국정원을 상대로 벌이는 머리싸움은 좀…”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네요. 제가 알고 있기론…”

“맞습니다. 그래서 나름 신선하게 가보자 해서 만든 겁니다.”

“아직 조감독이신데, 이 작품으로 데뷔하게 되는 거 잖습니까? 이거 분명 많은 투자금이 들어갈 작품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대박 블록버스터가 되는 건데, 잘 하실 수 있겠어요?”

이 작품 역시 못해도 7, 80억은 족히 들어갈 거다. 그것도 최소로 잡은 것이고 액션이 추가된다면 100억은 우습게 들어갈 거다.

보통 이런 대작 영화는 입봉도 못한 초보 감독에게 맡기지 않는다. 우선 배우들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투자자들이 꺼려한다.

그들도 확률이라는 걸 생각하고 투자하는데 아예 전적이 없는 감독은 감을 잡을 수 없으니 일단 꺼리고 보는 거다.

“솔직히 이걸 제가 쓰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이 작품으로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믿지 못 하실 거라 생각해서… 하하! 하지만 만약 믿어만 주시면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얼빵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그의 눈빛을 보니 믿어도 되겠다 싶다. 물론 이건 순전히 느낌일 뿐이다. 정확한 건 그가 연출한 작품을 봐야 하지만 없으니 뭐…

“그럼, 잘 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그런데… 투자를 받기가 수월할지…”

박우진 조감독이 입술을 깨물며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여울 피디가 그의 어깨를 강하게 때렸다.

찰싹!

“아우!”

“아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우리가 신경 쓸 테니까 감독님은 작품만 잘 만드시면 돼요. 감독이 돈 걱정하며 찍은 작품 중에 잘 나온 작품 없으니까 일단 스타트 끊으면 작품에만 신경 쓰세요.”

“아, 하하. 알겠습니다.”

어색하게 웃는 박우진 감독에게 은하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제가 캐스팅 된 거 알면 투자자들이 아주 거부하지는 않을 거예요. 중요한 건 다음 캐스팅이 누가 되냐는 거죠. 이후 캐스팅만 괜찮으면 투자는 의외로 쉽게 진행 될 수 있어요.”

“하하하! 은하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확 안심이 되네요.”

아무래도 연출은 모르지만 평소 성격은 좀 가벼워 보이는 듯하다. 아무렴 어떤가, 영화만 잘 만들어 준다면 서른 넘어서 사춘기가 다시 온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인데.

“그럼 기사는 저희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없으시죠?”

지 피디는 오늘 미팅이 아주 만족스러운지 연신 웃음을 지었다. 드라마만 작업하다가 영화를 한다고 하니 또 다른 도전 의식이 생겼다나 뭐라나. 하여튼 이 중에서 가장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 이가 바로 지 피디다.

“네. 아,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혹시 남자 주인공을 누구로 하실지 생각 하셨나요?”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국내로 마약을 들여온 조폭을 취재하던 기자인데 얼떨결에 그녀와 함께 행동하게 되는 역할이다.

영화 자체가 여주인공 원탑 영화라서 톱스타급 배우는 출연이 힘들 거라 예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배우가 캐스팅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글쎄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어서요. 사실 이걸 한다고 결정지은 게 어제잖아요. 저도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 기다려주세요. 좋은 소식 가져올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 피디님만 믿겠습니다.”

미팅을 마무리하고 은하를 집에 내려주고선 바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제 데뷔하게 되는 파이브 걸즈 때문에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파이브 걸즈 뮤직비디오를 찍기에 앞서 새로 뽑힌 코디네이터가 아이들의 스타일 컨셉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기로 해, 회의실로 내려가니 경수를 비롯해 다들 모여 있었다.

“홍보팀이랑 협력업체에 일을 많이 넘겼다고는 해도 우리 회사에서 걸그룹은 처음이라 경수 네가 하나 하나 다 알아보고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다. 회사 식구들이 많아지니 바빠서 내가 파이브 걸즈를 많이 못 챙기고 있네.”

“하나씩 발로 뛰면서 배우는 거죠. 배우는 것이 많아서 일하면서도 보람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진행비만 잘 결제해주시면 됩니다, 흐흐”

“역시 돈 잘 쓰는 상사가 최고지? 걱정 마, 능력되는 대로 밀어줄 테니까.”

“흐흐, 믿겠습니다.”

경수는 가끔씩 나오는 특유의 능글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파이브 걸즈나 유니나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소녀들이지만 싱어송라이터이자 솔로인 유니와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파이브 걸즈는 조금 다르다.

솔로보다 그룹은 색깔이 더 확실해야한다. 한마디로 컨셉이 눈에 띄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솔로도 앨범마다, 그리고 곡마다 컨셉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룹보다는 약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파이브 걸즈 담당 스타일리스트를 얼마 전 새로 채용했다. 다섯 아이들을 담당해야 하므로 조금 더 신경 써서 알아보던 차에 아이돌그룹을 담당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두 명을 뽑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래요. 혜미 씨는 그 헤어스타일 덕에 멀리서도 알아보겠네요.”

