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77화 (17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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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쉽고 편한 길은 없다(5)

“예? 유은하요? 유은하를 왜 저한테서 찾습니까?”

“야, 아무리 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걔가 네 새끼 아니냐? 내가 권하는 거랑 네가 권하는 거랑 같겠어?”

“그럼 그 시나리오나 들어봅시다.”

“내가 생각해놓은 게 있는데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어.”

“아이고, 시나리오도 없이 제가 어떻게 장담해요?”

“내가 꽂아달라는 게 아니라 일단 내 앞에 앉혀만 놔. 그러면 돼, 오케이?”

“그러면 정말 끝이에요?”

“진짜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물론 네가 옆에서 바람 좀 잡아주면 좋겠지만 일단 내 앞에 둘이 딱! 앉아만 있으면 난 만족한다.”

그게 꽂아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옆에 앉아서 초칠 수도 없고 맞장구 좀 쳐주다 보면 은하가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저러는 거다.

“아… 안돼요. 시나리오 보기 전에는 안돼요.”

“내가 설마 이상한 거 들이밀겠냐? 좋아. 내가 이거 끝나고 시나리오 보여줄게. 대신 네가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해도 나쁘지 않다 싶으면 무조건 유은하 데리고 오는 거다. 알겠지?”

시나리오에 어지간히 자신 있나보다. 원래도 실력 있는 감독인데 저렇게 자신하는 걸 보니 대단한 작품을 하나 구상하고 있긴 한가본데…

생각해보면 최 감독은 예전에 그녀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어 수도 없이 우현을 졸라댔었다. 그 때 못 들어준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고 또, 시나리오가 별로면 그 때 가서 거절해도 되니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하! 좋아.”

“아… 이거 내가 밑지는 장산데…”

“원래 살다보면 밑지는 장사도 하는 거지. 허구헌날 남기만 하면 사람들이 욕해요. 너는 좀 손해를 볼 필요가 있어, 인마. 대신 내가 술 한잔 살게.”

최 감독은 자신이 억지를 부렸다는 걸 알지만 우현이 잘 받아주자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비싼 거 먹을 겁니다.”

“야, 비싼 거 먹어! 나도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야.”

‘밀실’로 대박치더니 이제는 통이 제법 커졌다. 예전에는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했는데… 역시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다.

“제가 아주 헉 소리 나게 해드릴게요.”

“그러시든지. 그런데 이거 시나리오 보니까 제작비가 만만치 않겠던데? 감기처럼 기침 몇 번 하다가 죽는 것도 아니라서 CG도 제법 들어가겠고, 엑스트라도 상당히 모아야겠어. 이 정도면 기본 백억은 생각해야 하는데, ‘타이거 스튜디오’에서 감당할 수 있겠어? 이 정도 투자금이면 CS 엔터나 샤롯 정도의 대기업 손잡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거 제가 유치해야 합니다.”

“뭐? 네가 이걸 유치해야 한다고? 뭔 소리야? 시나리오가 네 거라서 투자까지 네가 받아와야 하는 거야? 그럼 ‘타이거 스튜디오’는 완전 하청업체가 됐네?”

“그렇죠. 물론 타이거 측하고 묶어서 갈 거라 저 혼자 뛰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제가 주도해서 받아와야 합니다.”

“어허… 이거 일이 커지겠는데… 잘못하다가 엎어지는 거 아니야?”

“제가 엎어지게 두겠습니까?”

“그래, 내가 우현이 너 못 믿으면 누굴 믿겠냐? 언제 약속 한번 잡자.”

“네, 들어가십쇼.”

가장 중요한 감독 섭외는 끝났다. 이제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캐스팅이 완료 되어야 하는데 여주는 별이가 맡겠지만 가장 중요한 남주가 남았다.

“누가 좋을까… 누구를 넣어야 잘 넣었다고 소문이 날까…”

시나리오 속 남주는 냉정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성격의 의사로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나온다. 사실 이 나이대가 가장 좋다.

