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내가 스타로 띄어줄게-148화 (14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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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첫 정규 앨범 발매(2)

“아, 그럼요. 저희야 당연히 가고 싶지만 한 달 동안 스케줄이 꽉 차 있습니다. 아휴, 시간을 내 볼 수 있을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유니 똥 쌀… 아니,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구요. 하루에 세 시간밖에 못 자고 있습니다. 네.”

경수가 전화를 붙잡고 애원하고 있다. 분명 어느 방송사 피디나 작가에게서 온 전화일 텐데 예전이었다면 우현이 스케줄을 관리했겠지만 지금은 경수가 맡아서 하고 있다.

“한 달 내 스케줄은 모두 거절해.”

경수가 전화를 끊자마자 혹시나 스케줄을 잡아버릴까 염려돼 한마디 던졌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다음주 수요일은 오전이 비는데 그것도 잡지 말까요?”

유니가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차트 줄 세우기를 하면서 단 하루 만에 한달 치 스케줄을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비는 시간들이 있었지만 일부러 채워 넣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사고가 날 까봐서다.

“응, 잡지 마. 그거 얼마 한다고 잡았다가 사고라도 나 봐. 게다가 유니랑 세동이도 잘 시간이 있어야지.”

“이 정도 스케줄은 탑 걸그룹 치고는 많지 않은 건데…”

경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거야 그네들은 걸그룹 만들 때 투자한 게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회수하려고 굴리는 거지. 보통 걸그룹 한 팀 만드는 데 돈이 어느 정도나 드는지 아냐?”

“보통 3억에서 5억 정도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배우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첫 일을 시작했던 경수지만 그래도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아예 모르지는 않았다.

“보통이 그렇고 더 많이 드는 경우도 있어. 그거 회수하려고 하면 초반부터 빡세게 굴려야지. 그런데 난 아니잖아. 유니가 와서 내가 투자한 거라곤 사무실에 녹음실 하나 만들어주고 엔지니어 데리고 온 것 밖에 없지. 남들은 안무가에, 전문 프로듀서에, 마케팅 직원에… 결국 우리도 그렇게 될 거지만 당장 들어간 돈이 별로 없으니 돈을 버는 것에만 몰두해서는 안 돼.”

“그럼요?”

“유니랑 계약이 끝날 때도 생각해야지.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굴리기만 하면 처음에야 좋다고 일하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회사를 원망하거든. 회사가 키워주지 않았다면 뜰 수 없었을 친구들도 원망해. 우리 입장에서는 배은망덕하다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래?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가 다른 거지.”

“그래도 너무 하네요.”

“너무 하긴… 그것뿐이냐? 요즘 걸그룹 전부 벗기다시피 해서 띄우잖아? 걔들이라고 벗고 싶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그런 춤을 추고 싶어서 추겠어? 뜨기 전에는 어떻게든 떠 보려고 그네들도 더 열심히 하지만 막상 뜨고 나서도 계속 그런 컨셉으로 가면 날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원망하거든. 결국 이렇게 되면 끝은 어디로 가겠어?”

“계약 해지?”

“해지는 극단적인 경우고…”

“아, 재계약 불발이요.”

“맞아. 너 현재 3대 기획사를 비롯해서 걸그룹이나 보이그룹 재계약 된 그룹이 몇 개나 될 것 같아? 대부분 센터나 가장 외모가 출중한 친구들 몇 명만 계약되고 다른 친구들은 재계약을 불발되는 게 보통이라고.”

“그래도 그 중 몇몇은 재계약이 되긴 하네요?”

“돈을 많이 줄 테니까. 그 돈도 싫다고 떠난 친구들도 많지. 그렇게 보면 정말 배우들과 가수들은 생태계가 달라.”

“맞아요. 매니저나 회사랑 십 년 이상 가는 배우들은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유니랑 오랫동안 가고 싶으면 우리가 먼저 알아서 배려해줘야 하는 거야. 뭐, 그래도 싫다고 떠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어쩌겠어? 일단 있을 때 잘 해줘야지.”

