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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4)
차라리 센터에 들일 만큼 눈부시게 예쁜 친구라면 결정이 쉬웠을 텐데 실력과 매력은 특출나지만 외모가 조금 떨어지니 고민이 된다.
“그럼 일단 아래로 내려갈까요?”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TV로 봤을 때랑 직접 봤을 때의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
“네, 말씀 놓으세요.”
“계약을 하게 되면 말 놓을게요. 그 전까지는 남이니까 존대를 해야죠?”
유니는 마침 예능 녹화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라 녹음실을 쓰는데 제약이 없었다. 뭐, 있었다고 해도 반대하지는 않았겠지만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준 것이기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번에 유니가 출연하는 예능은 ‘끝없는 도전’으로 이미 앨범 발매 전부터 잡힌 스케줄이었다. 그 때는 앨범 홍보 때문에 잡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듯싶다.
“어떤 거 부를까요?”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노래, 랩, 할 수 있는 거 전부요.”
“음! 음!”
그녀는 긴장했는지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끌어올리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벼운 아이돌 노래부터 거친 가사의 랩, 박정연, 이소란의 노래까지, 연달아 다섯 곡을 부르고는 우현을 슬쩍 바라본다. 눈치를 보는 거다.
솔직히 들으면 들을수록 좋았다.
유니와는 장르가 다르다. 유니는 기교 대신에 깨끗한 목소리로 듣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채현수는 여성치고는 거칠지만 뚜렷한 개성이 묻어난 목소리에 기교가 상당했다. 귀에 쏙쏙 박히는 가사 전달력까지 있어서 어느 걸그룹 보컬을 맡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됐어요, 나오세요.”
“춤도 출까요?”
안무실을 슬쩍 쳐다보며 묻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일단 올라갈까요?”
춤은 잠깐 지나가는 TV 화면만으로도 충분하다. 댄스팀을 모집할 것도 아닌데 몸치만 아니면 된다.
그녀와 경수를 자리에 앉히고 우현도 반대편에 앉았다.
“일단 준비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데뷔는 힘들어요. 혼자 데뷔시킬 것도 아니고 팀원을 구해야 하는데 그게 빨리 될 리도 없고, 구했다고 해도 교육시키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대신 회사에 오면 점심이나 저녁 밥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물론 적당한 체중조절은 필요하지만.”
“정말요? 우와…”
영세한 기획사였는지 아이들 밥값도 안 줬나보다.
“전속계약은 연습생 기간 포함해서 7년이고 수익은 회사와 5:5 분할이에요. 대신 데뷔까지 들어간 비용과 데뷔 이후 소모된 경비는 모두 제하고 나머지 정산하는 방식이에요.”
대부분의 기획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계약한다. 몇몇 대형기획사는 데뷔 후 소모되는 경비는 회사에서 부담하는 방법으로 아티스트에게 많은 수익이 돌아가게 해주지만 아직 회사가 작은 우현에게 있어 그 정도까지는 힘들다.
“네, 좋아요.”
지금이야 좋다고 해도 나중에 막상 돈 받을 때가 되면 아까울 수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거니까.
“계약은 부모님과 해요.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경수한테 말해서 회사로 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수는 벌떡 일어나서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게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나보다.
그녀를 집으로 보내고 나니 이번에는 경수가 감격에 겨워 허리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진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너도 알지? 어지간하면 걸그룹 안 키워보려고 했던 거. 그래도 어쩌겠냐? 네가 데리고 왔으면 그만한 인연이 있으니까 데리고 왔겠지. 내 마음에 차는 남자애들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첫 그룹은 걸그룹으로 해보자.”
“어? 얘네들 말고도 또 키우실 생각이세요?”
“그럼? 쟤들 키우려면 보컬선생에, 댄스선생까지 계약해야해. 게다가 녹음실도 더 만들어야지, 이제는 쟤들까지 들어왔으니 소속 아티스트 전부 케어하려면 직원도 더 뽑아서 마케팅에, 업무조율에, 이미지메이킹까지 전부 해야 하잖아. 그 직원들 뽑아놓고 놀릴 거야?”
