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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정면대결의 승자는?(3)
"Drop the beat!"
아담한 체격에 귀염 상 얼굴의 소녀가 비트가 나오자마자 카리스마 래퍼로 돌변했다. 카메라 앞이라고 위축되기는커녕 우현과 카메라를 압도하는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랩을 전혀 모르는 ‘랩알못’인 우현이 듣기에도 꽤나 리듬감이 좋다. 표정이 다양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시선을 끌면서도,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건 보컬이 아닌 래퍼인 그녀의 성량이었다. 보컬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울림이 목소리에 있어 빠르게 랩을 하자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준비해온 랩 한 곡이 끝나고 자작랩이 시작되자 조금 전에 했던 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랩이 나왔다. 첫 곡이 굉장히 리듬감 있는 곡이었다면 자작곡은 속도가 빠른 랩이었다. 그럼에도 그 가사를 우현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귀에 때려 박는’ 랩이다.
좋은 딕션과 속도감에 우현도 놀라던 와중 갑자기 전조가 되듯 비트의 음계와 속도가 확 바뀌며 랩도 바뀌었다. 순간, 듣고 있던 우현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몇 명의 참가자가 지나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마산에서 KTX타고 올라온 민지아입니다!”
피부가 하얗고 갸름한 얼굴형에, 특히 쌍커풀이 없는 눈이 꽤나 동양적 미를 풍기는 마스크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어요. 음… 마산에서 연습생 생활을 어떻게 했죠?”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시 힘차게 대답한다.
“원래는 서울에 살다가 2년 전에 마산으로 이사했습니다!”
“하하, 그렇게 큰 목소리로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편하게 하세요. 왜 마산으로 이사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빠께서 치킨집을 하셨는데… 망했습니다!”
“어이쿠. 힘들었겠어요.”
“하하, 아닙니다. 지금은 다시 돈을 잘 버십니다.”
“다행이네요. 치킨집은 너무 많아서 힘들죠. 지금은 다른 일로 돈을 잘 버시나봐요.”
“지금도 치킨집 하십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슬프면서도 재미있는 사연이네요. 사춘기에 힘든 일을 겪었는데도 지아 양이 아주 밝아서 참 마음에 드네요. 그럼 마산으로 이사한 이후 2년 동안은 소속사 없이 개인적으로 연습해온 거구요?”
“네.”
“그래요. 특기는 댄스네요. 무용을 했었다구요? 한국무용?”
그녀의 얼굴은 딱 한국무용이 어울렸다.
“아니요, 현대무용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춤을 한 번 볼까요?”
또 몇 명의 참가자가 지나가고.
“안녕하세요. 김하은입니다.”
“네, 반가워요. DST 연습생이었네요? ‘에이프런’ 데뷔조였구요?”
“네.”
“‘에이프런’ 활동하는 거 보면 많이 아쉽겠어요. 음… 오디션이니까 물을게요. 본인이 왜 ‘에이프런’으로 데뷔하지 못하고 탈락했다고 생각해요?”
“… 제가 카메라 울렁증이 조금 있어서… 좀 내성적이기도 하고…”
걸그룹 준비하는 친구들이 애써 밝은 척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내성적으로 보이긴 했다.
“연예인이 카메라울렁증이면 곤란하죠. 특기는 춤이라구요? 일단 춤부터 보고 다시 얘기할까요?”
김하은은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를 최대한 피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춤을 준비하는 자세부터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살짝 옆으로 튼 상태다.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약간 구겨졌다.
‘재능이고 뭐고를 떠나서 연예인이 카메라 앞에서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연예인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대로 접어버리자니 일단 몸매의 선이 좋다. 날씬하기만 한 것이랑 선이 좋은 몸매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율이 좋아야 하고 굴곡이 아름다워야 한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저 정도면 타고났다고 봐야 한다.
“다음 들어오세요.”
수줍게 미소 지으며 들어오는 소녀는 표정과는 달리 훤칠한 키에 눈길이 간다.
“안녕하세요. 강미래입니다.”
“키가 크네요? 169?”
“네. 하지만 중학교 때 키가 지금 키구요,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우유도 안 먹고 있어요.”
“하하, 너무 크다고 흉 본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170의 늘씬한 키는 흉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들보다 유독 키가 크면 같이 섰을 때 조화롭지 못해 데뷔조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일부 중소 기획사는 키 큰 친구들을 모아 데뷔시키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친구들을 대부분 섹시컨셉으로 데뷔시키기 때문에 큰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조금 미묘한 문제인데 키가 크고 늘씬한 미인들이 섹시한 컨셉으로 춤을 추면 걸그룹의 느낌 보다는 야간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걸그룹을 가장 좋아하고 가장 강력한 팬덤을 일으키는 곳이 남자 청소년들인데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저런 성숙한 누나들보다는 청순하거나 귀여운 여자들을 좋아한다.
얼핏 생각하면 누가 봐도 예쁘고 몸매 좋은 그녀들이 안 뜰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반대로 뜨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런 컨셉으로 데뷔한다면 반드시 노래가 좋아야한다.
일단 노래가 뜨면 그녀들의 매력은 더욱 부각되어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만 노래가 별로면 그저 몸매 좋은 걸그룹의 이미지밖에 남지 않는다.
“내가 m.met에서 보내준 많은 동영상을 봤는데, 수많은 지원자들 중에 강미래 양의 동영상에 눈길이 가더군요. 왜인지 알아요?”
