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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경쟁 또 경쟁(2)
지금까지 연습은 우현 없이 진행됐다. 어차피 기본 훈련이자 각자의 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기에 굳이 우현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우현이 등장하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반가워요.”
“안녕하십니까!”
소녀들은 짜 맞춘 듯이 인사했다. 그녀들 옆에는 지금까지 훈련을 도와준 선생님들이 자리했다.
“여러분들은 연습생 출신이기 때문에 긴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차피 데뷔 확정되면 곡에 맞는 춤과 노래를 다시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이번 오디션은 본인들 실력에 대해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현의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실력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 이해되지 않은 거다.
“내가 보는 건 ‘지금 여러분의 상태에서 짧은 시간에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느냐’예요. 물론 여기 모인 열 명의 사람들은 각자만의 매력이 있어요. 최소한 걸그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해서 뽑은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의 노력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고 봐도 좋아요.”
이건 반은 진실이지만 반은 거짓이다. 노력이 상당부분 도움을 주겠지만 타고난 매력이 더 뛰어난 친구는 조금 덜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뽑힐 수밖에 없다.
물론 타고난 매력에다 노력까지 열심히 하는 친구라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자, 그럼 한 명씩 지금까지 배운 노래와 춤을 볼게요.”
노래와 춤은 모두 동일했다. 그렇기에 서로간의 실력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노래는 강미래, 채현수, 리아가 월등했고 춤은 민지아, 리아에 눈길이 갔다.
“역시, 리아가 잘 하네?”
“감사합니다.”
JGP 출신이라서 그런지 역시 춤과 노래가 평균 이상이다. 얼굴도 매력 있고 몸매도 괜찮으니 데뷔 멤버로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가 끼어 있는 걸그룹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앞으로 일주일간 훈련을 받으면서 한 가지씩 미션을 줄게요. 미션은 각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도와줘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 다 경쟁자니까. 여기 있는 분 중에 절실하지 않은 사람 있어요? 없죠? 그러니 다른 사람의 미션을 알려고도 하지 말고 도와주려고도 하지 말아요. 오로지 자신에게 떨어진 미션만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넵!”
“그럼 한 명씩 나와서 내 앞에 서요.”
가장 먼저 김하은이 나섰다. 그녀는 아까부터 시선을 아래에 두고 답답한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은 양이 다음 주까지 해내야 할 미션은 이겁니다.”
“네? 이걸요?”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현이 미리 준비해온 카드를 가리켰다.
“네. 못 하겠어요?”
“그게…”
그녀는 당황해서 말을 잊지 못했다. 카드에 적혀있는 메시지는 ‘강남 한복판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추기’였으니까.
솔직히 이렇게 유치한 걸 미션으로 주고 싶지 않았다. 놀이공원 원숭이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가? 하지만 하은을 위해서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김하은이 댄스 트레이닝에서 가장 잘 하는 친구로 뽑힌 걸로 아는데 막상 다시 우현 앞에 서서 댄스를 시켜보니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 같이 하는 거면 몰라도 혼자서 따로 무대를 만들어주니 카메라와 우현의 시선의 압박에 스스로 무너져버린 거다.
원래는 이것 말고 준비한 다른 미션이 있었지만 그녀의 멘탈을 보고는 꺼내고 싶지 않은 카드를 꺼낸 거다.
“이거 못 하면 하은 양은 앞으로 걸그룹 데뷔 못해요. 이건 저주를 내리는 게 아니라 제작자인 제 객관적인 입장에서 하는 말이에요.”
“…”
“걸그룹 하고 싶어요? 그럼 다음 주까지 미션 해 오도록 해요. 자, 다음.”
우현이 카드에 적은 메시지는 미션을 받은 당사자와 시청자들만 알 수 있다. 천장에 작은 카메라를 미리 달아두었기 때문이다.
다음 순서는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친구인 리아다.
“리아 양이 해야 할 미션은 이겁니다.”
“어?”
카드에 적힌 미션은 ‘웃으며 노래하고 춤추기’였다. 어떻게 보면 김하은에 비해 너무도 쉬운 미션이다.
“어때요? 잘 할 수 있겠어요?”
“네. 잘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자신감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웃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건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만 우현은 결코 쉬운 미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리아는 외모는 말 할 것도 없고 노래 실력도 상당하다. 분명 걸그룹을 꿈 꿀 만하다. 하지만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
이게 성공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지 모르겠는데 노래를 부를 때나 춤을 추는 것을 보면 열심히 하고 잘 하는데 감흥이 오지를 않았다.
어째서인가 곰곰이 생각하니 그녀는 춤추거나 노래를 부를 때 항상 얼굴이 굳어 있었다.
굳은 얼굴은 잘 사용하면 카리스마가 되지만 잘 못 사용하면 보는 사람 기분을 안 좋게 한다. 이게 카리스마가 되기 위해선 무대 위에서 표정을 잘 사용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게 되지 않았던 거다.
“알겠습니다. 다음!”
다음 차례는 홍연우였는데 이름이 불리는 순간부터 바짝 얼어서 다가왔다.
“연우 양이 해야 할 미션은 이겁니다.”
