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93화 (19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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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해야 할 일은 많고…(2)

“진짜요? 시기 정해진 거예요?”

당연히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저 기대어린 목소리의 유니 에게 차마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럼. 이번 늦가을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늦가을요? 그럼 10월이나 11월? 너무 늦다.”

“그, 그래?”

“그럼요. 그 때 되면 차기 앨범 나올 때쯤 될걸요?”

“너는 무슨 일 년에 정규앨범을 두 개씩이나 내려고 하냐?”

“이미 곡 구상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얼른 그 작곡가 만나게 해줘요. 어디에 숨겨 놨어요? 빨리요.”

유니는 애처럼 우현을 졸라댔다.

“숨기긴 뭘 숨겨! 그리고 그 작곡가 우리랑 계약한 사람 아니야. 그냥 파이브 걸즈 데뷔곡 찾던 와중에 알게 된 거지. 원래 SN 쪽 사람이었대.”

“어? 사람이었으면 과거형이네요? 지금은 아니란 말?”

“과거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지금은 프리가 맞아. 꼭 오늘 만나려고?”

“내일 부산에서 콘서트 게스트로 나가는 거 알잖아요? 그 다음날은 오전에는 여수에서 행사 뛰다가 오후에는 세종시에 가야 하구요. 나 바쁜 여자예요!”

“그래, 그래. 알았다. 내가 경수한테 알려서 회사로 한번 오라고 해볼게.”

“안 되면 제가 간다고 하세요.”

“뭐, 그래. 대신 세동이랑 꼭 같이 다녀라. 어딜 가든 세동이랑 함께 있어야 해, 알지?”

“아휴, 대표님도 진짜… 제가 뭐 오빠랑 한두 번 같이 다녀봤나요? 화장실 갈 때랑 집에 있을 때 빼고는 꼭 붙어 다닌다구요. 아, 그리고 단콘 너무 늦는 것 같으니까 조금만 빨리 진행해주세요. 우리 팬들이 지금 콘서트 한번 해달라고 카페에 얼마나 글을 올리는데요. 봤어요?”

당연히 못 봤다.

“뭐, 분위기는 그렇다고 하더라.”

“지금 난리 났잖아요.”

“노래는 몇 곡이나 할 생각이야?”

“이번 앨범에 수록된 전곡이랑 팝송 몇 개 더해서 총 스무 곡 정도?”

확실히 정규 앨범을 냈기에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어느 정도 나온다. 파이브 걸즈 같은 경우는 디지털 싱글로 데뷔하기 때문에 아무리 떴다고 해도 부를 노래가 없어 콘서트는 생각도 할 수 없지만, 유니는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만 11개고 장르도 다양하다. 때문에 충분히 단독 콘서트가 가능하다.

“크게 하길 원해?”

“으음… 처음이니까 이번에는 작게 해볼게요. 소극장 빌려도 충분해요. 관객들과 소통도 하고, 혼자서 연달아 노래를 부른 건 처음이니까.”

유독 처음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이번 소극장 콘서트를 마치면 2만석 이상의 대형 콘서트라도 할 기세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소극장을 대여하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도 않고 부담도 없다는 것?

“알았어. 일단 경수한테 말해 놓을 테니까 단콘 이야기는 월요일에 다시 하도록 하자.”

정신 사나운 통화를 종료하고 경수에게 연락해 전에 SN에서 나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그를 유니와 연결시켜 주라고 했다.

이후 곧바로 은하가 있는 곳으로 출발해 그녀와 그녀의 매니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약속시간에 맞춰 예약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은하는 김은선 작가와의 만남 때문인지 의외로 차분한 모습이었다. 가는 내내 말도 별로 없고 그저 차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해 10여분을 기다리는 중에도 은하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차만 마셨다. 그렇다고 크게 긴장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긴장을 하기에는 이미 그녀가 너무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일 거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우리가 너무 늦었다보나. 미안해요.”

