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90화 (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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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이루고 싶었던 것(3)

날이 지나 회사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데 점심 즈음에 은하가 사무실로 방문했다. 오늘 약속도 없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잔뜩 생글거리며 회사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다녔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당연히 좋은 일 있지. 오빠… 아니, 대표님이 나 김은선 작품에 꽂아줬잖아?”

“아직 시놉이 안 나와서 언제 들어갈지는 몰라.”

“둔한 척하는 거야? 아니면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야? 김은선 작가가 아무 생각도 없이 매니지먼트사 대표를 만났을까봐? 만나면 캐스팅 이야기부터 나올 텐데? 게다가 나랑 언니랑 둘 중에 하나를 골랐다며? 곧 들어갈 작품이 없는데 왜 그런 짓을 해?”

이미 다 알고 왔다는 듯이 저러니 의뭉 떨어봤자 남는 게 없겠다 싶다.

“아직 결정된 게 없는데 너 그러고 다니다 괜히 기자들 귀에 들어갈까 봐 그러지.”

“내가 바본가? 당연히 우리 회사 안이니까 이러지.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랑 내 코디한테도 말 안했어. 그냥 기분 좋은 티를 낸 거지.”

“그래, 그래. 그렇게 조심만 계속 해줘. 그런데 그 이유만으로 온 것 같지는 않고… 왜 온 거야?”

“어제 김은선 작가랑 무슨 이야기 했어?”

눈을 반짝이는 게 여간 궁금하지 않았나보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당연하지. 나 한숨도 못 잤잖아.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누었길래 단박에 캐스팅 결정이 났고, 또 왜 김은선 작가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야.”

“아… 그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은하가 물어보니 솔직하게 얘기해줬다. 어젯밤에 수정한 시놉에 대한 내용까지 전부.

“어? 진짜? 한번 봐봐.”

바로 시놉을 프린트해 그녀에게 보여주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아… 느낌이 안 좋은데…”

“그렇지? 나도 느낌이 쎄하다.”

“미치겠네…”

“그래도 너 이명선 감독이랑 영화 하나 찍으면서 호평 많이 받았잖아.”

순간 은하가 확 째려보며 소리를 빽 질렀다.

“개뿔… 칸에 간다며! 칸은 무슨… 고작 국내 영화제 몇 번 나간 거 가지고…”

“크흠… 그거야 개봉 시기도 안 좋고 그래서… 그런데 평가는 좋았잖아. 네 연기도 많이 호평 받았고… 자신감을 가져.”

지금 은하가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바로 이 시놉시스에 나온 여주 때문이다.

처음에는 죽은 남편 때문에 고통스럽고 애절한 연기를 펼치다 중반부터 다시 만난 남편을 죽음에서 구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연기를 한다. 그리고 후반에 가서는 새로운 인연과 옛 인연 사이에 갈등하는 연기를 하는데 어설프게 하면 여우라거나 어장관리라고 욕 들어먹기 딱 좋다.

쉽지 않다. 아마 같은 시놉이라고 해도 김은선 작가가 아니었다면 결코 은하를 이 작품에 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문제는 김은선 작가가 여주를 확정해준다는데 마다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거다.

“아무래도 이거 할 거 같아.”

“아닐 수도 있어. 말했잖아. 그냥 궁금해서 슬쩍 던져본 것 같다고 말이야.”

“그것도 아는데, 그냥 느낌이 그래. 오빠가 작가라면 쓸 것도 아닌데 남에게 보여주지 않던 시놉을 던져주겠어? 누가 베끼면 어떡하려고? 작가들이 표절에 얼마나 예민한지 알잖아.”

그렇다. 그걸 놓치고 있었다.

“그건 네 말이 맞네.”

