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52화 (15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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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1)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니까 무서워 보이는데요? 그래요, 뭔데요?”

그녀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물어본다.

“딱 하나입니다. 대본이 나가면 절대 수정 없습니다.”

“잠깐만요, 대본 수정은 원래 수시로 이루어지는 거 아닙니까?”

강소연은 가만히 있는데 조 상무가 대신 앞으로 나섰다.

“죄송하지만 그 조건 없이는 캐스팅 어렵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드라마 촬영장에서 톱스타가 얼마만큼이나 영향력을 끼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감정선이 맞지 않는다거나 대사가 이해 안 되면 무작정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초보 작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설사 기싸움에 져서 대본을 수정해 주더라도 작가의 생각이 이렇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이주희 작가가 과연 강소연의 기에 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차피 이 드라마는 강소연이 아니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에 이렇게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좋아요.”

“어? 진짜?”

어디서 쿨병이라도 걸려 온 건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승낙에 오히려 조 상무가 놀란다.

“흥행퀸이 될 수 있다는데 그깟 대본 수정 좀 안하면 어때요?”

무조건 재밌게 쓰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다. 이 작가는 강소연의 기백에 눌린 듯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PPL? 넣고 싶은 만큼 넣으세요. 김치싸대기? 얼마든지 날려 줄게요. 뭐, 맞는 것도 피하지 않죠. 대신 한 가지만 알아주세요. 나 이거 그냥 재미로 찍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다른 여배우가 저런 말을 했다면 ‘알겠습니다. 다른 배우를 찾아보죠.’ 하며 자리를 떴을 테지만 강소연이 말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공시킬게요. 반드시…”

우현 대신 이 작가가 나서서 그녀를 안심시킨다. 이제는 물릴 수 없다. 애초에 강소연은 자신이 까일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데… 대단한 카리스마라고 할까?

하긴 강소연 대신에 유은하가 앉아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좋아요. 흐음… 여기 음식이 맛있네요.”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그녀 앞으로 나온 음식을 모조리 다 먹었다. 어지간한 배우들이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을 거다.

“그렇죠? 제가 음식집 고르는 건 기가 막혀요, 아하하!”

숨죽이며 오가는 말을 지켜보던 지여울 제작 피디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의견조율이 순조롭게 마무리 됐다는 뜻이다. 이제 출연료 같은 부가적인 문제는 제작사와 의논해야 하니 큰 산은 넘긴 거다.

이후 미팅은 순조롭게 끝났다.

조 상무는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가슴까지 밖에 오지 않는 이주희 작가를 향해 연신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다.

“오늘 저녁부터 기사 나갈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지 피디를 보며 미소를 보이던 소연이 마지막으로 우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이번 작품 대박 냅시다.”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랄게요. 가요.”

소연이 조 상무와 함께 도도하게 자리를 뜨자 지 피디와 이 작가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푸하… 고생하셨어요.”

“후… 진짜 진이 다 빠졌어요. 전에 캐스팅 미팅할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는데… 제가 면접 보는 기분이었어요.”

이주희 작가는 후식으로 나온 냉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래도 성질 많이 죽었습니다. 예전에는 더 했으니까요.”

“진짜요?”

“그럼요. 특히 은하랑 둘이 있을 때는… 정말 팔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싸늘했었어요. 지금은 안 그럴려나? 어쨌든 대본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작가님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눈치 보지 마시고. 아까 들었죠? 김치싸대기도 맞을 자신 있다고. 물에 빠지는 씬이나 얻어맞는 씬 같은 거, 배우들 눈치 보면 안 됩니다.”

“알고는 있는데, 감히 강소연을 그렇게 대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악플 엄청 달리는 거 아닌가?”

“배우 험하게 다룬다고 악플 안 달려요. 자, 고생했고 일어납시다. 작가님은 조금이라도 더 쓰셔야죠.”

