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74화 (17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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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쉽고 편한 길은 없다(2)

이쯤 되면 도대체 왜 미팅을 하자고 했는지 의문이 들 찰나 조 작가의 입이 다시 열렸다.

“뭐, 유은하 정도 돼야 원톱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제야 머릿속을 번뜩이며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그래서 부르셨던 거군요?”

오래전도 아니다. 은하가 막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을 때, 회사에서 은하에게 드라마 작가와 캐스팅 미팅을 주선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우현은 은하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작품이라며 극구 반대했고 결국 미팅은 무산되었다.

그 작품의 작가가 바로 조미희였던 것이 기억났다. 작가는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그걸 알고 있을 줄이야…

어쩌면 쉽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미팅 약속까지 잡아놓고 깨졌을 때는 회사에서도 둘러댈 말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화살을 우현에게 돌렸을 수도 있는데 그때는 미처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장태현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수 있는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조미희 작가는 우현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의뭉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뭐라고 한 마디 해줄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애초에 이건 자신이 실수했던 것에 대한 대가나 다름없으니까.

“잘 먹었습니다. 그럼 좋은 배우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네? 아니, 김 대표님!”

별이는 이미 돌아가는 이야기로 짐작하고 있었는지 우현이 일어나자 지체 없이 같이 일어났고 정훈영 피디는 놀라 다급하게 다가와 팔을 잡아챘다.

“작가님께서 이미 생각하고 계시는 배우가 있나 보네요. 굳이 서로 시간 낭비할 필요 있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조미희 작가는 김별 씨를 주인공으로…”

“아뇨. 그 생각이 틀렸을 겁니다. 다시 한 번 물어보세요. 그럼 오늘 식사 잘 먹었습니다, 가자.”

조 작가도 이렇게 자리가 깨질지는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우현 일행을 붙잡지는 않았다.

그걸 보니 더 확실해졌다. 그녀는 애초부터 별이를 주연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거다. 그저 우현 때문에 물먹었던 복수를 하기 위해 불러냈을 뿐이었다.

별이를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 때문에 시간과 심력을 낭비하게 했기 때문이다.

“미안해.”

“왜 대표님이 미안하세요?”

“그게 실은 말이야…”

이야기를 다 들은 별이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 작가님이 좀 속이 좁네요. 면전에다 한 이야기도 아니고, 작품 선택하다보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말인데, 그걸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건 아니죠. 잘 돌아왔어요.”

우현이 미안해 할까봐 일부러 더 세게 말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그래도 주연으로 캐스팅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지 않아?”

“뭐, 이 작품만 주연할 수 있겠어요? 대표님이 저 그렇게 키우지 않을 거잖아요? 은하 언니처럼 대박 작품으로 저 꽂아줄 거잖아요, 안 그래요?”

“하하! 그렇지. 유은하보다 더 대박작품 찾아서 네 품에 딱! 안겨줄게!”

“진짜죠? 저 대표님 말은 다 믿는데…”

“야! 진짜야. 걱정하지 마.”

미안한 마음에 더 큰소리를 뻥뻥쳤다. 단순히 헛고생을 시켰다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치부를 보인 것 같은 부끄러움도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해서 작품을 이어가려던 생각을 버렸다.

영화로 치면 천만, 드라마로 치면 최소 ‘예종의 여인’ 이상의 초대박 작품을 찾아보려고 마음먹었다.

지금 ‘예종의 여인’이 잘 나간다고는 해도 실질적으로 주연인 송민기와 한지애보다 주목받을 수는 없다. 주연으로 따내야 한다.

그녀를 집에 내려다주고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미친 듯이 시놉과 시나리오를 뒤지기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것뿐만 아니라 예전에 엎어진 것까지 다시 들춰냈다.

“우와… 이게 다 뭡니까?”

책상에 턱하니 발을 올리고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데 경수가 들어와 화들짝 놀란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종이들을 보고 그러는 거다.

“별이 차기작 검토하는 거야.”

“오늘 미팅 안 좋았습니까?”

경수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파이브 걸즈에게 묶여있었던지라 아직 상황을 모른다.

“응, 깨졌다. 다른 작품 찾아봐야 해.”

왜 깨졌냐며 물어볼 만했지만 분위기가 안 좋다는 것을 파악했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 네. 그리고 이조은날 작사가님께서 가사 보내주셨어요. 지금 아이들이 보고 연습하고 있는데 느낌이 좋던데요?”

“말했잖아. 말을 만들어내는 감각이 좋아. 시나 노래가사를 쓰는데 재능이 있어.”

“데뷔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세요?”

“애들 상태 봐서 결정해야지. 기본은 되는 애들이니까 얼마 안 걸리지 않겠어? 왜? 빨리 데뷔하고 싶어?”

“하하, 아무래도 빨리 데뷔해서 활동하는 모습이 보고 싶긴 하네요.”

“나한테서 벗어나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아닙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파이브 걸즈가 본격적으로 데뷔하고 활동을 시작하면 경수는 회사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때문에 어서 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

“그건 그렇고 유지나는 지금쯤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어?”

‘붉은 여우’ 촬영이 끝나고 후반기 작업이 마무리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해외여행을 떠났기에 지금은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얼마 전에 작업 마무리 됐다는 말 들었는데 배급사 결정됐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래, 제작보고회 날짜 잡혔는지도 확인해봐. 만약 잡혔으면 지나한테 그만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냐고 넌지시 말해. 피부 너무 타면 곤란하니까 미리 일주일 전에 귀국해서 관리 받으라고도 하고.”

