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81화 (18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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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1)

“흐음… 지금 그게 얼마나 저희에게 큰 리스크를 부담하라는 것인지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헐리우드에서도 투자자가 영화제작에 간섭하는 일은 너무도 흔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고 있다. 그 때문에 봉준후 감독이 엄청난 자금력을 뒷받침 해주면서 창작자의 자유를 지켜주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로 본다면 방금 제시한 조건은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상당히 힘든 것일 수 있다.

“허, 참…”

“물론 거기 계시는 분들 중에 저보다 흥행 감각이 조금이라도 더 있다는 분이 계시면 언제든지 손을 대셔도 좋습니다. 그런 분이 계신가요?”

“으음…”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자신보다 더 흥행감각이 좋았다면 지금쯤 삼선투신운용의 영화 투자 펀드는 피터 린치가 운용했던 마젤란 펀드의 명성을 뛰어넘었을 거다.

“그러니 저 믿고 그 단서 조항 하나 넣어 주시죠.”

“내가 김 대표님 믿고 간섭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계약 조항에 넣는 건 어렵습니다. 이건 차후 다른 영화 계약에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비밀로 하죠. 누구에게도 이런 조항이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될 일 아닙니까?”

“전 사람의 입을 믿지 않습니다. 오로지 글자와 숫자만 믿죠.”

“그럼 이번부터 믿어보시죠. 결과가 증명해줄 겁니다. 그럼 언제 뵈면 좋을까요?”

“허허… 이것 참… 알겠습니다. 일단 내일 2시에 회사로 방문해주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 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니 경수가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잘 되신 겁니까?”

“응, 내일 약속 잡았다.”

“우와! 오십억이라고 했죠? 대박!”

“아직 확정된 거 아니야.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

“압니다, 알아요. 대표님 말씀이 귀에 딱지가 않겠어요.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충분히 기뻐해도 된단 말이지요, 흐흐.”

“애들 준비는 다 됐어?”

오늘이 드디어 파이브 걸즈를 테스트하는 날이다. 많이들 노력했을 것이기에 상당히 기대가 된다. 만약 오늘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데뷔 시기를 확정지을 생각이다.

“넵! 그래서 제가 대표님 전화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어쨌거나 잘 돼서 다행입니다. 그 전화가 안 왔으면 내내 긴장한 채 아이들 봤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야, 인마.”

사실 그랬을 거다. 파이브 걸즈야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데뷔시킬 수 있지만 ‘28시간’은 타인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경수 말처럼 테스트 하는 내내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민망해졌다.

“그럼 가시죠.”

“그래.”

우현은 연습실로 이동하는 동안 고민했다, 어떤 테스트를 치를 것인지. 처음에 테스트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갑자기 ‘테스트’란 단어에 신경이 쓰였다.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를 뒤흔들 다섯 명의 소녀, 파이브 걸즈입니다!”

다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하하, 인사는 그렇게 정한 건가? 그래, 잘 지냈어?”

“네!”

“음, 얼굴들이 좋아 보이네. 그럼 다들 긴장될 테니까 일단 테스트부터 볼까?”

“네, 그럼 데뷔곡 틀겠습니다.”

경수가 노래를 틀려고 몸을 돌렸다.

“잠깐, 노래 틀지 마.”

“네?”

“데뷔곡 노래와 안무는 당연히 열심히 연습했겠지. 그건 테스트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연습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 같네. 데뷔곡은 조만간 예정 없이 확인하러 올 거야. 데뷔곡은 잠자다가도 일어나서 노래하고 춤추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거 알지? 불심검문에서 통과해야 데뷔 날짜 나올 거다. 그리고 오늘 테스트는 ‘기본기 테스트’다. 너희들 매일 기본기 연습하는 거 있지? 그거 볼 거야.”

“아아…”

아이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데뷔곡 한 곡만 하고 가수 활동 끝낼 거 아니잖아. 앞으로 여러 장르의 곡들을 계속 잘 소화하려면 기본기가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거야. 이미 톱스타가 된 아이돌들도 기본기 연습을 잊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 특히 군무를 완벽히 소화하려면 기본기 또한 다 같이 잘 해야 하는 거야. 메인 댄서, 메인 보컬만 잘 해서는 안 되겠지? 기본기도 똑같이 잘 하는지 볼 거야. 트레이너 선생님들도 잘 보셨다가 연습에 참고해주시구요. 자, 팔 동작부터 시작!”

아이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민지아가 먼저 시작하자 따라 추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춤이 아니라 국민체조 비슷한 동작들이 이어진다. 단순하게 그저 여러 방향으로 팔을 뻗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보면 안다. 제대로 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특히 저 동작들을 다섯 명이 한 명처럼 군무로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틀리면 눈에 확 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거다.

예상치 못했던 테스트여서 그런지 엇박자를 타는 동작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자꾸 어긋나는 동작에 표정들이 일그러진다. 특히 강미래는 거의 울기 직전이다.

“흠… 춤 기본기는 봤으니 이번에는 보컬 기본기. 로디의 ‘어머니’ 알지? 연습할 때 많이 부르는 곡이니까 알 거야. 감정과 발성 위주로 볼 거니까 명심하고. 한미소부터 불러보자.”

느낌이 강렬한 데뷔곡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곡을 갑자기 부르라 하니 역시 다들 당황한 눈치다. 하지만 로디의 ‘어머니’는 많은 연습생들이 연습곡으로 쓰기 때문에 모른다고 할 수도 없거니와 평소 실력이 그대로 드러날 거다.