“유니가 대표님의 이런 마음을 알아줘야 할 텐데요.”

“걔가 원래부터 걸그룹 출신이잖아. 알겠지. 모르면 할 수 없고. 어쨌든 당장 들어오는 스케줄은 CF를 제외하면 전부 컷하고 다음 달 스케줄 들어오는 것도 지방이면 시간을 두고 잘 맞춰.”

“아, 경남이면 경남, 이렇게 몰아서 보내라는 거죠?”

“그렇지. 아침에 부산에서 행사 뛰다가 오후에 음방하는 이딴 스케줄은 잡지 말라고. 그나마 부산이면 비행기라도 있으니까 다행이지만 여수나 거제도 같은 거 잡으면 유니도 유니지만 세동은 죽는 거야.”

“하하하, 안 그래도 세동이 은근히 저한테 잘해줘요. 스케줄 좀 잘 맞춰달라고.”

“이래서 사람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가 중요하지. 그래도 세동이한테 갑질하지 말어.”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데리고 있는 친구가 없어서 대표님 땜빵하는 중이라는 거요. 아, 마침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뭔데?”

“혹시 우리 회사도 걸그룹 키울 생각 있는 겁니까?”

“걸그룹?”

유니 하나 솔로가수로 키우는 것과 걸그룹을 키우는 것은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시스템이 없고 노하우도 없다. 단지 사람 보는 눈과 음악을 선택하는 귀가 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걸그룹을 만들 수 없다.

“힘든가요?”

“언젠가 보이나 걸그룹을 만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아직 회사가 그렇게 크지가 않아서.”

“다른 소형 기획사는 걸그룹 키워서 데뷔 시켰잖아요?”

“그거야 오로지 걔들만 바라보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 회사 사장이 걸그룹을 키워봤던 사람일 테고. 나는 배우 전문이야.”

“배우 전문이지만 유니를 이렇게 빵 띄웠잖아요.”

“그거야 유니 걔가 다 했지. 작곡도 지가 해. 노래도 원래 잘했지. 회사에서 대준 거라고는 작사가 섭외해주고 앨범 만들어준 것뿐인데? 엄밀히 말하면 회사가 띄워준 건 아니지. 그리고 걸그룹은 기본기를 가르쳐야 해. 노래랑, 춤이 안 되는 나이 어린 애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래요? 흐음…”

고심하는 걸 보니 어디서 어린 친구 몇 명을 봐뒀나 보다.

“왜? 누굴 찜했길래 걸그룹이 나와? 너 걸그룹 처음부터 키우려면 고등학생 이상 친구들 데리고 와서는 힘들다는 거 알지?”

춤과 노래를 1, 2 년 만에 다 배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최소 3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는데 고등학생 친구를 가르쳤다간 데뷔할 때쯤에 스무 살을 넘겨버린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데뷔가 늦어지게 되면 아무것도 못하고 이십대 중반을 맞이하게 된다. 연예 지망생들의 경우 의외로 이런 친구들이 많다.

“알죠. 열 두, 세살부터 열다섯 정도가 가장 적당한 나이라는 거.”

“그럼, 네가 찜한 친구가 그 정도 나이라는 거야?”

“크흠… 아직 확실한 게 아니라서…”

뭔가 심중에 계획해 놓은 것인 있긴 한데, 아직 입 밖에 내기는 어려운가 보다.

“오… 뭔가 신중한 척 하는데? 그래, 잘 해봐. 응원해줄게. 대신 회사 입장에서 돈이 들어가는 일은 쉽게 결정 내려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라.”

“명심하고 있습니다, 헤헤.”

“나 미팅 갔다 올 테니까 잘 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십쇼. 부디 대박치고 오십쇼!”