무엇이 좋냐면 배우를 고르기 좋다는 말이다. 현재 20대 남자 배우들을 보면 잘생기고 인기 많은 친구들은 많지만 대단한 연기력을 가졌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연예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여러 명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배우들이 많다.

30대 중반이면 40대 초반의 배우를 써도 관리를 잘 받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30대 초반의 여배우가 교복을 입는 것을 보는 민망함에 비하면 뭐…

드라마는 연기력이 조금 떨어져도 작가의 힘으로 끌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기에 연기력의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또한, 연기력이 떨어지면 장면이 살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판에서는 잘 생긴 친구들보다는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가 훨씬 대우를 받는다. 물론 흥행력도 더 월등하다.

일단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배우들 몇몇을 추려 제작사인 ‘타이거 스튜디오’에 메일로 명단을 보냈다.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보내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제작사에서 시나리오를 보내려는 것이다.

잠시 후, 윤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으셨죠?”

“네, 확인했습니다. 흐음… 이 배우들 중 하나가 되면 정말 좋겠네요.”

윤석은 우현이 보낸 명단을 봤는지 목소리에 기대감이 흘러나왔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일단 최 감독하고는 잘 해결했습니다.”

“아, 네. 연락 받았습니다. 전화로 잘 해보자고 하시던데요? 일단 최 감독님이 확정됐으니 투자자들의 이목은 확실히 끌겠습니다.”

‘밀실’의 최철성 감독의 차기작이니만큼 주목도가 올라가는 건 당연하다.

최 감독에게 천만은 확실한 영화이니 자신의 덕을 보는 거라고 큰소리 뻥뻥 쳤지만 시작 단계에서는 오히려 최 감독의 덕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 감독이 그렇게 조건을 걸고 나올 수 있었던 거다.

더구나 별이는 아직 주연 배지를 달아본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투자자 이목만 끌면 안 되죠. 거기에 적힌 배우들한테도 관심을 받아야 할 텐데, 그게 걱정입니다. 일단 시나리오 보내 보시고 연락 기다려보죠.”

“알겠습니다. 수고하셨네요.”

“수고는요.”

시작이 좋다. 시나리오 판권을 무사히 산 것, 제작사와 큰 불협화음 없이 협력하게 된 것, 그리고 생각했던 최철성 감독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 모두 말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똑똑…

“대표님 전화 끝나셨습니까?”

경수가 문을 두드리고는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응, 무슨 일이야?”

“지나 씨랑 연락 됐습니다. 그리고 제작사랑도 얘기가 돼서 제작보고회 날짜 받았습니다.”

“그래? 지나는 언제 들어온대?”

“제작보고회가 다다음주에 잡혔는데요. 그거 이야기해주니 바로 비행기표 구해서 들어온다고 합니다.”

“지금 어디래?”

“뉴욕이라는데요?”

“멀리도 갔네. 비행기는 많으니까 금방 들어오겠다?”

“말씀하셨던 대로 제작보고회 앞두고 관리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리니까 최대한 빨리 들어오겠다고 하셨어요. 입고 나갈 옷도 구해야 하고… 옷은 저희가 미리 구할까요?”

“아니야. 지나 취향도 있으니까 와서 코디랑 상의해서 직접 고르라고 해. 어차피 금방 들어올 것 같은데 뭐. 그리고 제작사 반응은 어때? 후반기 작업했으면 감이 올 거 아니야?”

영화를 만들 때는 보통 이 영화가 흥행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만든다. 때문에 촬영하는 그 순간에는 이게 재미있는지 아닌지 스태프들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후반기 작업을 마치고 편집이 끝나면 대강 감이 온다. 이게 먹힐지, 아니면 망할지 말이다. 물론 그래도 감이 안 올 때가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슬쩍 물어보니까 아주 신났던데요? 이번에 무조건 된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 흐음… 알았어. 뭐, 믿을 수는 없지만 언론 시사회 끝나면 답 나오겠지.”

