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73화 (17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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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쉽고 편한 길은 없다(1)

“글쎄요.”

모르는 척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는 우현을 놔주지 않았다.

“발뺌 해봤자 소용없어요. 은하 코디한테서 이미 다 들었는걸요?”

아예 소문을 내고 다니지… 그 얘기한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그새 코디한테까지 얘기를 하나.

“크흠… 아직 결정 난 사항이 아니에요. 은하 남은 계약기간도 있고…”

“어머, 몰랐어요? 은하는 회사랑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계약금도 안 받고 정산비율도 나보다 덜 받아요. 굳이 정산비율까지는 조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언제 나갈지 모르니까 그것까지 회사랑 얘기해 놓았다고 하던데?”

별걸 다 알고 있다.

“음… 그래도 회사를 옮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 일단 이야기는 나누는 중입니다.”

뭐 때문에 저러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유은하가 회사를 옮기는 것과 강소연이 옮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단 유은하는 마이더스 갈 때부터 오래 있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계약관계를 조율했다. 그러니 회사 입장에도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리 큰 애정을 쏟지 않았을 거다. 물론 돈은 많이 벌어왔겠지만.

문제는 강소연인데, 그녀 같은 경우는 은하와는 달리 전적으로 마이더스의 대표 배우로 인정받는다. 그런 그녀가 다른 회사로 옮긴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거리를 두시네?”

“알고 계시겠지만 원래 은하는 내 배우였습니다.”

“오호, 내 배우…”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지만 무시하며 재차 말을 이었다.

“네. 내 배우였기 때문에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건 문제되지 않죠. 그래서 은하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데 소연 씨는 다릅니다. 마이더스 사장이 10년 넘게 애지중지하며 성장시켰는데 이제 와서 우리 회사로 온다는 건 저랑 마이더스 사장을 싸움 붙이는 것밖에 안 됩니다.”

나름 단호하게 말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말꼬리를 잡았다.

“애지중지 하지 않았는데?”

“네?”

“전~~~혀 애지중지 하지 않았어요. 나도 사람인데 그 오랜 시간을 애지중지 했다면 떠나려고 하겠어요?”

강소연이 그 정도로 의리가 있는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다. 뭐, 그녀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 걸로 인정해줘야지.

“아무리 애지중지 하지 않았다고 해도 막상 당신이 떠나려고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전 당신네 사장이랑 싸우고 싶지 않다구요.”

“우리 김 대표님이 이렇게 간이 작은 분인지 몰랐네요.”

“언제부터 우리 김 대표야?”

옆에서 듣고 있던 윤평식 피디가 불만스럽게 내뱉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꾸해주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은하랑 소연 씨가 이렇게 친한 줄은 몰랐네요.”

“친한 거 아니에요. 정말 친했다면 코디에게 듣지 않고 직접 들었겠죠. 그것보다 저도 은하랑 대표님이 그렇게 친한 줄은 몰랐네요. 뭐랄까… 배우와 매니저의 진한… 우정?”

정말 쉬운 여자가 아니다. 일부러 놀리듯이 말하며 간을 본다.

“뭐, 우정이라고 해두죠. 데뷔할 때부터 지금 그 자리까지 나와 같이 했으니까. 그러니 다시 나에게 오고 싶다고 한들 문제될 건 없겠죠. 자,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이제 진짜 이 자리에 온 목적을 달성해봅시다.”

“뭐, 뭘 그렇게 분위기 잡고 그래? 술자리에서…”

“형님이 그렇게 뻣뻣하니까 여기 소연 씨가 촬영장에서 어려워하잖습니까?”

“어려워한다고?”

윤 피디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지만 의외로 소연은 잠자코 보고만 있었다.

“그럼요. 그러니까 서로 술 한잔씩 하면서 옛 일은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해봅시다. 소연 씨도 이제 옛 일은 잊어버리자구요. 이거 분명 대박 작품 될 겁니다. 제가 장담할게요.”

“당연하죠. 김 대표님이 하는 거 아니었으면 저 여기 발 안 담궜을 거예요.”

“뭘 또 그렇게까지… 자, 한잔 드시고…”

소연과 평식의 잔에 술을 따르고 건배를 외쳤다. 그렇게 셋은 12시까지 부어라 마셔라를 하며 화합을 다졌다.

“아우, 죽겠다.”

이제는 아침에 먹는 해장국도 질렸다. 그래서 오랜만에 햄버거로 해장하고 사무실로 들어서니 별이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민주 언니한테 들어보니까 아침에 출근하셔서 해장하러 나갔다고 하시던데, 빨리 들어오셨네요?”

“어, 햄버거 먹고 왔거든. 근데 너는 왜 이렇게 빨리 나왔냐? 점심 약속이잖아. 상준이는?”

“그냥, 오늘 아침에 잠이 안 와서 제가 먼저 나왔어요. 상준 오빠는 회사로 오라고 했구요.”

“왜 잠이 안 와? 오늘 미팅 때문에 그래? 미팅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한 거야?”

“그러게, 내가 왜 긴장할까요? 주연이라고 들어서 그런가? 그냥 새벽에 눈이 떠졌어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늦잠이라도 자면 얼굴이 부을까봐 그냥 나왔죠.”

“메이크업은?”

“샵에서 간단하게 했어요.”

워낙 피부가 좋고 예뻐서 그런지 간단하게 했다고는 해도 그 아름다움은 어디가지 않았다. 정말 내가 봐도 사람 참 잘 골랐다 싶다.

“요즘 어때?”

“뭐, 기분이요?”

“그렇지. 시청률 잘 나오고 인터넷이나 SNS에서도 화제몰이가 장난 아니니까. 너도 체감 상 와 닿는 게 있나 싶어서.”

