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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2)
유니의 ‘솜사탕’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과 1위 후보에 올라 1위를 장담하긴 힘들다.
파란색 미니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유니는 오늘 일일MC 마이크를 계속 들고 있었다.
“유니 씨, 오늘 1위 공약 기억하시죠? 1위를 하면 남성팬 한 분과 커피를 마시고 인증샷 올리기로 한 거.”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저기, 저 분 어떠신가요? 유니 씨의 삼촌팬으로 보이는데요. 오늘 유니콘 풍선을 들고 오셔서 방송 내내 카메라를 받으셨잖아요.”
카메라가 한 남성을 비추자 그 남성은 환호하며 유니콘 풍선을 들어올렸다. 오늘 카메라에 여러 번 잡힌 팬이다.
“아, 좋습니다. 저도 오늘 저 유니콘 덕에 더 응원 받은 느낌이었거든요. 만약 오늘 제가 1위하면 생방송 끝나자마자 저 분과 함께 방송국 커피숍으로 직행하겠습니다.”
“우와아아.”
유니팬들의 함성소리가 들리고 부러움의 시선을 받는 그 삼촌팬은 유니콘 풍선을 흔들어댔다.
“좋습니다. 그럼 다함께 1위를 확인해볼까요?”
“네, 음원성적과 음반판매량, 방송출연횟수, 실시간투표의 합계로 선정되는데요. 그럼 1위는…!”
“축하합니다. 유니의 ‘솜사탕’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유니의 1위 발표에 우현과 세동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어!”
“드디어 지상파 1위 하는구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유니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유니 씨, 첫 1위 축하드립니다. 소감 발표하시죠.”
“아… 정말 1위를 할 줄은…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유니콘 팬분들 너무너무 감사하구요. 좋은 가사 써주신 이조은날 작사가님 감사드리고 우리 스태프들, 그리고 회사 식구들, 매니저 세동 오빠 너무 고마워요. 또 저를 믿고 기다려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짜 감사한 분이 있는데… 대표님, 저를 알아봐주시고 이렇게 앨범까지 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아유, 유니 씨 눈물 닦으시고. 1위 무대 준비해주셔야죠. 1위 곡, 유니 씨의 ‘솜사탕’ 다시 들으시면서 이번주 ‘위클리 인기가요’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도 꼭 함께해요!”
유니는 이름이 크게 붙은 MC 마이크에서 자신의 마이크로 바꿔들고 나타났다. 뒤에 서 있던 오늘 출연 가수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세 더 울었는지 눈물범벅이 되었지만 기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훌쩍.
훌쩍이는 소리에 옆을 보니 세동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매니저 일의 보람은 바로 저거다. 내 가수, 내 배우를 스타로 키워내는 것. 신인일 때 받은 서러움과 온갖 고생, 피로는 이 순간에 모두 보상받는다.
그 울컥하는 기분을 잘 아는 우현은 세동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대표니임… 흑흑… 저 1위했어요. 엉엉”
유니가 울며 들어와서 세동과 우현에게 안겼다. 셋은 부둥켜안고 1위를 마음껏 자축했다.
“1위 트로피가 금세 마구 불어나는 구나. 회사 진열대를 더 넓혀야겠다. 앞으로 유니가 트로피 엄청 쓸어오겠는데?”
“아하하, 제 걸로 가득 채울 거니까 넓혀놓으셔요.”
그리고 유니와 세동은 1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삼촌팬을 만나러 갔다. 한 시간 후쯤 유니와 그 팬이 커피를 마시고 싸인CD를 건네는 모습이 포털 기사에 떴다.
유니가 음원차트 올킬과 더불어 지상파 3사와 케이블 음방까지 모조리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대세로 자리 잡았다. 온갖 광고와 섭외가 밀려들어오는 건 당연하다.
전에 협의를 마쳤던 삼전전자 핸드폰 광고는 물론이고 치킨, 피자, 에어컨, 통신사 광고까지 모조리 계약을 체결하며 단숨에 CF퀸으로 올라섰는데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만했다.
