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첫 정규 앨범 발매(3)
“저기… 이러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보시죠. 그럼 멘트를 조금 수정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광고제작사의 최호선 팀장이 본사 마케팅팀의 정윤수 부장의 눈치를 본다.
“미안하지만 우린 그 컨셉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칼같이 잘라내는 정 부장의 말에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아쉽게도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군요. 그럼 즐거웠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회의실을 나와 버렸다. 뒤에서 최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저 인간 미친 거 아닌가?”
회의실에 남아 있던 정 부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최 팀장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유니를 선정한 건 최고기획이 아니라 본사였기에 최 팀장도 딱히 미안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원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서요. 사실 지금까지 그가 키운 연예인 치고 실패한 친구도 없고… 유은하 아시죠?”
“설마 그 유은하를 저 친구가 키웠다고?”
“네. 유은하 햇병아리 때부터 키워서 톱스타 만들었죠.”
“그런데 왜 지금은 같이 일 안해?”
“사정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망했었죠. 그래서 유은하도 나가고 저 친구도 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재기했습니다. 지금 ‘피아니스트’로 대박 난 김별이랑 유지나도 저 친구 소속사죠. 그리고 중요한 게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 작가인 윤해연이 바로 저 친구네 회사 소속입니다.”
“허… 재주 좋네?”
정 부장은 말과는 달리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쉽사리 컨트롤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거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윤해연 작가만 붙잡고 있어도 먹고 사는데 걱정 없을 겁니다. 그러니 다른 회사들처럼 쉽게 따라오지 않을 테구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배짱 튕기는 게 아니란 말이네?”
“그래도 사회생활을 모르는 친구는 아닙니다. 단지 소속 아티스트에 대해선 그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마지노선이 있죠. 그것만 아니면 비즈니스 마인드도 충분한 친구이기 때문에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흠… 만약 컨셉 수정하면 이것만큼이나 괜찮은 거 뽑아낼 수 있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 팀장의 다짐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참이나 인상을 찌푸리던 정 부장은 이내 한숨을 푹 쉰다.
“하… 싯팔, 어쩔 수 없네. 인기 많은 놈이 갑이지. 다시 연락해요. 컨셉 수정하겠다고. 그리고 출연료도 사전에 정해준 다음에 유니랑 같이 오라고 해요. 출연료 안 정해주면 같이 안 올 거 아니야?”
정 부장의 결정에 그 옆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리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부장님, TV광고비만 수백억이 집행되는 건인데 윗선에서 나중에 문제 삼지 않겠습니까?”
“넌 아까 뭐 들었냐? 유니 하나 우연히 주워다 키운 게 아니라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뭐? 이번 윤해연 작가 사전제작 드라마에 우리 PPL 들어간 게 몇 개 인줄 알아?”
“아…”
그 젊은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 부장은 미간을 더울 찌푸렸다.
“아? 그것뿐이야? 저 친구 딱 보니 나이가 30대 초중반인데 이 상태로 5년만 더 지나면 회사 규모가 지금 그대로겠어?”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걸 떠나서 좋은 사람은 좋은 멘트보다 더 효과적인거야. 하는 꼴이 재수 없지만 현재 유니 만한 임팩트를 보여주는 아이돌이 없잖아. 지금 유니를 다른 회사로 보내는 건 체조요정 손연주를 받고 여왕인 김연하를 보내는 거라고. 최 팀장님은 다음 주까지 컨셉 시안 다시 잡아서 보내주세요. 미팅은 그 다음으로 잡고.”
“알겠습니다.”
저들이 유니를 다시 받아보겠다고 결정하는 동안 우현은 살짝 후회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그래도 삼전전자 핸드폰 광고인데 그냥 못이기는 척 받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린 유니에게 그런 광고를 시키는 건 스스로도 내키지 않는 일인데다가 정말로 유니 아버지가 반대할 수도 있다. 돈은 다른데서 벌면 되고 현재도 음원차트 줄 세우기가 지속되는 터라 앨범 제작에 소요된 비용을 모두 회수하는 건 문제도 아닐 것이다.
