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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정면대결의 승자는?(4)
“아직도 집에만 있는 건 아니지?”
한동안 오디션에 정신이 팔렸었기에 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준과 전화 통화로 그녀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럼요. 시청률 나오는 첫 날만 집에 있다가 다음날부터는 멀쩡히 할 거 다 했습니다.”
“오늘 모니터링은 누구랑 하기로 했어?”
“혼자 본다고 하네요.”
보통 첫 방만 모니터링을 같이 하기에 이번에는 같이 하자는 말을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미리 말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태는 어때?”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좋아요. 솔직히 저는 조금 우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는데요. 아무리 상대방에게 뒤지고 있어도 케이블에서 첫 방 8%면 대박 아니에요?”
“인마, 중요한 건 시청률이 아니라 순위야. 시청률은 어차피 광고 완판 되면 그만이지만 순위에서 밀리면 화제에서 밀려버린다고. 이번에는 첫 방이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서 저렇게 양쪽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한쪽이 무너지게 돼있어.”
“그래서 별이가 조바심을 냈나?”
“별이가 그것까지 다 생각하지는 않았어도 여배우의 감이라는 게 있는 거야. 지금 별이가 여주인공도 아니고 조연이잖아?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주연이 하고 싶었을 텐데, 대승적 차원에서 한 발 물러선 거야. 그런데 한지애도 아니고 경쟁작한테 밀려버리면 별이가 속이 얼마나 타겠냐?”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시청률 좋고 반응 좋으니 금방 좋아진 거겠지. 어차피 이번 주 지나면 시청률 반전 일어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반전 없으면 어떡하죠?”
“새끼, 초치는 소리 하기는… 내가 저번 주말에 ‘프렌즈’ 재방 다 봤어. 둘 다 본 소감으로는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너, 내 말 틀린 적 없다는 거 알지?”
“아, 보셨습니까? 하하, 대표님께서 보셨다니까 안심이 되네요. 제가 별이한테 걱정 붙들어 매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광고주 미팅있으니까 시간 비워둬라.”
“어? 무슨 광고에요?”
“치킨.”
“치킨이요?”
“왜? 별로야?”
“아니, 별이가 치킨이랑 매칭이 잘 안 되잖아요?”
“너 광고주가 왜 전지연을 치킨광고 모델로 썼을 거 같냐?”
“글쎄요…”
“생각해봐. 전지연이 1년에 치킨 몇 마리나 먹을 거 같아? 그 몸매 유지하려면 1년에 한두 마리 먹을까? 덩치 크고 잘 먹는 개그맨들 쓰면 비용도 훨씬 많이 줄어들 텐데 말이야.”
“흐음… 저 같아도 전지연이 먹는 치킨은 별로 맛이 없어 보이긴 하던데…”
“그렇지? 하지만 광고주가 원하는 건 단지 맛있어 보이는 치킨이 아니었어.”
“그럼요?”
“맛있는데 살이 안 찔 것 같은 치킨이었지.”
“아…”
“치킨을 먹는데 살이 안찌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광고주는 치킨을 먹을 때 살찔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거야. 이 치킨을 먹어도 전지연처럼 날씬해질 수 있다고. 그러니까 별이도 같은 개념인 거야. 치킨을 맛있게 먹지만 몸매는 날씬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컨셉인 거지.”
“알겠습니다. 별이에게도 일러둘게요.”
다음날, 결국 예상했던 대로 시청률이 나와 주었다.
“대박! 11.3% 나왔어요!”
아침에 출근하니 경수가 환호성으로 우현을 반긴다.
“‘프렌즈’는?”
“8.7%. 역전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저는 역전해도 아주 가까스로 이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게 이겼어요.”
“시청자들의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부실하고 황당했지. 솔직히 김정현이 아니었으면 3%나 나왔을까 한 작품이었다. 아마 계속 떨어질 걸?”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어제 각종 연예 기사나 커뮤니티를 봐도 온통 ‘예종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드라마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남초 커뮤니티조차 재미있다고 하구요.”
“박지원 작가의 한계야. 예전에 김정현이랑 한 작품이 초대박이 터지면서 김은선 작가와 동급 대우를 받지만 솔직히 그 작품 표절인데다가 여주가 연기를 너무 잘 살렸지. 뭐, 잘 쓰기도 했어. 그건 인정하지만 과대평가된 부분은 분명한 거고 그게 조금씩 나오고 있지.”
“그럼 이제 ‘예종의 여인’은 날아오를 일만 남았네요.”
“당연하지. 아, 오늘 유니 광고촬영 있지?”
요즘 유니는 며칠마다 한 번씩 광고를 촬영할 정도로 대세 중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아직 TV에는 방영되지 않고 있지만 못해도 한 달 뒤쯤에는 다섯 개의 광고가 유니의 얼굴로 바뀌어 있을 거다.
오늘 촬영은 비타민음료 광고로, 한 때 대세로 불리던 소녀가 하던 광고를 물려받은 것이다.
“네, 세동이 형이랑 통화 됐구요. 지금쯤 한창 촬영하고 있을 겁니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예종의 여인’이 ‘프렌즈’를 역전했다는 기사가 메인에 걸려있었다. 또한 어째서 ‘프렌즈’가 부진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석하는 기사와 아직 본격적인 갈등이 등장하지 않았으니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기사가 경쟁하듯 쏟아져 나왔다.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기사는 분명 제작진 측에서 내달라고 부탁한 기사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분위기가 넘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님,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어머, 그래? 아하하! 난 신경 쓰지도 않았어. 뭐, 김 대표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신경 쓰지 않았을 리가 없다. 라이벌처럼 평가받는 박지원 작가와 정면으로 붙었으니 아마 새벽부터 시청률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특히 첫 방부터 밀리는 것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속이 쓰렸을 것인가?