“전에 이효정 작가랑 일할 때, 알지? 내가 차기작 구상 된 거 있냐고 물으니까 이미 시놉까지 짜놨다고 설레발치던 거? 그런데 한번 보여 달라니까 쿨하게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한 열 번은 넘게 신신당부했을 걸? 그런 사람들인데 당장 쓸 것도 아닌 시놉을 막 보여줬다고?”

그녀의 확신어린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이걸로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해야지. 연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잖아. 김은선 작가 작품인데. 이거 놓치고 나중에 잘 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그렇지?”

“응, 이건 어려우니까 다른 작품에 하겠다고 할 수도 없으니 해야겠지. 그런데 조금 슬프네. 작가님 작품 한다고 좋아 했더니 하필 내 차례에 이런 걸 주다니 말이야.”

“후… 일단 기다려보자. 너 점심 안 먹었지? 같이 나가서 먹자.”

“기다려봤자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난 안 먹을래. 오늘 점심 굶을 거야.”

“왜?”

“작품 들어갈지 모르는데 이제부터 관리 시작해야지.”

“그럼 저녁은?”

“간단하게 고구마랑 닭가슴살 샐러드나 먹어야지. 에휴… 내가 배우짓 하면서 제일 힘든 게 이거야. 허구헌날 굶고 운동하는 거. 진짜 이 짓도 오래 못하겠다.”

“행복한 소리다.”

“그치? 이렇게 해서 이 정도나 돈 버니까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데 힘든 건 힘든 거야. 나 지금부터 예민해질 거니까 비위 잘 맞춰.”

“예, 예, 그럼요. 가시는 길 평안하십쇼, 마님.”

“알겠네. 자네도 수고하시게.”

은하는 올 때와는 다르게 시무룩한 얼굴로 사무실을 떠났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작품이기에 부담이 큰 것 같았다.

따라 나가서 기분 좀 풀어줄까 생각했지만 그녀 매니저 보기도 안 좋은데다가 오후에 지나가 출연한 ‘붉은 여우’의 언론 시사회 일정이 잡혀있어 그냥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나니 오늘 언론 시사회 일정을 찍어 보겠다며 카메라 한 대가 따라붙었다. 살짝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미 약속한 게 있기 때문에 너무 티나지 않게만 해달라고 부탁하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남의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도착하니 이미 언론 시사회를 대비한 작업이 한창이다.

“오셨어요?”

아침부터 샵에 들른다는 말은 매니저인 진명에게서 들었는데 화사하게 풀메이크업을 한 걸 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게다가 지금 와서 보니 전에 봤었던 구릿빛 피부가 많이 옅어져 있었다.

“관리는 잘 받았어? 피부 탄 건 조금 가라앉은 것 같네?”

“이 정도면 많이 사라진 거죠. 백옥 같은 제 피부가 조금 상하긴 했지만 여행 때 너무 행복해서 다시 가고 싶어요.”

“에헤이… 돈 벌어야지.”

“암요, 암요. 저 이거 찍느라고 진짜 생사의 경계를 오갔는데, 대박 나겠죠?”

“잘 나왔다고 하잖아? 한번 보자고. 기자들 앞에서 너무 떨지 말고.”

“풋! 내가 무슨 신인인 줄 알아요? 그런 얘기는 별이한테나 해요.”

“아, 맞다. 그래. 하여튼 잘 하자.”

영화관에 들어서니 시작 10분 전이어서 그런지 기자들로 꽉 차 있었다. 몇몇 아는 얼굴들도 보인다.

한 쪽 자리에 앉으니 스태프 중 하나가 다가와 음료를 가져다 줬다. 진명이 미리 준비했다고 하니 나름 기특하다.

