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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누가 진짜 귀신인가?(1)
유니의 콘서트 준비를 위해 홍대 소극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게 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찾기 시작하니 적당한 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소 300명은 들어 올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관객들이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 전에는 끝나야 되구요.”
유니의 요구조건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막상 그것에 맞춰서 진행하려니 수월치가 않았다. 일단 홍대 소규모 공연장에는 이미 힙합 공연이다 뭐다 해서 많은 스케줄이 잡혀 있었고 거기에 맞춰 종료 시간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돈이 없어서 못 구하는 건 아니다. 소규모로 하니 그것에 맞춰 적당한 분위기와 규모, 시간을 동시에 충족시키려고 하니 어려운 것뿐이다.
“그래도 딱 하나 적당한 게 있어서 구하긴 했습니다. 시기는 8월 10일 이구요. 저녁 6시에 시작하는 스케줄인데 마침 전철역도 가까워서 관객들이 오기에도 부담 없을 자리더라구요.”
민주는 무엇인가가 빼곡히 적혀있는 손바닥만 한 수첩을 들고 말했다.
“수고했어요. 조금 더 빨리 하려고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나봐요?”
8월 중순이지만 그것도 늦는다고 유니가 한 소리 할 게 뻔했다.
“네, 이미 다른 공연들은 꽉 차 있다고 하네요.”
“어쩔 수 없죠. 아, 그리고 파이브 걸즈 뮤직비디오 촬영은 스케줄 잡혔나요?”
“다음 주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제작은 주로 SN 쪽 아이돌을 만들던 감독인데 실력도 상당하고 금액도 상당하다고 하네요. 오늘 오후에 재훈 씨가 자세히 설명할 거라고 하던데요?”
재훈이라는 친구는 며칠 전에 관리팀 직원으로 새로 뽑은 사람이다. 전에 제약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했다고 들었는데 일을 시켜보니 빠릿빠릿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요? 흐음… 알았어요.”
민주가 나가자 지금 한창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 있을 유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앗! 대표님!”
“그래, 너 소극장 콘서트 일정 잡았다. 8월 10일 6시야. 3백 명 규모고 자세한 사진이나 위치는 있다가 직원 오면 설명해준다네.”
“우아… 감사해요. 쪼끔 늦는 듯한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잡아 주셨으니 이제 콘서트 대비해서 준비 좀 해야겠네요.”
“준비랄 게 뭐 있나? 노래야 하던대로 부르면 되는 거구, 어차피 너 앨범에 11곡 있으니 그것만 불러도 두 시간 정도는 후딱 가겠네. 중간 중간 토크도 할 거 아냐?”
“에이, 그것만 할 수는 없죠. 팝송도 준비하고 개인기도 한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게스트 부를 거죠?”
“게스트는 우리 파이브 걸즈 애들 몇 곡 부르게 할 생각인데? 뭐, 한두 개? 컨셉이 안 맞나?”
“아니에요. 내 곡도 장르가 여러 갠데, 아이돌 노래처럼 방방 뜨는 것도 있으면 좋죠. 그리고 남자애들 많이 올 텐데 파이브 걸즈 오면 좋아할 거예요. 굿굿.”
“알았어. 그럼 네가 콘서트 준비는 알아서 해라. 중간에 필요한 거 있으면 세동이 통해서 말해도 되고, 아니면 네가 직접 전화하던지. 공연업체 번호도 알고 있을 거야.”
“아니에요. 부족한 거 있으면 제가 직원들이랑 직접 이야기해서 처리할게요.”
“이제 아주 노련해 보인다?”
“흠흠! 왜 이래요? 저 요즘 잘 나가는 거 아시면서? 흐흐.”
“그래, 푹 쉬면서 올라와. 세동이한테는 피곤하면 휴게소에서 쉬라고 하고. 어차피 오후 스케줄은 여유 있잖아?”