유니의 앨범이 대박 터지면서 벌써부터 광고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에는 소주 광고가 가장 단가 높게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음료, 게임, 그리고 당대 톱스타들만이 찍는다는 핸드폰 광고까지 들어왔다. 이번 미팅은 바로 그 핸드폰 광고 협의 미팅이다.

미팅 장소는 바로 삼전그룹 본사. 보통 작은 회사는 아티스트와 같이 미팅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부러 데리고 가지 않고 혼자 갔다.

“안녕하세요. 이리로 가실까요?”

복잡한 절차를 거쳐 핸드폰 마케팅실에 도착하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회의실로 인도했다. 딱 보니 아직 대리도 달지 못한 사원. 역시나 회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예전에 은하가 막 뜨던 시기에 대기업 마케팅팀과 광고 계약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광고 제작사도 같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제작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대기업 직원들만이 떠들어 댔었다.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는 갑을 관계에 광고 계약 자리인데도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다 전략이었단다. 하긴, 몸값이 한두 푼도 아니니 그런 쇼도 할 법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당사자가 자신이니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무려 30분을 넘게 기다리니 그제야 하나 둘 회의실로 들어와 인사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우현과 안면이 있는 최고기획의 최호선 팀장도 있었다. 미리 만나게 될 거라는 연락을 받았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자 최호선 팀장이 미리 짜온 컨셉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한 번 만져 봐.’ 라는 겁니다.”

“그거 좋네. 느낌이 팍 와.”

말은 핸드폰을 만져보라는 말이지만 어린 여자가 남자배우를 보며 ‘만져 봐’라고 하면 그 대상으로 핸드폰을 상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대놓고 섹스어필을 하는 건데 이런 식의 은밀한 성적 광고는 오래전 TTL 광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상당히 여러 군데에서 사용돼 왔다.

“김 대표 생각은 어때?”

마케팅팀 정윤수 부장이라는 자가 반말로 물어온다. 아무리 우현이 사장이라고 해도 그런 작은 회사의 사장에게 사장 대우는 못 해주겠다는 대기업 꼰대 마인드 중 하나다.

“글쎄요.”

“응? 왜?”

“아직 우리 유니가 어리다보니까 이런 식의 멘트는 적절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아니 벗기자는 것도 아니고 이런 기본적인 멘트를 못하겠다는 건가?”

“단어는 별 거 아니지만 상황과 카메라 각도를 보면 그게 아니죠. 하다못해 ‘라면 먹고 갈래?’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성을 꼬실 때 사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거죠?”

이번에는 다시 존댓말로 나온다. 하지만 상대방은 반대로 더욱 압박을 받게 된다. 이제부터는 완전히 남처럼 취급하겠다는 경고 같아서다.

“이렇게는 못 하죠.”

감히 자신들을 상대로 이렇게 대놓고 뻗대고 나온 사람은 없었는지 그 정윤수 부장이라는 사람이 헛기침만 한다. 당황했겠지. 여기서 됐다고 나가라고 하면 우현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분위기를 팍팍 풍겼기 때문이다.

“김 대표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핸드폰 브랜드인 ‘유니버스’ 광고는 아무나 찍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시죠. 그리고 의상도 청바지에 티셔츠로 아주 젊은 감성을 표방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선정적으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의상은 현재 우리 유니도 짧은 원피스 입고 나옵니다. 조금 짧은 치마 입는 정도는 저도 넘어가요. 그런데 저런 멘트는 우리 유니의 이미지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자 정윤수 부장도 짜증이 나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유니 인기가 얼마나 갈 거 같아요? 다음 앨범도 그렇게 잘 될 것 같습니까? 앨범과 영화는 까보기 전에는 누구도 모른다는 거 몰라요?”

“잘 될 겁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소속 아티스트 망하게 한 적은 없거든요. 어쨌거나 컨셉이 우리 유니와 너무 안 맞습니다. 유니 아버지도 전에 들어왔던 주류 광고는 절대 안 된다면서 극구 반대하셨어요. 아마 유니 아버지도 반대하실 겁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컨셉 수정 없이는 계약 힘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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