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꿈인가 허상인가(2)
“오디션? 연습생들을 오디션해서 뽑자는 말이야?”
“사실 이건 제 생각은 아닌데요, 어제 유니 스케줄 때문에 m.met 관계자랑 통화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또 별의별 말을 다 했구나?”
“하하, 그 관계자랑 전에 유니 때문에 만난 적도 있고 해서… 술도 몇 번 마시고 해서 꽤 친해졌습니다. 하여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구요. 그 친구가 글쎄, 우리랑 채현수랑 계약 직전까지 간 걸 알더라구요.”
“그걸 어떻게 알아?”
“현수가 우리한테 말은 안했는데 알아보니 삼촌이 m.met 피디래요. 그래서 알게 됐다는데, 그쪽에서 우리한테 오디션 프로 하나 해 볼 생각 없느냐는데요?”
“무슨 소리야, 그게? 연습생 뽑는 오디션 프로가 어디있어?”
“연습생이 아니라…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어차피 걸그룹 뽑을 거 아니냐? 괜히 시간낭비하지 말고 리얼다큐처럼 해서 멤버 확정까지 찍어보자.’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구요.”
“야, 지금까지 그런 프로는 그네들 연습생 중에 뽑는 거였잖아. 바로 멤버 확정하고 곡 뽑은 다음에 데뷔해도 문제가 없었던 거지. 그런데 무슨…”
“어차피 연습생들 중에 뽑을 거잖습니까? 단지 우리가 가르치지 않았을 뿐인 거죠.”
반박하려 했는데 듣다보니 그럴 듯하긴 했다.
“그럼 ‘국민 프로듀스 99’랑 다를 게 없잖아?”
경수는 우현이 설득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래서 말씀 드렸잖습니까? 이건 그것처럼 거창하게 하지 않고 리얼다큐 형식으로 해보자구요. 그 관계자가 유니의 이름은 알아도 파인 엔터의 이름은 그리 유명하지 않으니 한번 해보면 회사 인지도도 올라가고 데뷔할 때 훨씬 유리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회사차원에서 모집하는 것보다 m.met에서 방송하는 거라고 하면 진짜 괜찮은 친구들도 오지 않겠습니까?”
“흐음…”
확실히 나쁜 생각은 아니다. 아니, 꽤나 괜찮은 제안이긴 하다. 만약 우현이 가이드 곡만 듣고도 히트칠 수 있을지 판가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무조건 잡아야 할 기회일 거다.
그렇다고 무조건 성공시킬 수 있으니 이런 제안을 까버린다는 것도 어찌 보면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죠? 괜찮죠?”
“그럼 이거 내 얼굴이 방송에 나온다는 거잖아.”
“그렇겠죠. 왜요? 얼굴에 자신 없으세요?”
원래는 자신 없었지만 은하와 사귄 이후로는 외모에도 부쩍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 없기는?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카메라 앞에 서 본적이 없단 말이야.”
“리얼다큐 형식이잖아요. 대놓고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대표님 원래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되는데요?”
“알아. 아는데, 그게 쉽게 되냐? 말처럼 쉬우면 세상에 발연기 하는 친구들이 왜 있겠니, 응? 어쨌든 그 관계자한테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고 해.”
“우와핫! 진짜요? 아싸!”
“왜 네가 그렇게 좋아해?”
“그럼 좋죠. 제 얼굴도 약간은 나올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연습생 친구들 보러 다니면서 얼마나 사기꾼 취급을 당했는지 아세요? 유니랑 별이, 유지나 이름을 꺼내도 믿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게 아닐걸? 솔직히 말해 봐. 너 여자 꼬실 때 써 먹으려고 하지?”
“큼큼… 일단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전해주겠습니다. 수고하십쇼,”
도망치듯 내빼는 걸 보니 어디서 써먹으려고 하는 게 틀림없다. 그래도 자기 일은 철저하게 하니 혼낼 생각은 없다.
며칠 뒤, 훈철에게서 같이 계약서를 확인했던 지영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전해왔다. 사직서를 냈고 이달 말까지 정리해서 옮기겠다고 하니 다음 달부터는 확실히 일이 줄어들 거다.
