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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기대하고 고대하던…(1)
“어? 벌써 데뷔곡이 결정 난 거예요? 아싸!”
키가 작은 양지현이 화색을 띄며 웃었다. 데뷔곡이 확정이라면 준비기간만 끝나고 바로 데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틀어주세요.”
엔지니어에게 싸인을 보내자 그가 준비한 노래를 재생시켰다. 가사가 붙지 않은 상태의 가이드 음원이었는데 강한 비트가 연속적으로 때려대는 중독성 있는 힙합 멜로디였다.
“어때?”
한 번 들려준 다음에 그녀들을 보니 다들 긴가민가한 반응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현처럼 타고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노래도 단 한번 듣고서 좋고 나쁘고를 가려낸다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되게 여자여자한 노래는 아니네요? 춤이 엄청 강렬하겠는데요?”
이번에도 양지현이 그녀들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평소 성격이 활발한 탓인지 누구 눈치 볼 것 같지가 않다.
“맞아. 중간에 빠져 있지만 너의 랩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을 넣을 거야. 그리고 가이드 음원을 들었겠지만 고음을 쭉쭉 질러내야 하기 때문에 현수랑 미래가 연습 좀 해야 할 거고. 물론 지아랑 미소 둘 또한 대충 묻어갈 수 없도록 파트 줄 테니까 지금부터 아주 힘들어질 거야.”
이 멜로디의 가이드는 유니가 했다. 평소 유니가 부르지 않는 스타일의 곡이었던 만큼 녹음하는 동안 굉장히 힘들어 했다.
“랩 가사는 어떻게 해요?”
슬쩍 눈치를 보는 지현에게 쿨하게 말했다.
“가사 나오면 랩 부분은 네가 쓰도록 해.”
가사는 이조은날 작사가에게 이미 맡겨놓은 상태다. 유니의 곡은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었지만 이 곡은 빠른 비트의 곡이기에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한 그녀였다.
“진짜요?”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초짜에게 데뷔곡의 가사 일부분을 맡긴다는 건 큰 모험이지만 이미 자작곡 실력을 봤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듣고 나서 별로면 바꾸면 되니까.
“가사는 의뢰해 놓은 곳이 있으니까 아마 늦어도 한 달도 안 돼서 나올 거야. 그 전에 기초 보컬, 댄스 트레이닝 하면서 감을 익혀가도록 해. 그리고 종종 회사 식구들 볼 일이 있을 거야. 꼬박꼬박 인사 잘 하고. 알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를 담당할 사람은 여기 박경수 매니저야. 앞으로 궁금한 거나 필요한 게 있을 때는 전부 이 친구를 통해서 말하면 된다. 인사해.”
지금껏 우현의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경수가 손을 흔들었다.
“반갑다.”
살랑거리며 좋아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표정관리한 채 미소 한 번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이에 그녀들은 살짝 긴장하며 경수에게 인사했다.
“그럼 수고들 해.”
우현이 나가자 경수가 그를 따라 나왔다.
“같이 있지 왜 따라 나와?”
“처음부터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부담스러워 할 거 아닙니까? 천천히 다가가야죠.”
“새끼…”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아! 그리고 이번 데뷔곡은 언제 선정해놓으셨어요? 들어보니까 유니가 만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응, 유니 스타일은 아니니까. 사실 이번에 우리가 SN엔터에서 사람을 영입했잖아.”
미디어, 홍보 경력직으로 스카웃 해 온 두 명은 가장 위층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이 있기에 우현과 경수의 일이 많이 줄어 있었다.
“그랬죠.”
“그러면서 혹시 아는 작곡가 중에 괜찮은 사람 있는지 물어 봤거든?”
“설마? SN 인재입니까?”
“이게 조금 애매해. 원래 SN엔터랑 계약하기로 하면서 곡을 몇 개 보냈는데 그쪽에서 전속계약 말고 곡을 하나씩 계약하자고 했다네.”
“마음에 드는 곡이 몇 개 없었나보네요?”
