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63화 (16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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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경쟁 또 경쟁(1)

저녁을 먹고 댄스 수업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 아이돌 그룹의 안무를 만들고 트레이닝을 시켰던 조환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일정기간의 연습생 생활을 경험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나 기본기가 되어있는지 확인해봐야겠죠? 내가 간단한 춤을 보여줄 거예요. 여러분은 30분 안에 마스터해서 그대로 춰 보이면 됩니다. 자, 시작합니다.”

음악이 흐르고 트레이너의 춤이 이어졌다.

“허! 외우지도 못하겠어.”

“너무 어려워!”

간단할 거라던 말과 달리 안무는 꽤나 길어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무의 시작이 어땠는지 기억하기도 힘든 와중에 춤을 추기 시작하는 두 명이 있었으니, 민지아와 김하은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그 둘을 보고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트레이너가 몇 번 더 보여주긴 했으나 몇몇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민지아가 케이시 지도해주고, 김하은이 강미래 좀 봐줄까?”

계속 헤매고 있는 케이시와 강미래는 두 사람에게 개인 교습을 받게 되었으나, 30분이 다 되어가도록 크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미래는 자신이 몸치가 된 것만 같았다. 연습생으로 지내며 보컬 못지않게 춤 연습을 해왔었다. 춤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못 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번 본 안무를 따라 추라고 하니, 머릿속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 거다. 하은 언니가 가르쳐줘서 따라 추기는 하는데 동작도 엉성하고 뻣뻣하기 그지없어, 걸그룹 지망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제한 시간 30분이 다 되어갈 즈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춤을 춰내고 있었다. 미래는 겨우 안무 순서를 외우긴 했으나 춤을 춘다고 하긴 힘들고 그저 외운 동작을 해내는 것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한 번 본 춤을 따라 춘다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우왕좌왕하는 자신보다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이 더 이해가 안 됐다.

옆을 보니 케이시 언니는 더 답이 안 나오는 춤사위였다. 자신은 춤이 정확하지는 않아도 안무를 외우기라도 했는데 케이시는 그 마저도 안 됐다. 아마 미국에서 온 친구라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랩만 주로 연습해서 그러리라.

“언니, 거기서 어깨가 아니라 골반이 나와야 해요.”

그래서인지 활발하고 붙임성 좋은 지아가 열심히 케이시 언니를 지도해주고 있었다.

반면 하은 언니는 말이 별로 없다. 미래가 안무를 거의 다 외우자 돌아서서 다시 자기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잘 하지는 못할망정 자신보다 못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씁쓸한 안도를 하며 다시 하은 언니를 따라 연습을 시작하려는 찰나, 트레이너가 다가왔다.

“미래는 살을 좀 빼야겠다. 춤이 어설픈데 키가 크고 살집이 있으면 굉장히 둔해 보이거든. 그러면 여러 명이 춤을 출 때 실제 못 추는 것보다 훨씬 더 못 추는 것처럼 눈에 확 띄어. 식단 조절하고 운동하고, 유연성 기를 수 있도록 스트레칭도 더 많이 해야겠네.”

“네.”

‘키 큰 게 오히려 독이 되네.’

미래는 시무룩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케이시 언니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는지 궁금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트레이너가 그냥 가는 거다. 아무 조언도 없이.

‘뭐야, 나만… 케이시 언니는 너무 못해서 그냥 포기인 건가?’

30분이 지나 5명 씩 테스트가 이뤄졌다.

“1, 2, 3등을 발표할 거야. 먼저 3등, 리아. 2등, 민지아. 1등, 김하은. 자, 박수쳐줍시다.”

짝짝짝짝…

“일주일마다 테스트를 할 거예요. 첫 번째 테스트 할 춤은 내일 배울 거고. 오늘은 춤을 이루는 기본 동작들을 다시 점검하고 몸에 익힐 거예요. 복습이 필요 없는 참가자들도 있지만 기본기를 다진다는 차원에서 모두 열심히 따라주길 바랄게요.”