“걱정 말아요. 우리 매니저 오빠는 저보다 본인 건강을 더 신경 쓰시는 분이라…”
그럴 리야 있겠나? 하도 유니가 먹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녀가 간식을 먹을 때마다 눈을 부라리는 지라 저렇게 말하는 거다. 앞에서 운전하는 세동이더러 들으라고 저러는 건데 아마 세동이는 코웃음을 치며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게 분명하다.
“그래, 조심해서 올라와.”
유니 단콘까지 어느 정도 처리하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긴다. 느긋하게 인터넷을 보며 연예기사를 확인하는데, 오늘 기사의 가장 큰 이슈는 ‘내 남편의 여자’ 시청률이 10%를 돌파할까에 관련된 것이었다.
[‘내 남편의 여자’ 울다가 웃다가 빠진다.]
[‘내 남편의…’ 이거 코미디인가요?]
예능 출신 작가라 그런지 코믹적인 부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잘 만든다. 때문에 드라마를 볼 때마다 웃음보가 터진다는 평들이 많은데, 원래 드라마를 웃으면서 보면 구성이 어설퍼도 그 드라마가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걸 모르느냐 하면 아니다. 다른 작가들도 다 잘 알고 있는데 막상 대본으로 코믹적인 부분을 쓰려고 하면 쉽지가 않다.
상황과 대사, 연기로 맛을 살려야 하는데 이게 되려면 대본이 좋아야 하고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코믹 연기가 그냥 보면 쉬워 보이는데 막상 그걸 제대로 할 줄 아는 배우는 많지 않다.
그러니 작가들도 쉽사리 그런 대본을 쓰기가 어려운 건데 이번 ‘내 남편의 여자’에서는 아이돌 출신처럼 발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전혀 없고 전부 중견 연기자들로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고 있기에 이런 좋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 씨! 여기 ‘내 남편의 여자’ 촬영장에 밥차 좀 쏴주세요. 연락처 알죠?”
“알겠습니다.”
밖에 있는 민주에게 부탁하고 실실 웃고 있는데 은하의 매니저인 혜숙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방금 제작사로부터 연락 받았는데요.”
“네, 말해 봐요.”
혜숙이 우현보다 어리기에 말을 놓고 싶지만 아직은 거리를 두고 있다. 은하의 매니저라서 그냥 불편함에 자신도 모르게 높임말을 쓰는 것 같다.
“이번에 KBC 편성 확정 받았다고 해요. 이제 곧 기사 나갈 거라고 제작 실장이 전화 주네요.”
“아, 그래요? 지상파면 더 좋네. 알겠어요. 은하는 지금 운동하고 있어요?”
“운동 끝나고 이동 중입니다. 아, 은하가 대표님이랑 저녁에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하는데요?”
“좋죠. 문자로 위치 보내달라고 해요.”
오늘은 다큐를 찍는 카메라맨이 안 붙는 날이라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알겠습니다.”
이후 유니의 공연장 대여 문제로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나니 금방 시간이 흘러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갔다.
“나 먼저 가겠습니다. 퇴근들 하세요.”
오랜만에 칼퇴근을 하며 약속장소인 일식집에 도착하니 이미 은하와 혜숙이 앉아 있었다. 요새 하도 회를 먹어서 그닥 당기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다이어트 중이라 맵고 짠 음식을 못 먹으니 할 수 없다.
“운동은 잘 했고?”
“뭐, 맨날 하던 거 그냥 하는 거지. 지겨워…”
그녀는 원래 운동을 싫어한다. 아마 연예인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운동과는 연을 끊고 살았을 거다.
“원래 관리가 힘들잖아.”
“알고 있지. 흐음… 실은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쩐지 갑자기 저녁을 먹자고 하는 게 수상했는데… 매니저와 같이 있으니 사적인 부탁은 아닐 거다.
“뭔데? 말해봐.”
“지금 제작사 쪽에서 들리는 말로는 남자주인공으로 도준혁을 밀고 있대.”
“도준혁? 진짜?”