“대표님! 예고편 나와요!”
“어? 알았어.”
밖에서 경수의 외침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니 TVM에서 ‘예종의 여인’ 예고편이 나온다.
“오… 잘 나왔는데요?”
화면 색감이 뽀얀 것이 돈 들인 티가 난다. 퓨전사극이지만 짧은 예고편만 봐도 무겁지 않고 주연배우들 간의 케미가 돋보인다. 별이 궁중의상 입은 모습이 특히 예쁘게 나온다.
“언제 방영이라고?”
“이달 말부터 잡혔습니다.”
“오케이, 이주희 작가 신작은?”
“지 피디가 오늘까지 결정해서 연락 주기로 했습니다. TVM에서 다음 편성 확정을 오늘까지 내리기로 했다고 하네요. 이번에 확정 되면 바로 KMTC랑은 빠이빠이겠죠?”
“그렇겠지. 그리고 이제 어지간하면 유니 KMTC쪽 예능은 피해.”
“오… 항의 차원인가요? 세게 나가시네요?”
“왜이래? 나도 이제 죽어지내지 않는다 이거야. 감히 어디서 윤해연 작가 작품을 까고 그래? 미친 것들. 아무리 낙하산이라고는 해도 정도가 있지.”
“그럼 만약 TVM에 편성이 안 되면요?”
“그러면 KMTC쪽 예능에 유니 넣어 줘야지. 인생 별거 있냐? 사람이 너무 소나무처럼 뻣뻣하면 안 돼요. 항상 갈대처럼 유연해야 한다고. 특히 우리처럼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말이지. 대신, 정말 반응 좋은 예능으로 딱 하나만 나가야지.”
“크크큭. 알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갈대처럼 휘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퇴근 무렵에 걸려온 지 피디의 전화는 이번에 이주희 작가의 신작인 ‘내 남편의 여자’도 최종 편성 확정 됐다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는 운이 좋은 건데… 그쪽은 좀 안 됐어요.”
“많이 안 좋대요?”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병명은 아직 모르겠지만 심각하긴 한가 봐요.”
‘내 남편의 여자’가 들어갈 자리에는 이미 편성이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는 작품이 있었다. 그런데 주연배우가 촬영 전 갑자기 입원을 하면서 편성이 뒤로 밀려버린 거다.
물론 전작의 반응이 좋았고 추가로 주연배우로 강소연이 확정 난 상태이기에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타로 뛸 배우를 빨리 물색했을 거다. 그럴 시간은 충분했으니까.
“그쪽 반응은 어때요? 대본 봤을 거 아니에요?”
“막장이라 조금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요. 사실 TVM이 수사물이나 법정물 같은 장르드라마랑 로맨틱 코메디 위주여서 싫어할까봐 마음 좀 졸였거든요.”
“막장이라도 지상파 일일극 같은 막장은 아니니까요. 누가 봐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원래 막장이 흡입률이 높은데 작품성에 캐스팅까지 밀리지 않으니까 더욱 재밌을 거예요.”
“그쪽에서도 김 대표님이 하는 말 똑같이 하던데요? 대본 수준이 마지막회까지 지속되면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 터지지 않겠냐고 해요. 특히 강소연이 10년 만에 하는 드라마 복귀작이라서 그런지 아직 언론사에 홍보물도 안 돌렸는데 기자들이 물어 와요. 소스 좀 달라고.”
“하하, 역시 강소연이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지, 스타성은 확실하네요.”
“어머, 나는 그런 거 못 느꼈는데?”
“이야… 벌써 가족 된 겁니까?”
“그럼요. 가족은 욕하는 거 아닙니다, 호호. 그리고 오늘 ‘예종의 여인’ 예고편 나온 거 보셨죠?”
“아, 네. 잘 나왔던데요?”
“지금 반응 완전 핫해요. 아직 방영기간이 꽤 남았는데도 SNS에서는 벌써부터 어떻게 기다리냐고 말들이 돌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KMTC에서 박지원 작가 신작 대본리딩 기사 내고 총력전 들어갔다고 하네요.”