“그런 거지.”
“이상하네요. 그 정도 실력이면 아예 계약 이야기도 안 꺼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애매하다는 게, 원래 그 친구가 SN엔터 작곡가 플라이하이가 추천한 친구라는 거야.”
“어? 플라이하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완전 유명한 친구잖아요? 소녀세상 앨범에도 많이 나오고…”
“맞아. 그래서 서로 이야기가 진행되던 와중에 그 친구가 자존심이 상했나 봐.”
“그렇겠죠. 처음부터 말이 안 나왔다면 몰라도 전속계약 말이 나왔다가 쏙 들어갔으니… 아마 계약은 해도 타이틀곡은 안 써줬겠어요?”
“타이틀 넣어줄 만큼 좋았으면 전속으로 했겠지. 사실 작곡일이라는 게 어느 정도 이름만 생기면 그까짓 전속 안 해도 그만인데 그 이름을 얻기가 힘들잖아. 그 친구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가 적선하듯 곡 몇 개만 계약해주겠다고 하니까 화가 났겠지. 그런데 일단 돈이 급하니까 그 몇 곡을 계약하면서 이번에 우리가 스카웃 해 온 그 친구들이랑 알게 됐데.”
“오호… 인연은 인연이네요. 그럼 이번에 스카웃 해온 친구들 통해서 연락해본 겁니까?”
“응, 사실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 그냥 만들어 놓은 것 중에 걸그룹에 쓸 만한 노래 있으면 보내 달라고 해 봤지. 그러니까 CD에 곡 열 개 담아서 직접 회사로 왔더라고.”
“어? 왜 저는 몰랐습니까?”
“밤에 왔었거든, 너 퇴근하고 난 다음에. 자기는 낮에 자기 때문에 꼭 밤에 방문하고 싶다는 거야. 어차피 나야 늦게 퇴근하니까 그러라고 했는데… 아이고, 난 무슨 거지가 동냥하러 들어온 줄 알았다. 깜짝 놀랐어.”
머리는 왜 길렀는지 어깨까지 내려왔는데 감지 않아서 부스스한데다가 나름 밀리터리 패션같이 입었는데 그게 더 사람을 없어 보이게 했었다.
“하하하! 그래서요?”
“근데 노래를 들어보니까 딱 감이 오더라고. 내가 찾는 음악이었어. 어떻게 보면 그걸 들어보니까 SN엔터에서 그 친구를 마음에 안 들어 했던 게 이해가 되더라고.”
“왜요?”
“지금 SN엔터 소속 걸그룹들과 안 맞아, 노래가. 그러니 계약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 뭐,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우리한테는 완전 좋은 기회가 됐네요.”
“그렇지. 그래서 우리 회사랑 계약 해보자고 했거든? 나는 단박에 그러자고 할 줄 알았는데 글쎄, 한참을 고민하더니 생각해보겠데. 회사가 작아서 신뢰감이 아직 안 든다나? 하여튼 웃기는 놈이야.”
“진짜 웃기네요? 유니를 몰라? 김별은? 유지나를 앞에 두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답니까?”
경수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우현은 피식 웃었다.
“웃긴 놈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같이 일해보고 싶더라고. 원래 그런 독특한 친구가 기가 막힌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법이거든. 난 그런 친구 좋아해.”
“대표님의 취향이 그런 쪽인 줄은 몰랐습니다. 실망입니다.”
“크큭… 그게 돈 버는 취향 인거야.”
경수는 한숨을 푹 쉬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 리아 떨어진 걸로 사람들이 욕하는데 m.met에다가 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동영상 내보내기로 했는데 왜 안 내보낸 거예요?”
원래는 리아와 김하은 간의 싸움을 방송에 내보내기로 했었다. 그런데 막판에 우현이 아이들의 이미지 때문에 방영하지 않는 것으로 해달라고 제작진에게 말했었다. 만약 그 장면이 방송에 나갔다면 시청자들은 리아가 떨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거다.