그녀는 자신이 우현에게 주목받았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장했다.
“어…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다른 게 아니라 보컬로 지원한 참가자들 대부분은 최소한의 음향 장치라도 된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촬영한 영상을 보내왔거든요. 어떤 친구들은 녹음실에서, 어떤 친구들은 노래방에서. 여건이 안 되면 목소리가 울리는 화장실에서라도.
그런데 유일하게 강미래 양만 아무런 장치가 없는 야외, 공원에서 노래를 불렀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음실에서 부른 참가자들에 비해서 못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래서 강미래 양의 목소리를 실제로 꼭 들어보고 싶었어요.“
“아…”
잔뜩 얼어있던 그녀의 얼굴이 칭찬에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가식이 없어 보여 좋았다.
“그럼 준비해 온 노래 들어볼까요?”
“네.”
풍부한 성량에 매력적인 음색은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시 몇 차례의 오디션 후 다음 참가자가 들어왔다. 이번 오디션에서 외모만으로는 리아와 비견될 만한 친구다.
“안녕하십니까? 한미소라고 합니다.”
“음… 특이사항에 강원도 3대 얼짱. 실물도 예쁘고 카메라에 담긴 모습도 걸그룹 센터로서 손색이 없을 만한 미모네요. 그 정도 외모라면 데뷔했을 법도 한데요, 예전 회사에서는 왜 나오게 됐나요?”
동영상으로 봤을 때, 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지만, 걸그룹이 꼭 실력이 뛰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력은 부가적인 문제이고 가장 중요한 건 외모라고 봐도 무방하다.
외모만 훌륭하다면 실력이야 데뷔 후에도 조금씩 키워나갈 수 있다.
“연습생 생활 4년차인데도 작은 회사라서 그런지 데뷔준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더 버틴다고 해서 진행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이대로 가면 스무 살이 될 것 같고…”
“대형기획사에 갈 생각은 못 했어요?”
“그게… 처음에는 연예인이 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저희 회사 이사님과 알게 돼서 계약하게 됐거든요. 이미 전속계약까지 맺어서 다른 회사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계약이 정상적으로 잘 만료된 건가요?”
“네, 저희 아버지가 회사 찾아가서…”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략 어떻게 정리됐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찾아갔다고 계약을 해지해준다니? 너무 자세하기 물어보기 뭐해서 이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준비해 온 노래 불러볼래요?”
그녀는 생긴 것만큼이나 여린 목소리로 열창했지만 역시 노래로는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첫 번째 오디션이 마무리 되었다. 오디션에 참가한 소녀들은 누구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누구는 잔뜩 긴장된 얼굴로 오디션장을 빠져나갔다.
일주일 후. 오디션을 치른 열 명의 참가자들이 각자 여행용 캐리어와 두툼한 가방을 들고 다시 대회의실에 모였다. 그녀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경쟁자를 확인하는데 조연출이 들어왔다.
“모두들 오디션 치르시느라 수고하셨구요. 여기 모이신 분들은 전부 합격하신 분들인데 끝나고 서로 인사하며 얼굴을 익히도록 해요.
합격자 분들은 오늘부터 숙소에 입소해서 한 달 동안 트레이닝을 받게 됩니다. 이미 기본기는 마스터 되어있는 연습생들이기에 기간은 한 달로 짧아요. 스케줄이 빡빡해서 꽤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낸 다섯 명이 데뷔하게 되겠죠?
여러분들 ‘국민 프로듀스 99’ 다들 보셨죠? 합숙하게 될 숙소에는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있고 여러분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최종 선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겁니다. 그 과정은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길 거예요.
물론 인기투표 없이 파인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의 권한으로 모든 멤버를 결정하겠지만 방송으로 보여지는 모습도 대표님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겠죠? 한 마디로 여러분의 노력이 합격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또 여러 날이 흘러 m.met 걸그룹 프로젝트의 첫 방이 방송을 탔다. 제목은 ‘Five girls'. 최종 선발인원이 다섯 명이기에 그 이름으로 했다고 들었다.
첫 방에는 우현과의 오디션과 오디션 전에 이루어진 개별 인터뷰가 교차 편집되어 각 참가자 별로 나오니 인물에 대해서 파악하기 쉬웠다.
[채현수 인터뷰]
PD : 채현수 양은 스무 명 중 유일하게 파인 엔터테인먼트 소속인데요. 회사에서 합격에 유리한 팁 같은 거 알려주신 건 없나요?
현수 : 하하, 그런 거 없어요. 저도 입사한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저희 대표님이 일은 또 굉장히 정확하게 하시기로 유명하셔서요. 소속 연습생이라도 봐주는 거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케이시 인터뷰]
PD : 한국에서 가수를 하고 싶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을 때 부모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케이시 :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두 분 다 바쁘셔서 함께 올 수는 없었거든요. 이제야 세탁소가 자리를 잡아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음… 그런데 제가 꼭 하고 싶다면 가서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이주아 인터뷰]
PD : 참가자 중에 주아 양이 유일하게 이십대네요. 스무 살 맏언니인데, 나이 때문에 부담감이 클 것 같아요.
주아 : 네. 데뷔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게 사실이죠.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하려구요, 아자!
[리아 인터뷰]
PD : 최종 데뷔 멤버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받는 있는 친구가 바로 리아 양이라고 알고 있어요. 이번 오디션, 자신 있나요?
리아 : 자신 있어요. 솔직히… 음, 아니다. 아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