“김정현이 나오는 게 조금 걸리긴 하는데…”
“사실상 최고의 한류스타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송민기랑 한지애가 있으니까 첫 회 시청률은 비등비등하지 않을까 싶은데, 회차가 넘어갈수록 차이가 벌어질 거에요.”
“오호… 그러고보니 벌써 봤겠네요?”
“그럼요. 저는 이미 중반까지 편집 완료된 거 다 봤죠. 우리가 무조건 이겨요. 한번 보면 끊을 수가 없다니까요? 지금도 제작진한테 빨리 후반작업 마무리하라고 독촉하고 왔어요. 괜히 일찍 본 거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완전 재밌습니다. 전 걱정 안 해요.”
역시 윤해연 작가답다. 특히 예전과는 달리 분위기 자체가 가벼워지고 주인공들의 케미는 더욱 살리니 한 단계 더 성장한 게 아닌가 싶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이제 ‘예종의 여인’만 끝나고 나면 별이는 더 이상 조연을 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별이에게 있어 이 작품은 마지막 조연 출연작인데, 잘 되면 잘 될수록 그녀의 몸값과 입지가 늘어날 거다. 혹시 아나? 김은선 작가 작품에 바로 꽂힐지.
때문에 별이는 모처럼만의 휴식을 만끽하며 잡지사 화보 촬영으로 간간히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유지나는 이번 작품을 하며 너무 고생했는지 후반작업에서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마자 바로 서울을 떴다. 지금쯤 강원도 어디에서 한창 맛있는 걸 먹고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가장 바쁜 사람인 유니는 회사를 업어 키우다 시피 할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고 있다. 어딜 가나 유니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포털 사이트에서는 유니의 기사와 사진이 한쪽을 장식했다.
음원 수익은 물론이고 초동 앨범만 이미 십만 장이 팔려나가며 앨범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추가로 음원은 다운로드 백만 건을 돌파하며 대박행진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돈은 음원이나 앨범판매 수익으로 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잘 나가주니 회사 입장에서는 든든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행사 수익은? 현재 유니가 하루 동안 도는 행사만 하루에 최소 다섯 개 이상. 그리고 한 개의 행사마다 이천만 원 정도를 받으니 하루 매출만으로도 평균 1억씩 벌어들이고 있다.
정말 돈을 쓸어 담고 있다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스케줄을 줄여주겠다고 하는데도 한사코 만류한다. 힘들게 고생하신 부모님 집 한 채 마련해 주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 때문이다.
다른 회사에 비해 스케줄은 널널하게 잡고 있는 편이니 오히려 스케줄을 좀 더 잡아달라는 걸 진정시킬 정도다.
“대표님, 진짜 하자는데요?”
m.met은 이런 유니 열풍에 힘입어 한 가지 기획을 확정짓고 파인 엔터로 통보했다. 바로 파인 엔터테인먼트 걸그룹 데뷔 오디션. 오래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마음가짐인지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언제?”
“대표님께서 오케이 하시면 바로 내일부터 광고 때릴 생각이랍니다. 시기는 다음 달 초.”
“컨셉이 뭐야?”
“‘유니를 잇는 파인 엔터의 두 번째 프로젝트.’가 헤드라인으로 나갈 거랍니다. 오로지 연습생이나 연습생출신들로만 참가 가능한 리얼다큐 형식의 걸그룹 데뷔 오디션으로 5초 정도 짧게 한 화면만으로 나간다고 하네요. 지원은 이번 달 25일까지 받구요.”
“왜 지네가 받아?”
“아, 신청은 m.met에서 대신 받아주는 건데, 물론 대표님에게 모든 명단이 넘어간답니다.”
“아… 괜찮을 것 같아서 오케이 하긴 했는데, 막상 한다고 하니까 영 거시기 하네.”
“긴장되시죠?”
솔직히 카메라에 나온다고 하는데 긴장이 안 되면 이상한 거다. 하지만 경수 앞에서 괜히 긴장된다고 말하기는 싫다.
“크흠… 어쨌든 내가 주도하긴 하겠지만 결국 네가 키워야 할 친구들이야. 잘 보고 너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해. 누가 어떤 매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끊임없이 체크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단단히 결심한 듯한 경수의 모습이 일견 듬직해보인다.
“그래, 그쪽에다가 하겠다고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