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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경쟁 또 경쟁(3)
“둘 중에 한 명이 ‘Five girls’로 데뷔하게 되겠지? 둘 밖에 없기 때문에 실력은 확실하게 드러나 보일거야.”
랩트레이너로 등장한 사람은 m.met에서 섭외한 래퍼 ‘타잔’이다. 타잔은 그만의 독특한 랩 스타일을 구축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래퍼다.
그는 위아래로 흰색의 헐렁한 의상을 입고 흰 스냅백을 쓰고 스웩 넘치게 등장했다. 어슬렁 걸을 때마다 목의 두툼한 금목걸이가 흔들리고 말할 때 움직이는 손가락에는 여러 개의 금반지가 끼워져 있다.
인사 따위는 없다. 타잔은 인사 대신에 독설을 날렸다.
랩이 특기인 양지현과 케이시는 자신들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타잔 앞에서 잔뜩 긴장했다.
“케이시부터 볼까?”
케이시가 능숙하게 리듬을 타며 랩을 했다.
“케이시, 래퍼의 마음가짐이 어때야 한다고 생각해?”
“…”
“방금 네가 가사에서 ‘너희들은 찌질한 스웩’이라고 했지? 자신감이 가득해야 하는데 너는 지금 전혀 그렇지 않아. 이렇게 해서 래퍼가 되겠어? 래퍼는 자신감이야.”
케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양지현.”
지현은 타잔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정규앨범은 물론 믹스테잎까지 다 외우다시피 연습을 해왔다. 팬카페 회원으로 활동하며 콘서트와 방송까지 따라다녔던 그녀였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그런 활동들은 못하게 되었지만 팬심은 변함없다.
타잔이 등장한 순간, 지현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너무 좋아서 달려갈 뻔했지만 그가 등장하며 인사할 틈도 없이 케이시와의 경쟁을 언급하니 일단 참기로 했다.
‘수업 끝나고 가서 얘기해야지. 싸인도 받고.’
타잔이 고개를 돌려 지현을 쳐다보자, 지현은 조금 전 타잔이 케이시에게 한 말을 참고해 더욱 자신감 있게 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리스마 있는 표정과 몸짓, 목소리로.
‘타잔의 눈에 들 거야.’
어디 가서 랩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지현은 랩이 끝나고 속으로 꽤 흡족했다. 이 정도면 칭찬을 받아 마땅할 실력이다. 래퍼 동료로서 함께 활동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던가? 드디어 꿈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많이 설레지만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으니 조용히 타잔의 평가를 기다렸다.
타잔은 곧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손으로 턱을 괴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실망인데?”
지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프로 래퍼들만큼은 안 되겠지만 연습생들과 이미 데뷔한 아이돌까지 포함해도 자신이 톱3 안에는 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요? 어디가요?”
대담하게 지현이 먼저 물었다.
“네가 랩 잘 한다고 생각하지?”
“…”
대놓고 물으니 또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기껏 연습생인 자신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랩 좀 한다고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네. 자신감과 자만심은 다르지. 네 랩은 겉멋이 잔뜩 든 랩이야. 네 실력이 그렇게 겉멋이 들 정도는 아니거든? 정신 차려.”
지현에게 우상이자 남자였던 타잔이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독설을 날리자 슬픔과 쪽팔림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현이 상상해왔던 첫 만남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댄스 수업이 시작됐다.
“일주일 후 치러질 테스트 곡을 발표할 텐데요. 5명씩 A조, B조로 나눠서 진행할 거예요. 이긴 팀에게는 유명 스파브랜드 픽샵에서 쇼핑할 수 있는 쇼핑권을 드릴 거예요.”
“오오!”
쇼핑이라는 말에 참가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장 춤을 잘 추는 하은이와 지아, 앞으로 나와볼까? A조는 하은이가 뽑고 B조는 지아가 뽑을 거예요. 번갈아서 뽑을 건데 누가 먼저 뽑을 지는 가위바위보로 정합니다. 자, 뒤돌아서서… 가위바위보!”