“아…”
“정말 다행스러운 건 유니가 대박나면서 회사에 돈이 도니까 저걸 다 해도 부담이 없다는 건데, 그래도 최대한 빨리 키워서 데뷔시켜야 하니 너도 이제 빨리 현수랑 같이 할 애들 좀 구해라.”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어떤 친구가 좋을 것 같은데?”
“크흠… 제가 지금껏 대표님 밑에서 배운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생각이란 걸 다양하게 했읍죠.”
“크큭… 웃기지 말고 얼른 말해봐.”
“일단 대표님이 항상 말하지 않았습니까? 걸그룹은 돈이 안 된다고. 그걸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단순히 여리여리하고 여자여자해서는 국내를 벗어나기 힘들단 말이죠.”
“그래서?”
“마침 대표님께서 ‘국민 프로듀스 99’를 보고 현수를 딱 집으니까 개념이 잡히더란 말입니다. 진짜 돈이 되는 걸그룹은 전 세계를 돌면서 콘서트를 할 만한 아이들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호오… 짱구 좀 굴렸네?”
“헤헤, 어쨌든 걸그룹 하면 예쁘기만 한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생각을 바꿨습니다. 외모로 밀어붙일 만한 친구는 딱 한명이나 두명 정도. 나머지는 현수를 받쳐줄 수 있을 만큼 댄스나 랩을 기가 막히게 하는 친구로다가 짜놓는 거죠. 물론 외모가 좋은 아이도 실력은 물론이고 목소리도 좋은 친구.”
예쁘면서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는 말은 핵심을 정확히 잡아낸 거다. 다른 실력파 친구들에 비해 외모만 특출나면 오히려 외모도 가려버린다. 노래 안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친구가 외모까지 좋아야 화합이 된다.
“네가 지금까지 놀고만 있지는 않았구나?”
“그럼요, 당연하죠. 이제…”
경수가 신이 나서 떠들려는 찰나 민주가 대표실문을 두드리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똑똑…
“대표님, 윤해연 작가님하고 도마뱀미디어 지여울 제작피디님이 오셨는데요?”
“어? 들어오라고 해요. 너는 잠깐 나가있어.”
경수가 나가고 언제나처럼 화사한 패션의 윤 작가와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 지 피디가 들어왔다.
“윤 작가님 어째 얼굴이 더 좋아보이세요?”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 다 만든 작품, 신경 써 봐야 나만 늙지.”
“하하, 아직 창창하신데요. 그런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오셨어요?”
“마침 요 근처에서 같이 밥 먹었어. 지 피디 힘들 테니까 내가 밥 사준다고 불러냈거든. 마침 지 피디가 김 대표에게 할 말도 있고 하다니까 그냥 올라왔지, 뭐. 괜찮지?”
“그럼요. 잘 오셨어요. 어떻게, 편성은 확정됐어요?”
지여울 피디는 피곤에 쩔은 얼굴로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주 다행스럽게 TVM에서 도장 찍어 줬어요. 그리고 회당 제작비는 2억 2천으로 잡아줬구요.”
“다행이네. 6개월 잡고 있었다면서요? 이제 돈가뭄은 해갈되겠네. 그리고 어떻게 2천씩을 더 받았어요?”
“TVM이 중간광고가 몇 번 있잖아요. 그리고 종편보다 광고 단가가 쎄요. 주 시청자 연령층이 더 젊어서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쪽에서도 우리 윤 작가님보고 꼭 다음에도 같이 해달라면서 2천 더 주기로 했어요.”
“이야… 우리 지 피디님 실력이 대단하네.”
“아하하! 역시 절 알아주는 사람은 김 대표님 뿐이네요. 어쨌거나 그렇게 마무리는 지었는데 문제는 이주희 작가님 작품이에요. 어째 편성에 대해 말이 없어요. 이제 내일모레가 계약하는 날인데…”
“진짜 계약을 하려는 건가?”
“그럴거면 뭐하러 윤 작가님 작품을 까겠어요?”
“흠… 어째 기분이 찜찜하네. 아직 땜빵 할 작품 선정이 안 됐나?”
