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92화 (19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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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해야 할 일은 많고…(1)

방송국들과 제작사에서 윤해연 작가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는 중에 마침 김은선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보셨어요?”

“인상적이네요.”

별다른 말없이 단답형인데 여운이 길다.

“그런가요?”

“여기서 제 스타일 같지 않다고 쓰셨잖아요? 저도 알고 있었어요. 사실 좀 고의적으로 어둡게 만들었는데 잘 캐치하시더라구요. 특히 배역의 직업까지 조율해서 의견을 보내준 건 정말… 놀랐어요.”

별 거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좋아하는 몇 가지를 더 추가해줬는데 사실 그건 다른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해왔던 일이었다. 단지,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인데 그걸 조금 넣어줬을 뿐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다 해줄 수 있는 정도였는데요? 너무 과찬 아닙니까?”

“아니요. 이 시놉을 보여준 사람이 몇 돼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마 제작만 수십 편 해왔던 사람들인데, 다들 재미있다고 하거나 조금 어둡다고 할 뿐, 정확하게 어떤 지점을 어떻게 변화를 줘야하는지 잘 캐치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결말을 예측한 사람은 김 대표뿐이었구요.”

아마 다른 사람들은 결국 드라마에서 예전 부부가 다시 합치는 걸 예상했을 거다.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 않아 결말이 너무 시험적일 거라는 말을 했는데 정확히 파악했던 것 같다.

“흐음… 사실 그런 결말, 작가님이 잘 하시는 거잖아요? 오래전에 ‘뽕네프의 여인’에 나온 결말도 그렇고…”

“아하하! 그거 얼마나 욕 먹었는지 알죠?”

“알죠. 그래서 인터뷰 때 후회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충족시키는 것도 작가의 일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지금 고민하는 중이에요.”

“이건 전의 그 마지막 반전보다는 약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다 꿈이었다.’ 보다는 덜 뒤통수를 치는 것 같은데요?”

“정도가 약하긴 하지만, 글쎄요…”

전화기 너머로 고민하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각기 새로운 사람과의 썸이 얼마나 재미있으냐에 따라 결정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그 전의 남자보다 영 못생기고 매력도 없으면 어느 시청자가 좋아하겠습니까만… 그 전의 남자보다는 뭔가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면 오히려 더 원할 수도 있겠죠.”

“맞아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 말이죠?”

“일단 은하 씨가 여주를 맡았으니 분명 쉬운 연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테고, 또 잘못하면 그녀 이미지에 좋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예전의 남자 말고 새로운 남자를 택하라고 하잖아요?”

그건 그녀 말이 맞다. 남편이었던 남자를 선택하는 게 여주로써는 훨씬 부담이 없을 거다. 하지만…

“그게 또 인생 아닙니까? 원래 배우로서 인생작 하나 찍으면 이상하게 꼭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이나 시청자가 생각하지 못한 엔딩인 작품이 많았잖아요?”

“어머머머, 대표님 지금 시청률도 잡고 작품성까지 잡아보겠다, 뭐, 이런 큰 그림 그리시는 거예요?”

“꼭 그렇다기 보다는 우리 작가님 한 번 믿어 보자는 거죠. 제가 다른 작가님이면 이런 말씀 안 드립니다. 우리 은하 인생작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잖아요? 하하하!”

“아… 정말 내가 뒤통수 맞은 거 같네요. 알겠어요. 어쨌든 메일로 보내주신 의견은 정말 고마웠어요.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시놉을 썼는데 딱 대표님이 적어주신 정도만 조정하면 알맞게 나오겠어요.”

“도움이 됐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조만간 연락 갈 거예요. 뭐, 기사가 먼저 나갈 수도 있고.”

역시 은하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걸 쓰려고 작정하고 있었던 거다.

“제작사랑 이미 상의 끝냈습니까?”

“그래요. 뭐, 거기는 조금 우려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우려일 뿐이고…”

김은선이 하겠다고 하는데 감히 제작사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을 거다.

“당연합니다. 천하의 김은선 작가인데요.”

“후훗! 요즘 김은선 작가 옆에 윤해연이라는 이름도 들어가던데요? 아, 해연 씨가 대표님네 작가였죠?”

윤해연 작가는 데뷔가 김은선 작가보다 2년 늦다. 또 나이도 그녀보다 1년 어리기 때문에 김은선 작가가 평대할 수 있다.

“아하하! 우리 윤 작가님은 아직 작가님한테는 부족합니다.”

“그 말을 과연 해연 씨가 좋아할까요?”

“뭐… 이해할 겁니다, 하하하!”

“하핫! 대표님 완전 재미있는 분이시네.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또 한 번 식사라도 하죠.”

“네. 이번에는 제가 대접하죠. 그리고 그 때는 우리 은하도 같이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죠?”

“뭐, 그러려고 만나는 거니까요. 그럼 기대할게요.”

전화를 끊고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내용이야 어찌됐건 말하는 걸 보니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이 들어갈 것 같은데 막상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되는 거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황금 같은 주말이 다가왔다. 다들 작품에 매진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할 일이 없어져 오피스텔에서 침대에 누워 못 봤던 드라마를 몰아보던 중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은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웬일이야? 혹시 스케줄 끝났어?”

마음 같아서는 주말에 어디 야외라도 오붓하게 놀러갔으면 싶지만 톱스타인 유은하의 스케줄을 봤을 때 쉬울 리 없다. 오늘도 아침부터 잡지사 인터뷰와 화보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오니 당연히 스케줄이 끝난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인터뷰 하는데 김은선 작가님 드라마 기사가 떴다는데?”

“진짜? 잠깐만…”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들어가니 포털 연예면에 대문짝만하게 김은선 작가 차기작에 관한 기사가 떠 있었다.