김은선 작가가 반가움 반, 미안함 반의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년의 남성이 들어섰는데 청바지에 칙칙한 똥색 재킷, 그리고 푹 눌러쓴 찐빵모자로 누가 보더라도 예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다.

“아닙니다. 우리가 빨리 온 거죠. 5분밖에 안 늦으셨는데요.”

“어머, 5분이나 늦었다고 눈치 주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하하하!”

“안녕하세요. 선생님하고 항상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뵙네요.”

은하가 일어나서 인사하는데 그런 조신한(?) 표정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반가워요. 원래 나랑 일할 뻔했는데, 글쎄 그 때는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희 대표님한테 말씀하셨나요? 저는 잘…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그럼 그럴까? 오호호!”

“일단 배고프실 텐데 식사 먼저 하시죠.”

준비된 음식을 들어오라 시킨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 일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쳤다.

“맞다. 아까 저랑 같이 할 수 있었다는 말은 무슨 이야기였어요?”

은하가 우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응? 나도 작가님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들었는데?”

“어머, 내가 이야기 안 했나? 오호호! 내 정신 좀 봐.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방금 했던 이야기도 또 하게 되고 안 한 이야기도 한 것 같다니까? 술 마신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쪽팔리게…”

“하하하!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때 어쩌다가 은하 말고 한여름으로 캐스팅 된 겁니까?”

예전에 별이 때문에 에르클레르에서 부딪힌 적이 있던 한여름은 본래 김은선 작가의 작품에 캐스팅되기 전부터 이미 톱스타에 올라 있었다.

“내가 원래는 여기 은하 씨를 원했거든. 그런데 그 때 방송국 윗선에서 한여름을 적극 밀었어. 투자자도 그렇고. 뭐, 내가 무조건 밀어 붙이면야 할 수 있긴 했는데 나도 초장부터 그 사람들이랑 부딪히기도 싫고 해서 그냥 물러섰지. 근데 그 때 한여름 연기 봤지? 와… 난 정말 그 때 깜짝 놀랐잖아.”

한여름 연기력은 지금이야 정말 좋아졌지만 김은선 작가 드라마 출연할 적만 해도 초등학생들도 알아줬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그 때 그녀의 연기력을 멱살 잡고 끌고 간 것이 바로 김은선 작가의 대본이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때에는 나름 논란거리였다. 물론 몇 회 지나지 않아 그 논란은 대본의 재미에 묻혀 약간의(?) 아쉬움 정도로만 남아버렸다.

“하하하! 그 때는 좀 그랬죠. 그래도 시청률 25% 넘으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잖습니까? 중국에도 팔리고…”

“그랬지. 그 때까지는 그거로 속을 달래려고 했는데 얼마 후에 여기 은하 씨가 내 작품 까이고 선택한 영화가 천만 넘을 때, 이상하게 기분이 막 속상한 거야. 우리가 깠는데 마치 은하 씨가 우리 것을 까고 그 작품 선택해서 더 잘 된 것 같은 기분? 이거 내가 무지하게 욕심쟁이처럼 보이는 것 같은데, 하여튼 내 기분이 그 때 그렇더라구. 그래서 내가 은하 씨랑 더 하고 싶었던 거 있지.”

“호호호! 정말 그러셨어요? 그럼 저 마이더스에 있을 때 연락 주시지.”

은하가 웃음을 터뜨리며 반문하자 김 작가는 앞에 놓인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휴… 내가 캐스팅 권한을 다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게 또 내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거든. 전에 한 작품은 해외 로케까지 하다보니까 방송사에 회당 10억 달라고 요구했었지. 방송사 여러 곳 까이고 하나 이야기 된 곳에서는 10억 줄 테니까 콕 지정해서 그 여배우를 써달라고 하잖아. 그렇게 안 하면 제작비를 줄여야 하고, 그러면 대본을 바꿔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하기로 했지. 난 정말 슬펐어.”