“제 생각에도 아직 이주희 작가님 작품을 대신할 작품을 못 정해서 시간을 끄는 것 같아 보여요. 그래서 이번에 TVM에다가 이주희 작가님 작품까지 들이밀었거든요?”
“거기 월화 아니면 편성 꽉 차서 못 들어간다면서요?”
“일이 되려고 그러는지, 캐스팅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정확히 말은 안 하는데 곤혹스러워 하는 눈치더라구요. 그래서 이주희 작가님 작품에 강소연을 얹어 들이미니까 혹하긴 하던데… 아직 답은 못 받았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그녀들을 보내고 오랜만에 이조은날 작가를 만나러 파주로 향했다.
가끔 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유니의 대박곡을 함께 만든 작사가니 직접 얼굴 보며 다시 축하도 하고 싶고 일 얘기도 할 겸해서다.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작가님 얼굴 좋아 보이네요. ‘솜사탕’이 잘 돼서겠죠?”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쓴 글이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불려지는 거잖아요. 너무너무 보람되고 흥분되더라구요.”
그녀의 쌍커풀 없는 얇은 눈이 반달이 되었다.
“작가님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래서 작가님이 더 보람될 수 있는 일 얘기를 하러 왔어요.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한 얘기 기억해요? 글을 쓰면서 커피숍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던…”
“네, 기억하죠. 기대 안 한다고는 했지만 작사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도 다 돈 때문인걸요.”
작가가 돈을 밝히는 것처럼 보일까봐 민망한지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더 기어들어간다.
“돈 벌려고 한 거면 어떻습니까. 재능만큼 돈도 따라오는 거지요. ‘배고파야 예술이다’ 이런 생각은 개나 줘버리세요.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예술은 무슨… 아무튼 제가 한 말을 지켜볼까 하구요.”
“네?”
이 작가는 안경을 한 번 치켜 올린다. 여전히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단발머리와 안경은 그녀를 꼭 사춘기 소녀처럼 보이게 했다. 순수함은 한 몫 더 거들고.
우현은 라떼 한 모금을 마시고 천천히 입을 뗐다.
“아직까지 작사 일을 해서 번 돈이라고는 작사료로 곡당 몇 십만 원씩 받은 게 다 잖아요. 물론 아직 저작권료가 통장에 꽂히지는 않았지만.”
“…”
우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는지 잔뜩 기대가 되는지 두 눈을 껌뻑이며 우현을 바라만 볼 뿐이다.
“후후. 저작권료가 더 들어오겠지만, 나는 그 정도가지고 많은 돈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우리 회사랑 계약해서 더 많은 곡을 써 보는 게 어때요?”
“유니 씨 다음 앨범을 벌써 준비하는 건가요?”
“아니요. 다른 가수들의 곡을 써보는 겁니다. 회사에서 작사가님을 홍보하는 거죠. 이미 유니 앨범이 히트를 쳤으니 마케팅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작사가의 길을 걸어보세요. 당장에는 작사료만 받겠지만 그 노래들이 인기를 얻어 방송을 탈수록 점점 더 많은 저작권료가 통장에 들어올 겁니다. 지금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저작권료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겪어보면 아실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계속해서 나올 거거든요.”
“정말요?”
그녀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머그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만지작거린다.
“무슨… 문제가 있어요?”
“그게… 아시다시피 저는 큰돈을 바라고 글을 쓰는 건 아닌데요. 물론 큰돈을 벌면 좋구요. 아무튼 대표님 통해서 작사 일을 해본 게 좋은 경험이고 또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런데요?”
“집에서…”
이런 젠장. 하마터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갈 뻔했다.
“작가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는 안 들어도 알겠네요. 제 마음 같아서는 이미 성인이니 부모님 의견은 무시하고 본인 인생을 살아보라고 강력히 말하고 싶지만… 결국에는 본인의 선택이니까요. 혹시 다른 일을 하더라도 틈틈이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아요?”
자녀의 재능을 몰라 보는 부모, 자녀의 재능을 과대평가 해서 욕심을 부리는 부모. 연예계에도 이 두 종류의 부모들이 많다. 지난번 해수의 엄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