“잘 되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러게나 말이야. 지나한테 있어서 이 작품은 모험과도 같은 건데, 이거 잘 안 되면 걔가 얼마나 실망하겠냐?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고 찍은 건데… 원래 몸을 고생시켜서 찍은 작품이 잘 안 되면 그 후유증이 더 오래가요. ‘내가 어떻게 이걸 찍었는데…’ 하면서 말이야.”

“저 같아도 열 받겠습니다.”

“하여튼 알았다. 지나 도착하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문자 하나만 남겨놔. 그리고 네 새끼들은 뭐해?”

경수의 새끼는 파이브 걸즈를 말한다. 보통 영업직이나 연예계에서 자신이 키운 사람들을 본인의 새끼라고 한다. 나쁜 말이 아니라 자식처럼 생각하며 끌어준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계속 연습하고 있죠.”

“그래? 알겠어. 다음 주에 내가 한번 본다고 해. 얼마나 연습되어 있는지 확인한다고.”

“오오… 드디어 데뷔가 눈앞에 보이는 겁니까?”

“아니야, 인마! 일단 실력 좀 체크해 보는 거야. 정말 데뷔할 실력이 되면 모르겠지만 그거 연습 며칠 했다고 벌써 데뷔를 입에 올려? 그리고 안무는 다 짰어?”

“하하, 생각해보니 아직 안무도 다 안 짰네요. 선생님께서 반 정도 마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안무는 다 짜겠네. 같이 보면 되겠다.”

“그럼 연습이 덜 됐을 건데요?”

“그럼 그런대로 보는 이유가 있는 거야. 괜찮아. 너는 애들한테 그렇게 말해 놓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경수가 나가고 나자 슬쩍 문을 잠그고 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 일어나서 운동하러 갈 시간이다.

“여보세요?”

“안 자고 있었지?”

“내 스케줄 알면서. 무슨 일이야?”

“거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를 하나?”

“오빠 소심해서 누구한테 걸릴까봐 항상 필요한 말만 하고 끊잖아. 말해 봐, 무슨 일인데?”

‘얘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크흠… 뭐, 네 목소리도 듣고 겸사겸사해서 전화한 거야.”

“알았어. 그래서 뭔데?”

“너희 회사에 이적한다는 소문 퍼졌어?”

“아… 그것 때문에 전화 했어? 응, 내가 코디한테 일부러 말했어. 입이 그렇게 무거운 편이 아니라서 금방 퍼질 거라고 생각했지.”

“왜?”

“혹시 모르잖아. 그래서 어떻게 나오나 반응 좀 보려고. 별 말 없으면 기분 좋게 서로 빠이빠이 하면 되고, 아니면 나도 생각 좀 해봐야지.”

그 생각 좀 한다는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어쨌든 일부러 소문을 흘렸다는 건데, 생각해보니 잘 한 행동이라고 생각됐다.

“그랬구나. 나는 혹시 네가 곤란해지면 어쩌나 했지.”

“내가 곤란해질 일이 뭐 있겠어? 열 받으면 까짓 거 그냥 다 때려치고 일 안하면 되지.”

역시나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다.

“그, 그래. 알았어. 그럼 운동 잘 하고. 저녁에 소주 한잔 할까?”

“칫… 엉큼하기는…”

가슴 한복판에 비수가 박히는 느낌이다. 항변하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크흠… 그거 아닌데…”

은하와 통화하고 나니 강소연과의 대화 후 찝찝했던 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괜히 그것 때문에 강소연 앞에서 눈치 보았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기다렸던 전화가 걸려왔다.

“김 대표님, 기다리고 있었죠?”

“누굽니까? 연락이 온 사람이… 제가 준 명단에 있는 사람이죠?”

윤석은 잔뜩 흥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명단 외에는 이 시나리오 안 뿌렸거든요. 놀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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