“좀 봐줘, 잘 나간다고 이러기야? 몇 배가 오른 거야, 대체?”
광고제작사인 최고기획의 최호선 팀장이 죽는 소리를 한다. 유니의 몸값을 조정해달라는 소리다.
“몇 배라뇨? 솔직히 지금 유니의 브래드 파워에 비하면 비싼 거 아닙니다. 흠흠… 그렇게 보면 삼전전자 정윤수 부장이 머리 잘 썼죠. 거기서 열 받는다고 안 한다고 했으면 지금쯤 다른 핸드폰 광고 찍고 있었을 걸요? 아니면 그 때 불렀던 금액의 두 배를 줬던가 말이죠.”
실제로 삼전전자의 대항마인 LS전자의 S7 광고가 들어왔으니 거짓을 말한 게 아니게 됐다.
“알지. 그래도 이렇게 몸값 유지하면 자잘한 광고는 어렵잖아? 조금 낮춰서 다 잡아버리는 게 훨씬 이득이지.”
“괜찮습니다. 광고로만 먹고 살 생각 없다구요. 우리 유니가 음악성이 딸립니까? 외모가 딸립니까? 아직 창창하니 벌써부터 몸값 낮춰서 이미지 소비할 생각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광고를 따낼 수 있었지만 몸값 조정을 원하는 광고는 전부 쳐냈다. 말 그대로 너무 많은 광고 노출은 이미지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에이… 김 대표 말대로 유니가 음악성이 딸려? 아니면 외모가 딸려? 한 시즌 광고 좀 나온다고 이미지 소비는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아닙니다. 한 시즌이 중요한 거예요. 어쨌든 이번 드링크 광고는 어려울 것 같아요.”
“후… 어쩔 수 없지. 오케이! 다음에 시간 되지?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하, 제가 또 술자리에 빠지는 타입은 아니잖습니까? 대신 비싼 술 사주십쇼.”
전화를 끊자 경수가 아쉬운 얼굴로 말한다.
“그래도 광고 하나 찍으면 못해도 수억이 들어오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길게 가자 경수야. 장사 하루 이틀하고 끝낼 거 아니잖니?”
“그렇긴 해도… 이미지 소비도 그렇게 많이 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렇지 않아. 내가 통화하는 거 들었지? 한 시즌이 중요하다고. 그게 뭐겠어? 단기간에 너무 많이 나오면 사람들은 아무리 괜찮은 이미지의 연예인이라고 해도 피곤해하기 마련이야. 당장 ‘쟤 또 나와?’ 하는 소리가 나온다고.”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아니야. 그게 중요한 거야. 또 나온다고 하는 순간 긍정적인 이미지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뀐다고. TV에서 유니를 보면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쟤는 무슨 복을 타고나서 저렇게 돈을 많이 버나?’ 하는 생각이 나면서 한숨부터 푹 쉰다니까? 그러면 바로 안티가 되는 거야.”
“아…”
“만약 우리가 유니 키우면서 엄청난 돈이 들었어. 막 사채까지 끌어다 써서 한 달 이자만 몇 천이야. 그러면 나중 일은 생각 말고 일단 뽑아먹을 수 있을 때까지 뽑아 먹어야겠지. 그런데 우리가 유니 키우면서 들어간 돈이 없거든? 막말로 지금까지 유니 혼자 큰 거야. 나야 걔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자리만 만들어 줬지. 그럼 너무 욕심 부리면 안 돼. 유니가 지금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나중에 크면 다 안다.”
“그렇군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말씀하신 식당으로 회식 예약해 놨습니다.”
“잘했어. 운 좋게 자리가 있었나보네?”
어제 별이의 ‘예종의 여인’ 촬영이 모두 마무리됐다. 때문에 어제는 모든 촬영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회식을 가졌고 오늘은 회사 식구끼리 회식을 하기로 했다. 유지나와 별이, 윤해연 작가의 촬영 종료 겸 유니의 음방 1위를 축하하는 자리다.