“사람 밥줄 함부로 끊는 거 아니다. 분명 다른 회사 가면 데뷔할 친구들인데 지금 그 영상 나가면 걔들 인생 어떻게 되겠어?”
솔직히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하지만 조금 욕먹고 지나가는 게 낫지, 남의 인생 끝장냈다간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그냥 안 내보내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흐음… 그래도 지금 우리 애들이 도리어 욕먹는 상황까지 올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는 말이야, 지금까지 제대로 된 불매운동이 성공한 적이 없는 나라야. 금방 잊어버리니까. 하다못해 그 욕먹던 mc몽키도 앨범 하나 내니까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찍었었잖아? 지금 잘나가는 걸그룹이나 보이그룹 중에 일진설 돌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니까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이야. 금방 지나갈 일이다.”
데뷔곡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곡에 자신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도 없는 건 물론이고 리아와 하은을 매장을 시켜서라도 아이들을 띄웠을 거다.
“흐음… 알겠습니다.”
경수는 아쉬워했지만 어차피 언제 있었냐는 듯 지나갈 일이라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며칠 뒤, 일이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튀고 말았다.
“대표님! 이거… 대표님이 시킨 거 아니죠?”
경수가 핸드폰을 들고 대표실로 들어와 우현에게 들이밀었다. 뭔가 해서 보니 포털사이트 연예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떠 있다.
[‘Five girls' 리아와 하은, 격투 동영상 떴다!]
“이게 뭐야?”
“진짜 대표님이 하신 거 아니에요?”
“내가 이걸 왜 띄우라고 했겠어?”
“아니, 요즘에 우리 애들 욕하는 수위가 점점 높아 지길래…”
리아에 대한 해명 없이 묵묵부답으로 대응해나가니 네티즌들의 ‘Five girls'에 대한 비난 수위는 더더욱 높아져만 갔다. 또한, 제작진과 파인 엔터가 공정한 진행을 못한 것에 대해 무수한 욕을 먹기 시작하니 그것에 빡친 어떤 제작진 한 명이 동영상을 풀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제작진 측에 전화해봤어?”
“아뇨. 바로 대표님께 달려왔는데요.”
“알았어. 나도 알아보자.”
바로 제작진 측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동안 지속되다 거의 끝나갈 때쯤 전화를 받는다.
“아이고, 대표님. 하도 전화가 많이 와서 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대표님이셨네요.”
담당피디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게요. 저희는 그냥 있으려고 했는데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거든요.”
누구 하나가 돌출 행동한 게 아니라 일부러 풀었다는 말이다.
“왜요?”
“내년 초에 아이돌 프로그램을 또 하나 제작준비 중인데 이번 문제 때문에 방송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해서요. 죄송합니다.”
“제작진 탓은 아니니까 뭐, 저한테 죄송할 건 아니구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경수에게 설명하니 실실 쪼개며 댓글을 확인한다.
“그래요? 훗. 대표님, 보세요. 다들 자기네가 언제 욕했냐는 듯, 악플 단 사람들 욕하네요.”
우현도 궁금해서 그 동영상 댓글을 확인하니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 대표가 이유가 있어서 안 뽑은 거지 무슨 소설들을 그리 써대시는지…]
[하여튼 악플러들 다 죽어야 하는데.]
[리아 생긴 게 딱 그래 보였음. 난 리아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이래서 양 쪽 말 다 들어봐야 하는 거임. 악플 단 사람들 다 고소미 ㄱㄱ~]
[파이브 걸즈 파이팅! 오빠가 격하게 아낀다!]
“뭐, 우리 손에 피 안 묻히고 정리됐으니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애들 불안해 했을 텐데 이거 보여주고 달래줘라.”
“이미 다 봤을 걸요? 벌써 난리 났을 겁니다, 하하.”
“그래, 수고했다.”
이후, 리아와 김하은이 서로 SNS에 해명글을 올려놓긴 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뿐이다. 결국 데뷔도 하기 전에 ‘Five girls'에 대한 호감도는 급격히 올라가 팬카페와 갤러리까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