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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꿈인가 허상인가(3)
m.met측에다 오케이 사인을 보낸 후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수많은 지원서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걸그룹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어? 전부 연습생들 맞아?”
아무리 TV광고로 홍보를 때렸다고는 해도 일차 지원자의 숫자만 무려 백 명이 넘었다.
“들어보니까 일차에 지원한 친구들은 중소기획사 출신이 대다수라고 하네요. 지원 마감일에 가까이 갈수록 대형기획사 쪽 애들이 지원하지 않을까 하던데요?”
경수의 대답에 우현은 피식 웃었다.
“누가? 그 m.met 관계자가 그래?”
“네. 그리고 제가 1차로 넘어온 명단을 죽 훑어보니까 진짜 대형기획사 출신은 없더라구요.”
지원서에는 그녀들이 어디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는지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대형기획사 출신이라고 하면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 일부러 기재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대형기획사 출신이 없으니까 괜히 후달려서 변명하는 거 아니야?”
“에헤이, 그럴리가요. ‘국민 프로듀스 99’도 찍었으니까 전문가나 다름없는데 영 없는 말을 하지는 않겠죠. 그런데 저도 쪼끔 실망하긴 했어요. 요즘 유니가 대세나 다름없는데 m.met에서 이렇게 걸그룹 프로젝트를 띄웠는데도 대형기획사 애들은 아직 눈치를 보는 건지… 솔직히 유니랑 별이 같은 경우는 망한 걸그룹에서 스타로 빵 띄운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럼 당연히 개떼처럼 몰려들 줄 알았는데.”
경수는 이 정도 지원자에도 만족을 못 하나보다.
“흐음… 그래? 그런데 대형기획사 출신이 없는데도 이렇게나 많아? 도대체 왜 이렇게 걸그룹을 하고 싶어서 환장을 하는지… 내가 뽑는데도 이해할 수가 없네.”
“화려하잖습니까? 어린 나이에 공부하기는 싫고, 주변에서 예쁘다, 노래 잘한다, 랩 잘한다, 떠받들어 주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겠죠.”
“나도 그건 아는데, 이걸 봐. 너, 얘네들 데리고 걸그룹 할 수 있겠냐?”
컴퓨터 화면을 경수가 볼 수 있게 돌려주었다. 화면에는 지원자들의 노래와, 춤, 랩 등 자기만의 매력과 장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 전문가라 할 수 없는 경수가 봐도 걸그룹을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한 서른 명 정도까지 봤는데, 그 중에서 키워볼만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더라. 외모가 조금 떨어지면 노래나 랩, 춤이라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니냐? 뭐 하나 자기만의 장점이 안 보여. 그런데 나이를 보니 열아홉, 스물이야. 어떤 애는 스물 셋이더라. 하… 정말.”
냉정함을 넘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하지만, 걸그룹 나이가 스물을 넘어가면 데뷔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정말 특출난 외모와 재능에 대형기획사 소속 연습생이 아니라면 말이다.
“조금 그렇긴 하죠?”
경수는 본인이 민망한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걸그룹 뿐만이 아니라 보이그룹도 마찬가지겠지. ‘국민 프로듀스 99’ 두 번째 편은 남자들이라며? 나이를 먹었다고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정도까지 했는데 안 뜨면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봐야지. 정말 운이 없어서 못 뜬 건지, 아니면 안 될 꿈을 잡고 있는 건지 알아야 할 텐데…”
그런데 말을 하고 보니 꼭 자신의 옛날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 때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무엇을 하든 성공할 줄만 알고 어쭙잖게 주식이나 소설을 도전해보지 않았던가? 그걸 생각하니 이 아이들을 뭐라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괜한 소리했다. 어쨌든 이거 언제까지 추려내야 한대?”
“꼭 몇 명을 추려야 한다는 말은 없었구요. 마지막 지원자까지 보신 후에 최종 열 명을 추려 달라고 합니다. 그 열 명가지고 최종인원 선발하시면 된다고…”
“우리 현수는?”
현수는 m.met에서 걸그룹 프로젝트를 확정하기 전에 이미 부모님과 같이 회사로 방문해 전속계약을 마무리지었다. 그 후, 그녀는 회사 녹음실과 안무실에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 또 이번 걸그룹 프로젝트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보컬트레이너를 영입했다.
원래는 현수를 중심으로 한 걸그룹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현수를 제외한 오디션을 생각하고 있는 게 당연하다.
“그 쪽에서는 같이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는데요? 나중에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도 하고 데뷔 후에 현수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요.”
“안 될 말이야. 만약 현수가 우리 회사랑 계약 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 걔한테 오디션에 참가하라고 하면 마음이 어떻겠어? 그렇다고 걔가 실력이 아주 떨어지면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때, 걔 실력은 진짜야. 그런데 외모만 보고 시청자들이 뭐라 하는 걸 보면 아무리 멘탈이 단단한 애라고 해도 상처받을 게 틀림없어.”
시청자들에게 인기투표를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인기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아예 깍두기로 빼놓고 나머지를 뽑는 것이 현수의 멘탈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긴, 화면으로 보면 우리 현수보다 예쁜 애들이 나올 텐데 시청자들은 무조건 예쁜 친구들을 선호하겠네요.”
“무조건 안 된다고 해. 컨셉도 다시 한 번 정확히 설명해 줘, 첫 회에 현수 내보내고 걔랑 같이할 걸그룹을 뽑는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물론 말은 좀 나오겠지만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발이 나왔다.
“대표님, 저도 참가하고 싶어요.”
며칠 뒤, 어떻게 알았는지 현수가 안무실에서 쪼르르 올라와 우현을 놀라게 했다.
“뭘 참가해?”