김하은이 이겼다.
“하은이부터 조원을 지목합니다.”
“음… 강미래.”
보컬과 댄스 모두 잘 하는 리아가 가장 먼저 선택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강미래가 선택되었다. 미래도 놀랐는지 어리둥절해하며 하은이 옆에 섰다.
“자, 다음은 지아가 지목할까?”
“리아 언니요.”
그렇게 번갈아 조원을 정했다.
“테스트 곡 발표합니다. 하나는 카나의 ‘미스터’, 하나는 소녀세상의 ‘Gee’입니다. 두 조장은 어떤 곡을 할지 결정하세요.”
트레이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아가 손을 번쩍 들고는.
“저희 B조는 소녀세상의 ‘Gee’ 하겠습니다!”
리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선 김하은이 자신을 먼저 뽑지 않았다는 것에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고, 지아가 ‘Gee’를 선택해서 또 짜증이 났다.
‘나이도 어린 게 엄청 나대네.’
‘미스터’ 선택하기를 바랐다. 춤이 더 여성적이고 매력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자신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아가 조원들과 상의도 없이 제 멋대로 ‘Gee’를 선택해버렸다. 게다가 가위바위보에 져서 강미래와 양지현을 A조에 뺏겼으니 질 확률이 커졌다.
“네, 그럼 자동적으로 A조는 카나의 ‘미스터’를 해야겠네요. 이제부터는 조원들끼리 파트 나누는 시간을 가질게요.”
한편 A조에서는 홍연우가 언짢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9번째, A조 마지막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그 정도의 실력으로 밖에는 안 보였다는 말일 터.
‘이렇게 밀리면 안 돼. 방송에도 계속 이렇게 나가다간…’
“파트 정하자. 우선 센터, 하고 싶은 사람?”
조장인 김하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연우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센터’, 센터가 되어야 한다.
연우는 손을 들었다.
손 든 사람은 혼자였다. 속으로 ‘됐어!’를 외치는데.
한 명이 더 손을 들었다. 한미소였다.
나머지 조원들인 김하은, 강미래, 양지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떻게 할까?”
“혹시 안 되더라도 기분 나빠하기 없기!”
그러자 양지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센터는 조금 더 꽃미모여야 하지 않아요? 흐흐, 연우 언니 기분상해 하지 마요. 미소 언니가 너무 예뻐서 문제인 거지.”
강미래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팀이 이겨야 다 같이 돋보이는 거니까. 저도 미소 언니가 센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이 같은 의견을 내자 어쩔 수 없는 분위기다.
“그럼 센터는 한미소. 그 다음, 메인보컬. 당연히 강미래?”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홍연우만 빼고.
센터에서 밀리면 연우의 존재감은 가장 낮아진다. 당연히 랩은 양지현이고, 춤은 김하은이니, 자신은 존재감 없는 서브보컬이 되는 거다. 연우가 미소보다 노래와 춤 실력이 더 좋아도 센터보다 주목을 받을 수는 없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B조는 리아가 센터, 채현수가 메인보컬, 케이시가 랩, 이주아가 서브보컬이 되었다. 파트가 정해지자 모두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강미래는 여러 날 동안 풀과 과일로 연명하며 춤 연습을 해오느라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언니 독하다. 어떻게 진짜 그것만 먹고 버티지? 진짜 홀쭉해졌어.”
룸메이트이자 조원인 지현이가 미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살만 빠지고 춤이 안 늘었으면 안 되는데… 지아 얘기 못 들었어? 케이시 언니가 엄청 열심히 춤 연습했다잖아. 지아랑 같은 조가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김하은이 조원을 먼저 뽑으면서 지아가 미래와 지현을 뽑을 기회를 잃었다.
“에이, 아무리 케이시 언니가 열심히 했어도 이기는 건 우리 팀이지. 걱정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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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et의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인 ‘Five girls'는 녹화방송이지만 실제와 큰 시간차이가 없다. 전주 방송분이 바로 나오기 때문인데 이건 멤버들의 인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우현은 딱히 업무가 없을 때는 항상 인터넷을 보며 멤버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식사 하셨어요?”