다음 날, 최고기획의 최 팀장에게서 다시 한 번 미팅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 컨셉 수정하기로 했으니까 이번에는 그만 튕겨.”
“내가 뭘 튕겼다고 그러십니까?”
“허허, 삼전전자 마케팅 부장을 그렇게 개쪽을 줘 놓고 안 튕겼다네?”
“흠흠… 전 그냥 제 의견을 말한 것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컨셉 수정하기로 했고 광고비는 1년 계약에 2번 다른 컨셉으로 촬영하는 걸로 6억. 어때?”
생각보다 크다. 따지고 보면 이제 첫 정규앨범 발매했는데 톱스타급 대우다.
“7억으로 해요. 그 정도 재량은 줬을 거 아닙니까?”
“아이, 김 대표 정말 이러기야?”
“그거 아십니까? 어제 미팅 깨지고 와서 바로 LS전자 S7 광고 제의 들어온 거?”
사실 안 들어왔다.
“하아… 그거 진짜야? 내가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 있는 거 알지?”
“그럼요. 알아보십쇼.”
알아 볼 수야 있을 테지만 이 정도 뻥카는 다들 기본적으로 주고받는다. 게다가 알아보는 순간 정작 유니에 관심 없을 상대측에서 바로 유니로 화살을 돌려버리면 진짜로 골치 아파지기에 찔러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좋아, 좋다구. 7억에 해.”
“솔직히 그 이상 재량 받으셨을 테지만 제가 팀장님 생각해서 이 정도만 한 겁니다.”
“아주 사람 말려 죽이려고 하는구만.”
“삼전전자 광곤데 그 정도도 안 받으면 오히려 삼전이 더 이미지 안 좋아져요. 이게 다 삼전을 위해서 한 거라니까요.”
“아이고, 그러셨어요? 하여튼 다음 주나 다다음 주에 미팅 잡힐 계획이야. 많이 바쁠 거 알고 있지만 미리 전화한 이유 알지?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 때는 혼자 오지 말고.”
“그럼요. 7억 확정해주셨는데 우리 유니 예쁘게 꽃단장해서 같이 가겠습니다.”
“술 먹을 것도 아닌데 꽃단장은 무슨… 이번에는 정 부장 앞에서 말이나 예쁘게 해달라고 해줘.”
“우리 유니가 그 정도 센스는 있죠, 하하하.”
전화를 끊고 나니 밖에서 듣고 있던 경수가 후다닥 들어온다.
“대표님, 우리 유니 삼전 핸드폰 광고 찍는 겁니까? 확정된 거예요?”
“응, 거의 확정이고 다음 미팅에서 계약서 찍어야지.”
“우와… 삼전 핸드폰이라니…”
“그나저나 지금 유니는 뭐해?”
“오늘 MBS 음방 사전녹화 뜨고 있을 건데요? 새벽부터 리허설한다고 전화통화만 했습니다. 지금쯤 사녹 뜨고 있을 시간이긴 한데… 전화 해볼까요? 삼전 핸드폰 땄다고?”
“아니야. 이따가 저녁에 일 다 끝나고 말해줘. 그리고 음원 차트 현황은 어때?”
“아직도 1위부터 10위까지 우리 유니 노래가 적게는 6개, 많게는 8개 정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1위는 계속해서 유니 타이틀곡이 잡고 있구요.”
“앨범은?”
여기서 말하는 앨범은 시디를 말한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음원매출이 앨범 매출을 상회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팬들 사이에 판매되는 앨범 매출은 무시할 수 없다.
앨범 1장당 만 원 이상에 판매되는 게 보통인데 중간정산을 하고 나면 기획사에 떨어지는 수익이 개당 보통 4000~5000원 정도다. 그렇기에 앨범만 10만장 정도를 팔면 음원 수익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다.