대한민국 톱 남자배우 중 한명인 도준혁은 남성적인 외모와 탁월한 연기력으로 데뷔 후 일찌감치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문제는 도준혁과 유은하는 이미 한번 작품에서 만난 적이 있으며 그 때 은하에게 심하게 들이댔던 전력이 있었다. 물론 그 후 또 다른 여배우와 한 차례 연애설이 불거지긴 했지만 도준혁은 극구 부인했었다.
“아직 확정은 아닌데, 접촉중이래.”
“접촉중이라고 말 나왔으면 시놉은 당연히 건너갔겠네?”
“그건 당연하지. 제작사가 바보도 아니고…”
“도준혁 회사 쪽에서는 무슨 말 나왔어?”
“나도 잘은 몰라. 그런데 느낌이 안 좋아. 알지? 도준혁 근 2년 내에 제대로 된 작품 못 찍고 있는 거?”
안 찍는 게 아니라 못 찍는 건데 그 이유는 그와 굉장히 친한 영화감독이 대작 하나를 준비하면서 그를 캐스팅했다. 그런데 영화가 몇 번 엎어지면서 촬영이 미뤄지다 보니 결국 2년 동안 제대로 된 작품을 못 찍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그럼 도준혁은 그 ‘살수’라는 영화는 아예 안 찍는대?”
인터넷에서도 오래된 떡밥이라 그런지 그런 기사를 볼 수 없었다.
“모르지. 나도 그게 아주 엎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지 않겠어? 대표 같으면 김은선 작가가 콜 해왔는데 2년 동안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있으니 거절할까?”
“나 같으면 2년 동안 배우 놀리지도 않지. 그리고 설사 그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기회를 놓치려 하지도 않을 거고.”
“거 봐.”
“흐음… 내가 알기로 그 때, 걔가 그냥 들이대다가 끝난 거 아니었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그냥, 껄끄러워서 그러지.”
슬쩍 혜숙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화장실 좀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 빠르게 자리를 피해주려는 거다.
“둘이 무슨 사이였던 건 아니야?”
“뭐야? 나 의심하는 거야?”
쌍심지를 치켜뜨고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둘이 무슨 사이가 아니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걔 소문 몰라? 연기할 때 얼마나 치근대는지?”
“그건 알지. 하지만 그걸 이유로 도준혁을 까기에는…”
그와 연기하고 열애설이 안 난 여자 연예인은 은하가 유일하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바람둥이인지 알 수 있는데, 은하는 단지 그것 때문에 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기분이 나빠. 그 새끼는 단순히 수작을 걸거나 싸가지 없는 것과는 달라. 말하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이상하게 기분 나쁘다고.”
은하가 예민한 성격이긴 하지만 없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정말 문제가 있다는 것. 하긴, 김은선 작가 여주로 캐스팅 돼 놓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분란을 만들 이유가 없다.
“알겠어. 그럼 내가 이야기 해볼게.”
“정 안되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나 진짜 그 새끼 얼굴 마주보면서 연기 하고 싶지 않아.”
“걱정하지 마. 정 안되면 드라마 안 하고 말지 뭐.”
사실 드라마를 하면서 상대배우를 태클거는 경우는 상당히 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우현은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 마음에 안 들면 애초에 하지를 않았기 때문이고 만약 먼저 캐스팅 된 이후에 상대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참고 연기를 시켰었다.
“흐음…”
작품을 안 하겠다는 말에도 그녀가 거부하지 않는 걸 보니 그녀가 진심으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은하와의 식사 자리를 끝내고나서 다음 날, 곧바로 김은선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작사에게 연락하지 않은 건, 혹여 도준혁을 아예 남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모른 척 잡아 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 대표? 갑자기 아침부터 웬 전화예요?”
아침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연락 드려서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다른 게 아니라 저희가 남주로 도준혁씨를 제작진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요. 혹시 그게 사실입니까?”
“으음… 김 대표님, 저 조금 기분이 상하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