“알겠습니다.”

“유니는 요즘 뭐해?”

“방송 활동 끝나고 계속 행사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몸에 무리가 갈까봐 무리한 스케줄은 절대 안 잡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니가 중간에 심심하다고 스케줄 좀 넣어달라고 할 정도예요.”

“걔는 좀… 심한데? 보통 그 정도 되면 쉬고 싶어서 온갖 꾀를 다 내려고 할 텐데…”

아무리 무리 없는 스케줄을 잡아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하루 8시간 푹 잘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정도 있으면 다행이고 다른 날들은 4, 5시간 취침에다 차 안에서 쪽잠을 자며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당연히 지치고 무기력해지니 돈이고 나발이고 일단 좀 쉬자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데 도대체…

“알고 보니까 유니 집도 그렇게 잘 사는 게 아니더라구요. 아직 정산도 안 됐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당장 손에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다 보니 어떻게든 더 벌려고 하는 것 같아요.”

유니가 정규 앨범으로 대박을 낸 게 고작 얼마 되지 않았다. 당연히 정산이 될 시기가 아니다.

정규 앨범을 만들기 전에는 그녀가 행사로 벌어온 돈은 앨범 작업비로 고스란히 들어갔기에 그녀가 정산을 받은 돈은 몇 천 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기획사에 비하면 놀랍도록 빠르게 지급된 거지만 말이다.

“집이 많이 어렵대?”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래? 흐음… 지금 회사에 여유자금 있지?”

“그건 저도… 민주 씨가 알고 있을 겁니다.”

“알았어. 그럼 나가고 민주 씨 좀 들어오라고 그래.”

경수가 나가고 민주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민주 씨, 유니한테 미리 당겨서 정산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요?”

“일단 5천만 원 먼저 보내줄래요? 더 보내줘야 할 것 같으면 내가 나중에 다시 말할게요.”

“알겠습니다.”

현재 회사에 상당한 자금이 들어와 있으니 가정산 해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얼마를 줘야 할지 고민이다.

별이에게 물어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직접 불러놓고 말해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나이라도 많으면 소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 하겠지만 이제 스무 살 됐으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

결론은 큰돈은 아니지만 적지도 않은 돈인 5천만 원을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보낼 수는 없으니 유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케줄을 보니 지금쯤 한창 고속도로를 타고 있을 시간이다.

“으음… 대표님?”

“자고 있었어? 미안하네.”

“아니에요. 안 그래도 배고파서 간식 좀 먹으려고 했어요.”

괜히 우현이 미안해 할까봐 하는 말이다. 세동하고 같이 있는데 간식을 마음대로 챙겨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너 힘든 것 같아서 일단 정산 좀 미리 해줬어.”

“어? 진짜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졸려서 목이 잠겨있던 그녀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하이톤의 본래 목소리로 돌아왔다.

“응, 일단 5천만 원 네 계좌로 보냈으니까 혹시 필요한 데 있으면 먼저 써.”

“5천만 원이요? 진짜요? 우와! 대박! 대표님 사랑합니다!”

다행이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정말 급했던 것 같다.

“대신 너 이제 스무 살 넘었으니까 내가 한 마디만 할게. 너 이돈 네 부모님한테 드릴 거니?”

“네? 네. 그런데요?”

“아무리 네가 효심이 깊어서 네가 번 돈 부모님한테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그래서 이제부터 네가 번 돈에서 최소 절반은 네 이름으로 다른 통장 만들어서 거기에 넣어 놔. 그리고 부모님께는 절반만 이야기해.”

“흐음…”

보통 남자애들은 자기밖에 몰라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본인이 쓰는데 일순위로 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자애들은 항상 부모님을 생각한다. 이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여자가 더 감성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연예계에서 가족이 돈 사고를 치는 경우는 대개 그 연예인이 여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건 본인이 번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그 돈을 가족에게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잘 관리해줄 거라는 믿음과 함께.

그렇기에 유니는 당연히 부모님 몰래 다른 통장을 만들어 두라는 우현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내 말대로 해. 나는 너처럼 돈 많이 버는 애들이 가족에게 돈 맡겼다가 홀라당 날려버리는 경우 많이 봤어. 일단 이번 5천만 원은 부모님한테 전부 드리고 다음 정산부터는 그렇게 해. 알겠지?”

“네.”

그래도 유니는 우현이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지 쾌활하게 답했다.

“그냥 만약을 대비하는 보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네가 번 돈의 절반도 굉장히 큰 거야. 부모님도 충분히 만족하실 만큼 돈 들어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니 문제까지 해결하고 나서 다시 책상 위의 시나리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 먹을 시간도 건너뛰고 살펴보았을 때.

“어? 이게 왜 엎어졌지?”

예전에 엎어졌던 시나리오 하나에서 뭔가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는 은하를 데리고 있었을 시기였으니 알았다면 분명 이걸 하려고 했을 거다. 그런데 이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시나리오였다.

충무로에서 제작하다가 엎어진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었던 것이기에 당장 누가 손을 댔었는지, 어째서 엎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는 거라곤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작가 이름인 김진원 뿐. 그런데 이 사람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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