“어머어머, 나는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저를 생각해주시는 줄 몰랐어요. 아… 나 정말 오늘 감동 먹었네요. 저 정말 열심히 할게요.”

“그러면 나야 고맙지.”

어째 분위기를 보니 김은선 작가가 일부러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크흠… 저도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정유한 피디가 그녀의 장단을 맞춰주었지만 똥 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그는 은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주말에 캐스팅 미팅으로 불러내고 자기랑 상의 없이 은하를 콕 박아버린데 대한 반발일 거다.

캐스팅 권한은 작가와 피디의 권한이기에 그의 서운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김 작가는 일부러 은하를 더 챙겨주고 내가 쟤를 이렇게 좋아한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어 정유한 작가의 입을 막아버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 도장은 언제 찍을까요?”

슬쩍 정 피디의 눈치를 보며 운을 띄우자 김은선 작가가 덥석 받는다.

“길게 끌 필요 있나? 제작발표 기사도 나갔는데 이 열기를 타고 캐스팅 기사도 나가주면 화제를 계속 끌어갈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렇게 예쁜 유은하인데, 안 그렇겠어? 내일 모레 월요일에 회사로 와.”

“그럴까요?”

“그럼, 괜찮죠? 피디님?”

“뭐, 뭐 당연하죠. 유은한데…”

차마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고 떨떠름하게 말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은하는 우리 피디님이랑 작업 처음이지?”

“네? 네. 처음이에요.”

“내가 우리 피디님이랑 작업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 섬세하신 분이야. 사람들은 내 대본을 칭찬하지만 사실 우리 피디님처럼 내 대본 살려주는 사람 없다? 내가 피디님들 한두 명 같이 일해본 거 아니잖아, 알지?”

“그럼요. 저 선생님 작품 안 본 거 없어요.”

“호호, 정말? 아유… 참 어쩜 그렇게 말을 예쁘게 해? 남들이 유은하 까칠하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배우라면 조금 도도해야지. 그래야 카리스마가 있는 거거든. 남자만 카리스마가 있는 게 아니야. 어쨌든 우리 피디님한테 정말 잘 보여야 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허허허. 멀 또 그렇게까지…”

천하의 유은하 앞에서 저렇게까지 띄워주니 남자라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없다. 김은선 작가가 사람 다룰 줄 안다.

“그럼 우리 계약할 때 다시 볼까요?”

후식이나 2차를 거론하며 자리를 옮기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깔끔하게 자리를 마무리 했다.

자리를 파하고 은하와 같이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도 창밖에 시선을 두며 말이 없다.

“왜 그래? 캐스팅 잘 됐는데, 뭐 고민이라도 있어?”

“어? 아니… 요.”

둘만 있었다면 말을 놨을 테지만 앞에 매니저가 운전하고 있으니 급히 존댓말을 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풀 죽은 것처럼 보여?”

“그냥… 작품 하나 하기 참 어렵다 싶어서… 요. 아니, 언니, 대표님이랑 나는 그냥 서로 말 놓거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줘.”

“어? 어, 그래.”

매니저인 혜숙 앞에서 존대하기 짜증났는지 그녀에게 통보하듯이 말하고는 이내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아까 봐서 알겠지만 참, 캐스팅 하나 얻자고 별 연기를 다 했어.”

“둘이 좋아 보이던데?”

“그래 보이지? 내가 알기로 김은선 작가 캐스팅 미팅할 때 저렇게 유난 떠는 사람 아니야. 물론 내가 정말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느낌이 그게 아니었어. 어쩔 수 없이 쓰는데 그렇게 보이기 싫은 느낌? 그런 게 있었다구.”

“너는 무슨 곤충이냐? 막 초음파로 느껴?”

“하여튼 둔해가지고…”

“내가 둔하다고? 내가? 와… 어이없네. 나 김우현이 둔하다네!”

슬쩍 운전석을 보니 혜숙이 애써 웃음을 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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