“m.met에서 하는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요. 데뷔 못하고 떠도는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모아서 오디션하는 거요. 알아보니까 저는 참가 안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 너는 참가할 필요 없어. 오해하지 마. 너는 참가만 안 한다 뿐이지 이번 걸그룹 프로젝트에 선정된 애들이랑 같이 데뷔할거야.”
혹시 그녀가 이번 데뷔조에 뽑히지 못 한다고 오해할까 봐 바로 해명했지만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뇨, 매니저님께 들었어요. 저는 오디션에서 빠지지만 데뷔는 확정이라구요.”
“그런데 왜 하려고? 했다가 안 좋은 소리 나오면?”
“만약 제가 안 나가면 분명 커뮤니티 쪽에서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거예요.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채현수가 대표님 친척 아니냐, 심지어 제가 대표님 비디오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걸요?”
순간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현수야, 아무리 농담이라도…”
“아, 죄송해요. 그런데 진짜 그런 댓글들 나올 거란 말이에요. 그런 말까지 들으면서 데뷔해봤자 얼마나 욕을 먹겠어요. 차라리 같이 오디션 볼게요. 저 자신 있어요.”
자신이야 있겠지. 실력과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 때문에 계약했으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모자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너 그렇게 원하던 데뷔잖아? 자존심 하나 때문에 그 기회를 그냥 차버릴 거야? 너, 인생 그렇게 쉽게 보면 안 된다. 낙하산? 특혜? 욕 하라고 해. 욕 먹는 거 잠깐이야, 어차피 데뷔하고 네 실력 보여주면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사그라질 말이라니까?”
“대표님은 제가 인기를 못 얻을 거라고 확신하시는 거죠? 전에 ‘국민 프로듀서 99’ 할 때도 실력에 비해 많은 인기를 얻지 못했기도 했으니까 저도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아빠가 그랬어요. 비록 ‘국민 프로듀서 99’에서 떨어졌지만 우리 딸 믿는다구요. 저는 아빠가 실망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이건 또 무슨 효녀 등장인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아이고, 현수야. 네가 참가하지 않는다고 네 아버지가 너한테 실망하지 않아. 오히려 회사 잘 선택했다고 좋아할 걸?”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흑…”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 어이없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일단 현수를 가까스로 달래고 사연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글쎄,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에 다니다 제품에 큰 결함이 있어 내부고발자로 언론사에 자료를 넘겨주었는데 결국 회사는 아무 피해도 받지 않았고 그녀의 아버지만 잘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니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 없어 결국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너 대신 후회하지 않기다. 일단 시작되면 난 우리 식구라고 해도 봐주지 않아. 내 기준에서 최적의 구성을 할 거니까.”
물론 이렇게 엄포를 놓았지만 그녀를 탈락시킬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녀를 계약하면서 차후 걸그룹의 컨셉을 대략적으로는 구상해뒀기에 그녀 없는 데뷔조는 생각할 수 없다.
“네, 그때까지 열심히 준비할게요.”
결의어린 그녀의 눈빛을 보니 독하게 마음먹은 것 같다. 우현과의 상담 이후, 그녀는 예전 유니가 그러했듯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오디션에 대비했다. 8시에 회사에 출근도장을 찍고 12시 이전에 회사를 나간 적이 없을 정도다.
오히려 유니보다 더 한 것이, 유니 같은 경우는 학교를 다니느라 학교에서 엎드려 잠을 자거나 해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현수 같은 경우는 아예 그럴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월말이 다가왔다. 회사 입장에서 가장 기다리던 것은 바로 TVM에서 새로 시작하는 ‘예종의 여인’이다.
“상황이 어때요?”
첫 방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채 지여울 제작 피디와 통화하는 중이다. 같은 시간에 방영하는 KMTC의 박지원 작가의 신작, ‘프렌즈’와 정면대결을 하는 셈이니 긴장이 안 될 수 없는 거다.
“김정현을 앞세워서 엄청나게 홍보 해대니까 조금 애매할 것 같긴 해요. 아이 참, 지금 SNS에서나 여초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광고를 때려대고 있어요. 보기에는 일반 시청자처럼 보이지만 딱 봐도 제작진 쪽이더라구요.”
“일단 해볼 만큼은 해봤으니 기다려봅시다. 우리가 재미는 더 있으니까 너무 첫 방 시청률에 목메지 말구요.”
전화를 끊고 나자 경수가 들어왔다.
“오늘 별이랑 첫방 같이 보는 거 맞죠?”
“응, 오랜만에 회사에 오겠네. 같이 볼 거니까 간단한 다과 차릴 수 있게 준비 좀 해 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m.met측에서 마지막 지원자까지 보냈으니 내일까지 확정해서 보내달라고 하는데요?”
“몇 명이라고 그랬지?”
“열 명입니다.”
“너는 누구를 뽑고 싶어?”
“저요? 아휴,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들이 많아서… 하하.”
정말 m.met 말대로 시간이 지나자 대형기획사 출신들의 지원이 이어졌고 결국 총 지원자는 이백여 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습생임에도 팬들까지 보유한 유명한 친구들도 몇 명 보였다.
“그래서 네 1픽은 누구야?”
“대표님도 보셨겠지만 JGP 출신의 ‘리아’ 어때요? 진짜 외모로는 탑 중의 탑 아닙니까? 데뷔 못 한 게 이상할 정도니까요.”
경수 말처럼 외모로는 그 어느 걸그룹에 밀리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나이도 어려 이제 19살이니 나쁘지 않다.
“네 말처럼 왜 데뷔 못 했데?”
“글쎄요. 어느 순간 JGP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잘 모르는데요?”
그 때, 바깥에서 업무를 보던 민주가 난데없이 한 마디를 툭 던진다.
“어? 유명한 얘긴데 모르시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