“헤헤, 기분이 좋긴 해요. 포털 메인에 제 기사가 나오고… 연예프로에도 제 이름이 거론되는 거 보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나요?”

별이 기사에는 악플이 없다. 첫 데뷔를 걸그룹으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망하고 다시 배우로 시작했기에 아무래도 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녀가 연기를 못 했다면 아무 짝에도 소용없었겠지만.

“그럼 그 기분을 계속 즐겨. 이번 주에 시청률 20% 넘은 거 기사 봤지?”

케이블 시청률을 새롭게 쓰고 있는 ‘예종의 여인’은 중반을 넘어가며 오히려 시청률에 더 탄력을 받았다.

이렇게 되니 반대로 KMTC의 ‘프렌즈’가 시청률 5% 이하로 주저 앉아버렸고 양쪽 작품의 희비는 더욱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정현이야 언제나 평균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으니 결국 기사들은 박지원 작가에 대한 거품론을 들고 나오며 화살을 쏘았고 추가로 ‘예종의 여인’ 편성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방송사 일처리까지 도마에 올랐다.

사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초기 광고가 완판되면서 희희낙락 했을 거다. 박지원과 김정현의 조합이면 불패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데 시청률이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해외 판매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국 같은 경우야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팔렸을 테지만 다른 나라들과는 아직 협상 중이었을 텐데 모든 화제가 ‘예종의 여인’에게 쏠리면서 ‘프렌즈’의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광고비로만 모든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 특히 ‘프렌즈’같은 경우는 회당 제작비를 3억이나 지원해줬다고 알려져 있는데 시청률 폭락에 광고까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비난의 화살은 새로 온 신임 사장에게 돌아갔다.

우현은 이 모든 상황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상대편 성적이 더욱 안 좋았다.

아마 강소연 역시 이 상황을 전부 알고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우현에게 더욱 미련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장과의 관계가 안 좋을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럼요. 1회부터 지금까지 시청률 전부 외우고 있는걸요?”

“좀 안 될 때는 모르지만 잘 되는데 뭐 하러 시청률까지 외우고 있어?”

“어머? 원래 잘 될 때 보면 더 기분 좋은 거예요. 아… 이번 작품도 잘 되겠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물론 시놉이 좋고 작가가 괜찮은 것 같아서 약속은 잡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지 마.”

“피… 어차피 대표님이 잘 해줄 거잖아요?”

“나야 잘 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안 받쳐 줄 때가 있잖니? 그래도 또 모르지. 운 좋게 모든 일이 잘 될 수도 있지 않겠어? 살다가 그럴 때도 있어야 살 맛 나지.”

“그럼요. 당근 당근.”

그렇게 별이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약속시간이 다 되어 왔다. 늦게 온 상준과 함께 약속한 음식점에 도착하니 이미 40대 중년 여성 한명과 역시나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와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파인 엔터 대표 맡고 있는 김우현입니다.”

“반가워요. 나 조미희예요.”

그녀는 차분한 옷차림과 고급스러운 액세서리를 한 채 우아하게 손을 반쯤 내밀었다.

조미희 작가는 지금까지 다섯 편의 드라마를 썼는데 전부 10%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른바 대박 작가에 끼지는 못하지만 2, 3년 마다 하나씩 작품을 써 왔는데 시놉시스를 보니 이번에도 역시 10%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할 것 같았다.

대박 작품이 아닐 것 같은데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조미희 작가가 여배우를 예쁘고 매력 있게 그리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 첫 번째다.

단번에 대박 향기를 솔솔 풍기는 시놉이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그것을 하려 했겠지만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고 연기 하루 이틀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일단 그녀의 매력을 돋보여주면서 주연의 자리를 굳히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시놉시스의 여주인공이 별이의 성격과 잘 맞아서다. 차분하면서 강인한 성격을 가진 여주인공과 별이가 잘 맞으니 연기력은 한층 더 인정받을 것이 분명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미희 작가와 미팅을 가지기로 마음먹었으니 솔직히 꼭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다음 기회를 가져보자는 마음이었다.

“김별 씨는 연기 몇 년 했지?”

“이제 2년차입니다.”

“그래? 음… 아직 많이 배워야 할 시기인데, 괜찮겠어?”

조미희 작가는 느릿느릿 말을 하면서도 별이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데 우현은 그것이 기분 나빴다.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아니 어떻게 보면 별이를 무시하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따지고 봤을 때, 작가가 갑이고 배우가 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첫 미팅 자리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현재 최고 작가로 인정받는 윤해연 작가도 하지 않는 짓이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기가 열심히 해서 잘 된다고 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어?”

“하하, 우리 조 작가님이 별이 씨한테 궁금한 게 많은가 보네요. 일단 식사부터 하실까요?”

옆에 앉은 정훈영 피디가 우현의 표정이 안 좋아진 것을 보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후 일행은 별 말 없이 식사를 했고 후식이 나왔을 때쯤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우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남자주인공은 누구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요?”

“그러니까 작가님 의중에 담긴 인물이 누군지 해서 말이죠. 어차피 며칠 있으면 기사 나올 텐데 굳이 그걸 기사로 확인하기에는…”

“현재 홍상준과 김형광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미희 작가의 입이 안 열리자 정훈영 피디가 대신 답했다. 그런데 홍상준과 김형광? 대표적인 얼굴 잘생기고 연기 개판인 모델 출신 배우들 아닌가?

“그 친구들은…”

너무 황당해서 고개를 갸웃하니 조미희 작가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신경을 긁었다.

“하긴, 김별 씨가 끌어가기엔 무리가 있겠다.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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