“평일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주말이었으면 어려웠을 텐데.”
“잘 됐지 뭐, 그럼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으며 회포를 풀 생각에 즐거워하는데 지여울 피디의 전화가 걸려왔다. 촬영이 끝났는데 왜 전화를? 느낌이 쎄하다.
“여보세요?”
“아, 대표님.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그럼요.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다급함. 뭔가 터진 것 같다.
“편성이 엎어졌어요.”
“네? 뭐라구요?”
이건 또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린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윤해연 작가에 송민기, 한지애 주연이다. 이걸 깐다고? 드라마국장이 미친 건가?
“KMTC에서 편성을 엎었어요. 정확한 사정은 저희도 몰라요. 일단 그쪽에서 갑자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해와서,,,”
“일단 방송사 측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나중에 알아보시고 다른 방송국 알아보죠. 이왕이면 지상파로 합시다.”
“당연하죠. 이건 종편이나 케이블 보내기 아깝단 말이에요.”
“정 갈 데 없으면 케이블 가도 되긴 하는데… 뭐, 알아서 하세요. 저는 방송사 측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볼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KMTC 드라마국에 근무하는 피디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 이게 누구야?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김 대표네?”
“잘 나가긴요. 그나저나 무슨 일입니까?”
평소에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안 그래도 전화 할 줄 알았지.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몰라. 그냥 위에서 내려왔어.”
“그럼 누가 대타로 들어간대요?”
“외주 쪽에서 하나 끌어올 모양인데 그걸 넣으려고 윤 작가 작품을 깐 모양이야. 우리도 너무 황당한데 어쩌겠어? 김 대표도 알겠지만 회사일이라는 게 언제나 정상적인 일만 하지는 않잖아? 누군지는 모르지만 위에다 기름칠 좀 하지 않았겠어?”
피디가 말하는 기름칠은 룸싸롱 같은 접대나 현금을 찔러주는 등의 뇌물을 말한다.
“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윤 작가랑 송민기, 한지애를 까고 들어온다구요? 이걸 배짱이라고 봐야 합니까? 아니면 멍청하다고 봐야 합니까?”
“너무 그러지 마. 사실 우리한테 편성 까였다고 해도 다 찍어놓은 작품이 어디 갈 데 없겠어? 게다가 윤 작가 작품인데?”
“갈 데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럽니다. 이렇게 해버리면 누가 사전제작 합니까? 안 그래도 사전제작 불안해서 안 하려고 하는데…”
“위에 있는 양반들이 그런 거 걱정 하겠나? 하여튼 나도 위에서 내려온 내용이라 뭐 전할 게 없네. 그런데 윤 작가 까고 들어올 작품이 쫌 있어 보이던데?”
“네? 있어 보여요?”
“응. 자세한 썰을 풀지는 않는데, 뭐라더라? 올해 KMTC 최고 시청률을 찍는 건 물론이고 최고 화제작이 될 거라고 장담하더라고. 내참, 김 대표도 알다시피 드라마랑 주식의 공통점이 뭐야? 내일 주가랑 내일 시청률은 신도 모르는 거잖아? 그런데 뭐 씌인 것 마냥 좋아하던데? 어이없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있으니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럴 거다. 비록 계약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편성 약속까지 잡은 걸 그대로 깐다는 건 앞으로 윤해연 작가와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인데 그걸 감수할 만한 커다란 메리트가 있을게 분명하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그 피디의 말대로 자신은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일까? 아니다. 당장 이주희 작가의 차기작이 KMTC와 예정되어 있다. 그것도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는데…
단순히 술 좀 얻어먹었다고 윤해연 작가를 깔 수 있을까? 그것도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해가면서? 아니다. 제 아무리 김은선이나 박지원을 데리고 온다고 해도 이렇게 깔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건 회사차원에서 선을 그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결국 회식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윤해연 작가 때문에 방송국 성토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이유가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