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97화 (197/301)

=======================================

[197] 누가 진짜 귀신인가?(2)

기분이 나쁠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투자자나 제작진도 아니고 여주 소속사에서 상대 남자배우를 까려고 하는 건 최소한 김은선 작가 작품에서는 거의 없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기분 상하실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저희 쪽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어째서요? 도준혁이면 대한민국 톱급 배우예요. 연기력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저는 대표님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으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은하랑 도준혁이랑 전작에서 조금… 뭐라고 해야 하나…”

“일종의 썸이 있었다는 건가요?”

“일방적인 썸이 있었다고 얘기하는 게 맞겠네요. 불편하다고 합니다, 은하가.”

“하아… 그것만으로 도준혁을 깐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건 알죠? 작품 하다보면 남녀 주연들 사이에 감정 생기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렇게 좋아 죽겠다고 대사도 치고 엉겨 붙기도 하는데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정이 안 생길수가 없잖아요? 물론 연기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가지고 트집 잡아서 상대를 까내리면 안 되죠.”

“단순히 좋아해서 호감을 표시한 정도면 저희도 넘어 갑니다. 하지만 도준혁은 정도가 심했다고 해요.”

“어느 정도나요?”

“그건…”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나? 자신이야 은하를 믿으니 그렇다고 하면 그렇겠구나 하겠지만 말이다.

우현의 능력은 상대가 얼마나 시장에 잘 통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것으로 상대의 인성을 파악할 수는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사고 칠만한 기획사를 피해 주식으로 대박 냈겠지.

“대표님, 내가 솔직하게 말할게요. 지금 이 바닥 주변 평판들로 보자면 도준혁 보다는 유은하 씨가 더 말이 안 좋게 돌아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것과 다르죠. 은하는 위협을 느꼈다고 해요.”

“아하하하! 아이고, 대표님. 은하 씨한테 너무 휘둘리시는 거 아닌가요? 한 회사의 대표가 소속 배우한테 너무 휘둘리면 안 되죠.”

쉽게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나오니 슬슬 열이 올라온다.

은하는 까탈스럽고 예민하지만 결코 없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특히 일에 관련 되어서는 말이다.

“휘둘리는 게 아니라 소속 아티스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겁니다. 그리고 은하가 무슨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지금껏 작품하면서 단 한 번도 상대 배우를 가린 적 없습니다. 지금이 처음이라구요.”

무겁고 진중하게 이야기했지만 김 작가는 여전했다.

“아휴, 대표님.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배우를 봐왔는지 아세요? 도준혁 그 친구 그렇게 매너 없지 않아요. 물론 지금까지 많은 여배우들이랑 열애설이 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부적절한 소문은 없었다구요. 왜 유독 은하 씨만 그런대? 요즘 작품 앞두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요?”

어찌해야 할까? 도무지 설득이 되지 않는다. 보통 이 정도까지 하면 ‘생각해보겠다’, 또는 ‘한번 알아보겠다’ 정도가 나와야 할 텐데 그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절대 도준혁에게서 다른 이로 바꿀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제가 그 정도도 모를까봐 그러십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네요. 하여튼 저는 은하 씨가 하는 말도 믿기지 않고, 더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아요.”

“흐음… 알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그러세요.”

쌀쌀맞은 그녀의 목소리. 전화를 끊고 나니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올랐다.

똑똑…

“대표님?”

경수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요즘 파이브 걸즈 때문에 바빠 한동안 얼굴도 보기 힘들었었다.

“어, 그래. 들어와.”

“무슨 일 있으셨어요? 목소리가 안 좋으시던데…”

“은하 작품 들어가는 것 때문에 좀 트러블이 있네. 그건 그렇고 왜?”

“아뇨, 그냥 오늘은 좀 시간이 남아서 한번 올라와봤습니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스케줄 없으시면 같이 점심이라도 하려고… 헤헤.”

새끼, 또 얻어먹으려고… 뭐, 혼자 먹으면 심심하니 사주더라도 같이 먹는 게 좋긴 하다.

“애들은?”

“뭐, 언제나 그렇듯 지금 안무실이랑 녹음실에서 한창 연습하고 있죠. 일단 일은 전부 홍보팀이랑 협력업체 측에 넘겼기 때문에 결과 나오면 대표님께 들고 오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할 일이 없다는 말인데…

“너, 내가 일 하나 시킬 테니까 한번 알아보고 와라.”

“네? 무슨 일이요?”

모처럼 여유가 생겼는데 우현이 일 하나를 던지니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재작년에 제작 들어간다던 ‘살수’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게 엎어졌다가 지금은 어째 아무 말도 없거든. 그거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 너 영화 쪽에 아는 인맥 있다고 했지?”

“친구가 조감독으로 있긴 한데… 알까요? ‘살수’라면 저도 기사로는 몇 번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럼 ‘타이거 스튜디오’측에 한번 물어봐. 내가 전화하면 너무 진지하게 묻는 거 같으니까 네가 직원한테 슬쩍 물어봐. 만약 모른다고 하면 CS 쪽에다 물어보고. 내가 알기로 제작을 그쪽에서 한 것 같거든?”

“그럼 바로 CS에다 전화하면 되지 않아요?”

“그럼 우리가 관심을 보이는지 바로 알잖아.”

“아…”

“일단 타이거 측에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면 CS에다가 물어봐.”

“알겠습니다.”

보내놓고 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경수가 다시 모습을 보였다.

“벌써 알아봤어?”

“네, 꽤 유명한지 타이거 측에서도 내용을 잘 알고 있던데요?”

“뭐래?”

“재작년부터 제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게 시나리오를 쓴 작가랑 연출가가 따로 있더라구요.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었어요.”

“그래? 그래서?”

