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51화 (15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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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감기엔 모과차(2)

“잠깐만 기다려, 모과차 내어올게.”

“인테리어 새로 했네?”

오랜만에 은하의 집에 들어온 우현은 뻘쭘해서 소파에 앉지 못하고 바뀐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척 거실을 서성거렸다.

“응. 기분전환으로.”

예전엔 매일같이 드나들던 집인데, 참 어색하다. 인테리어가 바뀐 것 때문만은 아니리라.

매니저가 아닌 남자로 들어와서겠지.

“흠흠…”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헛기침이 나온다.

“왜 계속 서있어? 앉아.”

모과차 두 잔을 거실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은하가 먼저 소파에 앉았다.

“어, 어.”

딱 붙어 앉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를 두고 소파에 앉았다.

“오빠 열나? 얼굴이 벌게졌는데?”

“내 얼굴이?”

우현이 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다대는 순간 은하가 옆으로 다가와 우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음… 열은 안 나는 것 같은데?”

“어, 어. 뭐… 감기니까 벌게졌나봐.”

무슨 말인지. 진짜 감기라도 걸렸어야 했는데.

“몸 챙기면서 일해. 주말엔 푹 쉬기도 하고.”

은하가 가까이서 우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자 우현의 가슴이 또 나대기 시작했다. 뭘 했다고.

나대는 심장 탓에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아 벌떡 일어섰다.

“어, 요즘엔 좀 쉬려고 해. 방도 인테리어 바뀌었어?”

예전에 많이 봐왔기에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방을 향해 일어서자 은하도 따라 일어났다.

“응, 뭐 조금.”

하지만 아차 싶었다.

하필 침실로 들어섰네. 의도한 건 아닌데.

순간 멈칫하는데 그 때 뒤에서 우현의 허리로 은하의 손이 들어왔다. 은하는 우현의 등에 가만히 기댔다.

‘백허그는 내가 먼저 해줘야 했는데… 등신.’

자신의 배 위에 얹힌 은하의 양손을 살짝 잡았다가 풀고선 우현이 돌아섰다.

“보고 싶었어, 너무.”

근사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진심인 보고 싶었다는 말에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리곤 곧바로 은하를 껴안고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나도… 얼마나 보고 싶었다구.”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격정적인 키스가 계속되자 우현의 힘에 은하 몸이 자꾸 뒤로 밀려나 방문까지 도달했다.

거실로 다시 나갈 순 없지.

근사한 말은 떠오르지 않더니 몸은 본능에 따라 잘도 움직인다. 우현은 방문 옆에 있는 스위치에 손을 뻗어 방의 불을 껐다.

확실히 어둠은 우현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다.

순간 흠칫 놀라며 눈이 동그래진 은하의 입술을 부드럽게 쪽 빨아준 다음 목으로, 그리고 쇄골로 우현은 입술을 옮겨갔다. 오랜만에 은하의 향기가 코에 스며들자 취한 것처럼 심장박동은 더욱 빨라진다.

은하의 어깨와 등을 어루만지던 우현 손 또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은하의 허리와 골반을 느끼다 이내 블라우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우현의 손길에 놀란 건지 간지러운 건지 은하는 살짝 몸을 틀었다가 우현의 목을 감싸 안았다.

우현을 꼭 껴안은 은하의 허리와 등의 부드러운 살갗이 느껴지자 우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은하를 완전히 느끼고 싶었다.

“사랑해.”

은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우현은 자신의 마음을 은하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다. 입 밖으로 꺼내기 참 힘든 말이지만 은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은하도 우현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대었다.

“내가 더 사랑해.”

은하의 대답으로 서로의 마음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자 우현은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추는 왜 이렇게 많은 거냐? 마음과 손은 급한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몇 개의 단추가 풀리자 목을 껴안고 있던 은하의 손이 내려오더니 셔츠를 살짝 벌리고선 우현의 가슴에 ‘쪽’ 입맞춤을 했다.

이 이상 더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단추를 다 풀자 우현은 곧바로 셔츠를 벗어던지고 다시 은하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으며 은하의 블라우스 안에 있는 속옷 끈을 풀었다.

이른 새벽, 우현이 은하의 집을 나올 때까지 모과차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다음 날, 서울의 한 한정식 집, 우현은 이주희 작가와 함께 예약된 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괜찮아요?”

이 작가는 긴장된 표정으로 거울을 보며 물었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오늘 그 질문만 벌써 다섯 번째인 거 아세요?”

“아… 하하하, 그랬나요? 당최 떨려서 말이죠. 세상에… 내가 강소연과 대면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제가 예능 작가만 7년을 했는데 그 오랜 기간 동안에도 단 한 번도 얼굴을 못 봤었죠.”

“워낙에 예능 안 하는 친구니까요. 그쯤 되면 할 필요도 없고.”

“요즘은 그래도 톱스타들도 종종 예능에 나오고는 하는데 예전에는 정말 안 나왔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지금도 사실 나올 필요 없어요. 나왔다가 이미지 좋아진 친구는 몇 없죠. 아, 물론 톱스타급 한정이요.”

“동감이에요. 예능은 정말 잘 해야지, 어설프게 하면 괜히 이미지만 소비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피디와 작가들이 소탈하거나 망가지는 모습이 나오길 원하니까요. 어쨌거나 이 바닥에서 톱스타라고 인정받는 강소연을 내 드라마에 캐스팅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실감나지 않네요.”

“하하하, 실감나지 않으면 더 좋네요. 떨릴 필요도 없고.”

“이상하죠? 실감은 안 나는데 왜 이렇게 떨릴까요? 그래서 그런가? 제가 강소연에게 시험받는 느낌인 거 있죠?”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갑으로 앉아있는 건 강소연이 아니라 이주희 작가님이니까요.”