강미래나 채현수는 보컬답게 자주 불러봤는지 무리 없이 소화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부족한 부분들이 보였다.

“자, 다들 수고했다. 테스트한다고 와서는 열심히 연습한 거 시키지 않고 엉뚱한 거 시켜서 당황했을 거야. 기본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에서 한 거니까 나 너무 원망하지 말고. 테스트 하면서 스스로 알 수 있었을 거야,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참고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시원한 수박 배달시켜놨으니까 잠깐 쉬면서 먹도록 해.”

“네!”

아이들은 수박을 먹으러 연습실 뒤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이 참, 대표님 너무 하십니다.”

옆을 보니 부루퉁 입이 튀어 나온 경수가 우현을 불만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

“애들 진짜 열심히 연습했는데… 저도 내 새끼들 이렇게 잘 한다고 대표님한테 딱 보여드리려고 완벽하게 준비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딴 걸 시키시면 반칙 아닙니까?”

경수의 마음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알아, 연습 열심히 했을 거고 잘 했겠지. 그런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건 그동안 연습한 거 확인하는 거니까. 다음번에 갑자기 보러 올 테니까 그 때 잘 해야 진짜 잘 하는 거야. 네 새끼들 실력 확인할 날은 많으니까 아쉬워 마.”

“그래도…”

구시렁거리는 경수를 두고 수박을 잘라서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눈을 돌리니 당황스러웠던 테스트에 대해 수다가 한창이다.

특히 강미래의 목소리가 컸다.

“나 진짜 열심히 춤 연습했는데… 갑자기 다른 거 하라니까 나 완전 당황해가지고. 나 틀린 거 엄청 티 났죠? 나 때문에 우리들 다 연습 안 한 것처럼 보이는 건가 싶어서 눈물이 막 날 것 같더라니까요!”

“너만 틀린 것도 아닌데 뭘. 다들 조금씩 안 맞더라. 좀 더 연습해야겠어. 한 명이라도 틀리면 다 망치는 게 군무니까.”

“맞아. 나도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늦는 거예요. 그거 신경 쓰다 보니까 동작이 틀리고. 하여튼 연습 더 해야겠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절로 흐뭇해진다.

“하여튼 애들 잘 챙기고 나는 간다.”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와 충무로로 방향을 잡았다. 원래 파이브 걸즈 멤버들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었다면 아까 삼전투신 측과의 전화 통화 후 바로 갔었을 거다.

급할 것이 없기에 느긋하게 운전하는데 난데없이 은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통 낮 시간에는 통화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무슨 일 있어?”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일은 무슨, 그냥 걸어봤어.”

그냥 걸어봤을 리가 없다. 그렇게 소소하게 챙기는 여자는 아니니까.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 그랬어? 나는 또… 난 일 있어서 운전 중이었어.”

운전 중이라고 하면 보통 급한 일이 아닐 땐 나중에 전화하자고 하고 끊는데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어폰으로 받고 있지? 안 그럼 위험해.”

“당연하지. 항상 이어폰으로 받아.”

역시 뭔가 목적이 있다.

“오빠 이상한 얘기 들리던데? 혹시 진짜야?”

“이상한 이야기라니? 뭐가 진짜라는 거야?”

“아니, 오빠가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생각해보니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도움을 또 받는다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자존심 문제도 있어서 말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는 게 너무 빠르다보니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정신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

“아… 그거? 맞아. 얼마 전에 시나리오 판권을 하나 샀거든. 제작사에다가 넘길까 하다가 그냥 내가 만들기로 했어.”

“그래?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냥… 전에도 너한테 도움을 받기도 했고… 이번에는 내 힘으로 한번 해보려고 했지. 언제까지 네 도움만 받을 수는 없지 않냐? 나도 이제 엄연한 엔터 회사 대푠데. 나 이제는 꽤 잘 나가.”

“누가 모른데? 오빠 능력 있는 거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래도 이제는 어깨에 힘도 실어줄 줄 알고, 많이 컸다.

“그래? 하하하! 네가 역시 사람 볼 줄 알지.”

“진행은 잘 되고 있어? 조상우 선배님 캐스팅 됐다는 기사는 봤는데.”

“응, 조상우랑 최달수까지 캐스팅 완료 했어. 물론 여주는 김별이 하기로 했고.”

“오오… 천만요정 최달수 선배님까지… 사고 한번 치겠네? 그런데 쫌 섭섭하다.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나는 기사로 보고 메이크업 아티스트한테 들어서 알았네?”

확실히 실수하긴 했다. 그리고 만약 그 시나리오에서 은하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었다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정말 캐스팅을 원하는 거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짜 미안해. 너도 알다시피 영화 하나 만든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도 다행인 건 오늘 투자자 쪽에서 오십억 투자 결정 해준다고 미팅 잡자네?”

“오십억? 대단하네? 총 제작비가 얼만데?”

“일단 광고비가 어느 정도나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유 있게 총 100억 잡고 있다. 물론 편집 끝나고 추가로 투자금이 들어와야 할 것 같긴 해. 제작에 추가비용이 들 수도 있고, 요즘 광고비가 좀 많이 나가야 말이지.”

“헐… 완전 블록버스터네. 잘 할 수 있겠어?”

“응, 내가 언제 확신 없이 일 하는 거 봤어? 감독도 최철성 감독으로 확정됐고, 촬영 스태프도 최고로 선정 중이야. 이거 무조건 성공한다.”

“그래? 흐음… 그래서 말인데…”

드디어 그녀의 입에서 전화를 건 목적이 흘러나온다.

“음… 뭔데?”

“나 이번에도 오빠 영화에 투자하면 안 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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