“타이거 직원이 말하기로, 시나리오를 쓴 작가랑 연출가랑 서로 의견이 달랐다고 알고 있대요. 거기서 또 문제가 된 게 투자자는 연출자 편을 들고, 제작진은 시나리오 작가 편을 들었대나 봐요.”

“개판이었네?”

안 봐도 비디오처럼 대강 어떤 상황이었을지 그려진다.

연출자를 바꾸자니 투자자까지 날아갈 상황이고 시나리오를 수정하자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내용이 산으로 갈 것을 우려했을 거다.

“그렇죠. 그래서 제작이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자를 바꾸니 마니 하면서 지금까지 끌고 왔대요. 처음에 제작 시작했던 CS는 이미 손 뗐고 연출자는 다른 영화 계약한다고 그 역시 손 뗐다네요. 시나리오만 붕 뜬 상황이라는데 도준혁도 연출자가 손 뗄 때 같이 손 털었대요.”

“흐음… 도준혁이 아예 그 영화를 놓은 게 확실한 거네.”

“그렇죠. 그런데 이거 왜 알아보라고 하신 거예요?”

“응, 이번에 은하 들어가는 작품에 도준혁이가 남주로 결정될 것 같아서 한번 알아봤어.”

경수는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알려주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그 시나리오 작가가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는데 그게 ‘도마뱀 미디어’리고 하더라구요.”

“도마뱀에서 그걸 받았다고?”

이미 우현의 파인 엔터와 여러 차례 작품을 같이 한 ‘도마뱀 미디어’는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더 주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그걸 받았다는 걸까? 설마 그걸 드라마로 할 리는 없을 테고 말이다.

“네, 각색하고 드라마로 만들려는 거 아닐까요?”

“드라마로 만들 게 따로 있지. 그거 무협 영화 시나리오 아니었어? 그걸 드라마로 만들었다간 잘못하면 피박에 광박까지 쓰는 수가 있어.”

무협은 기본적으로 사극과 궤를 같이 한다. 무슨 말이냐면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이다. 온갖 특수분장에 세트장, 의복 이런 게 다 돈이다. 거기에 무협이라면 살벌한 액션이 필수적인데 그것도 돈이다.

문제는 이렇게 돈을 써도 우리나라에서는 무협 영화나 드라마가 성공한 적이 별로 없다는 거다. 몇몇 성공한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희박한 경우다.

경수랑 점심을 먹고 들어와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전화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던 거다.

“어머, 대표님이 어쩐 일이세요? 요즘 목소리도 까먹겠어요?”

“잘 지냈죠?”

전화를 받은 이는 지여울 제작 피디다.

“잘 지내긴 했죠. 뭐, 언제나 피곤에 쩔어 살긴 하지만…”

“하하하, 그래도 몸 생각하면서 일하셔야죠. 뭐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드렸는데…”

“어쩐지… 갑자기 전화가 왔다 했네요. 뭐 때문이신데요?”

“혹시 ‘살수’라는 시나리오 거기서 받았나요?”

“어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기사나 안 나간 건데?”

“그거 영화로 만들 생각이에요?”

“흐음… 이거 아직 비밀인데, 제가 대표님이니까 말씀 드릴게요.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영화 몇 편 해보자고 말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로 물망에 올랐어요. 사실 예전부터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말이 많았는데 오래전에 한편 만들었다가 죽 쓰고는 쏙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 김우현 대표님 덕에 돈이 좀 들어오니까 우리 회사 사장님도 욕심이 생기나 봐요.”

“돈 들어온 게 제 덕분이라니 감사하네요.”

“맞는 말이니까요.”

“그거 시나리오 작가가 연출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 이미 다 알아 보셨나봐요? 혹시 이거에 관심 있으세요?”

사실 전혀 관심 없다. 예전에 은하한테 시나리오가 온 적이 있었는데 무협 영화라고 하기에 보지도 않고 거절했던 적도 있을 만큼 무협 장르는 질색이다. 아, 소설은 정말 좋아한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이번에 은하가 드라마에 들어가는데 도준혁이 남주로 물망에 올랐다고 해서요. 제가 알기로는 ‘살수’에 묶여있다고 들었던지라…”

“어머! 도준혁이 이번에 김은선 작가님 작품에 들어간다구요? 대박! 이거 완전 특종이네!”

아직 기사가 나가지 않았기에 그녀는 몰랐던 거다.

“그래서 한번 물어봤던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아, 혹시 연출자는 정해졌어요?”

“후훗! 놀라지 말아요. 이거 연출자로 지금 김지원 감독이랑 어제 미팅까지 끝냈어요.”

“김지원 감독이랑요? 와… 제대로 가네요?”

이미 액션영화로 천만 영화를 찍어 봤던 김지원 감독은 얼마 전에 헐리우드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헐리우드에서도 그의 연출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시나리오 보내 드릴까요?”

“시나리오 작가는 그 김지원 감독이랑 별 잡음은 없대요?”

“와… 모르는 게 없으시네. 어디 영화 제작사에서 이미 소스 다 받으셨죠?”

“크흠…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번에 먼저 제의를 한 게 김지원 감독님이셨어요. 날리기 아까운 시나리오가 있는데 한번 해볼 생각 없냐구요. 그 때 이미 시나리오 작가랑 이야기가 되셨던 거예요.”

“아…”

“미팅할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감독님께서는 이게 엎어졌다는 걸 많이 안타까워 하셨더라구요. 그래서 자기가 맡아서 해보겠다고 하셨대요. 아, 파인 엔터에 남자 배우는 없죠? 아깝다. 여기에 아주 매력적인 남자 조연 하나가 필요한데…”

슬슬 미끼를 던지는데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그럼 어디 그 시나리오나 한번 봅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