“그래요. 아까는 톱스타인 소연 씨가 저렇게까지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저런 고집이 있기 때문에 흥행작이 없이도 저 위치에 있는 것 같네요. 저도 더 잘 쓰고 싶어졌어요.”

워낙 센스 있는 친구라 의욕을 불태우고 있으니 더 잘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요. 작가님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저 믿으세요.”

미팅을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경수가 보이지 않는다.

“경수 어디 갔어요?”

민주에게 물어보니 그녀도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다.

“아까 점심 먹고 누구 만나고 온다고 하던데요?”

또 어디 가서 하나 건져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맡은 일은 놓치는 법 없이 여유 시간을 만들어 저러니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제는 어떤 친구를 데리고 올지 궁금해진다.

“너 어디야?”

“아, 저 신사동입니다. 누구 만나는 중입니다.”

말하는 투가 전화로는 설명이 힘들다는 냄새를 팍팍 풍겨댄다.

“그래? 유니는?”

“오늘 음방 녹화 있습니다. 그리고 유지나 씨는 당분간 쉬고 있구요.”

물어보지도 않은 유지나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누군가에게 자랑하려는 게 분명했다. ‘내가 유니와 유지나를 관리하는 사람이야’ 하는 느낌.

저것도 세련되게 해야지 잘못하면 딱 사기꾼 취급당하기 좋다.

“알았다. 욕 봐라.”

“넵! 들어가십쇼.”

유니는 컴백과 동시에 차트 줄 세우기에 성공하면서 1~2주가 지나자 모든 방송사 음악방송 1위 후보로 올랐다.

1위가 유력하자 우현도 함께할 마음에 서둘러 방송국으로 향했다. 첫 1위는 꼭 직접 축하해주고 싶으니까.

생방을 2시간정도 앞두고 우현은 방송국에 도착했다.

“의상이 다르네?”

“오늘 저 일일 MC예요. MC 3명 중 한 명은 매주 일일 MC가 하거든요.”

유니는 무대의상과는 다른 의상을 입고 유니라고 이름이 크게 붙은 마이크를 우현 앞에 내보였다.

“응, 전에 본 것 같다. 그래, 리허설해보니까 어때?”

“저는 MC도 잘 맞는 것 같아요, 히히.”

1위 후보라 기분이 좋은지 연신 방긋거린다.

“흐흐, 넌 안 맞는 게 도대체 뭐냐? 작사, 작곡, 노래, 연기에 이제 MC까지?”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아, 그런데 대표님 말씀이 맞더라구요. 저는 작사는 아닌가봐요. 앨범 전체 음원들 중에 제가 작사한 곡이 제일 인기가 없더라구요. 칫…”

“내 촉은 틀린 적이 없지. 그래서 한 곡만 해보라고 한 거야.”

“뭐, 모든 분야를 다 잘 할 순 없으니까. 작사 하나는 내려놓죠, 히히.”

유니와 수다를 떨며 앉아있는데 스태프가 들어온다.

“유니 씨, 정혁 씨 도착했으니까 다시 한 번 맞춰볼게요.”

“네!”

MC 중 한 명인 신인배우 정혁이 촬영으로 늦게 도착했단다. 앞서 리허설에서는 여자MC를 맡고 있는 걸그룹 ‘크리스탈’의 라영과 둘이서만 맞춰보았다고 했다.

유니가 MC는 어떻게 하나 궁금한 우현도 어슬렁 리허설 하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 유니 씨는 1위 후보에도 오르셨는데 이렇게 일일 MC까지 맡아주시고, 저도 유니 씨 팬인데 너무 좋네요.”

“네, 이렇게 ‘위클리 인기가요’에 MC로 함께하게 돼서 너무 영광이에요.”

유니는 큐카드를 다 외웠다더니 정말 자연스럽게 잘 했다. 역시 어디 가서 기가 죽는 법이 없다.