“네!”

그렇게 합숙 첫째 날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모두들 피곤에 절어 대충 트레이닝복을 걸쳐 입고 숙소 식탁에 모여 앉았다.

“영양소를 고려한 저칼로리 도시락이에요. 저염, 저당, 저탄수화물, 고단백 식단이니까 맛있게 먹고 오늘도 열심히 합시다!”

“네!”

하루 새 많이들 친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강미래도 파이팅하며 젓가락을 드는데 트레이너가 스윽 옆으로 다가온다.

“미래는 빵은 빼고 먹자. 몸무게 줄여야 하니까, 알았지?”

방금 전의 파이팅은 사라졌다. 안 그래도 양이 적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가장 배가 부를 것 같던 빵을 빼버리니 굶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 짜증나…’

같은 방을 쓰는 지현이와 지아가 키득거리며 놀리는 건지 위로하는 건지 모를 말들을 건넨다.

그 모습을 케이시는 힐끗거리며 보고 있었다.

저 방은 저렇게 화기애애한데 케이시가 묵는 1번 방은 아직까지 말 한 마디가 오가질 않았다. 어제 거실에서 다 같이 인사한 이후로 방에 들어가서 각자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짐을 풀고, 저녁에도 서로 말 없이 잠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 씻고 나오다가 지아가 미래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았다. 춤 1등인 하은이와 3등인 리아 언니와 한 방을 쓰면서도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그 시각, 한 쪽 구석에서는 이주아와 한미소가 속닥거리고 있었다.

“현수 언니가 파인 엔터 연습생이면 아무래도 유리한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파인 엔터에서 추구하는 스타일이니까 쟤를 뽑지 않았겠어? 그리고 어떻게 해야 유리한지 다 귀띔해줬을 거야. 이렇게 방송까지 하면서 걸그룹 만드는데 자기네 연습생을 떨어뜨린다는 건 말이 안 돼. 무조건 뽑겠지.”

이주하가 확실하다는 듯 말하자 한미소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결국 9명 중에 4명 뽑는 거네요? 치이… 나도 진즉 파인 엔터에나 지원해볼 걸. 오디션 공고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봤다면 지원했을 텐데.”

“오디션 한 적 없대. 지금 이게 첫 오디션이라던데?”

“그러면 현수 언니는 어떻게 연습생이 된 거예요?”

“연줄이 있겠지.”

“헐… 너무 불공평하다.”

옆 자리에 앉은 홍연우가 두 사람이 속닥이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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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오디션인 ‘Five girls'를 진행하면서 덩달아 우현과 파인 엔터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래서인지 배우 지망생이나 아이돌 지망생들의 문의가 종종 이어졌다.

“홈페이지 너무 허접하더라. 다시 손 좀 보라고 해야겠어. 이번에도 별로면 아예 업체를 바꿔야 할까보다. 네 친구가 이런 업체 운영한다고 했지?”

원래부터 외주업체에 홈페이지 제작, 관리를 맡겼는데 싼 값에 만들다보니 다른 매니지먼트 회사에 비해 조금 손색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방송까지 타면서 돈을 더 써서 멋들어지게 만들어보려 하는데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

마침 경수 친구가 홈페이지 제작, 관리 업체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네, 그래도 일단 이번까지는 맡겨보고 별로면 그 친구한테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래, 나 오후부터 다시 촬영 있으니까 특별한 일 아니면 네가 알아서 처리해.”

비록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Five girls' 촬영에 우현이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요즘 경수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다.

“네. 그런데 대표님은 열 명 중에 이미 마음에 든 친구가 있어요?”

“현수 말고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

“확실히 우리 애라서가 아니라 지나가다 몇 번 보면 우리 현수가 확실히 눈에 띄더라구요. 분명 리아나 한미소가 더 예쁘긴 한데 포스에서 안 밀리는 거 있죠? 그런데 왜 ‘국민 프로듀스 99’에서는 눈길이 안 갔지?”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못 생겼었잖아. 지금은 내가 피부과에도 보내고 화장도, 새벽마다 샵에 들렀다 출근하도록 시키는데 많이 차이가 나지.”