점심을 먹고 와서 쉬고 있는데 민주가 들어온다. 그런데 그 옆에 보여야 할 경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요. 경수는요?”
“아까 전화 와서 밖에서 받고 있을 건데요? 불러 올까요?”
“아니에요. 됐어요.”
계속해서 인터넷으로 커뮤니티 상황을 살펴보는데 경수가 헐레벌떡 올라와 우현의 방으로 뛰어들듯이 들어왔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니 뭔가 대단한 뉴스를 듣고 왔나보다.
“대표님! 그 얘기 들으셨어요?”
“뭔데? 뭔 얘기?”
“저도 막 방금 전에 들었는데요, 민재원이 마약으로 수사 받고 있다는데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뭐? 마약?”
“네, 조만간 뉴스에 나올 거라고…”
“넌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이번에 민재원이 드라마 들어간다는 말 있었잖습니까? 제가 그 드라마 조감독으로 배정받은 친구랑 학교 동창이거든요.”
“이래서 학연, 지연이 무서운 거야. 그래서?”
“갑자기 캐스팅이 취소됐데요. 제작진 측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고, 소속사인 스카이 엔터 측에서는 개인 사정이라고만 둘러댔는데 민재원이 소속사랑 상의도 없이 작가랑 만나서 합류하겠다고 했다네요?”
남의 집 불난 이야기라서 그런지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제작진 측에서는 오케이 해서 기자들 다 불러놓고 대본리딩하는 찰나에 글쎄 경찰이 민재원을 찾더랍니다. 그래서 결국 대본리딩은 미뤄졌고 기자들한테는 제발 기사 좀 쓰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데요.”
“제작진만 똥 뒤집어썼네.”
“그러니까요. 결국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검찰에서 마약으로 민재원에 대한 수사가 은밀하게 진행됐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나? 스카이 엔터에서도 그래서 출연 못 하게 막으려고 했는데 민재원 그 병신이 똥을 제작진에게도 엎어버린 거죠.”
소속사도 민재원이 마약을 했다는 건 얼마 전에나 알았을 거다. 알았다면 결코 전속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겠지.
“이제와서 생각하니까 왜 민상욱이가 대표님께 와서 제발 소송 취하하고 받아들여 달라고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 나도 알 것 같다.”
형이 저렇게 됐으니 동생인들 예쁘게 봐주겠는가? 게다가 소송 때문에 근 2년 정도를 백수로 보내게 해야 하는데 회사가 뭐 예쁘다고 이것저것 사정 봐줄까?
그걸 아니까 우현에게 와서 빌었던 게 분명하다.
“대표님이 왜 민재원과 계약하지 않았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쌍엄지를 치켜든 경수가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운이 좋았던 거야. 나도 그런 놈인 줄은 몰랐어.”
그저 허세 심하고 자존심이나 세울 줄 아는 친구로 알았지 설마 마약까지 손을 댔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런 것까지 알았다면 주식에서 실패하지도 않았을 거다.
“운도 실력이라 하지 않습니까?”
“됐고, 이번 일로 스카이 엔터는 물 제대로 먹었겠네.”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요 몇 달 사이에 민재원 말고도 강효은, 양석찬, 조민주 같은 연기파 배우들을 줄줄이 영입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 일로 브레이크가 빡! 걸릴 것 같단 말이죠.”
경수가 언급한 인물들은 전부 30대 전후의 젊은 연기파 배우들인데 외모가 조금 떨어지지만 감초 역할로 드라마와 영화 쪽에서 맹활약 하는 친구들이다.
모든 이슈를 잡아먹어버리는 핵폭탄급 악재가 터졌으니 과연 이후에도 블랙홀처럼 배우들을 영입할 수 있을까?
“그러게. 이제는 좀 궁금하네. 어떻게 나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