“잠시만! 오늘 어째 정혁 씨랑 라영 씨가 게스트 같아. 꼭 점심 먹고 체한 사람들 같잖아. 유니 씨가 아주 밝게 잘 하는데? 두 사람도 더 밝게 합시다. 잠시 대기!”

“네.”

“네, 죄송합니다.”

피디의 지적에 MC 두 사람이 머쓱해하더니 아무 말 없이 각자의 큐카드만 뒤적이며 서 있다. 세 사람이 서 있는데 아무런 대화가 없는 거다. 따지자면 유니는 손님이고 두 사람은 주인인데 손님을 모셔놓고 말 한마디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유니가 우현과 세동을 쳐다본다. 당황스러우리라.

우현은 유니가 당황하지 않게 얼른 입모양과 제스처로 하던 대로 계속하라고 전했다.

“아까 리허설 때도 저랬어?”

“아뇨. 아까 라영이랑 할 때는 좋았는데요, 둘이 얘기도 잘 했고. 갑자기 분위기 왜 저래?”

다시 리허설이 진행되었지만 분위기는 계속 그랬다. 진행을 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셋은 활짝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대기시간에는 서로 간에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이쯤 되자 스태프들도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땀나게 어색한 리허설이 끝나자 유니는 그래도 두 사람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분위기 왜 그런 거냐?”

“저도 모르겠어요. 둘이 싸웠나? 아님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나?”

“둘이 싸웠든 말든 너는 네가 할 일만 잘 하면 돼. 이 바닥에 저런 일쯤이야 다반사니까.”

“네. 그런데 왜 저러는지 궁금하긴 하다, 헤헤.”

우현은 매니저 생활을 하며 별별 일을 다 겪어서 저런 감정싸움 따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유니는 아닌 듯했다. 뭐, 싸움 구경이 재미나긴 하지.

생방송 시간이 거의 임박한 무렵 세동이 대기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유니야! 알았다!”

“뭘요?”

“정혁이랑 라영이 왜 저러는지 알았어.”

“왜요, 왜요? 뭔데요?”

유니는 눈을 반짝 빛내며 세동 앞에 바싹 붙어 앉았다.

우현도 관심 없는 척 핸드폰을 보고 있었지만 세동이 알아왔다고 하니 또 귀가 쫑긋해졌다. 어떤 재미난 가십 거리길래?

“정혁이랑 라영이, 둘이 사귀는 사이였대. 그런데…”

“그런데 뭐요? 빨리!”

유니는 궁금해죽겠다는 표정이다.

“‘크리스탈’ 멤버 중에 ‘현주’라고 알지? 아 글쎄, 정혁이 걔가 양다리로 현주도 만나고 있었다는 거야. 같은 팀 멤버들이 한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었던 거지.” “헐! 웬일이니, 진짜.”

정말 연예계에는 별일이 다 있다. 이래서 어느 남자 아이돌이 그랬던가? 이곳은 동물의 왕국이라고…

“그런데 세동이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소문날까봐 쉬쉬할 텐데.”

우현이 세동을 쳐다보자 세동은 빙그레 웃는다. 대신, 유니가 대답을 했다.

“세동 오빠 완전 마당발 됐어요. 가요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그래? 그 정도야?”

“하하, 뭐… 이 일을 하려면 일단 인맥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신경 좀 쓰고 있습니다.”

확실히 세동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매니저 일이라는 것이 그저 시키는 것만 해서는 절대 성장할 수가 없는 직업이다.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스스로 인맥을 만들고 스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중에 큰 엔터사의 대표가 되는 것이 목표라 하더니, 짜식 열심히 하네.

곧 생방송이 시작되고 유니는 일일MC로 무대에 올라갔다. 약 1시간의 진땀나는 생방송을 실수하나 없이 끝마친 유니는 드디어 마지막 대망의 1위 후보곡 발표만을 남겨두었다.

“그럼 1위는…!”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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