“물론 신경 안 쓰셨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전화 드렸습니다. 이제 마음 놓으시고 여행이라도 다녀오세요.”
“안 그래도 방금 전에 몰디브행 비행기 끊었어. 나 이제 사라질 거니까 김 대표가 알아서 나 대신 언론사 대응해줘.”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다 오십쇼.”
“호호. 그럼 나 김 대표만 믿고 사라진다! 그럼 빠이!”
윤해연 작가도 마음 편히 여행을 하러 사라지니 이제 정말 모든 게 끝나고 말았다. 별이가 촬영을 마친 작품은 무사히 전파를 탔고 초반부터 순항을 시작했으니 그의 손을 떠났다.
이제부터는 결과만 지켜보면 된다. 불안하지 않다. 모든 대본을 확인했고 흥행을 확신했으니까. 이제 별이가 주연급으로 올라서는 일만 남았다.
‘이제 남은 건 걸그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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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의 한 아파트.
“이곳이 여러분이 한 달 동안 묵을 숙소예요. 방과 룸메이트는 저기 보시면 됩니다. 짐 정리하고 점심식사 후에 파인 엔터테인먼트로 이동할 겁니다.”
한쪽 벽에 붙은 방 배정 종이 앞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방 1 - 김하은, 리아, 케이시
방 2 - 양지현, 민지아, 강미래
방 3 - 이주아, 한미소
방 4 - 홍연우, 채현수
“하아…”
리아는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이왕이면 방이 조금 작더라도 두 명이서 쓰는 방으로 배정되었으면 했다. 세 명이서 부대낄 방은 정말 싫다.
“우리 서로 인사라도 할까요? 저는 양지현입니다. 17살이에요.”
“안녕하세요, 민지아입니다. 16살이고 마산에서 올라왔습니다.”
“아, 반가워. 우리 같은 방이야.”
양지현이 민지아를 반겼다.
“어, 나도 같은 방이야. 저는 강미래입니다. 17살입니다.”
“그쪽 방은 어린 친구들이구나. 안녕?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고 들었어. 20살, 이주아야.”
“안녕하세요. 한미소예요. 18살이고 춘천에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18살이에요. 케이시입니다. 미국에 이민 갔다가 K팝이 너무 좋아서 저 혼자 다시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김하은입니다. 저도 18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8살이 많네요. 저도 18살이구요, 홍연우입니다. 모두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채현수입니다. 19살입니다. 열심히 합시다!”
모두가 나머지 한 명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리아입니다. 19살입니다.”
“그럼 우리 짐부터 풀고 점심 먹으면서 얘기해요!”
한 명이 외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Five girls’라고 화려하게 래핑된 m.met에서 제공한 전세버스를 타고 청담동 파인 엔터테인먼트로 이동했다. 회사 구경을 하고 연습실에 모이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얘들아, 안녕? 나는 오늘부터 너희들의 노래 실력을 향상시켜줄 보컬트레이너 임선미라고 해. 열심히 해보자.”
그녀도 카메라로 자신을 찍는 것에 긴장했는지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 긴장했다.
“네!”
“우선 노래 실력들부터 좀 볼까? 한 명씩 나와서 불러보자.”
한 명씩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댄스나 랩이 특기인 친구들은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어차피 파트가 나뉘어지고 보컬 담당은 따로 정해지니까.
홍연우는 리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하니까. 리아가 노래를 끝내고 들어오자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채현수가 노래를 시작하는데 그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게다가 귀에 착 감기는 음색은 단연 돋보였다.
“현수 목소리가 너무 좋다. 그치?”
트레이너가 현수를 칭찬하자 연우는 더 긴장이 됐다. 그 와중에 강미래가 노래를 시작하자 연우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채현수의 매력적인 음색도, 연습실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강미래의 성량도 연우에게는 없는 재능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음색이 좋고 성량이 좋다고 톱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능력이 없다고 해서 톱스타가 안 되는 것도 아니잖아. 내 끼를 보여주면 돼.’
“다음, 홍연우.”
연우는 호흡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갔다.
“눈물은 나오는데 활짝 웃어~.”
“자, 연우야, 너무 긴장했네. 어깨랑 목에 힘 빼고, 편하게. 다시 해볼까?”
“I'm in my dream~.”
3단 고음을 시도하는데 삑사리가 나고야 말았다. 트레이너는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 같다며 위로를 했지만 자리에 들어와 앉은 연우는 울컥 눈물이 나와 버렸다.
‘쉽게 성공했던 3단 고음인데 하필 카메라 앞에서… 쪽팔려.’
카메라는 연우의 눈물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이런 장면은 방송에 나가기 딱 좋다. 이런 식으로 분량 확보하는 건 정말 질색인데 줄줄 흐르는 눈물은 멈추질 않는 거다.
Five girls 5명 중 보컬은 많아봐야 3명 혹은 2명이 될 거다, 랩과 댄스 파트를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그런데 지금 자신보다 잘 하는 참가자가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곧 자신은 탈락이라는 얘기다.
현수가 옆으로 다가와 위로를 한다. 같은 방 룸메이트이니 그냥 모른 체하기는 힘들었을 터.
“처음이라서 그럴 거야. 여기 휴지.”
건네는 휴지를 안 받을 수는 없다. 휴지로 눈물을 닦는 연우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 건 위로가 아니라 동정, 잘난 자의 여유다.
보컬 시간이 오후 내내 이어지고, 보컬 톱 3는 강미래, 채현수, 리아로 정해지는 분위기였다.
연우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속으로 ‘할 수 있다’를 되뇌었다. 그렇게 보컬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연우의 신경을 건드리는 트레이너의 한 마디.
“현수는 파인 엔터 소속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