가제는 옛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과 영혼’이다.

“응, 확인했어.”

“나는 아직 이야기 없던데?”

“이제 첫 기사잖아. 아직 작가랑 미팅도 못했는데 벌써 나가겠어?”

“그래도 확정이라고 했는데 안 나오니까 짜증난단 말이야. 얼른 알아 봐!”

“알았어. 일단 끊어봐.”

재촉하는 그녀의 성화에 일단 전화를 끊고 바로 김은선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작사로 전화를 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 김 작가에게서 말을 못 들었다면 자신만 이상한 놈이 될 수 있기에 바로 작가에게 전화한 것이다.

“작가님, 저 파인 엔터 김우현입니다. 오늘 제작발표 기사 뜬 거 봤습니다.”

“빠르기도 하셔라. 나도 이제 봤어요.”

“제목이 딱 제 스타일이던데요?”

“가제라서 바꾸게 될 지도 몰라요. 그나저나 은하 씨 때문에 전화하셨죠?”

“하하하! 눈치가 빠른 사람하고 전화하면 이런 게 참 편하네요.”

“아무리 내가 마음대로 결정했다고 해도 절차라는 게 있잖아요? 최소한 피디한테는 이야기를 해야 나중에 촬영 들어갈 때 순조롭죠.”

그녀의 말이 맞다. 괜히 피디한테 말도 안하고 캐스팅을 언급했다가 나중에 피디가 자신을 무시한다느니 하는 생각이 들기라도 하면 서로가 골치 아파진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오늘 저녁 괜찮으십니까?”

“번갯불에 콩 구워먹겠네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괜찮다고 치고, 은하 씨는 스케줄 괜찮대요?”

“괜찮습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빼야죠. 작가님을 만나는 건데요.”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천하의 김은선 작가를 만나는데 시간이 없더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또, 그녀의 오후 스케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아하핫! 대표님은 참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네. 일단 내가 정 피디한테 연락 한 번 해볼게요. 그 사람 안 된다고 하면 나도 방법 없어. 알죠?”

“그럼요.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바로 은하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그녀의 기분이 한층 누그러졌다.

“알겠어. 그럼 확정되면 전화 줘, 매니저 언니한테도 말해 놓을게.”

사실 이런 전화는 은하가 아니라 은하 매니저랑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녀의 성격이 급해 다이렉트로 이야기 하게 됐다. 뭐, 이런 성격 탓에 아마 마이더스에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거다.

30분쯤 지나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김우현 대표님 되시죠? 저 ‘상상이상’의 정유한 피디라고 합니다.”

‘상상이상’은 드라마제작 전문업체인데 주로 김은선 작가 작품을 비롯해 케이블 드라마를 주력으로 만들어왔다.

지금 전화한 정유한 피디는 벌써 김은선 작가와 두 번이나 작업해 온 사람으로 이 바닥에서 연출경력만 2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전화 드린 이유는 짐작 하시죠?”

뭔가 사무적인 어투로 보건데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해한다. 드라마 스케줄이 잡혀 마지막 주말을 편히 쉬려고 했을 텐데 갑자기 캐스팅 미팅을 하자고 작가가 전화했을 테니 말이다.

“혹시 우리 은하 캐스팅 말씀이십니까?”

“알고 계시네요. 오늘 저녁 어떠십니까?”

“저희야 좋습니다. 위치는 어디로 잡을까요?”

“강남으로 하시죠. 다들 집이 그 쪽 아닙니까? 저도 그렇고, 작가님도 강남에 계시니까요.”

“그럼 저희가 위치를 문자로 찍어 보내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잘 보여야 할 상대는 김은선 작가가 아니라 정유한 피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하 매니저인 혜숙에게 오늘 오후 스케줄인 명품 브랜드 론칭 행사 참여는 취소됐으며 저녁 스케줄이 잡혔음을 통보했다. 그녀도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별다른 말없이 알았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긴 했지만 오후 스케줄을 위해 씻고 준비하는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유니의 매니저인 세동이다.

유니는 오늘 휴식 차 스케줄 없이 쉬는 날이기에 전화 올 일이 없다.

“응, 무슨 일이야?”

“아, 대표님, 쉬시는데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고 있는 시간도 아닌데 뭘. 무슨 일 있어?”

“다름 아니라 유니가 이번 파이브 걸즈 노래를 듣고 작곡가를 만나고 싶어 하네요. 굳이 꼭 오늘 만나야 하냐고 물으니까 오늘 쉬는데 안 그럼 언제 만나냐고…”

사실 맞는 말이니 세동도 할 말이 없나보다.

“유니는 옆에 있어?”

“네, 지금 회사예요.”

“걔는 왜 쉬는 날까지 회사에 나오고 그래? 체력이 남아돈다니?”

“정말 부러운데, 그런 것 같은데요.”

“하… 바꿔봐.”

잠시 후 일부러(?) 더욱 명랑한 목소리를 한 유니가 전화를 받았다.

“대표니임! 저 그 사람 노래 다른 거 들어보고 싶어요.”

“오늘 쉬어. 나도 바쁘다. 왜 주말까지 회사를 나오고 그러냐? 너 때문에 세동이도 출근했잖아.”

“그래서 오빠한테 미안하다고 이따가 소고기 쏘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네? 네?”

“아휴… 그 친구 음악이 마음에 들어? 너 정규 앨범 활동 종료한지 얼마 안 됐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죠. 아, 그리고 저 단콘 언제 열어줄 거예요?”

‘단콘’은 단독콘서트의 준말이다. 콘서트… 그래, 해야지.

“단콘 준비 중이야.”

사실 까먹고 있었다. 일 하나 끝났다 싶으니 일 두 개가 몰려온다.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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