“제 평생 갑의 자리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것도 강소연을 상대로 말이죠.”

그래도 말을 걸어줘서 그런지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다. 그렇게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으니 약속된 시간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간에 딱 맞춰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가장 먼저, 앞서 들어오는 지여울 제작 피디가 활짝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녀 뒤로 강소연과 처음 보는 장년의 남성이 따라 들어섰다.

“아닙니다. 저희도 도착한지 얼마 안 됐습니다.”

“다행이네요. 여기, 강소연 씨는 아시죠? 전에 김별 씨랑도 작업해보셨으니까요.”

“그럼요. 오랜만에 뵙네요.”

강소연은 언제나처럼 도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또 만날 줄 알았다는 듯 한 줄기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역시 예상대로 잘 나가시네요.”

“과찬입니다. 앉으세요. 그리고 이 분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장년의 남자는 사각턱에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운동 꽤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하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조홍선 상무입니다. 한 번 꼭 뵙고 싶어서 애들 대신에 제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마이더스가 큰 회사라고는 하지만 강소연 정도의 캐스팅 미팅에 로드매니저가 따라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저 멘트는 그냥 예의상 한 말이나 다름없다.

몇 차례 형식적인 말이 오가고 준비했던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 믿기지 않았습니다. 드라마는 이제 안 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우현의 물음에 강소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젠 예전과 달라서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오히려 몸값을 올리는데 더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 드라마판이 엿 같아서 사람을 반 죽을 때까지 밀어붙인다는 데 있죠. 마음 같아서는 일 년에 한 편 이상은 꾸준히 하고 싶지만 한번 하고나면 근 몇 년 동안 작품 할 의욕을 뚝 떨어뜨리니 할 수가 있었겠어요?”

“그런데 왜 지금은…?”

“어머, 눈치가 없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해보는 말이에요? 내가 내 입으로 꼭 이야기해야 하나?”

역시나 전에 그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밀실’이 잘 된 후 우현이 진행하는 작품에 발을 담궈 보려 눈치 꽤나 본 것 같다.

“이번에도 힘든 건 똑같은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드라마가 왜 사람 미치게 하는지 알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을 반 죽을 때까지 밀어붙이지만 시청률이 안 나와도 때려 칠 수 없거든요. 혹시 시청률 5%도 안 되는 작품 해본 적 있어요?”

순간 그녀의 마지막 드라마 작을 떠올렸다. 최고 시청률이 4% 언저리였던 걸로 기억나는 그 드라마는 우현도 첫 회를 보고 그 다음부터는 보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재미없다는 정도는 악플도 아니에요. 작가가 병신이니, 본격 제작비 날리기 프로젝트니 하는 비아냥은 기본에다가 기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망한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죠. 추가로 경쟁사 잘나가는 드라마의 기사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건 정말… 다신 하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이주희 작가님을 보고 이 자리에 온 건 아니에요.”

옆에 앉은 조 상무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정도 되면 하고 싶은 말 정도는 할 수 있다.

“알고 있어요.”

이 작가도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작품이 잘 된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지금껏 남자들 들러리만 시키는 영화만 붙잡고 있지 않았겠죠? 지금까지는 그게 없었는데… 김 대표님 소속 작가님이시기 때문에 해보려고 해요.”

“확신이 생기셨다는 겁니까?”

“은하 고 계집애가 10억을 클래식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저게 돈 좀 벌더니 ‘제대로 미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나중에 대표님네 귀염둥이가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아, 여기 계신 조 상무님은 내가 그 영화 성적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때도 그게 개봉할 때까지 은하가 망할 걸 믿어 의심치 않았죠.”

“어험…”

조 상무는 우현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한다.

“지금 ‘피아니스트’가 600만을 넘었어요. 꼴랑 제작비 50억도 안 되는 영화가 이렇게 대박을 터뜨렸는데 작년 마이더스 소속 배우들 중에 그보다 더 좋은 흥행기록을 가진 배우가 없었어요. 웃기죠? 그렇게 많은 배우를 가지고 있으면서.”

“소연아. 그건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요즘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다들 치중하다 보니까…”

조 상무가 나름 변명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러니 내가 안달이 나지 않겠어요? 막장 드라마? 솔직히 5년 전이었으면 안 했을 것 같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마음에 드네요. 그만큼 내가 보여줄 게 많을 테니까. 이제 충무로 대표 국밥이라는 별명은 떼어 버리고 싶어요. 아주… 지긋지긋해요.”

충무로에서는 작품을 계속해서 말아먹는 배우를 국밥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기피대상이 되는 거다.

“그래도 이번 ‘밀실’로 국밥 타이틀은 떼 버린 거 아닙니까?”

“어쩌다 하나로는 부족해요. 내 이름을 말하면 딱 떠오를 만큼 대표작을 가지고 싶은 거예요. 공포영화가 대표작인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사실 이 바닥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막론하고 대표작을 가진 배우는 많지 않다. 만약 대표작을 가지고 있다면 그 배우는 어지간해서는 밥줄 끊길 일이 없을 만큼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장인 타이틀이랄까?

물론 가수의 원 히트 원더(한 곡을 히트치고 사라진 가수)처럼 대표작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배우들이 몇 있기는 하나 아주 드문 케이스다.

“아이고… 대표작까지 생각하시면 우리 이 작가님 부담돼서 어떻게 글 쓰시겠어요?”

농담으로 던졌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잘 쓰면 되죠. 설마 김 대표님 눈에 차지도 않는 사람을 작가라고 계약했겠어요?”

“그럼요.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만 약속해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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