“우리 현수가 못 생긴 건 아닌데.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몸매도 늘씬하고… 그런데 피부가 조금 까매서 그게 아쉽네요.”

“그렇지? ‘국민 프로듀스 99’ 때는 전문적인 관리를 못 받아서 많이 차이나다가 지금은 조금 연예인 티가 나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외모로 뜰 애는 아니니까 그걸로 스트레스 줄 필요 없다.”

“그래도 예쁘면 좋죠.”

“좋기야 하겠지. 어쨌거나 넌 혹시나 걔 앞에서 외모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해. 안 그래도 예쁜 애들 틈에 끼어서 스트레스 좀 받을 테니까.”

“아유, 그럼요. 그리고 저는 우리 현수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괴물 같은 애들 옆에 있어서 그렇지.”

“내말이…”

그래도 워낙 실력 있는 친구라 다섯 명 안에 못 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론 냉정하게 다섯 명 안에 들 실력이 안 된다면 뽑지 않을 거지만, 갑자기 목에 부상이 생겼다거나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다고 믿었다.

오후 촬영 때문에 혼자 나가 일찍 점심을 해결하고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민주가 난감한 얼굴로 우현을 맞이했다.

“점심 먹으러 안 갔어요? 10분이나 지났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무슨 손님이 점심시간에 왔대? 누군데요?”

“민상욱 씨가…”

“상욱이?”

스카이 엔터로 간다며 우현을 비롯한 회사 식구들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던 그가 무슨 일로 회사에 찾아 왔을까?

“경수는요?”

“지금 상욱 씨랑 같이 있는데 분위기가…”

“알았어요. 점심 먹으러 가요. 늦게 가면 한참 기다려야 해. 내가 경수 내려 보낼 테니까. 먼저 가 있어요.”

“알겠습니다.”

안 쓰는 회의실에 가 보니 잔뜩 성난 표정을 한 경수와 그의 시선을 피한 채 멀뚱히 앉아있는 상욱의 모습이 보인다.

“오셨어요?”

“응, 너는 내려가서 민주 씨랑 밥 먹고 와.”

경수는 뭐라 말하려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우현에게 인사한 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안녕하십니까?”

90도로 인사하는 상욱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빛이 좋지 못했다. 그 때 첫 작품으로 데뷔하고 이후부터는 소송으로 인해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을 게 분명했다.

“웬일이에요? 우리 회사하고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텐데?”

“그게… 죄송합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상욱은 그 자리에서 무릎까지 꿇었다. 우현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뭘 용서해달라는 거죠?”

“죄송합니다. 그 때는 형 말만 믿고… 사실 제가 연예계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대표님이 이끌어준 건데 그것도 모르고 더 편하게 떠 보겠다고…”

“그걸 알면 내가 다시 받아줄 리 없다는 것도 알겠네요? 내가 뭐 때문에 내 뒤통수 치고 나간 사람을 받아 줍니까?”

“잘 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 꼭 다시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작 몇 달도 못 버틸 거면서 소송까지 불사했다고? 아니면 그 사이에 스카이 엔터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어쨌거나 판단은 상당히 빠르다. 소송이 취하될 거라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처리 되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좋을 테니까.

문제는, 자신은 전혀 그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는 것.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만약 내가 상욱 씨를 받아들이면 나중에 또 누가 내 뒤통수를 치고 나갈 지 알 수 없는 일이죠. 게다가 한번 배신한 사람을 다시 받아줬다는 아주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되니 더더욱 안 될 말입니다. 무슨 사정으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급한 일이 있다면 당신 형을 찾아가세요. 나를 찾지 말고.”

“대표님…”

상욱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우현의 모습에 결국 몸을 일으키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한창 연습에 매진할 소녀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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