영화 시작 전에 감독과 배우들이 나와 기자들에게 인사한다.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여기 유지나 씨가 굉장히 고생했는데 고생한 만큼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정완 감독 다음에 지나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이거 찍으면서 여기저기 다치고 굴렀지만 이제는 다 잊었습니다, 호호호! 작품을 향해 이렇게 열정을 불태운 건 처음인 것 같아요. 부디 잘 봐주시고, 좋은 기사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밝은 인사에 모든 기자들의 입에 호선이 그어졌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시작부터 피가 낭자한 액션이 펼쳐졌다. 비극적인 여주의 어린 시절, 그리고 성인으로 성장한 여주가 북한을 탈출하며 그리는 액션 씨퀀스는 절로 손에 땀이 찰 정도로 긴장감 있고 화끈했다.

보면서도 연신 이걸 그녀가 대역 없이 찍었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영화가 막을 내리자 몇몇 기자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스태프들이 스크린 앞에 긴 탁자와 의자를 세팅하고 대략 20여분이 흘렀을 때 감독과 배우들이 자리에 앉았다.

“스포츠한국의 조윤석 기자입니다. 유정완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이렇게 여성 원톱 액션영화는 국내에서 본 적이 드문 작품 같습니다. 이걸 기획하신 의도나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말씀하셨듯이 국내에서 이런 액션영화는 상당히 드물잖아요? 그러니까 이상하게 더 보고 싶은데, 누구도 만들지 않는 거죠. 그래서 내가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만들게 됐습니다. 뭐, 딱히 대단한 의미가 담겨있는 건 아니에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하하.”

유 감독의 넉살에 기자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저는 그런 게 좋더라구요. 피가 아주 낭자한… 치열하고 처절한 액션 같은 거요. 그런데 그걸 여성이 한다고 생각하니까 뭐랄까… 심금을 울린다고 할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네요.”

“어? 그래요? 저도 잘 모르는 느낌인데 잘 캐치하셨다니 다행이네요.”

“하하하!”

“하여튼 느낌이 그랬어요. 꼭 보고 싶었다 정도? 그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여성 기자가 손을 들었다.

“데일리 연예의 윤주연 기자입니다. 저는 유지나 씨에게 질문하고 싶은데요.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솔직히 저는 보기 전까지만 해도 어… 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어설픈 액션 영화가 되지 않을까, 굉장히 우려했었거든요. 그런데 보고 나니까 우리나라도 이런 영화가 나오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런 거친 역을 맡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다른 여배우들이 몇 번 이 시나리오를 받고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유지나 씨께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지나는 마이크를 잡고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전에 한 예능프로에서 대선배님이신 윤여림 선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더라구요. 연기가 가장 잘 나올 때는 배우가 돈이 없을 때다.”

“하하하!”

“웃기죠? 그런데 그 말이 참 와 닿더라구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작품을 1년 넘게 못 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정말 작품에 대한 욕구? 열의? 이런 게 막 가슴속에 쌓이는 거 같더란 말이죠. 꼭 돈이 없어서 열심히 한다는 게 아니라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이 시나리오를 우리 대표님께서 가지고 오셨는데, 저도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어요. 평생 운동이라고는 걷기 운동하고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해봤거든요.”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그쵸? 그런데 대표님이 너무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거 해보자. 이거 잘 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제가 귀가 되게 얇거든요?”

“와하하!”

“하하! 웃기죠? 원체 귀가 이렇게 얇은데 대표님께서 그렇게 강력하게 이야기하시니까 혹하는 거예요. ‘아, 이거 놓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하게 됐는데, 막상 몸을 움직이고 강한 액션 씬을 계속 찍으니까 짜증나고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잘 나오지 않았나… 잘 나왔죠? 난 좋던데?”

“하하하!”

역시 이제는 베테랑 연기자라 불릴 만큼 경력이 쌓여서 그런지 제법 분위기를 살릴 줄 안다.

“그럼 유지나 배우님께서는 이번 작품 대박을 확신하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저기 우리 대표님 계시거든요? 저 대표님 뒤에 카메라 있죠? 영화 볼 때는 없다가 다시 들어왔나본데 저거 제가 아니라 우리 대표님 찍는 거거든요.”

순간 모든 기자들의 시선이 우현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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