우현이 내민 카드에 적힌 미션은 ‘노래 부를 때 어깨에 힘 빼기’였다. 이건 우현의 의견이라기보다 보컬트레이너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 목을 과하게 쓰게 되고 실수가 나온다는 것. 음색이 예쁜 그녀이기에 무엇보다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히잉…”
분명 그녀도 힘을 빼려 노력했을 거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기에 어려운 미션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잘 할 수 있겠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과는 달리 얼굴은 팍 풀이 죽어 있었다. 그걸 보니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고작 이 정도에 풀이 죽을 정도면 더 힘든 건 어떨까?
“전에 보컬 트레이닝 하는 걸 보니까 실수도 하고 그러던데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지금부터 내가 연우 양을 보는 절대적인 기준은 그 카드에 적힌 게 될 거니까. 만약 이게 잘 되지 않으면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점수를 높게 줄 수 없어요.”
“잘 알겠습니다.”
“좋아요. 다음!”
이런 식으로 모두에서 미션을 전달해 주었다. 미션을 받은 소녀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눈치를 보았지만 입을 열지는 못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미션을 잘 완수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우현이 나가자 조연출인 이지혜가 앞으로 나섰다.
“모두 미션 받았죠? 미션과는 별개로 보컬, 댄스 등 훈련은 정상적으로 진행됩니다. 미션완수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거구요. 단지 김하은 양은 미션 완수할 때가 되면 저에게 말해 주면 됩니다.”
다른 이들의 눈길이 전부 하은에게 쏠렸다. 왜 미션 완수할 때 스태프의 도움을 받는지 궁금해서다.
“네…”
하은은 주변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각자의 미션을 친구들에게 알려줄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기겠어요. 대표님도 굳이 얘기하는 게 좋을 것은 없지만 꼭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거든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알려 줘 봤자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알려줘도 되는 거 아닌가요?”
리아가 용기 내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말해줘도 무방해요.”
우현이 말하지 않도록 유도한 건 각자의 미션이 다른 만큼 누구는 쉬운 미션을 주고 누구는 어려운 미션을 줬다는 말이 돌까봐서 였다.
“10분간 쉬고 개인 인터뷰 할게요. 잠시 쉬도록 해요.”
제작진은 우현이 개인 미션을 준 것을 흥미롭게 생각해 각자에게 인터뷰를 따기로 했다. 미션을 받고 기분은 어땠는지, 왜 자신에게 이런 미션을 줬는지, 잘 할 수 있는지 따위를 물어보려 한 것이다.
제작진이 사라지자 안무연습실은 삽시간에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아! 뭐야! 나 너무 어려운 거 받았어. 어떻게 이걸 일주일만에 해!”
홍연우의 한탄에 김하은이 보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더 쉬울걸? 하… 미치겠다.”
“네 미션은 뭔데?”
둘은 동갑이기에 말을 놓았다.
“나? 그래, 뭐 말해줘 봤자 별거 없지. 나 강남역 한복판에서 춤추는 거야. 여기 나보다 심한 사람 없을 걸?”
“아…”
그제야 아까 하은에게 스태프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됐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휴, 왜 나만 이렇게 어려운 거 줬는지 몰라… 그런데 넌 뭔데?”
“나? 아… 너보다 쉽긴 한데… 다음에 알려줄게.”
홍연우는 자신의 미션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지나고 개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인터뷰할 대상은 채현수.
“현수 양이 이 중에서 가장 경계 받는 사람인 거 알아요?”
“아… 네, 알고 있습니다.”
리아보다 더 경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그녀는 쿨하게 답했다.
“신경 쓰이지 않아요?”
“물론 신경 쓰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해 듣기로는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걸 대표님께 간청해서 참가했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시청자들이 채현수를 안 좋게 생각할까봐 우현이 제작진 측에 요청한 질문이다.
“아무리 제가 여기에 먼저 왔다고 하더라도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대표님께 부탁드렸어요.”
“흐음… 그랬군요. 오늘 미션은 어떤 거 받았어요?”
“저는 걸그룹 노래 두 곡의 안무를 전부 마스터하기요.”
현수는 노래로는 주목받고 있지만 춤에서는 조금 모자란 것이 흠이다. 또한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게 조금 강한 측면이 있어서 걸그룹 노래 중에 여성미가 있는 노래의 안무 두 개를 모두 완벽히 마스터 하는 것을 미션으로 주었다.
“와우, 두 개를 완벽이 외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여기서 진행하는 안무도 외워야 하니까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아마 먹고 자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춤을 춰야 할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겠네요. 이런 힘든 미션을 준 대표님 원망하지 않아요?”
“아니요. 저에게 필요한 거니까 미션을 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후 부모님과 관련시켜 억지 눈물을 빼내기 위한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 난 후 인터뷰가 끝났다. 다음 차례는 모두의 관심을 받는 리아였다.
“가장 강력한 데뷔 멤버로 꼽히는데 본인 생각은 어때요?”
“어… 제가 아니라 채현수 아닌가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뼈가 있는 말이다.
“아니에요. 다들 리아 씨라고 말하는 걸요. 오늘 미션은 어떤 거 받았어요?”
“아, 저요? 저 노래 부르고 춤 출 때 웃는 거요. 아후, 큰일 났어요.”
“어머, 왜요? 그 정도는 쉬운 미션 아니에요?”
“제가요, 사실 웃으면 조금 못 생겨 보이거든요. 그래서 잘 안 웃는데… 뭐, 어쩔 수 없죠.”
그 정도 미션은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는 듯 말했지만 그녀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린 건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