오혜미. 20대 중반으로 모 걸그룹 데뷔 때부터 수년간 함께 해왔던 친구인데 밝은 갈색의 긴 머리에 꼭 푸들처럼 펌을 해서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하하, 다들 그렇게 말해요.”

또 한 명은 진주하. 20대 후반으로 여러 배우들과 걸그룹 스타일을 담당했던 경력이 있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유부녀다.

“주하 씨는 일을 다시 하려니 조금 피곤하겠어요?”

“몇 달 동안 푹 쉬어서 괜찮아요.”

수더분한 웃음을 짓는다.

스타일리스트, 일명 코디라고 하면 전문가답게 그녀들의 패션도 굉장히 화려할 것 같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코디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옷차림에 화장도 잘 안 하고 다닌다. ‘코디’는 자신보다는 자신의 연예인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직업’인 거다.

“여기, 시원한 아이스커피 마시면서 하세요.”

경수가 미리 준비한 커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컴퓨터에 USB 꽂으면 될까요?”

“네, 그러세요.”

“준비를 많이 했나보네.”

“아, 그런 건 아닌데… 사진이 좀 많아요.”

두 사람은 회의실 앞쪽에 화면을 띄우고 준비된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단 파이브 걸즈 노래가 ‘쎈언니’ 느낌이기 때문에 의상 컨셉은, 눈에 띄는 선명하고 화려한 컬러로 갈 거예요. 액세서리도 골드를 많이 쓸 거구요.”

“그래요. 우와, 저거는 호피무늬 쫄바지인데?”

“그건 민지아 의상이에요. 춤 동작이 화려하고 어렵더라구요. 또 유연성도 많이 필요해 보이고. 그래서 쫄바지가 잘 어울릴 거예요. 무대에서는 호피무늬가 화려하고 눈길을 끌 거구요.”

“유니의 아기자기한 의상만 보다가 저런 옷을 보니 어떻게 소화할까 싶네.”

“그러게요. 엄청 파격적이네요. 저도 배우들 옷만 봐와서 낯섭니다.”

우현과 경수는 예상보다도 더 쇼킹한 옷들에 입을 떡 벌렸다.

“후훗, 처음엔 너무 하다 싶어도 계속 보다 보면 적응되실 거예요. 화려한 무대세트랑 조명 때문에 나중에 화면 보시면 옷이 화려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드실 거예요.”

“으음, 그래요.”

“여기, 랩을 하는 양지현의 액세서리는 조금 더 크고 굵직한 것들이 많아요. 그리고 한미소 의상이 그나마 덜 쎄 보이는 거예요.”

“그렇네. 좀 예쁜 옷들이네.”

“센터니까요. 패완얼이죠. 한미소는 얼굴이 예쁘니까 가장 예쁘게 보일 수 있는 패션으로 해줘야 해요.”

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현수와 강미래는?”

“채현수는 가장 중간 정도의 의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의상들이 현수가 입을 의상이에요. 그리고… 가장 고민이 됐던 멤버가 강미래인데요…”

진주하가 말을 받았다.

“메인보컬인데 키가 크고 덩치도 있고… 다이어트 중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아직 조금 더 빼야겠더라구요. 또 춤에도 조금 자신이 없다고 해서… 이게 강미래 의상입니다.”

사진이 넘어가자 우현과 경수는 다시 한 번 입을 떡 벌렸다.

번쩍번쩍 스팽글로 도배된, 아주 타이트하게 몸에 붙는 초미니 원피스다. 엉덩이만 가린 길이라서 카메라가 바닥에서 잡으면 밑이 보일 것 같은. 게다가 가슴도 시원하게 파였다.

“저걸 미래가 입을까요?”

“입으라 하면 입기야 하겠지만… 쎄네.”

“살집이 있을수록 가리지 말아야 하는 법이거든요. 가릴수록 더 둔해 보여요. 팔 다리를 많이 내 놓을수록 춤을 조금 못 춰도 티가 덜 난답니다.”

“뭐, 아이돌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긴 하겠는데,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닌가? 밑이 다 보이겠어.”

“요즘 속바지 보이는 건 노출도 아니에요. 의상의 일부라고 보시면 돼요. 오늘 보신 의상들은 기존에 나와 있는 의상들을 찍어온 거구요. 협찬으로 받아오는 것들도 있을 거고 또 저런 컨셉으로 제작해서 아이들 입히기도 할 거예요.”

다시 오혜미가 받을 받는다.

“대표님과 매니저님이 너무 낯설어 하시니까 며칠 내로 뮤직비디오 의상 확정해서 아이들 피팅 시켜볼게요. 그때 한 번 보시죠.”

“그래요. 눈으로 보는 게 아무래도 낫겠죠.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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