반대로 음원 수익은 한 곡당 500원 정도에 다운로드 받았을 때 중간 정산을 하고 기획사로 떨어지는 금액이 대략 150원 정도다. 때문에 오직 음원 수익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서는 3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가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어지간한 대박 앨범이 아니고서는 손익분기점을 앨범, 음원 수익만으로 맞추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앨범 발매 이후 행사나 콘서트에 집중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아직 통계 잡힌 건 없지만 오프라인 구매가 상당하다는 말은 들립니다.”
“이번 주는 지나야 집계 되겠네. 알았어.”
경수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대표실 문이 열렸다.
“도마뱀 미디어 지여울 제작 피디님 오셨는데요?”
민주가 조심스레 말했다.
“온다는 말 있었나?”
“아뇨. 미리 연락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알았어. 들어오시라고 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 피디의 손에는 큼지막한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뭘 이런 걸 들고 오세요.”
“아하하, 전에 사과할 것도 있고 해서… 앉아도 되죠?”
“그럼요.”
그녀는 저번 윤해연 작가, 오션나라 PPL 관련으로 우현이 아직도 심기가 불편한지 알고 있었나보다.
“일단 전에 그 오션나라 PPL은 잊어주세요. 저희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그것보다 윤 작가님 대본 나온 거 보니까 조금 웃기게 나왔던데, 보셨어요?”
“그럼요. 그래도 워낙 연기들을 잘 하셔서 그런지 완전히 B급처럼 나온 거 같지는 않더라구요. 피디님도 의외로 괜찮다고 하시고. 어쨌거나 죄송해요. 저희가 조금 급한 상황이라서…”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됐습니다. 이제 지난일인데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오신 것 같지는 안은데…”
“네, 이번에 이주희 작가님 ‘내 남편의 여자’로 편성 잡고 캐스팅 준비중인데 이 작가님께 여쭤보니까 캐스팅은 대표님한테 완전히 맡기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요? 저는 처음 듣는데…”
“아, 서로 상의된 게 아니었나요? 이 작가님은 누가 되든 상관없으니 대표님께서 맞춰 주실 거라고 하셔서… 뭐, 그렇다고 캐스팅 미팅 자리까지 참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금 캐스팅까지 생각하면 너무 머리 아파진다고 그냥 대본에만 집중하겠다고 하시네요.”
“흐음… 이 작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몰랐네. 어쨌거나 이 작가님이 저에게 넘겼으면 받아야죠. 그래, 누구를 생각하시는데요?”
“일단 연령대가 30대 초중반이잖아요? 아주 잘생겼으면서도 나이대가 맞는 배우를 생각하다보니까… 사실 민재원을 생각했었거든요?”
슬쩍 눈치를 보는 게 이미 회사와 민재원과의 관계를 아는 듯했다.
“어허… 안 될 말인 거 아시죠?”
“하하, 그럼요. 그래서 바로 포기하고 생각한 게 모델 출신에 연기도 어느 정도 되는 도병준 씨 어때요?”
“도병준이면 1년 전쯤인가? 케이블 드라마 하나 찍지 않았어요? 그 때는 내가 그걸 보지 못한 것 같긴 한데…”
“맞아요. 그 때 케이블에서 로맨스 드라마인 ‘두근두근 로망스’를 찍었는데 상대 여주가 아이돌이었어요. 그런데 케이블치고 시청률도 꽤 나왔고 모델 출신치고는 연기력 논란도 없어서 저희 회사 쪽에서는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때요?”
“제가 그 친구 연기를 못 봐서… 일단 알겠어요. 그럼 여주는 누구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단 남주가 여주를 버리고 나서 재벌집 여자랑 결혼하잖아요? 그 재벌집 딸은 김소율이라고 요즘 MBS에서 ‘우리 결혼할까요?’에 나오는 여배우 있죠? 예쁘면서도 차가워 보이고, 연기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싼티 나지 않아 보여요.”
“그 친구는 알죠, 좋네요. 지 피디님 말처럼 재벌집 딸이 싼티 나면 그게 가장 에러죠. 그 친구는 고급브랜드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주는요?”
“크흠… 저희가 이번에 대박 하나 물어온 거 같아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도발적인 눈빛을 보낸다. 도대체 누구길래 저렇게 자신감을 온 몸으로 표출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